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박물관158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3_1층_13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3_1층_13 4. 신라세력의 확산2 # 가야에서 신라로신라의 짧은 굽다리접시와 굽다리 긴목 항아리는 6세기 중엽에 유행했던 대표 적인 그릇입니다. 이 무렵 가야 여러 나라의 무덤에도 이러한 토기를 껴묻기 시작 합니다. 무덤의 형태도 돌덧널무덤에서 신라식 돌방무덤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 같은 변화는 김해, 함안, 고성, 합천, 고령 등 옛 가야 지역의 무덤에서 나타 나는 고고학적 현상입니다. 가야가 신라의 지방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상징 적으로 보여줍니다. # 금관가야1. 김해 화정.2. 김해 원지리.3. 부산 두구동.4. 창원 다호리.5. 창원 가음정동. # 대가야6. 고령 지산동.7. 합천 삼가. # 아라가야8. 함안 소포리. # 소가야9. 고성 내산리. # ◆ 1.. 2024. 11. 13.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2_1층_12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2_1층_12 4. 신라세력의 확산1남해안 바닷길의 중개교역을 바탕으로 발전한 금관가야는 4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400년 고구려·신라 연합군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가야의 여러 나라들은 신라의 팽창에 영향을 받기 시작다. 낙동강 동쪽에 자리한 비화가야부터 신라문물이 확산되었고 532년에는 금관가야의 왕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했습니다. 신라는 낙동강 서쪽으로 계속 진출하여 마침내 562년 대가야를 정복함으로써 가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가야의 다양한 문화는 신라의 지방 문화로 바뀌었는데, 옛 가야 지역의 유적과 유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1. 굽다리 긴목 항아리- 5~6세기- 창녕 교동/계성리 ◆ 2. 굽다리 바리- .. 2024. 11. 12.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1_1층_11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1_1층_11 3. 가이의 발전2 # 아라가야와 대가야의 발전아라가야의 성장은 함안 말이산고분 유적과 유물에서 잘 드러난다. 불꽃무늬구멍굽다리접시가 특징이며 말갑옷·고리자루 큰칼·미늘쇠 등 많은 철제품이 확인된다. 5세기 동안 큰 전성기를 누렸으며, 6세기 낙동강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의 압박에 대항하여 가야 세력의 결속을 도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령을 중심으로 성장한 대가야는 5세기 후반 가야 최대 세력으로 부상해 중국 남제(南齊)에 직접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다. 대가야는 가야 세력 중 유일하게 토기뿐만 아니라 독자적 양식의 무기와 금공예품을 갖추어 그 위세가 남달랐음을 보여준다. 장수, 남원, 순천 등 호남 동부 일부 지역의 큰 무덤에서 발견된 대가야.. 2024. 11. 11.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0_1층_10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0_1층_10 3. 가이의 발전1변한(弁韓)의 여러 작은 나라에서 출발한 가야는 발달한 철기 생산 능력과 남해안 바닷길 중개 교역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차츰 축적된 국력과 나라 안팎으로 높아진 위상은 마침내 큰 변화를 불러왔다. 3세기 후반 무렵 지배계층 무덤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모습에서 그러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큰 무덤을 만들고 많은 재물을 장례에 소비했을 뿐만 아니라 순장 풍습도 나타났다. 4세기는 금관 가야의 눈부신 성장이 주목된다. 5세기 이후에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아라가야, 소가야가 함께 발전했다. 옛 가야 지역 곳곳에 남은 커다란 무덤과 다양한 출토 유물은 당시 지배자들의 우월한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 단단한 토기의 등장, 그리고 .. 2024. 11. 10.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9_1층_09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9_1층_09 2. 가야의 여명3 # 옻칠_빛깔 입은 목기 옻칠은 목기의 장식성과 기능성을 한껏 높이는 기술로, 옻칠한 나무는 윤이 나고 표면이 매끈해질뿐더러 습기, 열, 부패에 강하다. 목제품뿐만 아니라 토기, 가죽, 쇠붙이 등에도 칠을 발라 그 효과를 기대했다. 