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감영 전주성 2
# 전라감영 전주성 2 외부 및 전주성 풍남문
<2025년 12월 05일>



◆ 통인청(通引廳) 유지
이곳은 통인청通引廳이 위치한 공간이다. 통인은 전라감사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담당했기 때문에 선화당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다. 동짓날에는 통인청에서 대사습놀이가 열려 전국에서 소리꾼들이 모여 서로의 기량을 뽐냈다.
◆ 검률당(檢律堂)
이곳은 검률당이 위치한 공간으로, 검률은 전라감사의 법률 보좌관으로 검률당에서 집무하였다. 북쪽에는 심약당이 위치한 공간으로, 심약은 전라감사의 의료 보좌관으로 심약당에서 집무하였다
◆ 지소(紙所)와 인방(印房)
이곳은 지소紙所와 인방印房이 위치한 공간이다. 동쪽의 지소는 감영에서 필요로 하는 한지를 만들었다. 서쪽의 인방은 감영에서 필요로 하는 책을 출판하는 공간이어서, 인출방印出房이라고도 하였다.
* 세검정 육교 서쪽에 조지서造紙署가 있었다.
◆ 영리청(營吏廳)
이곳은 영리청이 위치한 공간이다. 영리들이 근무하는 공간이어서 영청이라고도 하였다. 영리는 감영 내 관원을 보좌하여 감영의 실무를 담당하는 하부실무자이다. 영리청북쪽에는 진상청進上廳으로 각종 진상품을 관장하는 영리들이 근무하였다.
◆ 보군고(補軍庫)와 보선고(補膳庫)
이곳은 보군고와 보선고가 위치한 공간이다. 서쪽 보선고는 관찰사에게 제공하는 음식 재료를 시중에서 구매하여 조달하는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 전주시 관광안내도

# 18세기 전주지도
전주경찰서 좌측에 있다.


◆ 전주성 남문 풍남문 보물 제 308호
- 이 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남쪽 출입문이다. 전주성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 1389년(고려 공양왕 1년)에 관찰사 최유경(崔有慶)이 처음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화재로 불타버렸고, 영조 44년(1768)에 전라감사 홍락인(洪樂仁)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 이름하였다.
「풍남」이란 「풍패(豊沛)」의 남쪽이란 뜻이며, 「풍패」란 중국 한(漢)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 곳에 비유한 것이다. 성문 위에 세운 누각 위층의 기둥이 아래층의 기둥과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


# 아름다운 순례길
- 이 표지판이 풍남문 앞에 있는지 궁금하다.



- 성루에 올라갈 수 없다.

- 성문은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고 왼쪽의 좁은 담을 지나야 문이 보인다. 서울의 남대문과는 다른 형태이다.



# 풍남문(豊南門) 보물 제308호
이 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이다. 전주부성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
1389년(고려 공양왕 1년)에 관찰사 최유경이 처음 세웠 으며 정유재란 때 화재로 불타 조현명이 3층 누각으로 수축하였다. 이후 1768년(영조44년)에 또 화재로 불타 전라감사 홍락인洪樂仁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 이름 하였다.
[풍남]이란 [풍패豐沛]의 남쪽이란 뜻이며, [풍패]란 중 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 곳에 비유한 것이다.
성문 위에 세워진 누각 위 층의 기둥이 하층의 기둥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종루
- 풍남문 성루 왼쪽에 있다.



# 고루
- 현재는 고루에는 북이 없다.

# 풍남문 현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