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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하남 정저우박물관

하남 정저우박물관|춘추시대 패자를 다투다3(2024)

by isanjo 2026. 6. 23.

# 하남 정저우박물관|쟁패춘투(爭覇春秋)3(2024)
 
# 제2단원 쟁패춘투(爭覇春秋)3

 

# 후마 백점 주동 유적(侯馬白店鑄銅遺址)

후마 백점 주동 유적(侯馬白店鑄銅遺址)은 산서성(山西省) 후마시(侯馬市) 서교(西郊) 백점촌(白店村) 서북쪽에 위치하며, 진국 주동 유적(晉國鑄銅遺址)의 중요한 구성 부분에 속한다. 응당 관영 수공업 공방이었을 것이며, 당시 진국(晉國)과 삼진(三晉) 청동기 생산의 주요 기지였다. 출토된 도범(도자기 거푸집)은 후마 주동 유적에서 보이는 것과 일맥상통하면서도 혁신과 발전이 있다. 백점 주동 유적은 전국(戰國) 초기와 전국 초·중기 교체기의 유존이 가장 풍부한데, 이는 전국 초기인 약 기원전 453년 이후 한(韓)·조(趙)·위(魏)의 세력이 강대해져 진나라가 비록 신(絳)과 곡옥(曲沃)만을 점유하는 데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진나라의 주동업이 이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거나 폐기되지 않았고 심지어 문양이 더욱 정미해져 공예 기술이 새로운 높이에 도달했음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侯馬白店鑄銅遺址位於山西省侯馬市西郊白店村西北,屬於晉國鑄銅遺址的重要組成部分,應爲官營手工業作坊,是當時晉國和三晉青銅器生產的主要基地。所出陶范與侯馬鑄銅遺址所見一脈相承,並有創新和發展。白店鑄銅遺址以戰國早期和戰國早中之際遺存最爲豐富,這也間接反映了戰國早期約公元前453年之後,韓、趙、魏勢力強大,晉國雖只佔有絳和曲沃,但是晉國的鑄銅業並沒有因此而止步或廢棄,甚至紋飾更加精美,工藝技術達到了新的高度。

 

◆ 성운문범(星雲紋范)

전국(戰國, 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산서성(山西省) 후마시(侯馬市) 백점 주동 유적(白店鑄銅遺址) 출토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녹문범(鹿紋范)

전국(戰國, 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산서성(山西省) 후마시(侯馬市) 백점 주동 유적(白店鑄銅遺址) 출토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반리문모(蟠螭紋模)

전국(戰國, 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산서성(山西省) 후마시(侯馬市) 백점 주동 유적(白店鑄銅遺址) 출토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용문모(龍紋模)

전국(戰國, 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산서성(山西省) 후마시(侯馬市) 백점 주동 유적(白店鑄銅遺址) 출토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사각운문모(斜角雲紋模)

전국(戰國, 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산서성(山西省) 후마시(侯馬市) 백점 주동 유적(白店鑄銅遺址) 출토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화타문모(花朶紋模)

전국(戰國, 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산서성(山西省) 후마시(侯馬市) 백점 주동 유적(白店鑄銅遺址) 출토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봉조문모(鳳鳥紋模)

전국(戰國, 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산서성(山西省) 후마시(侯馬市) 백점 주동 유적(白店鑄銅遺址) 출토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경아정(庚兒鼎)

이 동정(구리 솥)은 춘추 중기 서국(徐國)의 기물로, 그 주인은 서왕(徐王)의 아들 경아(庚兒)이므로 이름을 '경아정'이라 하였다. 서나라는 강회(江淮) 지역의 영성(嬴姓) 국가로, 한때 세력이 매우 강성했다. 특히 서주(西周) 시기, 주나라 왕이 여러 차례 남회이(南淮夷)를 정벌한 것은 바로 서나라와 관련이 있다. 춘추 시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초(楚)·오(吳)·제(齊) 등의 나라와 때로는 우호적이었고 때로는 적대적이었다. 기원전 512년에 오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경아정의 발견은 당시 문화 교류의 성황을 증명하는 동시에 진국(晉國)의 강성함도 증명한다.

복내주명(腹內鑄銘, 솥 안쪽 바닥에 주조된 명문): "바야흐로 정월 초길 정해일에 서왕(徐王)의 아들 경아가 스스로 (밥 먹는 기물인) 흔유(飱鋊)를 만드니, 정벌할 때나 다닐 때 쓰고, 화락(龢)하고 유연(鬻)하게 하며, 미수(眉壽)와 영원한 복을 누리기를 기원하노라."

 

這件銅鼎爲春秋中期徐國之器,其主人爲徐王之子庚兒,故名庚兒鼎. 徐爲江淮間的嬴姓國家,一度勢力很強. 尤其是西周時期,周王多次征伐南淮夷就跟徐國有關. 進入春秋以後,與楚、吳、齊等國或友或敵. 公元前512年爲吳所滅. 庚兒鼎的發現見證了當時文化交流의 盛況,同時也見證了晉國의 強盛.

腹內鑄銘:“隹(唯)正月初吉丁亥,(徐)王之子庚兒,自乍(作)飱鋊,用征用行,用龢(hé)用鬻(yù),沬(眉)壽無疆.”

 

 

# 홍동 남진 묘지(洪洞南秦墓地)

남진 묘지(南秦墓地)는 홍동현(洪洞縣) 광승사진(廣勝寺鎮) 남진촌(南秦村) 서북쪽에 위치하며, 2016년 고고학자들이 이에 대해 구호성 발굴을 진행하여 각 시기의 묘장 9좌를 공동으로 드러내었는데, M6은 그중 가장 큰 한 좌이다. 해당 묘의 시대는 춘추 만기이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한 좌의 고등급 귀족 묘장이다. 묘주의 신분은 응당 경대부(卿大夫)이거나 혹은 조씨(趙氏)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해당 묘의 발굴은 양주(兩周) 시기 묘장 제도, 인군족속(집단 종족 계통) 및 진(晉) 문화 관련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南秦墓地位於洪洞縣廣勝寺鎮南秦村西南,2016年考古工作者對其進行搶救性發掘,共揭露各時期墓葬9座,M6是其中最大的一座. 该墓時代爲春秋晚期,保存完好,是一座高等級貴族墓葬. 墓主身份應爲卿大夫,或與趙氏有關. 該墓的發掘爲研究兩周時期墓葬制度、人群族屬及晉文化相關研究等提供了珍貴的資料.

 

# 용종각부분명칭(甬鍾各部分名稱) 


◆ 편종(編鐘) *8개

- 춘추(春秋, 기원전 770년 ~ 기원전 476년)

- 산서성(山西省) 홍동현(洪洞縣) 남진 묘지(南秦墓地) 출토

-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동언(銅甗)

 -춘추(春秋, 기원전 770년 ~ 기원전 476년)

- 산서성(山西省) 홍동현(洪洞縣) 남진 묘지(南秦墓地) 출토

-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① 청동검(青銅劍) ② 청동검(青銅劍) ③ 검수감옥동검(劍首嵌玉銅劍)

- 춘추(春秋, 기원전 770년 ~ 기원전 476년)

- 공안기관(公安機關) 추징

-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봉조뉴박종(鳳鳥鈕鎛鐘)

- 춘추(春秋, 기원전 770년 ~ 기원전 476년)

- 산서성(山西省) 양분현(襄汾縣) 도사북 묘지(陶寺北墓地) 3011호 묘 출토

- 산서 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