옻나무 수액을 채취하고 정제해서 칠하기까지 과정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당시 칠기는 매우 귀하게 여겨졌다. 널무덤에서 발견된 칠기는 무덤 주인공의 사회적 경제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 옻칠한 굽다리 접시 제작 과정. *재현품. ◆ 1. 옻친한 부채 *복제품.- 원삼국시대- 창원 다호리. ◆ 2. 옻칠한 부채 *복제품.- 원삼국시대- 창원 다호리. ◆ 1. 옻칠한 칼집과 쇠칼. *복제품.- 원삼국.. 2024. 11. 9.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8_1층_08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8_1층_08 2. 가야의 여명2 # 와질토기(瓦質土器)_제작 기술의 혁신기원전 1세기 무렵 한반도 중부와 남부에서는 지역별로 독특한 토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영남지역에서는 ‘와질토기'가 등장한다. 질감이 기와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회색, 회흑색을 띠며, 주로 무덤에서 출토되기에 제사 그릇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릇의 모양은 주머니단지, 쇠뿔모양 손잡이 항아리 그리고 짧은목 항아리 등이 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굽다리를 붙이거나 화로 모양 그릇받침이 나타나는 등 형태와 종류가 다양해진다. ◆ 1. 보시기_완(盌)- 원삼국시대- 창원 다호리. ◆ 2-1. 주머니모양 항아리-대상호(袋狀壺) - 원삼국시대 - 창원 다호리/반계동, 김해 구지로. ◆ 2-2... 2024. 11. 8.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7_1층_07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7_1층_07 2. 가야의 여명1 청동기시대 막바지에 이르러 옛 가야 지역 곳곳에 나타난 덧띠토기문화와 더불어 새롭게 확산된 철기문화는 사회변동을 재촉했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는 이전부터 뿌리내린 지역문화를 완전히 압도하지는 못한 채 일정 기간 공존하면서 서서히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도 바뀌었다. 새로이 등장한 널무덤에서 널리 확인되는 철 제품과 와질토기가 대표적이다. 무덤에 넣은 껴묻거리 종류와 양이 많아진 것도 청동기 시대 고인돌에서 찾아볼 수 없던 큰 변화이다. 주변 지역과 교류도 활발해져 각 지역 공동체들은 새로운 선진문물을 경쟁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가야로 발전해 나갔다. # 철기의 사용철은 고대사회 형성과 변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광석에서 추출한 .. 2024. 11. 7.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6_1층_06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6_1층_061. 가야 이전 사람들의 삶5 # 민무늬토기- 청동기시대 살림살이_무문토기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그릇은 민무늬토기無文土器입니다. 민무늬라 하지만 아가리 겉면에 짧은 선이나 구멍 등 간단한 무늬를 새기기도 했습 니다. 바리·대접·접시·항아리·독 등 필요한 용도에 따라 생김새가 다양 하지만 바닥은 대체로 납작합니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 마찬 가지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른 특징을 보이며 꾸준히 사용되었습니다. ◆ 1. 바리_발(鉢)- 청동기시대- 진주 대평리 ◆ 2. 바리- 청동기시대- 산청 소남리 ◆ 3. 바리- 청동기시대- 울산 교동리 ◆ 4. 바리- 청동기시대- 울산 서부동. ◆ 5. 접시- 청동기시대- 진주 대평리 ◆ 6. 항아리 - 청동.. 2024. 11. 6.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5_1층_05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5_1층_05 1. 가야 이전 사람들의 삶4 # 농경과 마을의 탄생_농촌의 출현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신석기시대 조·기장 위주의 소규모 잡곡 농사와는 달리 벼농사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 큰 규모의 마을이 생겨났다. 여러 채의 움집, 논과 밭 마을 전체를 두른 도랑이나 울타리가 청동기시대 마을 풍경이다. 농사가 가장 중요한 생업수단으로 정착하면서 땅을 일구고 수확 하는 도구들도 발달했다. ◆ 동심원이 그려진 바위 그림- 청동기시대- 밀양 상동면 안인리 *경남 밀양시 상도연 안인리 신안마을의 고인돌 유적에서 출토된 바위 그림이다. 지름 7cm 내외의 동심원 세 겹 아래로 검이 새겨져 있다. 동심원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 2024. 11. 5.