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기념관_2.1. 1관. 겨레의 뿌리
# 존 I. 우리 겨레의 터전과 뿌리우리 겨례의 터전과 뿌리
동북아시아 중앙에 위치한 한반도는 수천 년 동안 우리 겨레의 터전이 되었고, 우리 겨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우리 겨레는 북방계 유목 민족과 남방계 농경 민족이 정착하여 형성되었고, 만주 지역과 한반도에 고대국가를 이루며 독자적이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 민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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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도끼
- 구석기 연천 전곡리
- 서울대학교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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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돌 왕국
# 천전리川前里 바위 그림 巖刻畵
- 선사시대의 인류는 자신들의 생활상과 소망을 바위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천전리 바위그림에는 동심원, 마름모 등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는 풍요를 상진하는 것으로 이곳이 농경이나 사냥과 관련된 신성한 장소임을 말해준다. 또한 바위 아래 부분에 새겨진 신라시대의 그림과 글씨를 통해 이곳이 진흥왕의 즉위와 관련된 신성한 장소이며, 화랑도와도 관련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있는 곳: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도연 천절리 태화강 상류
크 기: 높이 2m, 너비 9m.
만든 때: 신석기~청동기시대, 신라시대
*신라시대에 새긴 한자가 보인다.
- 기하학무늬.
- 작게 새긴 한자들.
# 우리 겨례의 첫 나라
기원전 20세기 무렵 돌로 만든 도구를 대신하여 청동기가 제작 되었다. 또한 본격적으로 벼농사가 시작됨에 따라 많은 재산과 힘을 가진 권력자가 나타났다. 이는 곧 나라의 탄생으로 이어졌는데, 우리 민족의 첫 나라인 고조선도 이 무렵 건국되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이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하여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고조선은 대동강과 요하 부근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기원전 4~3세기경에는 중국의 연燕나라와 다툼 정도로 성장하였다. 고조선은 중계무역을 통해 넓은 영토를 지닌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였지만 이를 두려워한 중국 한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고조선의 유민들은 남으로 이주하여 삼한사회와 고대 삼국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 반달모양 돌칼 半月形石刀
-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데 사용한 도구
- 청동기시대.
# 고구려
- 기원전 37년 주몽朱蒙이 이끄는 부여족의 한 갈래가 압록강 지류인 퉁자강 유역에 세운 나라이다.
# 백제
- 고구려로부터 남하한 부여족 계열의 온조왕溫祚王이 기원전 18년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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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 기원전 57년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朴赫居世가 경주평야에서 사로국의 우두머리인 여섯 촌장의 추대를 받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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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 변한지역에서 발생한 연맹국가로, 연맹의 우두머리인 금관가야는 시조 김수로金首露가 42년 낙동강유역에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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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대왕릉비.
- 밖에 복원한 실물 크기의 비석이 있다.
# 철의 나라 가야.
- 철의 국가 가야 / 铁之國一伽倻 / 鉄の國、伽倻
가야는 일찍부터 신라와 백제, 중국의 군현을 비롯하여 남쪽의 왜와 교역을 하였다. 가야 지역에서는 좋은 철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철과 관련된 교역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철을 생산할 수 있는 제련기술이 없었던 일본 열도에서는 가야로부터의 철 수입이 매우 중요하였다. 일본 열도의 각 지역은 백제와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이전에 가야를 통해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일본의 고대 유적에서 가야와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 사실은 이를 확인시켜 준다. 특히 빼어난 토기 제작기술은 일본 스에키須恵器토기의 제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수한 가야 문화는 신라로 흡수되어 우리 문화의 형성에 일조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 우륵 구의 가야금伽倻琴을 들 수 있다.
# 백제의 문화교류
- 백제는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남조南朝의 선진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무령왕릉은 백제의 일반적인 무덤과는 달리 중국 양나라에서 유행하는 무덤 양식을 수용하여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내부에서 중국제 도자기와 화폐가 출토되었다.
백제는 발전시킨 문화를 이웃 일본에 전파하는 교량 역할에도 충실했다. 무령왕의 목관은 일본에서 생산된 금송金松으로 만들어졌으며, 백제가 전파한 기술과 문화는 일본의 국보 1호 코류지 미륵반가사유상을 탄생시켰다. 이처럼 백제를 통해 중국과 일본 열도로 이어지는 문화적 네트워크는 동아시아 한자 공유문화권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일조를 하였다.
