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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서울

경복궁 나들이(2025)

by isanjo 2025. 10. 12.

# 2025_10_경복궁 나들이

 

# 인사동에서 풍문여고 가는길. 길거리에 한지 관련 장이 섰다. 오른쪽에는 한자로 만든 그림전시회도 열렸다.

 

◆ 소나무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

- 우린 동네 골목 벽에서 본 그림.

 

◆  

 

◆ 신윤복의 미인도

 

# 민속박물관 가는 길

◆ 문인석

 

# 민속박물관

◆ 호작도(虎鵲圖)

 

◆ 목우(木牛)

 

◆ 천 명이 쓴 천자문(千字文)

 

◆ 꽃가마_상여

 

◆ 동자석 외.

 

◆  경복궁(景福宮)  향원정(香遠亭)

 

경회루(慶會樓)

 

◆ 풍기대(風旗臺)_풍향계

 

# 경복궁 왕가의 산책

- 행사를 마치고 경회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 고궁박물관_ 특별전시관

 

 

# 창덕궁의 근사(謹寫)한 벽화

- 개관 20주년을 맞아, 청덕궁의 희정당·대조전·경훈각의 벽화를 전시했다. 모두 6점이다.

 

<설명서>
국립고궁박물관이 문을 연 지 올해로 20년을 맞이했습니다.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우리 박물관은 이 경사를 기념하여 궁궐을 장식한 마지막 궁중회화인 창덕궁 희정당, 대조전, 경훈각 벽화를 한데 모아 소개합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純宗(1874~1926, 재위 1907~1910)과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1894-1966)가 살았던 창덕궁 내전의 희정당·대조전·경훈각 대청은 각각 2점씩 모두 6점의 대형 벽화로 장식되었습니다. 1917년 화재가 일어나 내전 권역이 모두 타버리자 이를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20년에 완공하였는데, 이때 벽화도 함께 제작되었습니다. 창덕궁 벽화는 전통적인 궁중화풍으로 그려졌으나 주로 병풍이나 창호로 제작되었던 이전의 궁궐 장식 그림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이었습니다.
벽화는 당시 화단을 주도했던 직업 화가들이 그렸습니다.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던 조선의 궁중 화원들과 달리 이들은 '근사謹寫', 즉 '삼가 그려 바친다' 라는 표현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그림에 적어 넣으며 화가로서의 개인을 드러내는 근대적인 변화를 보였습니다.
창덕궁 벽화에는 이처럼 궁중회화의 전통과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나라 잃은 군주의 비애와 새로운 변화에 대한 바람이 교차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창덕궁의 근사한 벽화 속에서 영원의 소망을 담아 그린 이상향의 모습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 대조전 벽화

<설명서>

- 창덕궁 대조전大造殿 대청마루의 동쪽과 서쪽 벽 상단은 각각 낮과 밤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봉황도>와 <백학도〉로 장식되었습니다.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의 중심 건물로, 『궁궐지宮闕志』에서는 내전의 정전正殿을 뜻하는 '대내곤전정당大內坤殿正堂'이라 불렸습니다. '대조大造'는 '큰 공업을 이루다'라는 뜻으로, 왕실을 이어갈 왕자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대조전은 1907년 순종 즉위 이후 황제 부부의 생활공간이었으며,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는 각종 행사가 거행되기도 했습니다. 대조전은 1917년의 화재 이후 경복궁 교태전 交泰殿 건물을 옮겨와 다시 지었으며, 전통적 외관과 서양식으로 개조된 내부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조전 벽화에 그려진 학과 봉황은 조선의 궁중 장식 그림에서 자주 다루어진 소재입니다. 봉황은 부부간의 화합과 태평성대를, 백학은 비범한 군자의 덕과 장수를 상징합니다. 청록산수를 배경으로 화려한 채색과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두 작품은 궁중 장식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 해처럼 찬란한 날개를 펼치다, 봉황도鳳凰圖
<설명서>
오일영吳一英(1890~1960), 이용우李用雨(1902~1952) | 1920 | 비단에 채색 | 국가등록문화유산

Oh Il-young (吳一英,1890-1960) and Yi Yong-u (李用雨,1902-1952) | 1920 |

Color on silk | State-Registered Cultural Heritage

창덕궁 대조전 대청 동쪽 벽 위쪽을 장식했던 벽화 <봉황도>입니다. 태평성세를 상징하는 봉황 10마리가 붉은 해 아래 그려져 있습니다. 왕실의 번영과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봉황 그림은 궁궐 장식 그림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그림 속에는 봉황 이외에도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장수를 상징하는 바위와 대나무, 나리꽃 등의 소재가 함께 그려졌습니다. 화면의 오른쪽 끝에는 오일영과 이용우가 삼가 그렸다는 서명과 인장이 남아 있습니다.
1920년 당시 31세의 오일영은 19세인 이용우와 함께 <봉황도>를 그렸습니다. 두 사람은 1911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교육기관인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 1기 졸업생으로, 안중식安中植(1861~1919) 등의 화가로부터 전통화법을 배웠고, 졸업 후 서화협회書畵協會의 정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오일영은 계속해서 시서화詩書畵 일치의 전통회화의 정신을 잇고자 했고, 이용우는 전통화풍 산수화에 서양화풍을 결합하는 실험적인 태도로 전통화단을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 백학도 초본白鶴圖草本
<설명서>
김은호金殷鎬(1892~1979) | 1920 | 종이에 먹과 유탄

