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2021_국립중앙박물관 1층_상해박물관소장 청동기1

by isanjo 2022. 3. 1.

2021_국립중앙박물관 1층_상해박물관소장 청동기1

# 중국 고대 청동기_신에서 인간으로

 

 

. 청동기문화의 시작

중국의 청동기는 기원전 2천년 무렵 하(夏)나라 때부터 제작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토기를 본떠 청동 그릇을 만들었다. 최초의 청동기는 세발 술잔과 고기 삶는 세발솥이다.

중국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첫 번째 나라인 하나라 때부터 입니다. 전설처럼 알려지던 하나라는 1959년 허난(河南)성 옌스(偃師:언사)현 얼리터우(二里頭:이리두)에서 궁전유적이 발견되면서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하나라는 전설 속의 우왕(禹王)이 기원전 21세기에 세운 뒤 17대 걸왕(桀王)에 이르기까지 500년 가까이 존속하였다.

하나라 사람들은 이 지역에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었던 신석기시대 룽산(龍山:용산)문화의 구리 가공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청동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신석기시대 토기의 모양을 본뜬 단순한 무늬의 세발 술잔이나 고기 삶는 세발솥이었다. 뒤이은 상(商)나라 때에는 그릇의 종류와 무늬가 다양해진다.

 

 

1. 청동기의 탄생.

 

◆ 2. 연주문 가(連珠文 斝)_구슬을 연결한 문양이 있는 그릇[斝]

- 술 데우는 세발 그릇

- 하나라 후기_BC.18C~16C.


- 의례 때 사용한 울창주[울금향과 검은 기장으로 빚어 만든 술]를 따뜻하게 데워 담았던 그릇이다. 아가리에 있는 두 개의 짧은 기둥은 술에 남은 찌꺼기를 거르는 망을 걸 때 사용하였다.

초기에는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다리의 빈 공간에 술이 고였다. 표면은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고 내부에도 흰색 찌꺼기가 붙어 있어 당시 실제로 술을 데우는 데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슬무늬 장식은 하나라 청동기의 특징이며 상나라 때 점차 없어진다.

 

 

2. 상 왕조 등장과 청동기의 발전

 

◆ 3. 수면문 작(獸面文 爵)_짐승 문양이 있는 술잔[爵]

- 세발 술잔

- 상대 전기_BC.16C~15C 중엽


- 상나라 때는 세발 술잔의 아가리에 짧은 기둥 2개를 세우는데 이 술잔은 모두 떨어져 버렸다. 2개의 다리는 몸통 아래 양쪽으로 배치하고 한 개의 다리는 손잡이 아래에 배치하여 수평을 잡았다. 몸통 중간의 동물얼굴무늬 장식은 전형적인 상 전기의 양식이다.

 

동물얼굴무늬(몸통)

 

 

◆ 4. 수면문작(獸面文 觚)_짐승 문양이 있는 술잔[觚]

- 나팔 모양 술잔

- 상대 전기_BC.15C~BC.13C 중엽

 

- 아래 몸통에는 기(虁)의 얼굴문양이 있고, 굽다리에는 용무늬가 있다.

- 논어 옹야편에 "고불고 고재고재(觚不觚 觚哉觚哉)"라고 하였다.
'고'는 생각보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다. 후대에는 도자기로도 만들었다.

 

- 술을 마시거나 따르는 용도로 사용한 나팔 모양 술잔이다. 원래 이름은 '동同'이고, 송宋나라(960~1279) 이후부터 '고觚'라고 불렀다.
이 술잔은 초기의 것으로 크기가 작고 굽다리에 십자형 구멍 3개가 있다. 굵은 선을 이용한 몸통의 동물얼굴무늬와 굽다리의 용무늬 장식 역시 이 시기의 특징이다.

 

 


동물얼굴무늬(몸통)

용무늬(굽다리)

 

 

◆ 5. 수면문 가(獸面文 斝)술 데우는 세발 그릇

- 상대 중기

- BC.15C 중엽~BC.13C. 


- 술을 데울 때 사용한 그릇으로 목과 몸통에 동물얼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돌출된 눈을 제외하고 선의 굵기로 무늬의 차이를 표현하였다. 목에는 가는 선을, 몸통에는 굵은 선을 사용했다. 이런 표현 방법은 상나라 중기에 유행한 장식기법이다.