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4_1층_04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4_1층_04 1. 가야 이전 사람들의 삶3 # 문화사 연표- 구석기시대부터 가야까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을 기준으로 설명한 문화사 연표. BP : 현재(1950)년 이전BCE: 기원전CE: 서력 기원후 # BP : 700,000 - 한반도에 인류 등장. - 뗀석기 사용. - 수렵채집사회. ◆ 1. 돌남몸돌- 구석기- 밀양 천황재 ◆ 3. 격지- 구석기- 밀양 천황재. BP : 40, 000- 후기 구석기- 돌날문화 성행. ◆ 2. 돌날- 구석기 후기- 밀양 천황재 # BCE: 8,000- 신석기시대- 토기 등장- 간석기 사용- 움집생활- 초보적 농사 시작. ◆ 1. 빗살무늬토기- 신석기- 진주 상촌리 ◆ 2. 결합식 낚시바늘- 신석기- 울산 세죽, 통영 연.. 2024. 11. 4.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2_1층_02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2_1층_02 1. 가야 이전 사람들의 삶1 1. 가야 이전 사람들의 삶1 낙동강 하류 일대는 가야인들이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킨 삶의 터전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 활동의 흔적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석기인들은 먹거리를 찾아 옮겨 다니며 이동 생활을 했다. 신석기시대에는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살며 물고기나 동물을 잡고, 식물채집으로 먹거리를 얻었다. 간석기와 토기를 사용하였고 초보적인 농사도 지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기와 간석기, 민무늬토기를 사용하였다. 벼농사 등 농경이 본격 적으로 발달하고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는 큰 마을이 들어섰다. 거대한 고인돌은 농경사회 마을 공동체 의식이 크게 성장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가장 오래된 삶의 흔적.. 2024. 11. 2.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_1층_01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_1층_01 # 1층 핸드폰 사진. 2024. 11. 2.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0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0 # 가야누리_어린이박물관. # 가야 GAYA _가야토기 모양을 활용한 간판. # 박물관 입구 건너편에 유물 모형이 벽에 전시되어 있다. # 오리문양 토기. # 뿔잡이 항아리. 3 굽다리 접시. # 호랑이 모양 띠고리. # 청동 거울. # 통모양 청동기. # 가락국 역사연대표. # 기마인물형토기. # 박물관 전경. # 가락국기비(駕洛國記碑) # 청동 방패꾸미개. # 화천(貨泉) # 원통모양 그릇받침. # 자루칼. # 새무늬 청동기. # 판갑- 가야무사의 기개. # 미늘쇠. # 수레바퀴모양 토기. # 박물관 입구 2024. 11. 2. 2024_06_창덕궁_비원 2024_06_창덕궁_비원 ◆ 주합루(宙合樓) 전경. ◆ 주합루(宙合樓) 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EC%A3%BC%ED%95%A9%EB%A3%A8(%E5%AE%99%E5%90%88%E6%A8%93) # 어수문과 주합루. 설명서. ◆ 부용정(芙蓉亭) ◆ 무엇인가? ◆ 태액지(太液池)- 창덕궁 후원에 만든 사각형 못이다.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ED%83%9C%EC%95%A1%EC%A7%80(%E5%A4%AA%E6%B6%B2%E6%B1%A0) ◆ 어수문(魚水門)- 주합루 정문이다. ◆ 영화당(暎花堂) 어필이다. - 영화당 내부. ◆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 2024. 9. 23. 2024_06_창덕궁2 2024_06_창덕궁2 # 계단식 화단 ◆ 청향각(淸香閣) # 산 뒷쪽의 문을 나서면 비원으로 연결된다. ◆ 해당화.-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다. ◆ 아궁이. ◆ 동인문(同仁門) ◆ 영현문(迎賢門) # 성정각(誠正閣) 일원- 동궁의 영역으로 세자가 서연(書筵)을 하는 곳이자 왕이 한가로이 신하를 만나던 곳이다.현재 후원으로 가는 넓은 길에 큰 건물인 중화당이 있었고, 이 일대가 왕세가의 거처인 동궁이다. 순조의 장남이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할 때 주로 기거하며서 정궁으로 썼다. 동궁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다. 육각 누각인 삼삼와(三三瓦), 그 옆에 칠분서(七分序)와 숭화루(承華樓)는 복도로 연결되어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하였다. 성정각은 세자의 공부방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왕.. 2024. 