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남 정저우박물관|삼진으로 분열하다1(2024)
# 제3단원 여열삼진(餘烈三晉)1
- 춘추 시대 중후기에 진나라는 '정치가 여러 권력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상태가 되었으며, 군주의 권한은 크게 약화되었다. 한씨, 조씨, 위씨, 지씨, 범씨, 중행씨 등 여섯 경(卿) 가문이 연합하여 정치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각자 근거지를 구축하고, 국내에서는 동맹을 맺어 당파를 형성했으며, 국외 세력과도 손을 잡아 훗날의 권력 투쟁을 은밀히 준비하였다.
기원전 497년부터 기원전 453년까지 두 차례의 대규모 내란을 거친 끝에 한씨, 조씨, 위씨 세 가문이 연합하여 다른 경대부들을 격파하고 진나라의 영토를 모두 분할하였다. 이로써 진나라 군주는 완전히 허수아비가 되었다. 이후 주나라 천자가 한, 조, 위를 제후로 봉하면서 '전국칠웅'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기원전 376년에는 진정공이 폐위되었고, 진나라는 결국 멸망하였다.
春秋中後期,晉國「政出多門」,國君大權旁落,韓、趙、魏、智、范、中行氏聯合主政。六卿各自建立大本營,在內盟誓結黨,又結援國外,爲以後的爭鬥暗中準備。
西元前497年至前453年,經過兩次大規模的內亂,韓、趙、魏三家聯合,打敗其他卿大夫,盡分晉地,徹底架空晉國國君,後周天子封韓、趙、魏爲諸侯,「戰國七雄」格局形成。西元前376年,晉靜公被廢,晉絕不祀。
# 장치(長治) 분수령(分水嶺) 동주(東周) 묘지(墓地)
- 장치(長治) 분수령(分水嶺) 동주(東周) 묘지는 산시성(山西省) 장치시(長治市) 북교(北郊)의 분수령에 위치하며, 진(晉)나라 동남부 지역에서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대규모 묘역이다. 묘의 조성 시기는 춘추(春秋) 시대 중·후기부터 전국(戰國) 시대 중·후기까지 이어진다. 분수령 지역은 춘추 시대 중·후기에는 진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전국 시대에는 조(趙)나라와 한(韓)나라가 번갈아 지배하였다. 그러나 문화적 특징은 여전히 진 문화의 요소를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長治分水嶺東周墓地
長治分水嶺東周墓地位於山西省長治市北郊分水嶺,是晉東南地區保存較爲完整的大型墓群。墓葬年代自春秋中晚之際延續至戰國中晚期。分水嶺地區在春秋中晚期屬晉國掌控,到戰國時被趙、韓輪流掌控,但是文化面貌上,仍以晉文化因素爲主。

# 조수화선도(鳥首盉線圖)

# 공부선도(銎斧線圖)

◆ 공부(銎斧)
- 춘추(春秋) 시대(기원전 770~476년)
- 산서성(山西省) 장치시(長治市) 분수령(分水嶺) 묘지에서 출토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동정(銅鼎)
- 춘추(春秋) 시대(기원전 770~476년)
- 산서성(山西省) 장치시(長治市) 분수령(分水嶺) 225호 묘지에서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반훼문대(蟠虺紋敦)
- 춘추(春秋) 시대(기원전 770~476년)
- 산서성(山西省) 장치시(長治市) 분수령(分水嶺) 묘지에서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조수화(鳥首盉)
- 춘추(春秋) 시대(기원전 770~476년)
- 산서성(山西省) 장치시(長治市) 분수령(分水嶺) 36호 묘지에서 출토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한(韓)
진(晉) 목후(穆侯)의 손자인 만(萬)은 진 무공(晉武公)을 도운 공으로 한(韓) 땅에 봉해져 한씨(韓氏)가 되었다.
이후 조씨(趙氏)와 동맹을 맺으면서 가문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졌고, 춘추시대 말기에는 조씨(趙氏)·위씨(魏氏)와 함께 연합하여 진(晉)나라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한(韓)나라의 영토는 현재의 산시성(山西) 남부와 허난성(河南) 북부를 중심으로 하였다. 처음 수도는 평양(平陽, 현재의 산시성 린펀)이었으며, 이후 의양(宜陽, 현재의 허난성 이양), 양적(陽翟, 현재의 허난성 위저우)으로 천도하였다. 정(鄭)나라를 멸망시킨 뒤에는 신정(新鄭, 현재의 허난성 신정)으로 천도하였다.
晉穆侯孫萬因協助晉武公有功,被封於韓地,稱爲韓氏。後與趙氏結盟,家族勢力逐漸強大。至春秋晚期,與趙、魏二氏聯合掌控晉國政權。
韓國國土主要包括今山西南部及河南北部。初都平陽(今山西臨汾),後遷都宜陽(今河南宜陽)、陽翟(今河南禹州),滅鄭國後遷新鄭(今河南新鄭)。

