용양봉저정2
# 용양봉저정2
<2025년 5월 21일>
- 치과에 갔다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 습하고 더웠지만 혹시나 작약이 아직 피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들렀다. 역시나 작약과 산딸나무꽃이 한창이었다. 더워서 카메라는 생략.
◆ 산딸나무
- 정자 왼쪽 정원 끝에 한 그루 있다.
◆ 용양봉저정(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 지금은 초라해 보인지만 정조가 수원 능행시에 주정소(晝停所)로 썼던 행궁이다.
- 채제공의 <번암집>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려 있다.
을묘년(1795, 정조19) 윤2월 10일 상이 자궁을 모시고 현륭원에 가서 정성을 펴고 돌아왔으며, 화성의 신읍에 이르러서는 봉수당으로 거둥하여 자궁에게 진찬례를 거행하였으니, 이는 대개 이해가 자궁의 회갑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신을 정리 도제조로 삼아 먼저 노량의 주교에 가서 대령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다음과 같이 시를 읊다〔乙卯閏二月之旬上奉慈宮詣顯隆園展誠還至華城新邑御奉壽堂進饌慈宮葢以是年爲慈宮周甲也以賤臣爲整理都提擧命先詣次鷺梁舟橋有吟〕
江水安如砥 강물이 평안하기 숫돌과 같게
舟梁盡意橫 뜻을 다해 배다리가 가로걸렸네
魚龍眞愛戴 어룡이 참으로 애모하여 떠받쳤나니
天地與平成 하늘과 땅이 함께하여 성사시켰도다
民庶如雲望 서민이 구름처럼 모여 바라보는 것은
君王愛日情 날을 아껴 효도하는 군왕의 정이로세
嘉名五大字 다섯 개의 큰 글자 아름다운 이름이여
亭子亦恩榮 정자 역시 은혜롭게 영광을 입었어라
*정조가 망해정(望海亭)을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으로 명명하고 천신(賤臣)에게 명하여 써서 현판에 걸게 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 <홍재전서>에는 <용양봉저정기(龍驤鳳翥亭記) 계축년>가 수록되어 있다.
다리 종류가 셋인데, 하나는 부교(浮橋)라는 것으로 전(傳)에 부교로 기록된 것은 주교(舟橋)가 그것인 것이다. 대체로 배로 다리를 만든 것은 주(周)에서 시작된 제도로서 후세로 내려올수록 점점 그 규모가 발달되어 낙수(洛水)의 효의교(孝義橋), 하수(河水)의 포진(蒲津) 등 여러 다리가 그것인데, 그들 규모는 모두 수많은 큰 배들을 가로로 길게 연결한 다음 긴 널빤지를 엮어서 묶고, 아름드리 통나무를 매달아서 고정시키는데 그 신묘한 효과와 쓰임새가 큰 자라를 죽 이어 놓은 것이나 무수한 물고기들을 물 위로 뜨게 하는 것에 버금간다.
내가 해마다 현침(顯寢)에 갈 때면 의위(儀衛) 문제 또는 공억(供億)에 필요한 것들로 대농(大農)에서 나오는 것들은 모두 장영(壯營)에서 정리하도록 하고 있으나 나루를 배로 건너자면 그 역사가 너무 거창하고 비용도 너무 과다하기 때문에 노량강(鷺梁江)에다 주교를 설치하고 관사를 두어 그 일을 맡게 했으며, 강가의 작은 정자 하나를 구입하여 주필(駐蹕)하는 곳으로 삼았다. 그 정자의 옛 이름은 망해(望海)였는데, 그 이름의 유래는 발돋움을 하고 서쪽을 바라보면 허명(虛明)한 기운이 떠오르고 거기가 바로 우리나라의 서해(西海)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 그 정자가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만하다.
그 주교가 만들어진 이듬해인 신해년에 내가 그 정자에 올라갔더니 때마침 먼동이 트고 해가 떠오를 무렵이어서 붉은 구름이 뭉게뭉게 떠오르고 새하얀 비단이 맑게 깔려 있어 마치 떨어지는 것 같고, 공수하고 있는 것도 같고, 상투 같고, 쪽진 것도 같은 강 주위의 여러 봉우리들이 발과 안석 사이로 출몰하면서 해기(海氣)가 비치고 있고, 천리나 푸른 출렁이는 바다는 곧 손에 닿을 듯이 문밖을 나가지 않고도 다 거두어들일 것 같았다. 내 그것을 보고서야 그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정자의 조망이 좋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이 정자는 부교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 겨우 시인이나 일 없이 노는 선비들이 흐르는 물을 보고 시원함이나 느끼고 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정자도 옛 이름에다가 새로 발견된 것들을 곁들여서 새로 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자 연신(筵臣) 중에서 누가 내게 아뢰기를, “옛날 영락(永樂) 연간에 금수교(金水橋)가 완성되자 황하에 얼음이 얼고, 영감(靈感) 있는 여러 모양의 구름들이 나타나고, 경운(慶雲)이 마치 태양처럼 둥글게 뭉쳤으며, 어좌(御座) 바로 앞에는 오색화(五色花)가 나타나 이에 뭇 신공(臣工)들이 성덕서응시(聖德瑞應詩)를 지어 송덕을 했습니다. 지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도운 지도 오래되어 여러 대에 걸쳐 성명(聖明)한 임금이 나셨고, 모든 물자가 풍부하고 백성들도 많아졌으며, 마을마다 집들이 즐비하고, 강과 바다에는 노와 돛이 가득하여 그것들이 태평성대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우모(羽旄)를 따라 몰려드는 강가의 사녀(士女)들도 모두 다리가 이루어진 것을 함께 기뻐하고, 정자가 국가 소유로 된 것도 기뻐하고 있으니 인심이 어떻다는 것을 알 만하지 않습니까. 비록 얼음이 얼지 않고 오색화가 나타나지는 않았더라도 인화(人和)가 바로 얼음이 얼고 꽃이 핀 것이니, 이 정자 이름을 서응(瑞應)으로 하지요.” 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서응도 물론 좋으나 지금 보면 북쪽에는 높은 산이 우뚝하고, 동에서는 한강이 흘러와 마치 용이 굼틀굼틀하는 것 같고, 봉이 훨훨 나는 듯하다. 찌는 듯한 광영(光榮)이 서기로 엉기어 용루(龍樓)와 봉궐(鳳闕) 사이를 두루 감싸고 있으면서 앞으로 억만년이 가도록 우리 국가 기반을 공고히 할 것이니 그렇다면 그 상서가 어찌 얼음이나 오색화 따위 정도이겠는가.” 하고는 그 자리에 나온 대신(大臣)에게,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이라고 크게 써서 문지방 위에다 걸게 하고, 이어 그 내용을 이와 같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
◆ 작약
- 정자 왼쪽 언덕
- 정자 왼쪽 화단.
◆ 주교사터_舟橋司址
- 용양봉저정 입구에 도로에 있다.
- 정자 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면 한강대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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