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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화천 곡운구곡

화천군 김수증의 곡운구곡(谷雲九曲)

by isanjo 2026. 7. 13.

# 화천군 곡운구곡

- 화천 곡운구곡은 조선 후기 김수증이 은거하며 설정한 아홉 굽이의 명승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조선 문인의 이상세계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구곡 문화유산이다.

 

1傍花溪·2靑玉峽·3神女峽·4白雲潭·5鳴玉瀨·6臥龍潭·7明月溪·8隆義淵·9疊石臺.

*<曺世傑筆九曲圖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농수정 주인 김수증이 1682년 음력 11월에 쓴 구곡도첩 첫 장에 쓴 예서이다.


# 곡운구곡차회옹무이도가운(谷雲九曲次晦翁武夷櫂歌韻)

絶境端冝養性靈  절경이라 성령 수양 알맞은데

暮秊心跡喜雙淸  만년의 심적은 맑은 풍월 즐길 뿐이네

白雲東畔華山北  백운산 동쪽 화산 북쪽이라

曲曲溪流滿耳聲  굽이굽이 시내소리 귀에 가득 들려오네

 

*冝(宜) 秊(年) 清(淸)

 

1. 방화계(傍花溪)

一曲難容入洞舡  일곡이라, 좁은 동천 배도 용납하기 어려운데

𣑯花開落隔雲川  복사꽃 피고지는 운천이 막혀 있네

林深路絶來人少  숲 깊고 길 끊겨 찾아오는 이 드문데

何處仙家有吠烟  어느 곳 선가에 개 짖고 연기이나

 

<壬申 孟春 운옹(雲翁:운공 김수항)>

 

* 舡(船)  𣑯(桃) 烟(煙)

*서오촌(鉏鋙村)으로부터 서쪽으로 돌아 오리곡(梧里谷)을 지나 하나의 시내를 건너는데, 이것이 곧 곡운동구(谷雲洞口)이다 산현(蒜峴)을 넘으면 산수가 두루 돌고 수석이 맑고 장엄하니 이것을 방화계라 한다.

 

 


 

2. 청옥협(靑玉峽)

二曲嶒玉作峯  이곡이라, 우뚝한 산 옥봉을 이뤘는데

白雲黃葉秋容  흰 구름 누른 잎 가을 경치 이루었네

行行石棧仙居近  돌다리 가노라니 신선집이 가까워라

已覺塵喧隔萬重  알랴 소란한 진세 천만중 막혔음을

 

<아들 창국(昌國)>

 

*暎(映)

*화계(花溪)로부터 5리를 지나 하나의 산을 돌면 석잔(石棧)이 옆으로 비껴 있어 좌측으로 위험한 시내를 내려다보게 되고 우측으로 층층이 높이 솟은 봉우리를 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청옥협이다.
# 다산 정약용의 <산행일기>에는 '崚'이 '峻'으로 되어 있다.

 

3. 신녀협(神女峽)

三曲仙蹤杳夜舩  삼곡이라, 신선 자취는 밤배가 아득한데

空䑓松月自千年  빈 누대에 송월만이 스스로 천년일레

超然會得淸寒趣  청한한 정취 초연히 깨쳤나니

素石飛湍絶可憐  흰 돌 나는 여울 너무도 아름답네

 

<종자(從子:조카) 창집(昌集)>

 

*舩(船䑓(臺)

* 3곡운 신녀협(神女峽)인데, 옥협(玉峽)을 지나 약간 벌어지는 듯 이 시냇물을 따라가면 여기에 이르게 된다, 옛날 이름은 기정(妓亭)이다. 그래서 내가 신녀협(神女峽)이라고 하였다. 물위에 매월당(梅月堂)의 유적이 있다.

 

▮ 곡운구곡(포트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곡운구곡은 선캄브리아기(25억년~5억 7천만 년전)에 형성된 변성암류를 관입(마그마가 암석 틈을 따라 굳어지는 것)한 중생대 쥐라기(2억8천만년~1억4천4백만년 전)의 반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다. 반상조직이란 “반정”이라고 부르는 큰 결정들이 아주 작은 크기의 광물들에 의해 포위된 조직을 말한다. 감입곡류(嵌入曲流,incised meander)는 지반의융기 또는 하강으로 산지나 고원지대의 유수의 낙차가 커져 침식작용이 활발해지게 된다. 이때 하천의 양쪽이 하방침식을 받아 하천이 깊게 파여 생기는 하천으로 뱀이 기어가는 모습처럼 구불구불하게 흐른 것을 말한다. 곡운구곡에는 다양한 형태의 포트홀 소규모 폭포, 폭호(폭포아래 깊이 파인구멍)가 있는데 이러한 경관들이 아홉개의 경치가되었다.