<백학도 초본>은 김은호가 <백학도> 정본을 완성하기에 앞서 제작한 연습 작품입니다. 주로 먹을 사용해 그렸지만, 버드나무를 태워 만든 숯[유탄柳炭]으로 작업한 흔적들도 화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특히 화면 가장 왼쪽에 희미하게 그려진 다섯 마리의 작은 학은 김은호가 다양한 자세의 학을 구상하며 표현하고자 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밖에도 그림 사이사이 메모를 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은호는 초본의 구성을 정본에 그대로 옮기지 않고,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거나 구도를 유연하게 변형했습니다. 초본에는 없던 달, 구름, 불로초[영지] 등을 <백학도>를 그릴 때 새로이 그려 넣었으며, 학의 자세도 보다 자연스럽게 바꾸어 그렸습니다. 이는 맞은편에 걸릴 예정이었던 <봉황도>와의 시각적 조화를 고려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백학도 초본>은 김은호의 작품 구상 과정과 회화적 실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백학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입니다.

 

 

 

 

 

# 경훈각 벽화

<설명서> 창덕궁 경훈각景薰閣 대청마루의 동쪽과 서쪽 벽 상단은 신선이 사는 세상을 그린 두 점의 벽화로 장식되었습니다. 동쪽 벽 <조일선관도>, 서쪽 벽 <삼선관파도>입니다.
경훈각은 대조전 뒤편에 위치한 전각으로, 본래는 아래층 경훈각과 위층 징광루澄光樓로 이뤄진 2층 구조의 건물이었습니다. 1917년 화재 이후 그 자리에 경복궁 만경전萬慶殿을 옮겨 와 지으면서 지금처럼 대조전과 행각行閣으로 연결된 단층 건물이 되었습니다. 경훈각은 과거 왕비의 일상 공간이자 국왕이 서화를 감상하고 피서를 즐기기도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재건 후에도 이 건물은 황제 내외의 서재 겸 휴식처로 활용되며 왕실의 사적 공간으로서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경훈각 벽화에는 바다에 접한 험준하고 깊은 산 속에 신선들의 누각이 숨어 있는 신비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신선 세계의 복숭아인 반도蟠桃 와 거북을 든 두 동자와 서로 더 오래 살았다고 경쟁하는 신선 세 명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주제는 황제 내외의 안녕과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신선세계를 꿈꾸다. 조일선관도朝日仙觀圖

<설명서>
노수현盧壽(1899-1978) | 1920 |비단에 채색 |국가등록문화유산

창덕궁 정훈각 대청 동쪽 벽 상단을 장식했던 벽화 <조일선관도>입니다. 아침 해가 떠오른 신선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넓은 화면에 청명한 산수풍경을 세밀한 붓질과 장식적이고 화려한 색채, 전형적인 고사인물도의 묘사 방식을 더하여 표현하였습니다. 해와 산수가 어우러진 풍경에서 이 작품의 화제가 '천보구여天保九如'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경詩經「소아에 실린 '천보'에서는 신하가 임금의 은덕을 변하지 않는 자연물에 빗대어 임금의 장수와 나라의 번영을 기원합니다. 그림 곳곳에 복숭아, 연잎 위의 거북, 두 명의 동자, 신선의 전각 등 길상적인 상징들이 어우러져 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무병장수를 바라며 제작되었던 축수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입니다.
노수현은 1918년 서화미술회를 졸업하고 안중식安中植(1861-1919)의 화실 경묵당하墨堂에 머물며 지도를 받았습니다. 장식적인 전통 청록산수화인 <조일선관도>에는 안중식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1930년대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전국의 유명한 명소를 유람하며 경치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전통적인 관념 산수화풍을 접목하여 사생적인 화풍과 암석의 골격미가 돋보이는 자신만의 산수화를 정립하였습니다.

