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기념관_2.2. 3관. 겨레의 함성1

# 겨레의 함성. #3010
일제 식민지배 아래에서 일어난 우리 겨레의 1919년 3·1운동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외침이었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외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국내를 넘어 국외 한인사회까지 울려 퍼졌다. 역사적 순간을 함께 했던 민중은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자 독립운동의 주체임을 깨닫게 되었고, 3·1운동은 이후 대중투쟁과 같은 다양한 모습의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조국 독립은 물론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지향했던 3·1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민족통합과 세계평화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 존 II.-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을 일으키다.1.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힘을 모으다.

# 국제정세 변화와 독립을 위한 노력. #3051.
-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이 발표한 14개조 평화원칙, 파리강화 회의 개최 등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승전국이던 일제의 식민지, 즉 우리나라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지만 독립운동가들은 국제정세의 변화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1919년 1월 전승국들을 위한 파리강화회의가 시작되자 일본과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은 비밀리에 거족적인 독립 운동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1919년 3월 1일 드디어 전민족적인 만세운동의 서막이 올랐다.


# 존 II.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을 일으키다.
- 3・1운동의 시작.


# 신한청년당과 재일 한인유학생

◆ 2・8 독립선언서.

◆ 조선청년독립단_민족대회 소집 청원서.

◆ 동유음(東由吟)

◆ 김도연 회중시계
◆ 김도연 심자가목걸이
◆ 장효근 일기

# 비빌리에 준비된 3・1운동.

◆ 민족대표의 독립선언부터 민중의 만세시위까지
- 세계만방에 외친 독립의 의지, '독립선언'

◆ 3・1만세도.

# 전국으로, 세계로 퍼져나간 만세시위

# 목포 독립운동의 중심, 정명여중
#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만세소리.

◆ 태극기

# 국외로 퍼진 만세시위: 만주
# 일제의 감시를 피해 퍼져나간 3・1운동

# 꺼지지 않는 3・1운동의 불씨.
# 국외로 퍼진 만세시위: 미국
# 국외로 퍼진 만세시위: 러시아 연해주

# 탑압 속에 지켜낸 3・1정신.


# 3・1정신의 전파.
3·1정신은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고 종교, 신분, 계급, 성별을 초월한 민족통합의 정신이었다. 인류의 양심에 기초한 3·1정신은 일제 감시와 탄압 속에 3·1운동의 진상을 알린 외국인을 통해 세계인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국외 독립운동가들은 일제 식민지배의 참상을 세계에 폭로하기 위해 소식지를 발간하였다. 3·1정신은 이러한 기록들과 매년 3·1운동 기념식을 통해 오늘날까지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 <한국의 상황>


# 스코필드가 목격한 제암리 사건.



# <한국의 독립운동 화보집>
- 1921년 상하이 대한적십자회에서 발간한 화보집으로 3・1운동 관련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서울 만세시위, 고문받은 한국인, 일제 만행으로 폐허가 된 가옥들, 특히 제암리 학살 사진이 담겨 있어 일제의 만행을 확인할 수 있다.

◆ 아리타 중위 무죄 석방서. #3165.
- 제암리 주민들을 학살한 아리타有田 중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음을 알리는 문서이다. 일제는 아리타 중위의 행위는 명령을 오해한 것이라는 이유로 석방하였다.
<1919년 8월. 독립기념관 소장. 채영국 제공>


# 제암리 사건 #3164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일제는 폭압적인 진압과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제암리 사건은 일본군이 발안리, 화수리 등 당시 수원지역에서 발생한 만세시위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에 대한 보복으로 자행한 학살 사건이다.
1919년 4월 15일 일본 육군 중위 아리타有田 俊夫가 지휘하는 부대는 경기도 수원(현 화성시) 제암리 주민들을 교회에 가두고 학살하였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교회를 불태우고 여성, 어린아이까지 처참하게 살해하였다. 제암리 사건 직후 현장을 방문한 외신기자, 선교사 등을 통해 일제 탄압의 실상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

◆ 거세진 일제의 탄압
우리 겨레의 비폭력 만세시위에 대해 일제는 처음부터 무력진압으로 일관하였다. 3·1운동이 주요 도시부터 빠르게 확산되자 일제는 각 지방마다 무장한 군대를 배치했는데 3월 20일 경 에는 전국 86곳이나 되었다. 일본군은 만세시위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무차별적 검거, 고문 뿐만 아니라 방화와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에 따르면 사망자가 7,509명, 부상자는 1만 5,961명에 이르며 민가 715동, 학교 2개, 교회당 47개가 불탔다.