 

▮ 김수증 이야기

곡운구곡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용담리 일대에서 30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한 조선시대 성리학자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24~1701) 선생의 호 '곡운'을 딴 것으로 감압곡류하는 지촌천의 5km 구간을 가리킨다.

김수증은 1670년(현종 11) 47세 되던 해에 지금의 강원 화천군 사내면에 복거(卜居)할 땅을 마련하였고, 5년 뒤 송시열(宋時烈)과 그의 동생 김수항이 유배되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근처의 용담 계곡을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모방하여 곡운구곡(谷雲九谷)이라고 이름하고 평양 출신의 화가 조세걸(曺世傑)을 시켜 아홉 굽이의 실경을 그려 『곡운구곡도(谷雲九谷圖)』 화첩을 만들었다. 1689년(숙종 15)에는 기사환국으로 김수항이 죽자 곡운 계곡 근처의 화음동(華陰洞)에 들어가 은거하였으며,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복권된 후에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화악산으로 들어가 은둔하였다.
*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35~1705)  "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24~1701)"의 오류.

* 그의 김수항이  그의 동생 김수항이...

* 김수항(金壽恒: 1629년∼1689년 4월 9일)

 

 

4. 백운담(白雲潭)

四曲川觀倚翠巖  사곡이라. 푸른 바위 의지해 내를 내려볼제

近人松影落𣯶𣯶  가까이 솔 그림자 삼삼히 떨어지네

奔潨濺沫無時歇  분류하는 물거품 그칠 때가 없어

雲氣尋常漲一潭  언제나 구름기운 못 위에 넘실대네

 

<종자(從子) 창협(昌協)>

 

*𣯶(毿)

*4곡은 백운담(白雲潭)인데, 여협(女峽)으로부터 작은 시내를 건너 한 언덕을 돌아서 시내를 따라가면 여기에 이르게 된다.

 

 

5. 명옥뢰(鳴玉)

五曲溪聲冝夜深  오곡이라, 시내 소리 깊은 밤에 더 좋아

鏘然玉佩響遙林  패옥처럼 쟁쟁하여 먼 숲을 울리네

松門步出霜厓静  송문을 벗어나니 서리 언덕 고요한데

圎月孤琴世外心 둥근달 외로운 거문고 세상 밖의 심경일세

 

<종자(從子) 창흡(昌翕)>

 

*瀬(瀨) 冝(宜) 静(靜) 圎(圓)

*5곡은 명옥뢰(鳴玉瀨)로서 운담(雲潭) 수백 보 위에 있다. 산밑에 두어 집 가복(家僕)이 살고 있다.

 


 

6. 와룡담(臥龍潭) *이름처럼 물살이 완만하다.

六曲幽居枕綠灣  육곡이라, 그윽한 집 푸른 물굽이 베개 삼아

深潭千尺暎松關  일천 자 깊은 못 그림자 솔문을 비치네

潜龍不管風雲事  잠긴 용 풍운의 일 관여하지 않고

長卧波心自在閒  깊은 물속에 오래 누워 스스로 한가롭네

 

<아들 창직(昌直)>

 

*暎(映) 潜(潛) 卧(臥)

*6곡은 와룡담(臥龍潭)인데 명옥뢰(鳴玉瀨)와 서로 접해 있다. 버들숲가에 물이 쌓여 맑고 깊다. 서쪽으로 농수정(籠水亭)을 바라보면 은연히 송림(松林) 사이에 비친다.

 

# 곡운영당[谷雲影堂] *6곡에서 7곡을 가기전 오른쪽에 곡운영당이 있다.

- 1670년(현종11년) 김수증이 농수정사를 지었다. 1675년(숙종1년)에 성천부사를 지내던 중 동생 김수항이 송시열과 함께 유배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농수정사로 돌아와 이곳을 "곡운"이라 이름 지었다.

곡운영당은 김수증의 사후인 1704년(숙종30년)에 이 지역 선비들에 의해 세워졌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정책에 따라 훼손되었다.

사내면 유도회에서는 매년 춘추에 곡운 김수증, 삼연 김창흡, 동봉 김시습, 명탄 성규헌 선생의 추모제를 이곳에서 지내고 있으며 1991년 이곳을 후세에 전하고자 곡운추모비를 세웠고, 김수증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며 충효사상의 정신을 배우고 문화, 전통을 계승하고자 2017년 11월 이곳에 곡운영당을 건립하였다.

 

# 공조참판 곡운 김수증 추모비

 

# 이용은(李容殷) 흥학비?

- 이용은이 춘천부사 재식시 1856년 곡운영당을 수리하면서 <곡운구곡도첩>을 발견하였는데, 김수증의 5대손인 김흥근에게 보수하게 하였다.

 

7. 명월계(明月溪) *다리에서 산쪽을 바라보면 탁 트인 전경에 달이 잘 보일 듯하다.