9. 22. 2024_06_창덕궁1 2024_06_창덕궁1 - 비가 와서 가방은 입구 사물함에 두고 왔다. 비원을 예약하고 시간을 기다리며 창덕궁을 구석구석 구경했다. ◆ 옥당(玉堂) ◆ 약방(藥房) ◆ 만복문(萬福門)- 양지당을 들어가는 정문이다. ◆ 양지당(養志堂)- 창덕궁 서쪽에 있는 전각으로 선대왕의 어의를 보관하던 곳이다. 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EC%96%91%EC%A7%80%EB%8B%B9(%E9%A4%8A%E5%BF%97%E5%A0%82) # 선원정 일원. ◆ 역대 왕들의 초상화[어진]을 보관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태조 이하 영조와 정조 등 어진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후원에 선원전을 신축하여 옮기면서 이곳은 비게 되었다. 부속건물.. 2024. 9. 22. 2024_06_서울_창경궁 2024_06_서울_창경궁 ◆ 통명전(通明殿)- 1834년에 중건했다. 내전의 중심 건물로 원대를 넓게 쌓고 지붕 가운데 용마루가 없다. 개운데 3칸은 대청마루가 있고 양 옆에 온돌방을 두어 왕과 왕비의 침실로 썼다. 서쪽 마당에는 동그란 샘과 네모난 연못이 있고, 그 사이에 돌로 물길을 만든 정원이 있다. ◆ 양화당(養和堂)- 1834년에 다시 지었다. 대비의 침전이지만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갔던 인조가 돌아와 거처하기도 했다. ◆ 경춘전(景春殿)-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의 침전이다. ◆ # 숭문당과 함인정- 명정전의 후전(後殿)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1890년에 재건하였다. 앞쪽에 설치한 누가.. 2024. 9. 20.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5_금관가야의 황혼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5_금관가야의 황혼. # 광개토대왕비. - *여기에서 말한 왜는 가라와 왜의 연합군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고구려 남정 이후 20여년이 지난 시점부터 대성동고분군에 93호 덧널무덤, 73호 구덩식돌덧널무덤과 같은 대형무덤이 존재하지만, 초대형급무덤과 별도의 딸린덧널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한 앞 시기에 주로 부장되었던 금동제 장식마구와 왜의 위세품 등은 더 이상 부장되지 않았다. 그리고 5세기 후반부터는 고령과 합천의 대가야와 함안의 아라가야가 급성장한다. 이는 대성동고분군세력의 몰락을 말하는 것으로, 아마도 5세기 중엽부터 금관가야는 중국-서, 남해안-일본을 잇는 해상교섭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분열된 금관가야의 지배층이 고령, 합천, 함안으로 이동해 간 것으.. 2024. 9. 17.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4_금관가야의 토기문화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4__금관가야의 토기문화 # 대성동고분군에서는 부드럽고 세련된 곡선미를 특징으로 하는 가야 토기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토기는 항아리와 화로모양토기, 다양한 형태의 그릇받침, 굽다리접시 등이 있다. 이후 금관가야 토기는 대가야와 아라가야 토기의 원형이 되었다. ◆ 1. 뚜껑긴목항아리_유개강경호(有蓋長頸壺) / 바리모양 그릇받침_발형기대(鉢形器臺)- 김해 대성동. ◆ 2. 원통모양 그릇받침(筒形器臺)- 김해 대성동. ◆ 3. 원통모양 그릇받침_통형기대(筒形器臺)- 김해 대성동. ◆ 4. 오리모양토기_(鴨鉢形土器)- 김해 대성동. ◆ 5. 화로모양 그릇받침_노형기대(爐形器臺)- 김해 대성동. ◆ 6. 연질항아리(軟質壺) / 연질화로모양 그릇받침_.. 2024. 9. 16.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3_금관가야의 철기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3_금관가야의 철기 # 금관가야의 대외교류.- 금관가야는 동아시아의 주요 철 생산지로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이미 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3세기 무렵에는 낙락, 대방, 마한, 동예, 왜 등에 수출하였다. 대성동고분군에는 금관가야의 경제적 대외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세기 때 북방계 유물은 전연(前燕)을 비롯한 북방지역에서 입사한 것이고, 중원계 유물은 동진(東晉)에서 직접 입수했거나 전연을 거쳐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유물들은 금관가야가 중국, 북방-서해안-남해안-왜로 이어지는 교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음을 입증해 주는 증거물이다. ◆ 1. 목걸이 / 김해 대성동 ◆ 2. 귀걸이 / 김해 대성동 ◆ 3... 2024. 9. 16.