◆ 3・1운동 독립운동가 47인 재판기록철.
- 민족대표 33인을 포함해 총 47인에 대한 재판기록이다. 첫 장에 "보안법 위반 출판법 위반 손병희 외 46인"이라고 젹혀 있다. 일제는 독립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보안법과 출판법을 제정하였는데, 3・1운동 당시에도 많은 동립운동가들이 이러한 죄명으로 옥고를 치렀다.

◆ 오세창 가출옥 증표.
-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오세창에게 발급된 가출옥 증표이다. 오세창은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1년 12월 22일 가출옥하였다. 출옥 이후에는 서화에만 전념하여 광복 때가지 변절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 일제의 탑압으로 인한 희생자.
- 1919년 3월 1일~5월 말: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체포 및 투옥자 46,948명.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1920년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이 독립운동에 관해 저술한 역사서이다. 3・1운동 당시 만세시위 횟수, 피검자와 사망자 수 등이 포함된 각종 통계와 참사 조사표가 포함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1920 / 독립기념관소장. 이종학 기증>


◆ <조일관계사료집>
-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회가 저술한 역사서이다. 한중관계사와 일제 식민탄압, 3・1운동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첨부된 독립운동일람표는 3・1운동 당시 만들어진 통계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1919 / 독립기념관소장. 미주 흥산동 기증. 등록문화재 제711호.>


◆ <한국의 문제>
- 1927년 세계피압박 민족회의에 참가한 우리나라 대표들이 일제 치하의 참혹한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발간한 것이다. 일제 침탈 실태를 고발하기 위한 도표도 수록하였다.
<1927. / 독립기념관소장. 정규화 기증>


◆ <어린 순교자들>
-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국홍보국에서 발행한 책자이다. 만세시위에 참가해 어린 나이에 순국한 한국인들을 통해 당시 국제사회에 한국의 현실을 알리고자 하였다. 표지 윗부분에 'Mansei[만세]'라고 써져 있고 중앙에는 태극문냥이 인쇄되어 있다.
<1919. / 독립기념관소장. 서재필기념재단 기증>


◆ <한국에 대한 진실>
- 인론인 켄달이 쓴 책으로 1919년 미국 대한인국민회에서 발해하였다. 켄잘은 책의 서문에 '영웅적으로 자기 목숨을 헌신하는 한국의 남녀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고 밝혔다. 한국지도, 대동강과 미국인이 운영하는 광산사진, 탑골공원에서 감시하는 일본군인, 일제의 잔혹행위 사진들도 실려 있다.


◆ 3・1운동에 대한 미의회기록 발췌문
- 1920년 미국의 의회기록을 발췌한 문서로, 미국의회에서 한국의 독립동정안이 부결되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발췌문에 나오는 민주당 상원의원 토마스는 한국의 독립을 지지한 인물로, 미국은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한국을 국제연맹 회원국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20. 독립기념관소장. 김운하 기증.>


◆ '화이팅'의 한국독립 지지 글
- 장로회 소속 선교사 하이팅이 작성한 호소문이다. 화이팅은 한국친우회 결성을 도운 인물로 1,200여 차례 강의를 통해 한국이 처한 상황을 세계에 알렸다.
<독립기념관소장. 기운하 기증>


◆ <한국독립운장의 진상>
- 차이나 프레스의 가지 나다니엘 폐퍼가 3・1운동 1주년을 맞아 독립신문사에서 발행한 책으로, 이 책에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3・1운동의 원인과 결과가 자세하게 실려 있다.


◆ <자유를 향한 한국의 투쟁>
- 영국 신문기자인 백켄지가 쓴 책으로, 강제병탄 이후 일제의 식문통치와 3・1운동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 책은 1920년 미국과 영국에서 발간되어 3・1운동 정신을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20. / 독립기념관소장. 서대숙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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