七曲平潭連淺灘  칠곡이라, 평평한 못 얕은 여울 연했는데

清連堪向月中看  맑게 이는 잔물결 달을 향해 볼만하네

山空夜静無人度  산도 비어 고요한 밤 지나는 사람없고

唯有長松倒影寒  소나무 그림자만이 물속에 들어 차갑네

 

<종자(從子) 창업(昌業)>

 

*(淸) (靜)

*7곡은 명월계(明月溪)인데 영당(影堂) 앞에 있다.

 

8. 융의연(隆義淵)

八谷清淵漠漠開  팔곡이라, 맑은 못 넓게도 열렸건만

時将雲影獨㳂洄  이따금 구름 그림자 홀로 오르내리네

真源咫尺澄明别  참 근원 지척이라 맑고 밝음 유별나니

坐見儵魚自徃来  오가는 피라미떼 앉아서도 보이누나

 

<종자(從子) 창집(昌緝)>

 

*清(淸) 将(將) 㳂(沿) (眞) 别(別) (往) (來)

*8곡은 융의연(隆義淵)인데, 영당(影堂) 서쪽에 있다.

 

# 예전 8곡 안내석는 지촌천 동쪽에 있었다.

 

9. 첩석대(疊石臺) *지금은 첩석이 무너져 많이 남아 있지 않다.

九曲層巖更嶄然구곡이라, 암벽이 층층한데

䑓成重璧暎淸川겹벽이 대를 이뤄 맑은 내에 비치네

飛湍暮與松風𢚩흐르는 여울물 솔바람과 급하니

靈籟嘈嘈滿洞天그 울림소리 동천에 가득 요란하네

 

<외손(外孫) 홍 유인(洪有人)>

 

*(臺) 暎(映) 𢚩(急)

*9곡은 첩석대(疊石臺)이다. 또 서쪽으로 돌아가게 되면 좌우에 암석이 기괴하고 물이 그 사이로 쏟아져 내린다. 조금 올라가면 조그마한 탑이 있고, 그 가에 길이 있으니 백운령(白雲嶺)으로 향하게 된다.

# 다산 정약용의 <산행일기(汕行日記)>에는 ' 璧'이 '壁'으로 되어 있다.

 

 

# 예전 9곡 안내석은 지촌천 동쪽에 있었다.

 

#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 발문

 

# 김근순(金近淳) *삼품(三品)

 

