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기념관_2.2. 2관. 겨레의 시련3-1
# 존 IV. 가혹한 식민 지배가 시작되다1
-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차별적이고 야만적인 식민 지배를 시작하였다. 일제의 식민 지배는 겉으로는 ‘동화同化’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철저한 민족 차별 정책으로 일관하였으며, 무력을 동원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것이었다. 3・1 운동 이후에는 ‘문화 통치’라는 기만적인 정책으로 교묘하게 민족 분열을 획책하고 통제와 수탈을 강화하였다. 1930년대 들어 침략 전쟁을 확대한 일제는 민족 말살 정책을 본격화하였으며 한국을 병참 기지로 삼아 물자와 인력을 강제로 동원하였다.
◆ <무단통치의 시대>
- 한국을 식민 지배하기 시작한 일제는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고 헌병 경찰을 중심으로 무단 통치를 펼쳤다. 헌병 경찰의 통제 아래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한국인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이들을 수감하기 위하여 감옥을 증설하였다. 이처럼 일제의 강압적인 지배 아래 수탈에 용이한 식민 지배 체제를 만들기 위한 교육·농업·상업 분야의 정책이 실시되면서 한국인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 <조선 총독부와 헌병 경찰제>
- 일제는 식민 지배 하의 최고 통치기구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였다. 입법·사법·행정권과 군통수권을 포함한 절대권력을 가지는 조선 총독에는 육·해군 대장이 임명되었다. 조선 총독부는 헌병 경찰제를 실시하여 한국인의 저항을 막고 자유를 억압하였으며 전근대적 형벌인 태형을 부활시켜 한국인에게만 적용하였다. 또한 조선교육령을 제정 하여 일제의 식민 지배에 순응하는 한국인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 곤봉, 검, 총
# <민중의 고초>
- 일제는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한국인을 탄압하기 위하여 전국 16개 도시에 감옥을 설치하였다. 감옥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3·1운동 이후에는 30여 개 소에 달했다. 감옥에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 들이 수감되었다. 또한 이들의 독립 의지를 좌절시키려는 잔혹한 고문이 자행되면서 옥중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 -김구(金九)-
감옥의 고통은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이 더욱 심하니,
여름에는 감방에서 수인들의 호흡과 땀이 증기가 발하여
서로 얼굴을 분간 못하게 된다.
가스에서 불이 나서 수인들이 질식이 되면
방안으로 무소대를 들이 쏘아 진화하고 질식된 자는
얼음으로 찜질해 살리는데, 죽는 것도 여러번 보았다.
* 수인: 죄수
* 무소대:
# 형구(刑具)
# -우찬구-
등 뒤로 두 손을 묶고서 뺨과 얼굴을 때리는가 하면,
야구방망이처럼 생긴 몽둥이로 온몸을 팼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긴 의자에
나를 반듯이 눕혀놓고 얼굴에 물을 퍼붓는 고문이었다.
# -이재우-
도주를 도모하였다고 해서
무수한 매질과 욕을 당한 것은 물론이다.
… 손에 자동식 수갑을 채우고
발에는 커다란 쇳덩어리를 붙들어 매어 수족을 묶었다.
문이란 문은 열쇠를 굳게 채운 뒤
그 열쇠는 고등계 주임이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간다.
# -최제규-
고문이 시작되면 일단 천장에 매달아 놓고 때리기 시작한다.
불로 담금질 하기를 8시간이나 지속하고
자백을 하지 않자 산에 끌고 가
소나무에 매어놓고 칼로 위협하기도 했다.
* 조선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독립운동가 최제우는 이러한 고문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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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출옥증표(假出獄證票)
# 서대문 형무소 가출옥 증표 1922. <윤교병(尹喬炳>
# -임경엽-
신문관이 허의(위) 자백을 강요하는 가운데
자백 내용을 암기 할 수 있도록 몇 번이나 연습을 시켰으며,
그 중 주요 인물의 이름을 잊어버리거나
시(신)문관이 요구하는 내용을 그대로 암기하지 못할 때에는
암기할 때까지 고문을 가했다.
# 나다니엘 페퍼(Nathaniel Peffer)
어른이건 소녀이건 팔이 몸통에 묶여 천장에 매달린다.
어깨로 매달린 그들은 정신을 잃을 때까지 까지
올려지고 내려지기를 반복한다.
그들의 손가락은 철사 줄로 짓눌려지고
벌거벗은 피부는 달군 쇠붙이로 지져졌다.
# <수탈체제 구축>
- 일제는 식문 지배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고 식민지 수탈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정책을 실시하였다. 근대적 토지 소유제를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시행된 토지조사사업에 의해 토지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농민이 증가하였고 민족 자본의 성장을 막는 회사령이 공포되면서 한국인의 회사 설립도 제한되었다. 또한 어업령‧삼림령‧ 광업령 등을 통해 각종 자원을 독점하면서 식민지 수탈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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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행권
- 1908년 통감부가 설립한 한국은행은 1911년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었으며 정부 및 공공단체를 대상으로한 대부, 국공채 매입 등을 통하여 조선총독부의 재정을 뒷받침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은행의 금융지원에 힘입어 철도‧항만‧도로 등 경제 수탈을 위한 기간 설비를 구착할 수 있었다.
◆ 조선식산은행 본점 엽서
- 1918년 설립된 조선식산은행은 지주와 자본가의 농민수탈, 식만지 공업화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담당하면서 한국을 일제의 식량,원료 기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 토지조사사업 보고서
# 일본이 수탈해간 물건들.
# <'문화통치'의 실상>
- 3·1운동 이후 일제는 한국인의 저항과 국제 여론 악화를 의식하여 식민 지배 방식을 바꾸었다. 이에 따라 이른바 '문화통치'를 내걸고 언론의 자유 허용과 교육의 기회 확대 등을 표방하였다. 하지만 '문화 통치'는 일제가 식민 지배에 내재된 폭력성을 숨기려는 기만적인 정책이자 친일 세력을 양성하려는 민족 분열 정책이었다. 일제는 교육과 언론을 최대한 이용하고 통제하였으며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식량·자원· 문화재 수탈 등을 가속화하였다.
◆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 회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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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소작인 상조회 취지서.
◆ <조선의 현재와 장래>
◆ <민족개조론(民族改造論)>
◆ <조선과 조선민족> 제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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