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_2.6. 6관_새로운 나라6
# 독립기념관_2.6. 6관_새로운 나라6
# 일제의 패망과 광복
- 1945년 8월 10일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선언 수락 의사를 통보하면서 일제의 패망소식이 알려졌다. 일왕은 8월 15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항복을 선언하였다. 9월 2일 연합국은 미주리 함상에서 일본 정부로부터 항복문서에 서명을 받았다. 일제의 항복은 일제의 침략을 받은 나라들이 함께 싸워 거둔 성과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오랫동안 일제와 싸웠다. 광복은 독립운동을 통해 그리고 연합국과 함께 싸워 얻어낸 성과였다.


# 미주리 함상에서 열린 항복 문서 조언식.(1945.9.2.)
# 조선총독부에서 열린 항복 문서 조언식(1945.9.9.)


◆ 일제 항복 문서
- 1945.9.2. /독립기념관 소장(김진택 기증)


◆ {매일신보} 호외.
- 1945.9.9. / 독립기념관 소장


◆ 광복 1주년 기념엽서
- 1946.8.15. / 독립기념관 소장(최순식 기증)


# 환국기념 서명포 살펴보기

# 1945.9. 당면정책 발표.

◆ 임시정부 요인의 환국과 국민들의 환영 #6350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5년 9월 3일 국내에 들어가 추진할 당면정책을 발표하였다. 핵심은 임시정부를 국민들에게 봉환한다는 것이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상하이를 거쳐 1945년 11월 23일, 12월 1일 두 차례로 나누어 국내로 들어왔다. 국민들은 개선 환영 대회 등을 개최하며 임시정부의 환국을 환영하였다.

◆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
- 1945.9.03. / 독립기념관 소장(최선화 기증)


◆ 임시정부 당면정책
1. 본 임시정부는 최속最速 기간내에 곧 입국할 것
2. 우리 민족의 해방 및 독립을 위하야 혈전한 중·미·소·영 등 우방민족으로 더불어 절실히 제휴하고 연합국헌장에 의하야 세계일가의 안전 및 평화를 실현함에 협조할 것
3. 연합국 가운데 주요국가인 중·미·소·영·프 5강에 향하여 먼저 우호협정을 체결하고 외교도경外交途徑을 전개할 것
4. 맹군 주재 기간에 일체 필요한 사의事宜를 적극 협조할 것
5. 평화회의 및 각종 국제집회에 참가하여 한국의 응유應有한 발언권을 행사할 것
6. 국외임무의 결속과 국내임무의 전개가 서로 접속됨에 필수한 과도조치를 집행하되 전국적 보선에 의한 정식정권이 수립되기까지의 국내 과도정권을 수립하기 위하야 국내외 각 계층, 각 혁명당파, 각 종교집단, 각 지방대표와 저명한 각 민주 영수회의를 소집하도록 적극 노력할 것
7. 국내 과도정권이 수립된 즉시에 본 정부의 임무는 완료된 것으로 인하고 본정부의 일체 직능 및 소유물건은 과도정권에게 교환할 것
8. 국내에서 건립된 정식 정권은 반드시 독립국가, 민주정부, 균등사회를 원칙으로한 신헌장에 의하야 조직할 것
9. 국내와 과도정권이 성립되기 전에는 국내 일체 질서와 대외 일체 관계를 본정부가 부책유지負責維持할 것
10. 교포의 안전 및 귀국과 국내외에 거주하는 동포의 구제를 신속 처리할 것
11. 적의 일체 법령의 무효와 신법령의 유효를 선포하는 동시에 적의 통치하에 발생된 일체 벌범을 사면할 것
12. 적산敵產을 몰수하고 적교敵僑를 처리하되 맹군과 협상 진행할 것
13. 적군에게 피박출전被迫出戰한 한적 군인을 국군으로 편입하되 맹군과 협상 진행할 것
14.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와 매국적에 대하야는 공개적으로 엄중히 처분할 것
대한민국 27년(1945) 9월

◆ 김구가 만든 한국애국가
- 1945.11.12. / 독립기념관 소장(국민당사편찬위원회 기증)



◆ 김재식金宰軾 환국 허가서
- 1946.3.25. / 독립기념관 소장(김창건 기증)


# 1945.11~12. 환국

◆ 임시정부 및 연합국 환영준비회 취지
- 1945.8.


◆ 삼천만 동포에게 고함
- 1945.11



◆ 임시정부 영수領袖 환국 전국 환영회 명부
- 1945.11


◆ {서울신문} 호외
- 1945.11. 23.


#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선 환영대회 1945.

# 과도정권 수립 추진 #6370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외에서 27년여 동안 유지해 왔던 정권을 국민들에게 봉환하고자 하였다. 방법은 국내의 각계 인사들과 과도정권을 수립하고 과도정권이 주도하여 정식정권을 수립하면 수립된 정식정권에 임시정부를 인계한다는 것이었다. 1946년 2월 국내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여 비상 국민회의를 결성하고 이어 1947년 2월 비상 국민회의 명칭을 국민의회로 바꾸어 정식 정부를 위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 탁치반대 국민총동원 중앙위원회 성명서
- 1946.1. / 독립기년관조당(오일룡기증)


◆ 비상국민회의 전단
- 1946.1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 {국제보도}
- 1946.11.1.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전국국민대표자 성명서
1947.3.1.