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2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2 # 왕의 모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 # 인골을 통해 본 금관가야. - 예안리 고분군은 가야권역에서 가장 많은 인골이 출토된 곳이다. 여기에서는 남방계와 북방계의 형질이 함께 확인되었으며, 편두 인골도 확인되었다. 평균 신장은 남성이 164.7cm, 여성이 150.8cm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아이를 생산산 여성의 인골. # 빨간색 표시가 아이를 출산한 흔적이다. # 이 여성의 인골. # 동영상. # 덧널무덤 축조과정_목곽묘 출조과정(木槨墓 築造過程) # 1. 죽은 사람의 신분에 따라 무덤의 위치를 정한 후 땅을 파고 바닥면을 고르게 정리한다. # 2. 판재나 통나무로 덧널을 만들고 바닥에는 냇돌이나 깬돌을 깔기도 한다. # 3. 덧널.. 2024. 9. 15.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1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1 # 금관가야 김해 # 김해에 있었던 금관가야는 변한의 12개 소국 중 구야국이성장하여 발전한 나라이다. 일연의 '가락국기'에 따르면 수로왕이 서기 42년 나라를 건국한 후 구형왕이 신라에 투항할 때까지 10대 491년간 존속했다. 가야의 역사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와 연합하여 가야를 공격했던 때를 전후로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나누어진다. 금관가야는 전기가야의 중심국가로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대표적인 유물은 아가리가 밖으로 꺾인 굽다리접시, 화로모양토기, 고사리문양 판갑옷, 미늘갑옷, 덩이쇠, 철제 말갖춤새 등이 있다. 김해는 철의 주요 생산지로서 우수한 철기 생산능력을 갖운 철기문화의 중심지였다. 또한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에 접해 있다.. 2024. 9. 15.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_야외전시장 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_야외전시장 김해 대성동 고분군(金海 大成洞 古墳群) # 핸폰에 담긴 사진들. # 93호분 #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인돌 # 88호분 # 91호분. # 91호분. # 70호분. # 김해 대성동 고분박물관. # 07호분. # 멀리 김해박물관역이 보인다. # 03호분. # 01호분. # 02호분. # 73호분. # 대성동고분군 표지석.- 박물관 뒷편. 수로왕릉 방향에 있다. # 주변 1지군(기원!~7세기)- 이곳은 20기(1~20호) 무덤이 발굴조사된 주변 제1지구로 외뿔손잡이굽항아리, 쇠도끼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 주변2지구(기원2~5세기)- 이곳은 50기(1~50호)의 무덤이 발굴조사된 주변 제2지로루.. 2024. 9. 15. 2024_09_수로왕릉_김수로왕릉(金首露王陵)2 2024_09_수로왕릉_김수로왕릉(金首露王陵)2 - 멀리 수로왕릉이 보인다. 삼국시대에는 왕릉을 궁궐 부근에 짓는 것이 문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 돌담은 대략 5단으로 되어 있다. # 서원청(書員廳) # 문의 이름이 없다. # 숭모재(崇慕齋) # 숭모재 앞에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6기의 비석이 있다. # 현판 '崇慕齋'- 낙관이 잘 보이지 않는다. # 숭모재 전경 # 숭모재 주련(柱聯)-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찍었다.천외사양대원범(天外斜陽帶遠颿)계전쇄월포화영(階前碎月鋪花影) 춘추상생덕예례(春秋相生德與禮)천은무음성정필(天恩無音聖精畢) 쾌일명창한시묵(快日明窓閑試墨)한천고정자전차(寒泉古鼎自煎茶) 화풍감우법윤전(和風甘雨法輪轉) # 뒷편에 숭덕문(崇德門)이 보인다. 문은 잠겨.. 2024. 9. 14. 2024_09_수로왕릉_김수로왕릉(金首露王陵)1 2024_09_수로왕릉_김수로왕릉1 # 경주의 고분을 생각하면 가면 큰 오산이다. 조선시대 왕릉 크기와 비슷하다. 김해박물관에서 개천을 따라 걷다가 대성동 고분군과 박물관을 보고 조금 내려가면 4거리에 표지판에 보인다. 마침 맑은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좀전까지 약한 소나기가 지나갔다. # 사거리 건너에 김해가야의 왕실유적인 봉황동 유적이 있다. # 가야 임금님 빵. 경주10원빵과 다른 느낌. # 사거리에서 약 5분정도 걸으면 왼쪽으로 '수로왕릉' 표지판이 보인다. # 숭화문(崇化門)- 수로왕릉의 전각에는 대부분 '崇'가 들어간다. # 수롱왕릉 설명판.- 정문 왼쪽에 있다. # 하마비(下馬碑) # 사적표시. 사적73호. # 관람시간. #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수로왕릉 안내도가.. 2024. 9. 14.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5_대형 그림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5_대형 작품◆ 요지연도(瑤池宴圖) 8폭병풍- 19세기- 작자미상-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 10폭병풍.