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8_2층_5
# 삶의 궤적, 조개더미
"조개더미를 통해 본 가야 사람들의 삶"
2005년 발굴된 김해 회현리 조개더미는 100개 층으로 구분 되며, 4단계로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가장 아래층인 100층에서는 기원 전후 무렵의 토기가, 맨 위층에서는 4세기 무렵의 단단한 토기[도질 토기]가 나왔다. 이는 이 조개 더미가 400여 년 동안 만들어졌음을 말해 준다. 조개더미 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온 토기, 뼈로 만든 도구나 장신구 970점, 점을 칠 때 쓰는 뼈 도구 101점, 동물 뼈 5,065점, 조개 껍데기 40종, 옥구슬과 철로 만든 물건들, 석기, 송풍관 등이 나와 당시 생활 모습이나 교류했던 지역도 추적할 수 있다.
# 김해 회현리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유물.
1층~28층: 1. 시루 편, 2.가리비, 3.화로모양 그릇받침 편, 4.가락바퀴, 5.원형토제품.
29~56층: 1.점치는 뼈, 2.가리비, 3.칼 장식구, 4.동물 이빨로 만든 꾸미개, 5.뼈 화살촉
57~88층: 1.반달돌칼, 2.수정, 3.쇠낫, 4.손칼자루, 5.쇠화살촉, 6.활 부속구, 7.청동반지, 8.활 손잡이, 9.칼 장식구
89~100: 1.각골, 2.동물 이빨로 만든 꾸미개, 3.항아리 편, 4.돌도끼, 5.숫돌
# 패총 샘플
# 역사와 문화가 겹겹이 쌓인 풍경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된 재료는 흔적을 남긴다"
김해 회현리조개더미는 1907년 처음 알려진 뒤 여러 차례 발굴되었다. 2001년 봉황대유적과 함께 '김해 봉황동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다. 전시된 토양층은 1998년 발굴 당시 조개더미의 단면을 보존하려고 얇게 떠낸 것이다. 조개더미의 깊이는 6m 이상으로 모두 17개 층이며, 발굴된 유물을 보면 조개더미가 기원 전후부터 삼국시대까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개더미에서는 토기‧동물 뼈‧조개류‧뼈 조각품과 중국동전인 '화천', 중국 거울 조각, 일본 야요이토기 등이 발견되어 가야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추적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불에 탄쌀은 벼농사 연구에 무척 중요한 자료이다.
# 김해 예안리유적 출토 머리뼈
김해 예안리유적은 낙동강 하류 자연 둑 위에 있는 대규모 무덤 유적이다. 조개류가 많이 쌓여 있어서 사람 뼈가 매우 잘 보존되었다. 사람 뼈 201개를 분석한 결과, 평균 키가 남자는 164.7cm, 여자는 150.8cm였으며, 30% 이상이 어린아이였다. 『삼국지』위서 동이전 변진조에는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눌러 납작하게 만들기 때문에 지금도 진한 사람은 모두 머리가 납작하다.”라고 적혀 있다. 실제로 예안리유적에서는 앞머리가 납작한 뼈가 나와 이 기록을 뒷받침한다. 또한 예안리 사람들은 앞니를 일부러 뽑거나 피부에 문신을 하기도 했다.
◆ 1. 머리뼈_두개골 *복제품
- 4세기
- 김해 예안리(禮安里)
◆ 2. 앞머리가 눌러진 머리뼈 *복제품
#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다.
◆ 5. 쇠로 만든 말_철제 말
- 5세기
- 울산 조일리
◆ 6. 흙인형_토우(土偶)
- 삼한시기
- 김해 회현동, 봉황동 / 창원 외동
- 4~5세기
- 김해 부원동, 봉황동 / 창원 봉림동, 신방리 / 함안 신음리
◆ 2. 나무팽이_목가(木尜)
- 4세기
- 창원 신방리
◆ 3. 복숭아씨_도핵(桃核)
- 4세기
- 창원 신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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