◆ 국민의회 성명서
1947.3.20.


◆ 조소앙 3·1절 기념사(1946. 3. 1.)
- 얼마나 속을 태우며 원통한 세월을 참고 지내셨습니까. 위로할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결심하기는 나의 독립군을 앞세우고 보무당당하게 한성을 환국하여 일본 총독의 머리를 베어서
남산 위의 소나무에 걸고 300년 원수를 갚고 30여 년 동안의 분노를 풀고자 하였습니다.
- 여러분! 가슴이 터집니다. 그렇게 되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산천초목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스코에서 상해에서
남경, 파리, 사천, 광동, 광서에서 삼일절을 맞을 때마다 결심하기를 명년에는 한성에서 이날을 맞이하자 하였소이다.
- 지금은 소원성취는 하였읍니다마는 내 흙을 밟고 서게 되었읍니다마는, 눈앞에 어린아이들을 보며 여러분과 함께 이날을 맞게 되었읍니다마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소이다. 여러분 삼천만동포여 힘껏 됩시다. 마음대로 우읍시다. 힘을 다하여 축수합시다.
- 나 조소앙은 여러분께 맹세합니다. 우리나라를 독립국으로 하오리다. 우리 동포로 하여금 자유민이 되게 하오리다.
불우한 한 동포는 여러분의 형제, 친구, 부형, 이들은 독립국과 자유민을 만들기 위하여 악독한 왜놈의 감옥에서 단두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원혼과 충혼을 위하야 나는 여러분 선열의 아내와 어버이와 언니와 아우에게 위로하며 사죄합니다.
이렇게 환국할 줄을 몰랐소.
- 그러나 다시 우리 산천초목, 금수어절에까지 고하고 맹세하고 싶습니다. 우리 민주독립을 성공하리다. 아이마다 대학을 졸업하게 하오리다.
어른마다 투표하여 정치성 권리를 갖게 하오리다. 사람마다 우유 한 병씩 먹고 집 한 채씩 가지고 살게 하오리다.
우리 조국을 광복하오리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나의 몸을 불에 태워 죽여주시오.
대한독립 만세! 임시정부 만세!

# "나는 우리나라 청년 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많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 김구 [나의 소원]

# 다시 되찾은 우리 땅

# 이어진 역사를 기억하다 #6410
-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우리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습니다.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바뀐 역사는 광복 후에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이어졌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상징물,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인 헌법을 살펴보며 독립운동 과정에서 변화·발전하고, 광복 후 재건·계승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 국가상징의 계승
국가상징은 한 국가를 잘 알릴 수 있는 내용을 그림이나 문자 등 공식적인 징표로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태극기와 무궁화, 애국가를 비롯하여 1919년 4월 11일 독립운동가들이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이름으로 정한 국호 ‘대한민국'도 국가 상징물입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국가상징물은 되찾아야 하는 나라의 상징이자 광복에 대한 염원까지 더해져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 지금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 헌법의 계승
-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인 헌법 안에는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때 제정된 대한민국임시헌장은 이후 다섯 차례 개정되며 국민주권과 민주공화제 등의 가치를 정착·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가치는 광복 후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에 계승·반영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 대한민국 정부 수립 #6390
- 1943년 미·영·중 3국 정상이 카이로회의에서‘한국의 자유 독립'에 합의하였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카이로선언을 실행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립하였지만 끝내 결렬되었다. 이후 한국문제는 유엔으로 넘겨졌고, 유엔에서는 한국임시의원단을 파견하여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유엔의 결정으로 1948년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제헌국회를 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재건하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 대한민국 헌법
- 1948. / 독립기념관 소장(정지홍 기증)


◆ 제헌국회 속기록
- 1948. 7. / 국회도서관 소장


◆ 국회의원 사진 특보
- 1948.7.1. / 독립기념관 소장(최상진 기증)


◆ 김도연 선거전단.
- 1948.


◆ 5.10 총선거 투표함


# 1948.8. 대한민국 정부 수립.

◆ {대한민국 관보} 1호
- 1948.9.01. / 독립기념관 소장


◆ 대한민국 정・부통령 및 초대 내각 포스터
- 1948.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 정부수립 기념 우표
- 1948.8.15. / 독립기념관 소장(채신부 기증)


◆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순
- 1948.8.15. / 독립기념관 소장(서재필기념재단 기증)



# 우리가 그려나갈 내일 #6420
- 독립운동이 남겨준 자산이 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여 가능을 창조한 독립정신'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수난을 당했지만, 이를 이겨낸 역사적 경험이 있다. 독립정신과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우리 민족의 발전과 밝은 내일을 열어가는 원동력이자 정신적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

#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