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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섬서 역사박물관

2019_12_섬서(陝西)1_섬서박물관32_기본진열6

by isanjo 2022. 10. 23.

2019_12_섬서(陝西)1_섬서박물관32_기본진열6

 

#  채읍과 제후국1

- # 강력하게 전국의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서주는 봉건제도를 실행하여 많은 제후에게 봉호를 주어 왕실의 번방을 지키게 하였다. 도성 부근의 왕기(王畿:수도권)와 기주(岐周) 지역은 많은 공경대부에게 채읍을 주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주(), (), (), (), (), 서괵(西虢), (), (), (), () 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섬서 경내에 또 약간의 이성 국족이 있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녈(), (𢐗), (), () 등이다.

 

 

◆ 11. 오사위 정(五祀衛鼎)

- 서주

- 1975년 보계시 기산현 동가촌 동기교장 출토 출토

 

- 오사위 정(五祀衛鼎)은 중국 국보급 유물로 구조는 단순하다. 서주 중기 귀족 구위(裘衛)가 만든 솥이다. 내벽에는 19행 으로 모두 207자의 명문이 주조되어 있다. 주제는 서주 중기 토지 교역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대략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주 공왕(共王) 5년 정월 구위(裘衛)가 이웃 나라의 임금과 토지를 교환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이에 정백(井伯)과 백읍보(伯邑父) 등에게 집권대신에게 보고하였다. 자문을 거친 후 임금이 토지의 가치가 상당하다고 생각하여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맹세를 했다. 집권대신이 바로 삼사(三司) 등의 관원에게 명령하여 실질적인 조사와 경계의 확정과 아울러 수속을 처리하게 하였다.” 명문의 설명은 공왕 때 일부의 토지를 실제로 사유화와 교역을 논하였다. 단, 교역할 때 왕조 중신들의 통과와 아울러 계약서를 쓰고 수속을 처리 등이 필요했다. 서주 중기사회의 경제와 토지제도의 연구에 있어 중요한 가치가 있다.

 

<바이두>

五祀卫鼎(Wei ding I [1]  )是中国国宝级文物。鼎造型简单大方,内壁铸有铭文19行共207个字,讲述了西周中期一件土地交易事件。大意是说西周共王五年的正月,一个叫裘卫的人想与他的邻居邦君厉交换土地,于是他把这件事报告给刑伯、伯邑父、定伯等大臣。经过询问,邦君厉表示同意并立下誓言,大臣便命令三有司(司徒、司马、司空)以及内吏实地勘察、划定地界并办理了手续。这篇铭文反映出西周中期部分土地实际已属私有,但土地的转让、交换和买卖,仍需通过王朝重臣。同时这篇铭文中有确切纪年,因此五祀卫鼎是判断西周中期青铜器的标准器,非常珍贵 [2]  
1975年2月出土于陕西省宝鸡市岐山县京当公社董家村1号西周铜器窖藏,收藏于陕西历史博物馆,原藏岐山县博物馆

 

# <명문> 위키

隹正月初吉庚戌衛以邦君厲告於丼白白邑父定白黥白白俗父曰厲曰餘執龏王恤工於卲大室東逆營二川餘舍女田五田正乃訊厲曰女賈田不厲乃許餘審賈田五田丼白白邑父定白黥白白俗父乃顜吏厲誓乃令參有司司土邑人越司馬婚人邦司工陲)(內史友寺芻帥履裘衛厲田亖田乃舍宇於氒邑氒逆強眔厲田氒東強眔散田氒南強眔散田眔政父田氒西強眔厲田邦君厲眔付裘衛田厲吊子夙厲有司申季慶癸燹表荊人敢丼人偈屖衛小子者逆其卿剩衛用乍朕文考寶鼎衛其萬年永寶用隹王五祀

 

◆ 12. 백동음호(伯冬+戈飮壺)

- 서주

- 보계시(寶鷄市) 부풍현(扶風縣) 장백(庄白) 출토

 

 

◆ 13. 사속각(史速角)

- 서주

- 보계시(寶鷄市) 기산현(岐山縣) 하가촌(賀家村) 출토

 

 

<陝西曆史博物館>

西周21.5厘米兩尾間距離17厘米重量1.25千克1966年寶雞市岐山縣何家村出土現藏於陝西曆史博物館

 

角是一種飲酒器兩端均爲沒有流形制像最大的區別是爵有沒有也沒有讀作但器形很像是一對尖尖的牛角根據出土文物的銘文來看角和爵最初都曾被叫做而自宋代開始金石學家將這種兩端均爲尖的器物稱爲除口沿處的區別其餘部位角與爵沒有明顯區別均爲深腹圜底三個外撇的錐狀足角同爵的用途一樣都是飲酒器大小重量器形方便單手抓握喝酒不是從兩個尖尾處喝而是從中間——否則酒在流進口中之前酒從尾邊沿流光了

 

這件史速角兩端尖尾高高翹起真的很像牛的一對尖角曲線優美造型霸氣有一個與器身口沿曲線嚴絲合縫的器蓋束頸鼓腹圜底三個錐狀足足尖外撇器身有一獸首鋬器蓋有一半環形鈕身均施鳥紋頸部爲蕉葉紋器身器蓋鑄有相同銘文史速做寶尊彝器物主人名爲史速

 

 

14. 차정(此鼎)

- 서주

- 보계시(寶鷄市) 기산현(岐山縣) 동가촌(董家村) 출토

 

 

15. 차궤(此簋)

- 서주

- 보계시(寶鷄市) 기산현(岐山縣) 동가촌(董家村) 출토

 

 16. 조생력(琱生鬲)

- 서주 중기

- 보계시(寶鷄市) 진창구(陳倉區) 고천촌(高泉村) 출토

 

<陝西曆史博物館>

通高25.5厘米口徑25厘米腹深12.4厘米7.62千克1949年前扶風縣北岐山一帶出土

此器侈口束頸低體淺腹襠部近平三實足足的下端呈粗柱狀口緣上有一對半環狀立耳頸部飾目雷紋三足相應的腹部有扉棱扉棱兩側飾兩兩相背的花冠龍紋以雲雷紋填地足根部有弦紋三道此器是西周中期新出現的一種造型較大的寬體平襠式鬲的代表

琱生鬲器腹裝飾的龍紋極具特色形狀呈仿照大鳥紋垂冠回首似鳥非鳥沒有腹足花冠是龍角委曲迤邐,由兩側下垂而形成的這種龍紋是西周中期出現的一種新的形式是隨著大鳥紋的興盛而出現的

器腹內壁鑄有銘文五行二十二字記錄了作器者琱生爲其父鑄造器物的有關情況在青銅器中屬於琱生所鑄之器還有五年琱生簋六年琱生簋原稱召伯虎簋等器琱生是周公之後琱即周氏的周存世青銅器中還有一件周生豆在它的銘文中字不從王一般認爲琱生和周生是同一人爲同一字相關的銅器還有琱我父簋其銘文中的琱我父當即琱生也就是周生曾在其它青銅器的銘文中發現宰琱生字樣,說明周公的後代仍是周王朝的重臣已經坐到了 這樣的高位周生組器的發現對我們研究西周世族提供了珍貴的資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