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행/전주

전주 전동성당

isanjo 2025. 12. 7. 15:15

# 전주 전동성당

 

전동성당은 1791년 12월 8일(신해박해)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가 참수되어 순교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터이다. 1801년 10월 24일(신유박해) 호남의 사도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동생 유문길, 윤지충의 동생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했고, 이어 김유산 토마스와 이우집은 참수로 수교하였다. 이들 가운데 윤지충과 권상연의 유해가, 220년만에 윤지헌의 유해가 초남이 성지에서 발견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보두네 신부(François Xavier Baudomnet 1855~1915)는 1888년(또는 1889년)에 전주본당(현 전동성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으나 당시 전주는 개항지가 아니었고 전라감영이 위치하고 있어 전주에 곧바로 들어올 수 없었기에, 그전주 근교일 소양 대승리에 머물면서 전교사업을 시작하였다. 첫 순교 100주년인 1891년 현 성당 건물 옆에 위치한 한옥을 사서 본당을 전주 읍내로 이전하였다.

 

보두네 신부는 교우들의 성당 신축기금과 자신이 절약해 모은 돈으로, 첫 순교자들이 순교했던 곳을 매입하여 본당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08년 명동성당 건축 경험이 있었던 푸와넬(Poisnel) 신부의 설계로 성당 건축을 시작하였다. 성전 지하의 주춧돌로는 철거된 전주부성의 성벽 돌이 사용되었는데, 일부 돌은 참수된 순교자들의 머리가 성벽에 매달렸을 때 피가 스며든 돌인 것으로 추정된다. 성전 건축에 사용된 목재는 주로 치명자산(승암산)의 나무들이고, 안팎의 석재로는 전주 황강돌과 여산 대리석이 사용되었다. 벽돌은 공사를 담당한 중국인 기술자 100여 명이 직접 구워 만든 것이다. 공사기간 동안 전주 시내 교우들은 물론 진안, 장성 등지의 교우들까지 밥을 지어 먹을 솥과 양식을 짊어지고 와 헌신적으로 자원 부역을 했다. 그러한 노력 끝에 공사를 시작한 지 6년만인 1914년 외부공사를 마쳤고, 이듬해 보두네 신부는 56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 뒤를 이어받은 제2대 주임신부인 라크루츠 신부(Marcel Lacrouts 1871-1929)의 주도로 성당 내부에 제대를 설치하였고, 보두네 신부 사후 도착한 프랑스 종을 설치하였으며, 프랑스에서 들여온 루르드 성모상과 성요셉상을 현 위치에 모셨다. 라크루츠 신부는 1926년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1931년 6월 18일 드망즈 주교에 의해 성당과 사제관이 축성되었다. 1937년에 전주교구가 설정되어 전동성당이 주교좌 성당이 되면서 현 사제관은 주교관과 교구청으로 사용되었다. 1957년 주교좌 성당이 중앙성당으로 이전되었고, 1960년 교구청이 이전된 뒤에는 지금까지 사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동성당의 성전은 호남 지방에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건물로서 성당 전체는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성당 정면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비잔틴 양식이다. 당시 건축된 대부분의 성당의 내부 기둥이 벽돌로 만든 전석기둥인 것에 반하여 전동성당은 전주 황방산의 석재를 사용한 석재기둥이다.

전동성당에서 첫 순교가 일어난 12월 8일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데, 전동성당은 성당 전체가 성모님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성모성심의 중앙 위치에 제대와 감실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 사진과 글 참조)

 

<2020년 12월 06일>

 

 

 

 

 

 

 

 

 

 

 

 

 

 

 

 

# S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