 

@ 위에서 본 모습.

 

동물얼굴무늬(몸통)

 

 

◆ 6. 수면문 정(獸面文 鼎)_ 짐승 문양이 있는 솥

- 고기 삶는 세발 솥

- 상대 전기_BC.16C 중엽~BC.15C 중엽 

 

- 배 부분이 볼록한 몸통에 바닥이 둥글고 그 아래로 납작하며 끝이 뾰족한 용 모양 다리 세 개가 붙어 있다. 이런 다리를 가진 세발솥은 신석기시대 토기를 본떠 만들던 세발솥이 청동예기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몸통에는 동물얼굴무늬를 한 줄로 두르고 그 아래위에 각각 구슬무늬를 장식하였다. 상나라 전기에 유행했던 무늬이다. 솥의 바닥과 다리 안쪽에는 그을음이 있어 실제로 고기를 삶는 데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다리 하나에는 용무늬가 없는데, 떨어져 나간 것을 뒤에 새로 만들어 붙이면서 용무늬가 생략된 것이다.

 

@ 위에서 본 모습

 

@ 옆에서 본 모습

 

@ 아래에서 본 모습

 

 

◆ 7. 수면문 정(獸面文 鼎)_ 짐승 문양이 있는 솥

- 고기 삶는 세발 솥

- 상대 중기_BC.15C 중엽~BC.13C

 

- 이 세발솥은 상나라 중기에 만들었지만 전기의 형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두꺼운 두 귀와 몸체에 비해 비교적 길고 공간이 비어 있는 송곳 모양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귀와 다리를 일직선상에 배치하여 시각적으로 불안해 보입니다. 다리는 지면에 닿는 부분이 둥글게 처리되어 있어, 뾰족한 모양의 다리가 원기둥 모양으로 변하는 과도기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몸통에 동물얼굴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그 아래위에 모두 구슬무늬가 있다. 허난성 은허유적 무덤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세발솥이 발견되었다.

 

 

◆ 8. 수면문 력(獸面文 鬲)_ 짐승 문양이 있는 솥

- 상대 중기_BC.15C 중엽~BC.13C

- 다리 아래가 비어 있어 열이 빨리 전달된다.

 

- 음식을 끊일 때 사용하던 세발 솥으로 신석기시대에는 토기로 제작하던 그릇이다.

상나라 중기 청동기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무늬의 면적이 넓어지는 것이다. 몸통에 한 줄의 띠로 무늬를 둘렀던 전기와 달리 중기부터는 몸통 전체에 장식하였습. 열을 가하지 않아 무늬와 색이 그대로 잘 남아 있습니다.  상 중기에는 이미 청동기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 동물얼굴무늬

 

 

# 중국 하상주(夏商周) 왕조와 청동기문화.

 

 

# 고대 중국 청동기의 제작


3. 바깥 거푸집에 무늬 추가, 글자 넣기.

 

세상에 똑같은 청동기는 없다! 
두 개가 똑같은 것은 없다!

- 상주시대에는 청동예기를 만들 때 먼저 흙으로 만들고자하는 청동기를 만들고 여기에 진흙을 발라 바깥 거푸집을 만들었다. 그 다음 처음 만든 토기의 표면을 깎아낸 뒤 바깥 거푸집과 합쳐 그 사이에 쇳물을 붓는 방법(陶范法)을 사용했다. 쇳물을 넣어 식힌 뒤, 바깥 거푸집을 부수고 청동기를 꺼내야 했기에 상주시대에 만든 청동기 중 똑같은 것은 없다. 세상에 딱 하나만 존재한다.
한편, 기원전 10세기 무렵 상나라의 분주법(分鑄法)은 복잡한 형태의 청동기 제작을 가능하게 했다. 분주법은 청동기의 손잡이나 다리 등 튀어 나온 부분을 먼저 주조한 뒤 이를 거푸집에 넣고 쇳물을 주입하여 몸통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로써 다양한 청동기의 제작이 가능해져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1. 굽다리 모양 토기 만들기

 

2. 바깥 거푸집 만들기

 

3. 바깥 거푸집에 무늬 추가

4. 안쪽 거푸집 만들기

 

 

5.  거푸집 합치기

 

6. 거푸집 합치고 굽기

 

7. 쇳물 붙고 청동기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