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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하남 정저우박물관

하남 정저우박물관|진(晉)나라의 웅대한 기상1(2024)

by isanjo 2026. 5. 29.

# 2024년 7월 03일 하남 정저우박물관|진국웅풍(晉國雄風)1

 

# 산서지형도(山西地形圖)

 

# 머릿말

- 분하 기슭에 북소리는 아직 멎지 않았고, 청룡하 가에는 우왕의 자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 3000여 년 전,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서주가 건립되어 제후를 분봉하고 왕실을 보위하였다. 성왕이 숙우를 당에 봉하였고, 섭부가 국호를 '진'으로 고쳤다. 역대 국군이 다스림에 힘쓰고 영토를 개척하여 점차 강성해졌다. 주나라 왕실이 동쪽으로 천도할 때 문후가 으뜸가는 공을 세웠고, 천토의 회맹으로 문공이 패권을 차지하였으며, 그 후 중원을 종횡무진하고 제후들을 규합하여 백 년의 패업을 성취하였다. 진국의 전성기에는 땅이 진, 예, 기, 노에 걸쳐 있어 강역이 광활하였다. 춘추 말기, 공실이 쇠락하고 육경이 권력을 독점하여 최종적으로 '삼가분진'을 초래하였다. 한, 조, 위가 법을 변혁하여 부강을 도모하고 전국시대에 웅거하니 역사에서는 '삼진'이라 부른다.

600여 년 동안, 이 땅에서 펼쳐진 진국의 이야기는 귀에 익숙한 성어와 전고로 응축되어 진국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기록자와 화자가 되었으며, 나아가 우리에게 국가를 다스리고 민족 부흥을 실현하는 데 소중한 역사적 거울을 제공한다. 진국의 경영은 이 땅에 풍부한 문화유산을 남겼으며, 특히 곡촌-천마 유적, 북조 진후 묘지, 양설 묘지, 후마 주동 유적, 후마 맹서, 조경 대묘 등 국내외에 명성이 자자한 고고학적 발견은 대량의 유적과 유물을 출토하여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다시 사람들의 시야로 가져와 우리에게 생생한 진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汾河岸邊鼙鼓未歇, 靑龍河畔禹迹尙存.

3000多年 前, 武王克商, 西周建立, 分封諸侯, 屛藩王室. 成王封叔虞于唐, 燮父改號爲 "晉". 歷代國君勵精圖治, 開疆拓土, 逐漸强盛. 周室東遷, 文侯首功; 踐土會盟, 文公稱霸; 其後縱橫中原, 九合諸侯, 成就百年霸業. 晉國鼎盛時期, 地跨晉、豫、冀、魯, 疆域遼闊. 春秋末期, 公室衰落, 六卿專權, 最終導致 "三家分晉". 韓、趙、魏變法圖強, 稱雄戰國, 史稱 "三晉".

600多年里, 晉國在這片土地上的故事被濃縮成耳熟能詳的成語典故, 成爲晉國歷史上一個個重要節點의 記錄者與傾訴者, 更爲我們治國理政、實現民族復興提供了寶貴的歷史鏡鑒. 晉國的經營也在這片土地上留下了豐富的文化遺產, 尤其是曲村—天馬遺址、北趙晉侯墓地、羊舌墓地、侯馬鑄銅遺址、侯馬盟書、趙卿大墓等享譽中外的考古發現, 出土了大量遺跡與遺物, 將那個波瀾壯闊的時代重新帶回人們視野, 向我們呈現一個鮮活的晉國.

 

# 제1단원 조기하분(肇基河汾)_하분에서 터전을 열다.

서주 초, 황하와 분수 동쪽에 위치한 제후국인 당국에서 반란이 발생하자 주공이 군대를 이끌고 토벌하였다. 당나라를 멸망시킨 후, 주 성왕은 '오동나무 잎으로 동생을 봉한다[동엽봉제]'는 일화에 따라 숙우를 당국의 군주로 들여보냈다. 숙우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 섭부가 작위를 이어받아 '당'을 '진'으로 고쳤으며, 이때부터 진국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역대 진후들은 이 땅에서 생산을 발전시키고, '하나라의 정치로써 일깨우고 융족의 법도로써 다스린다[계이하정, 강이융색]'는 치국 방략을 채택하여 주변 방국 및 융·적과 공존하였다. 이로써 주나라 왕실을 호위하는 중대한 사명을 완수하고 진국을 끊임없이 강성하게 만들어, 600여 년에 달하는 진국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西周之初, 位于黃河、汾水之東的諸侯國唐國發生叛亂, 周公率軍討伐, 滅唐之後, 周成王 "桐葉封弟", 叔虞入主唐國. 叔虞故后, 其子燮父繼位, 改 "唐" 爲 "晉", 自此始稱晉國. 歷代晉侯在這片土地上發展生產, 幷采取 "啓以夏政, 疆以戎索" 的治國方略, 與周邊方國和戎狄共處, 完成藩屛周室的重大使命, 使晉國不斷強大, 拉開了晉國長達 600 余年的歷史序幕.

