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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하남 정저우박물관

하남 정저우박물관|진(晉)나라의 웅대한 기상7(2024)

by isanjo 2026. 6. 12.

# 하남 정저우박물관|진국웅풍(晉國雄風)7

# 제1단원 조기하분(肇基河汾)_하분에서 터전을 열다.7

# 광벽사방(廣辟四方)_ 사방으로 영토를 넓게 개척하다.3

 

# 패국(覇國)

- 패국(霸國)은 역사 문헌에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산서성(山西省) 임분시(臨汾市) 이성현(翼城縣) 대하구(大河口)의 서주(西周) 무덤군에서 출토된 청동기 명문을 근거로 삼아 확인된 서주 시기의 제후국이다. 대하구 무덤군의 연대는 서주 초기부터 춘추 시대 초기까지 이어지며, 명문이 새겨진 청동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는 서주의 예법 제도, 소금 행정, 맹세와 형벌, 전쟁, 그리고 패씨(霸氏) 부족과 주왕조 및 주변의 진국(晉國), 붕국(倗國), 연국(燕國) 등 제후국과의 관계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다. 다만 발표된 자료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패씨의 족성(族姓)이나 인구 집단의 귀속 문제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가적인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霸國, 史籍中並無記載, 是根據山西臨汾翼城縣大河口西周墓地出土的青銅器銘文而確定的一個西周諸侯國. 大河口墓地年代從西周早期延續至春秋初期, 出土了大量的有銘青銅器, 涉及西周禮制、鹽政、誓罰、戰爭、霸氏與周王朝及周邊晉國、倗國、燕國諸侯國的關係等諸多方面. 但發表資料有限, 關於霸氏的族姓、人群歸屬等問題尚需進一步探討.

 

# https://baike.baidu.com/item/%E9%9C%B8%E5%9B%BD/6139351

 

동궤(銅簋)

  • 서주(西周) (공원전 1046년 ~ 전 771년)
  • 산서성 익성현 대하구 묘지(山西省 翼城縣 大河口 墓地) 1001호 묘 출토
  • 산서 박물원 소장(山西 博物院 所藏)

 

 

# 패중정 명문(霸仲鼎 銘文)

- 복부 안쪽에 새겨진 명문): “패중(霸仲)이 보려정(寶旅鼎: 귀한 제사용 솥)을 만드니, 영원히 보배로이 써라.”

腹內鑄銘: “霸中(仲)乍(作)寶旅鼎, 其永寶用.” 霸仲應爲霸國國君之弟霸(格)仲.

 

패중은 마땅히 패국(霸國)  임금의 아우인 패격중(霸格仲)이 되어야 한다.


◆ 패중정(霸仲鼎)

  • 서주(西周) (공원전 1046년 ~ 전 771년)
  • 산서성 익성현 대하구 묘지(山西省 翼城縣 大河口 墓地) 2002호 묘 출토
  • 산서 박물원 소장(山西 博物院 所藏)

 

 

# 대하구 묘지 출토 대표성 기물(大河口 墓地 出土 代表性 器物)


◆ 현문동정(弦紋銅鼎)

  • 서주(西周) (공원전 1046년 ~ 전 771년)
  • 산서성 익성현 대하구 묘지(山西省 翼城縣 大河口 墓地) 출토
  • 산서 박물원 소장(山西 博物院 所藏)

 


◆ 와문동정(渦紋銅鼎)

  • 서주(西周) (공원전 1046년 ~ 전 771년)
  • 산서성 익성현 대하구 묘지(山西省 翼城縣 大河口 墓地) 출토
  • 산서 박물원 소장(山西 博物院 所藏)

 

 

◆ 소면정(素面鼎)

  • 서주(西周) (공원전 1046년 ~ 전 771년)
  • 산서성 강현 수촌 묘지(山西省 絳縣 睢村 墓地) 1001호 묘 출토
  • 산서 박물원 소장(山西 博物院 所藏)

 


◆ 면문동정(獸面紋銅鼎)1

  • 서주(西周) (공원전 1046년 ~ 전 771년)
  • 산서성 강현 수촌 묘지(山西省 絳縣 睢村 墓地) 출토
  • 산서 박물원 소장(山西 博物院 所藏)

 


◆ 문동정(獸面紋銅鼎)2

  • 서주(西周) (공원전 1046년 ~ 전 771년)
  • 산서성 강현 수촌 묘지(山西省 絳縣 睢村 墓地) 출토
  • 산서 박물원 소장(山西 博物院 所藏)

 

 

# 헌공벌적사(獻公伐翟: 헌공이 적사를 치다)

- 극숙호는 진대부이다. 진 헌공(獻公)이 사냥(田)을 나갔다가 적사(翟柤)의 기운을 보고는,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가서 사위(士蔿)를 만나니 <사위가> 말하기를, “오늘 밤 임금님께서 잠자리에 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신 것은 필시 적사 때문일 것입니다. 무릇 적사의 임금은 이익을 독점하기만 좋아하고 꺼리는 바가 없으며, 그 신하들은 다투어 아첨하며 환심을 사려 하니, 조정에 나아간 자들은 <현능한 이들의 길을> 가로막고, 물러난 자들은 <조정을> 거역하고 등 돌립니다.……” 하였다.

사위가 이로써 고하니, 헌공이 기뻐하며 이에 적사를 쳤다. 극숙호(郤叔虎)가 장차 성에 오르려 하니, 그 무리들이 말하기를 “정치를 버려두고 전쟁 노역을 하는 것은 그대의 임무가 아닙니다” 하였다. 극숙호가 말하기를, “이미 노련한 도모도 없고 또 장한 일마저 없다면, 무엇으로써 임금을 섬기겠는가?” 하고는, 깃털을 등에 지고 먼저 성 위로 기어올라 마침내 그곳을 이겼다. —— 《국어(國語)·진어(晉語)》

 

郤叔虎晉大夫也.  晉獻公田, 見翟柤之氛, 歸寢不寐……出遇士蔿, 曰: “今夕君寢不寐, 必爲翟柤也. 夫翟柤之君, 好專利而不忌, 其臣競諂以求媚, 其進者壅塞, 其退者拒違……士蔿以告, 公悅, 乃伐翟柤. 郤叔虎將乘城, 其徒曰: “棄政而役, 非其任也.” 郤叔虎曰: “既無老謀, 而又無壯事, 何以事君?” 被羽先升, 遂克之. ——《國語·晉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