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기념관_2.2. 2관. 겨레의 시련3-2
# 존 IV. 가혹한 식민 지배가 시작되다.2
# 민족분열통치
- 일제는 '문화통치'라는 미명 아래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변경하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일부 허용하며 교육과 정치 참여 기회도 제한적으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거나 조선 총독부의 식민 지배에 비판적인 출판 물은 검열을 통해 정간·폐간했으며 교육을 통제하는 등 탄압과 감시는 더욱 교묘해졌다. 또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한편, 친일 세력을 양성 하여 민족을 분열시켰다.

◆ 동아일보 정간명령 사유서 및 무기 발행정지명령서


◆ <서울> 창간호.
![]() |
![]() |
◆ 일제검열원고_현대인텔리켄챠론.


◆ 치안유지법제안토의
![]() |
![]() |
◆ <조선의 교육>


◆ 국어독본(國語讀本)
◆ 중등교육여자수신서(中等敎育女子修身書)

◆ 보통학교국사(普通學校國史)

◆ <조선사강좌(朝鮮史講座)>
![]() |
![]() |
◆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
![]() |
![]() |
◆ <고려사연구(高麗史硏究)>


![]() |
![]() |
#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삶
- 일제의 식문지배로 인해 한국인의 삶은 과연 개선디었을까?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출판물 속 그림과 도표를 통해 당시 한국에서 살았던 일본인과 한국인의 삶을 비교해보자.
![]() |
![]() |
# <수탈의 확대>
- 일제는 자국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 산미 증식계획을 실시하였다. 산미 증식계획은 일본으로 반출할 쌀 생산을 늘려서 한국을 식량 공급기지로 만들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과도한 쌀 반출, 높은 소작료와 지세로 한국 농민의 경제적 몰락이 가속화 되었고,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만주와 일본으로 이주하거나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각지를 떠돌아 다녀야 했다. 일제의 수탈은 경제 방면에서 그치지 않고 문화재 조사 라는 명분으로 불상·탑·도자기·고서 등 한국의 문화재를 불법 도굴하여 일본으로 대량 약탈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 <숫자조선연구> 제1권
- 『숫자조선연구』 제1집일제가 작성한 분야별 통계자료를 거꾸로 이용하여 일제 식민 지배 아래 한국의 실상을 폭로하고 비판한 책이다. <1931, 독립기념관 소장>
![]() |
![]() |
◆ 익옥수리조합사업

◆ 조선산미증식계획의 실적
![]() |
![]() |
◆ 엽서

◆ <조선미술사>


◆ <고고학잡지>


◆ <고적조사개보(古蹟調査槪報)> 낭랑고분


◆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 |
![]() |
◆ 소화13년도 고적조사보고
![]() |
![]() |
'한국박물관 > 독립기념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립기념관_2.2. 2관. 겨레의 시련3-4 (0) | 2025.05.22 |
---|---|
독립기념관_2.2. 2관. 겨레의 시련3-3 (0) | 2025.05.22 |
독립기념관_2.2. 2관. 겨레의 시련3-1 (0) | 2025.05.21 |
독립기념관_2.2. 2관. 겨레의 시련2 (0) | 2025.05.05 |
독립기념관_2.2. 2관. 겨레의 시련1 (0) | 2025.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