# 무령왕릉 武宁王陵
- 1971년 7월 5일 역사적인 발견이 이루어졌다. 송산리 6호분 뒤쪽 언덕의 배수로 공사 중에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 발굴된 것이다. 무덤의 묘지석은 피장자가 무령왕임을 알려주었고, 이는 고대 무덤에 묻힌 주인공을 확인한 최초의 왕릉이 되었다.
무령왕은 중국 남조南朝,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백제 문화를 중흥시켰다. 무령왕릉은 전혀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어 베일에 싸여 있던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었다. 무덤 안에는 금으로 만든 관 장식, 용과 봉황이 장식된 큰 칼, 글씨가 새겨진 팔찌, 화려한 무늬와 백제의 이상향을 담은 동탁은잔 銅鐸銀盞 등 모두 108종 3,000여 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정교한 제작기술을 자랑하는 금속공예품들을 통해 백제가 문화강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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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II.-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와 민족 기상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와 민족 기상
- 삼국은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국가체제를 정비하였다. 고구려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지속적인 긴장상황 속에서 국가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이로 인해 고구려의 문화는 힘이 있고, 역동적인 느낌이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백제는 상대적으로 지방 세력과 귀족의 힘이 강하였고, 적극적으로 선진문물과 제도를 수입하며 화려하고 세련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역시 백제문화의 진수는 불상과 토기 등에 보이는 소박함과 해학이 넘치는 유유에 있다.
신라는 가장 늦게 출발하였지만 최종적으로 삼국의 문화를 완성시킨 나라였다. 감은사지 感恩寺址 석탑에 보인는 거술은 삼국통일 후 고구려와 백제의 사철문화가 가미된 삼국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 서산마애삼존불상
# 서산마애삼존불상 / 瑞山蘑崖三尊佛像
- 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은 부처가 신으로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 같은 매우 인간적이며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백제의 미소'로 불리고 있다. 중앙의 여래입상如來立像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菩薩立像이 왼쪽에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조각되었다. 6~7세기 백제의 문화가 꽃피는 시기에 제작되어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온화하면서도 소박하고 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듯 하여 토착화된 백제 불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있는 곳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계곡
만든 때 : 백제시대(7세기 전후)
# 미륵사탑 弥勒寺塔 /彌勒寺塔
- 미륵사彌勒寺에는 백제의 국력을 과시하고 미륵의 힘을 통해 불국토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중앙의 목탑과 동서의 석탑 등 3탑 금당 양식이다. 현재는 서쪽의 석탑만 남아있다. 미륵사지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석탑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양식이다. 최근 이 탑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리함과 金製사리봉안기술금제舍利奉安記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에 따르면 639년(무왕 40) 왕비인 사택왕후沙宅王后가 미륵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있는 곳: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만든 때: 백제 무왕 (7세기 초)
미륵사는 미륵미륵의 힘으로 불교국토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현재는 서쪽의 석탑만 남아 있다. 이 탑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리함과 사리봉안기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 황룡사9층목탑 / 皇龙寺九层木塔 / 黄龍寺九層木塔
- 황룡사皇龍寺는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로, 진흥왕이 경주 월성 동쪽에 궁궐을 짓는 도중에 황룡이 나타나자 대신 절을 짓고 황룡사라 하였다. 황룡사9층목탑은 643년 선덕여왕 때 건립되었다. 각 층은 신라 주변의 아홉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불교의 힘을 빌려 나라를 보호하고, 주변 국가를 제압하고자 하는 신라 중심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있는 곳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만든 때 : 신라 진흥왕~ 선덕여왕(6~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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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사 치미 / 黄龙寺 鸱尾 / 皇龍寺鴟尾(しび)
- 치미鴟尾는 한국 고대 목조건물에서 지붕을 장식한 기와를 말한다. 건물의 용마루 양 끝에 치미를 세운 모습은 마치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과 같다. 이는 치미가 나쁜 것을 쫓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인다고 알려진 봉황에서 유래하였다는 점과 통한다.
황룡사의 치미는 높이가 182cm에 이르는데, 크기가 너무 커서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제작한 후 조립하였다. 치미의 양쪽 면과 뒷면에는 연꽃과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다른 치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라만의 특징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문화 속에 순박하게 웃는 신라인의 모습은 보다 인간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 얼굴무늬 막새 / 人面纹圆瓦当 / 人面文軒丸瓦
- 신라인의 얼굴을 대표하는 얼굴무늬 막음기와는 선덕여왕 대에 창건된 경주 영묘사 터에서 발견되었다. 흔히 막음기와에는 연꽃무늬나 당초무늬가 일반적인데, 사람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얇은 미소를 짓고 있는 신라인의 얼굴은 살아있는 듯 자연스럽다. 뒷면에는 실제 건물에 사용된 흔적이 있다.
