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_베이징 국가박물관 2층_아주문명전_대미아세아34
# 스리랑카(Sri Lanka)_실론(Ceylon)
◆ 정화보시비(鄭和布施碑)
- 1409년(1911년 발견)
- 스리랑카 갈(Galle)
- 스리랑카 콜롬보 국립박물관 소장
- 출구쪽에 비석 하나가 있다. 비석의 앞면 오른쪽에는 한자 왼쪽 상단에는 타밀어, 왼쪽 하단에 페르시아어로 되어 있다.
처음에는 이 비석이 왜 여기 있을까 의심하지 않고 그냥 찍었는데 내용이 궁금해서 확해를 했는데 비석의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명나라 정화(鄭和)는 스리랑카에 들러 필요한 물자를 보충했다. 이 비석은 중국어, 타밀어, 페르시아어 3개 언어로 쓰여 졌다.
1행: 大明
2행: 皇帝遣太監鄭和~~
末행 ~~~ 永樂~~歲次 己丑三月 甲戌朔日謹施
정화는 메카에 성지순례까지 다녀온 이슬람교도인 아버지 마하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마삼보(馬三寶)이다. 그의 선조는 색목인(아랍인)으로, 원나라 시대에 운남성(雲南省)의 총독을 지냈다. 마삼보가 10세가 되던 1381년 원나라를 추종하던 운남성은 주원장(朱元璋)이 세운 새로운 왕조인 명나라의 군대에 정복되었다. 어린 마삼보는 그때 사로잡혀 거세된 후 홍무제의 넷째 아들인 연왕(燕王)의 휘하의 환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 마삼보는 전투와 외교에서 재능을 드러내며 1400년 연왕이 조카인 건무제를 상대로 일으킨 반란에서 공을 세웠고, 연왕이 황제로 등극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영락제(연왕)는 마삼보를 환관 중에서 최고 자리인 태감(太監) 자리에 앉히고 정(鄭) 씨 성을 하사하였고, 마삼보는 그 뒤로 정화라고 불리게 되었다.
<정화의 대항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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