*농암집 제25권 / 제발(題跋) *한국고전번역원
세상에서는 좋은 그림을 말할 때에 반드시 ‘핍진(逼眞)하다’고 한다. 그림이 핍진하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것이니, 고개지(顧愷之 동진(東晉)의 화가)와 육탐미(陸探微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화가)도 그보다 더한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였다. 사람들은 실물을 구하다가 구하지 못한 경우에 한발 물러나 그것을 그림에서 찾곤 하는데, 종소문(宗少文 소문은 남조 송나라 종병(宗炳)의 자)이 산수에 대하여 취한 태도가 그러했다. 지금 그 당시에 그린 그림이 과연 핍진했는지 여부는 알 수는 없으나 그는, “이제는 늙고 병들어 명산을 두루 구경할 수가 없으니, 그 모습을 비슷하게 그린 그림이라도 볼 수 있으면 아예 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말하였다.
우리 백부와 곡운과의 관계를 본다면 전후 십수 년 동안 음식과 기거, 침석(枕席)이며 궤장(几杖)이 구곡 안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이곳의 중첩된 산과 시내, 울창한 초목은 모두 자신의 폐부며 모발이요, 이곳의 안개와 이내는 모두 자신이 들이키고 내쉬는 공기요, 이곳의 물고기와 새, 고라니와 사슴들은 모두 자신이 벗 삼아 노는 반려이니, 이곳에서 구하여 얻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종소문의 일처럼 화가의 손을 빌린 것은 어째서인가? 나는 그 까닭을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을 독실히 좋아하여 즐거움이 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화가는 바로 서도(西都 평양)의 조세걸(曺世傑)인데, 선생이 친히 데리고 와서 직접 분부하여 마치 거울에 비친 상을 취하듯이 굽이마다 현장에 임하여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 겹쌓인 언덕과 골짜기, 진기한 바위와 물살이 빠른 여울, 집의 위치, 채소밭의 경작 상황, 닭이 울고 개가 짖는 모습, 나귀가 걸어가고 소가 잠자는 모습 등 갖가지 풍경이 빠짐없이 다 갖추어졌다. 그리하여 이 그림을 한번 펼쳐 보면 마치 망천(輞川 당나라 왕유(王維)의 별장)의 농장을 지나가고 무릉도원으로 가는 나루를 찾아가는 것처럼 황홀하여 저절로 저자와 조정의 번잡한 속세를 멀리 벗어나게 된다. 선생은 아마도 장차 이 그림을 가지고 사람들과 이 좋은 것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 즐거움을 독점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듣기로, 지난날 어떤 선비가 산중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소를 타고 시냇가를 지나가는 선생을 만났는데, 선생은 수염과 눈썹이 말끔하고 의관이 고풍스러웠으며 아이종 하나가 지팡이를 지고 뒤따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분위기가 매우 한가로워 선비는 말을 세우고 가만히 바라보며 신선 세계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고는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그가 본 대로 말했다고 한다. 이 일단의 광경은 참으로 그림으로 그릴 만한데, 안타깝게도 화가 조씨가 멀리 있어 불러올 수가 없다. 그 일을 여기에 대략 기록하여 그림을 대신하는 바이니,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이 대목을 보면 마음이 상큼해질 것이다.
내가 이 발문을 쓴 뒤에 선생이 읽어 보시고는, “네 말이 좋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내 이 두 다리가 때때로 산을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관계로 이 구곡(九曲)이 눈 안에 늘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럴 때에 보려고 한 것뿐이다.” 하였다. 아, 선생의 이 말씀으로 볼 때 ‘이곳을 독실히 좋아하여 즐거움이 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아서는 정말로 안 될 것이다.
한편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세상에서는 좋은 그림을 일러 본디 ‘핍진하다’고 하지만 좋은 경치를 이를 때에도 반드시 ‘그림 같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찌 좋은 산과 빼어난 물 등 아름다운 풍경은 한곳에 모두 갖추어지기가 어렵고, 혹시 그런 곳이 있다 하더라도 깊은 산중에 있어 인적이 미치기가 어려워 그러한 곳에 촌락이 형성되고 백성이 정착하여 닭과 개가 짖어 대고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라 정감 있는 물색이 어우러지게 되는 것은 더욱 쉽지가 않은 법인데, 화가는 마음 가는 대로 경물을 배치하고 모아 놓을 수 있는 까닭에 이따금 붓끝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해 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선생이 산속에서 각건(角巾)을 쓰고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구곡 안에서 배회하는 그곳은 곧 그림 속의 광경이요, 선생이 산을 나가 문을 닫고 안석에 기대어 그림을 감상하는 그곳은 곧 현실의 구곡이 아닐까? 현실과 그림을 또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이 그림책을 보는 사람은 먼저 이 문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世言好圖畫。必曰逼眞。畫至於逼眞。極矣。雖顧,陸。不容有加。人惟求其眞而不得。然後退而求之於畫。若宗少文之於山水。是也。今不知當時所畫。果逼眞與否。而彼旣曰老病俱至。名山不可徧覩。則雖髣髴形似焉。猶賢乎己也。若吾伯父之於谷雲。則前後十數年間。飮食起居。枕席几杖。率不離九曲之中。凡其山谿之重掩。草樹之蒨鬱。皆吾之肺腑毛髮。煙雲嵐翠。皆吾之氣息呼吸。魚鳥麋鹿。皆吾之朋游伴侶。亦何求不得。而猶且假手丹靑。若少文之爲。何哉。此誠不敢知者。然不曰好之篤而樂之深。則不可也。畫者。乃西都曹世傑。先生實手携而面命。逐曲臨寫。如對鏡取影。故其重岡複峽。奇石激湍。茅茨之位置。園圃之耕鑿。雞鳴犬吠。驢行牛眠。種種備具。纖悉無遺。使人一展卷間。怳然若歷輞川之莊。問桃源之津。而渺然自遠於市朝埃壒之外。先生殆將以此。同其好於人而不私其樂歟。然余聞往有一士人入山中。偶逢先生騎牛過溪上。鬚眉蕭然。冠服淸古。一僮奴負杖隨後。意象甚閒暇。立馬凝望。疑以爲神仙中人。歸而爲人道之如此。此一段光景。絶可畫。惜乎。曹史在遠不可致。略記於此。以當繪事。覽者觀之。亦當爲之灑然也。

昌協旣爲此跋。先生讀之而曰。爾言善也。然余之爲此圖也。亦以吾兩脚不免時時出山。此九曲者。 不能常在目中。故用爲爾時觀耳。嗟乎。如先生之言。不曰好之篤而樂之深。信乎其不可也。抑有一說。世言好圖畫。固曰逼眞。而其稱好境界。又必曰如畫。豈不以佳山秀水勝美難該。而其幽深夐絶。又人跡所難到。能於其間。著村莊民物雞犬煙火。以粧點物色。尤不易得。而畫者却能隨意所到。布置攢簇。往往於筆下。幻出一絶好境界故耶。然則先生之在山也。角巾藜杖。相羊九曲之中。便是畫境界。其出山也。閉戶隱几。指點粉墨之間。便是眞九曲。其眞與畫。又何分焉。觀此卷者。宜先了此公案。

 

 

 

# 김흥근(金興根) 영상(領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