- 19세기말~20세기 초- 작가 미상-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8폭병풍.- 19세기- 작가 미상-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십장생도(十長生圖) 10폭병풍- 19세기- 작기 미상-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 묵죽도(墨竹圖) 10폭병풍- 1924년- 김규진(金圭鎭:1868~1933)-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 영광풍경도(靈光風景圖) 10폭병풍- 1915년- 안중식(安中植: 1861~1919)- 리움미술관 소장. 2024. 7. 19.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4_도자기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4_도자기 # 수집가의 시선3. - 고 현수명 회장과 현승훈 회장._화승.- 고 서성환 회장과 서경배 회장. _아모레퍼시픽. ◆ 청화백자 기명문 병- 19세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 청화백자 대나무 무늬 각병-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고 이건희 기증]. ◆ 백자 달항아리- 18세기- 현승훈 기증. ◆ 백자 대호(白磁大壺)- 17세기말~18세기 초- 부산박물관[고 현수명 기증] ◆ 백자 달항아리- 17세기 말~18세기 초-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 백자 상감 연꽃 넝쿨무늬 편병- 15세기.- 국립중앙박물관[고 이건희 기증] ◆ 철화백자 용문 호(壺)- 17세기 말~18세기 초- 부산박물관[고 현수명 기] # 용이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2024. 7. 18.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3_그림3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3_그림3 ◆ 책가도(冊架圖) 8폭 병풍- 19세기- 작기 미상- 개인 소장 - 처음에 멀리서 보고 사진인줄 알았다. ◆ 사인(士人) 초상- 19세기- 작가 미상- 개인 소장. ◆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 1801년- 김홍도(金弘道: 1745~1806)- 개인 소장. ◆ 귀거래도 8폭병풍.- 18세기- 정선(鄭敾: 1676~1759)- 개인 소장. ◆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 #武陵桃源- 1913년- 안중식(安中植:1861~1919)- 리움미술관 ◆ 초동독서도(草堂讀書圖)- 18세기 말~19세기 초- 이명기(李命基: 1756~1813 이전)- 국립중앙박물관[고 이건희 기증] # 화제- 독서다년 종송개작룡린( 讀書多年種松皆作龍.. 2024. 7. 16.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2_그림2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2_그림2 # 수집가의 마음2- 고 이병철 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 신성수 이사장. ◆ 연지쌍압도(蓮池雙鴨圖)- 1760년- 심사전(沈師正: 1701~1769)- 리움미술관 소장. ◆ 영모도(翎毛圖)- 19세기- 장승업(張承業: 1843~1897)- 개인소장. ◆ 애군우국(愛君憂國) *보물.- 17세기- 허목(許穆: 1795~1682)- 신성수. ◆ 답상출시도(踏霜出市圖)- 18세기-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고 이건희 기증] ◆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_꽃과 새, 그리고 강아지들. - 16세기- 이암(李巖: 1499~?)- 개인소장. ◆ 행서 대련(行書對聯)- 19세기-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개인소장. ◆ 행서.. 2024. 7. 14.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1_그림1 2024_부산박물관_수집가전1_그림1 # 전시회를 개최하며 # 부산에서 만나는 오리 시대의 수집가1 # 이병철 ◆ 신익성(申翊聖) 초상.- 17세기- 작가 미상- 신성수. ◆ 박문수(朴文秀) 초상 *보물.- 1750년- 작가 미상.- 신성수. # 어릴 때 만화로 보던 암행어사 박문수.... ◆ 삽살개- 18세기- 김두량(金斗樑: 1696~1763)- 현승훈. # 화제시문야직(柴門夜直) 밤에 사립문 지키는 것이시이지임(是爾之任) 바로 너의 소임이거늘여하도상(如何途上) 어찌하여 길가에서주역약차(晝亦若此) 이와 같이 짖고 있니. ◆ 용정반조도(龍汀反照圖)- 18세기- 정선-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용정에서 지는 해. ◆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 *나무 아래서 낮.. 2024. 7. 12.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