# 임신서기석 / 壬申誓记铭石 / 壬申誓記銘石
- 임신년에 한 맹세의 기록
- 임신서기명석은 임신년 6월 16일, 신라의 두 청년이 나라에 충성하고 학문을 연마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이 새겨진 비석이다. 가로 12.8cm, 세로 32.4cm의 비석에는 다섯줄로 74자가 새겨져 있다. 화랑도花良道의 세속오계世俗五戒 중 '교우이신 交友以信'과 흡사하여 이 무렵 유교 사상이 사회적으로 널리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의 내용과 사회적 분위기로 보아 비문에 등장하는 임신년을 화랑도의 활동과 관련시켜 552년(진흥왕 13)이나 612년(진평왕 34)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또한 비문이 한문이 아닌 우리말 어순에 따라 구성했다는 점에서 신라 사회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원본은 경주국립박물관 전시관에 있다.
# 해동성국 발해渤海
#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 발해의 정치와 사회
# 발해의 성립과 발전
# 국제적인 문화국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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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의 금속활자
#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직지심경直指心經
-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만든 책.
# 조선의 기록문화.
- 조선시대는 성리학에 기반을 둔 사대부가 지배층을 이루어 민족적이고 자주적인 성격의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관료와 학자들은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역사서, 지리서, 윤리서, 법전 등 여러 종류의 기록물을 작성하고 편찬하였다. 대표적인 기록유산으로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동국통감 등의 역사서를 비롯하며여 동국여지승락, 여지도서 등의 인문지리라서, 그리고 경국대전, 속대전 등의 법전류와 농사직설, 동의보감 등의 농사 및 의학관련 서적들이 있다.
# 월인청강지곡
- 세종이 지은 책이다. 석가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이다. 용비에천가와 함께 한들로 표기된 운문 중 가장오래된 자료이다.
- 조선 1449년
- 세종대왕기년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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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기록문화유산.
# 조선왕조실록 - 태조실록
- 조선시대
- 규장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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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정원일기
- 조선시대
- 규장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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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호구 准戶口
- 주민등록 초본 느낌.
# 수선전도 首善全圖
- 조선시대 서울 지도이다. *한양.
# 조선의 과학기술.
# 지구의地球儀 _지구본.
- 지구를 본떠 만든 작은 모형으로, 중국으로부터 소개되어 최한기가 제작하였다.
- 조선시대 1800년 경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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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우대測雨臺_측우기.
- 설명판에 각 부분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 조선의 대외정책
- 4군 6진
- 대마도 정벌.
- 간도間島
# 존 III - 불굴의 의지와 대외항쟁
- 동북아시아 중앙에 위치한 한반도는 수천 년 동안 우리 겨레의 터전이 되었고, 우리 겨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우리 겨레는 북방계 유목 민족과 남방계 농경 민족이 정착하여 형성되었고, 만주 지역과 한반도에 고대국가를 이루며 독자적이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 고구려의 살수대첩
# 처인성 전투 處仁城戰鬪
- 몽골의 침략에 맞서 고려의 농민과 천민들은 자발적으로 대몽항쟁에 참여하였다. 1232년 처인성_용인_에서 승려 김윤후金允侯를 비롯한 백성들이 몽골 적장 살리타이撒禮塔를 사살하여 승전한 전투이다.
# 삼별초의 항쟁
# 최무선과 진포대첩 鎭浦大捷
# 고려의 귀주대첩
- 1019년 고려 장수 강감찬姜邯贊이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전쟁이다. 이 전쟁의 승리로 고려는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지키게 되었다.
# 임진왜란
- 조선 중기 1592년~1598년까지 두 차례에 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을 말한다. 전쟁 초기에는 왜군의 기세에 밀렸으나 바다에서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연이은 승리와 육지에서 의병의 활약으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1598년 11월 퇴각하는 왜군 전선戰船 200여 척을 격침시킨 노량해전의 승리를 끝으로 7년간의 전쟁은 종결되었다.
# 도검 刀劍
# 신기전神機箭
# 불궁의 의지
# 존 IV. 살아나는 민족정신.
# 의병봉기
#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 전법 모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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