 

# 진국(晉國) 세계표

 

# 진후열열(晉侯烈烈)_진나라 제후들의 위풍당당한 기세

섭부가 즉위한 후 아버지 숙우의 뜻을 이어받아 주나라 강왕을 정성껏 보필하였으며(병사강왕), 백성들을 이끌고 농업과 목축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켜 국력을 크게 키웠다. 그 후 무후, 성후, 여후, 정후, 희후, 헌후, 목후, 문후 등 여러 대에 걸쳐 다스림에 힘쓰고 나라를 잘 이끄니 국세가 점차 강해져 서주의 중요한 제후국 중 하나가 되었으며, 춘추시대 진나라가 패업을 성취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당 땅에는 진수가 있었는데, 숙우의 아들 섭부가 진후가 되었으니, 이는 섭부가 진수라는 강 이름으로써 진후로 고쳐 부른 것이다. —— 《한서·지리지》

 

燮父繼位後, 承叔虞之志, "幷事康王", 帶領百姓大力發展農牧業, 國力大增. 其後又經歷武侯、成侯、厲侯、靖侯、釐侯、獻侯、穆侯、文侯諸世, 勵精圖治, 國勢漸強, 成長爲西周重要諸侯國之一, 幷爲春秋時期晉國成就霸業構築了根基.

唐有晉水, 叔虞子燮爲晉侯, 是燮以晉水改爲晉侯. —— 《漢書·地理志》

 

# 서주시기 진국 형세도

 

◆ 저존(猪尊)

- 서주(서기전 1046년~전 771년)

- 산서성 곡옥현 북조촌 진후묘지 M113(山西省曲沃縣北趙村晉侯墓地M113)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돼지는 중국에서 가장 일찍 사육한 동물 중 하나이며, 상주 시기 제사 중의 중요한 제물이다. 저존은 제사 때 사람과 신 사이의 매개 역할을 맡아 신령이 복을 내려주기를 기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 청동박종 주조공예 흐름도

 

# 후마백점 주동 유적(侯馬白店鑄銅遺址)

후마 백점 주동 유적은 산서성 후마시(侯馬市) 서교(西郊) 백점촌(白店村) 서북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진국(晉國) 주동 유적의 중요한 구성 부분에 속하며, 관영 수공업 작업장으로서 당시 진국 및 삼진(三晉) 지역 청동기 생산의 주요 기지였다.

이곳에서 출토된 도범(陶範)은 후마 주동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계통을 같이하면서도 새로운 창안과 발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백점 주동 유적에서는 전국시대 초기와 전국시대 전기 중엽 사이의 유물이 가장 풍부하게 발견되는데, 이는 또한 전국 초기, 즉 기원전 453년 이후 한(韓)·조(趙)·위(魏)의 세력이 강성해져 진국이 강(絳)과 곡옥(曲沃)만을 차지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국의 주동 산업이 쇠퇴하거나 폐기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오히려 장식은 더욱 정교해졌고, 공예 기술 또한 새로운 수준에 도달하였다.

 

侯馬白店鑄銅遺址

侯馬白店鑄銅遺址位于山西省侯馬市西郊白店村西北, 屬于晉國鑄銅遺址的重要組成部分, 應爲官營手工業作坊, 是當時晉國和三晉靑銅器生產的主要基地。所出陶範與侯馬鑄銅遺址所見一脈相承, 並有創新和發展。白店鑄銅遺址以戰國早期和戰國早中之際遺存最爲豐富, 這也間接反映了戰國早期約公元前453年之後, 韓·趙·魏勢力強大, 晉國罟只占有絳和曲沃, 但是晉國的鑄銅業並沒有因此而止步或廢棄, 甚至紋飾更加精美, 工藝技術達到了新的高度。


◆ 입조인족궤형기(立鳥人足筒形器)

- 서주(西周, 기원전 1046년~기원전 771년)

- 산서성(山西省) 곡옥현(曲沃縣) 북촌(北村) 진후(晉侯) 묘지 63호 묘 출토

- 山西博物院 소장

 


◆ 봉조문동궤(鳳鳥紋銅簋)

- 서주(서기전 1046년~전 771년)

- 산서성 강현 횡수묘지 2165호묘(山西省絳縣橫水墓地2165號墓)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어정사존(御正射尊)

- 서주(서기전 1046년~전 771년)

- 산서성 강현 횡수묘지 2531호묘(山西省絳縣橫水墓地2531號墓)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기룡문편동합(夔龍紋扁銅盒)

- 춘추(서기전 770년‐전 476년)

- 산서성 문희현 상곽촌(山西省聞喜縣上郭村)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절곡문뢰(竊曲紋罍)

- 춘추(서기전 770년‐전 476년)

- 산서성 문희현 상곽촌(山西省聞喜縣上郭村)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절곡문두(竊曲紋豆)

- 춘추(서기전 770년~전 476년)

- 산서성 문희현 상곽촌(山西省聞喜縣上郭村)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쌍수반치문동편호(雙首蟠螭紋銅扁壺)

-  춘추(서기전 770년‐전 476년)

- 산서성 문희현 상곽촌(山西省聞喜縣上郭村)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권운문정(卷雲紋鼎)

- 춘추(서기전 770년~전 476년)

- 산서성 문희현 상곽촌(山西省聞喜縣上郭村)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