 

◆ 영원한 삶을 바라다, 삼선관파도三仙觀波圖_파도를 바라보는 세 명의 선인
<설명서>
이상범李象範(1897~1972) | 1920 | 비단에 채색 |국가등록문화유산

창덕궁 경훈각 대청 서쪽 벽 상단을 장식했던 벽화 <삼선관파도>입니다. 신선 세계의 저녁을 배경으로 바다를 보며 대화하는 세 사람의 신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북송 대 문인 소식蘇軾(1037~1101)의 『동파지림東坡志林』에 실린 「삼로문년三老問年」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세 명의 신선은 각자 자신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자랑하는데, 신선들 머리 위로는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 나무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황실의 평안과 황제 내외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상범은 1918년 서화미술회를 졸업하고 노수현과 함께 스승 안중식安中植(1861~1919)의 화실 경묵당耕墨堂에 문하생으로 있으면서 작업을 이어 갔습니다. <삼선관파도>는 전통적 화원화풍인 청록산수화로 스승 안중식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 줍니다. 이후 이상범은 한국의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농촌과 산과 들의 실제 풍경을 그리면서 먹의 농담에 변화를 준 짧고 빠른 붓질과 바위 질감이 돋보이는 개성적 양식을 완성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산수화가로 성장했습니다.

 

 

 

 

# 조선 왕실과 금강산

<설명서>
금강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산名山입니다. 불교 경전 『화엄경華嚴經』에서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머무는 성스러운 장소로 묘사되었고, 고려 말에는 예배도로 그려지면서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금강산은 사대부 문인들에게 풍류를 즐기며 심신을 수양하는 명승지로 위상을 떨쳤습니다. 금강산을 다녀온 문인들은 그 경험을 시나 여행기로 기록했고, 방문하지 못한 이들은 그림으로라도 그 경치를 감상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겸재 謙齋 정선鄭敾(1676~1759)을 필두로 금강산 주제의 진경산수화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정조正祖(재위 1776~1800)는 화원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와 김응환金應煥(1742~1789) 에게 금강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오도록 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근대에 들어 금강산은 영험한 산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한편 일제에 의해 관광지로 개발되어 조선이 일본 영토의 일부임을 선전하는 데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이중적인 인식은 순종의 접견실인 희정당 벽화로 금강산이 그려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 희정당 벽화

 

<설명서>
창덕궁 희정당熙政堂 대청마루 동쪽과 서쪽 벽 상단에는 해강海岡 김규진 金圭鎮(1868~1933)이 그린 금강산 절경의 파노라마가 시원하게 마주보며 펼쳐져 있습니다.
희정당은 조선시대 국왕이 평소 거처하면서 정무를 보는 집무실이었습니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0년 다시 지어진 이후에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접견실로 사용되었습니다. 경복궁 강녕전康寧殿 건물을 옮겨 지었으므로 전통적인 궁궐 전각의 외형을 갖춘 동시에 내부는 증기난방, 샹들리에, 유리창과 커튼박스 등을 설치하고 카펫과 무늬벽지, 서양식 가구로 꾸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대청의 벽화는 비단에 그리고 배접해서 벽에 붙이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작했지만, 양식으로 꾸민 실내에도 잘 어울립니다.
금강산은 궁궐 실내를 장식하는 그림으로서는 새로운 주제입니다. 김규진은 금강산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실경을 스케치했고, 이를 바탕으로 동쪽 벽에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나인 해금강海金剛 총석정叢石亭을, 서쪽 벽에 외금강外金剛 만물상萬物相을 그렸습니다. 이전의 궁중 화원과 달리 김규진은 두 그림에 작품의 제목과 자신의 이름을 쓰고 낙관을 찍어, 근대 서화가로서 자부심을 드러내었습니다.

 

◆ 바다 위 기암奇巖을 펼쳐 놓다,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설명서>
김규진金圭鎮(1868-1933) | 1920 | 비단에 채색 | 국가등록문화유산

 

창덕궁 희정당 대청 동쪽 벽 위쪽을 장식했던 <총석정절경도>입니다. 총석정은 금강산 북쪽 강원도 통천군 동해안에 위치한 정자로, 해변을 따라 빽빽하게 솟은 주상절리가 이루는 빼어난 경치를 바라보고 있어 관동팔경 중 제일로 꼽혔습니다. <총석정절경도>는 바다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졌습니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높고 낮은 총석과 그 뒤로 보이는 언덕 위 총석정의 경치가 수평의 화면에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김규진은 서예와 사군자로 이름이 높았던 서화가입니다. 그는 대한제국시기 고종의 사진을 찍고 영친왕英親王(1897~1970)에게 서예를 가르치는 등 황실과 인연이 깊었습니다. 1907년 관직을 떠난 후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館을 열었고 사설 교육기관인 서화연구회書畵研究會를 운영하며 전통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1920년 6월 김규진은 희정당 벽화 제작 의뢰를 받고 금강산에 가서 벽화의 밑그림을 그려 왔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바라본 총석정 전경을 스케치한 작품이 지금도 전해집니다.

 

 

 

 

 

 

 

 

 

# 박물관 리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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