# 위(魏)
필만(畢萬)은 진 헌공(晉獻公)을 보좌한 공으로 위읍(魏邑)(현재의 산시성(山西) 루이청(芮城) 일대)에 봉해졌으며, 그의 후손들은 봉읍의 이름을 성씨로 삼아 위씨(魏氏)라 불렀다. 춘추시대 말기에 이르러 조씨(趙氏), 한씨(韓氏)와 함께 진(晉)나라의 정권을 분할하였다.
위 문후(魏文侯)는 안읍(安邑)(현재의 산시성(山西) 샤현(夏縣))에 도읍을 정하고 정치와 행정을 힘써 다스리며 현명한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전국칠웅 가운데 강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였고, 위(魏)나라의 백 년 패업을 확립하였다. 위 혜왕(魏惠王)은 안읍에서 대량(大梁)(현재의 허난성(河南) 카이펑(開封))으로 천도하였으며, 이후 위(魏)나라는 양(梁)나라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畢萬輔佐晉獻公有功而獲封魏邑(今山西芮城一帶),其後子孫以邑爲氏,稱爲魏氏。到春秋晚期,與趙、韓二氏瓜分晉國政權。
魏文侯建都安邑(今山西夏縣),勵精圖治,招賢納士,稱雄七國,奠定了魏國百年霸業。魏惠王從安邑遷都大梁(今河南開封),此後的魏國又被稱爲梁國。

# 한조위(韓趙魏) 형세도_기원전 350년

# 맺음말
_ 진국(晉國)은 황하와 분수(汾水) 동쪽에 자리한 제후국으로, 하·상 시대의 기풍을 이어받고 중원의 예악 문화를 흡수하여 발전시켰다. 600여 년에 걸친 흥망성쇠 속에서 중원 150여 년의 찬란한 공업(功業)을 창조하였고, 종횡으로 패권을 다투던 격동의 시대를 비추며 위대한 시대의 영광을 드러냈다.
진국의 흥기와 번영은 민족 융합, 문화 교류, 경제 발전을 촉진하였으며, 600여 년에 걸친 분하(汾河) 유역의 역사 장을 써 내려갔다. 여러 해에 걸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고고학 발굴과 연구를 거쳐 진 문화의 면모가 점차 밝혀졌고, 진국의 역사·문화·사회·생활 등 여러 측면이 드러나면서 진 문화의 흥망과 변천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황하는 끊임없이 흐르고 천지는 영원하다. 수천 년 동안 혁신을 거듭하며 새로워지고, 여러 문화를 포용하고 아우르며 발전해 온 진 문화는 이미 중화민족 우수 전통문화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 되었다. 또한 중화민족 문화 유전자와 정신적 혈맥의 형성과 계승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晉國, 這個誕生于黃河與汾水之東的諸侯國, 沐浴了夏商風骨的熏拂, 吸納着周禮樂文化的菁華, 在600多年興衰風雨中變革圖强, 創造了稱霸中原150餘年的輝煌功業, 照亮了一個縱橫捭闔·蕩氣回腸的偉大時代。
晉國的崛起與繁榮, 促進了民族的融合·文化的交流·經濟的發展, 書寫了長達600多年汾瀾壯闊的歷史篇章。經過多年來系統·科學的考古發掘與硏究, 晉文化面貌逐步淸晰, 晉國的歷史·文化·社會·生活等方面被一一揭示, 爲我們講述着晉文化的興衰變遷。
大河奔流, 天地沱桑。千百年來, 革故鼎新·兼容幷蓄·與時俱進的晉文化, 早已成爲中華民族優秀傳統文化的重要組成部分, 對中華民族文化基因與精神血脈的形成和賡續, 起到了非常重要的作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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