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_12_섬서(陝西)1_섬서박물관32_기본진열6
# 채읍과 제후국1
- # 강력하게 전국의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서주는 봉건제도를 실행하여 많은 제후에게 봉호를 주어 왕실의 번방을 지키게 하였다. 도성 부근의 왕기(王畿:수도권)와 기주(岐周) 지역은 많은 공경대부에게 채읍을 주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주(周), 소(召), 필(畢), 성(成), 정(鄭), 서괵(西虢), 산(散), 미(弭), 예(芮), 미(微) 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섬서 경내에 또 약간의 이성 국족이 있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녈(夨), 어(𢐗), 두(杜), 포(褒) 등이다.
◆ 11. 오사위 정(五祀衛鼎)
- 서주
- 1975년 보계시 기산현 동가촌 동기교장 출토 출토
- 오사위 정(五祀衛鼎)은 중국 국보급 유물로 구조는 단순하다. 서주 중기 귀족 구위(裘衛)가 만든 솥이다. 내벽에는 19행 으로 모두 207자의 명문이 주조되어 있다. 주제는 서주 중기 토지 교역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대략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주 공왕(共王) 5년 정월 구위(裘衛)가 이웃 나라의 임금과 토지를 교환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이에 정백(井伯)과 백읍보(伯邑父) 등에게 집권대신에게 보고하였다. 자문을 거친 후 임금이 토지의 가치가 상당하다고 생각하여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맹세를 했다. 집권대신이 바로 삼사(三司) 등의 관원에게 명령하여 실질적인 조사와 경계의 확정과 아울러 수속을 처리하게 하였다.” 명문의 설명은 공왕 때 일부의 토지를 실제로 사유화와 교역을 논하였다. 단, 교역할 때 왕조 중신들의 통과와 아울러 계약서를 쓰고 수속을 처리 등이 필요했다. 서주 중기사회의 경제와 토지제도의 연구에 있어 중요한 가치가 있다.
<바이두>
# <명문> 위키
隹正月初吉庚戌,衛以邦君厲告於丼白、白邑父、定白、黥白、白俗父,曰厲曰:“餘執龏王恤工,於卲大室東逆營二川。”曰:“餘舍女田五田。”正乃訊厲曰:“女賈田不?”厲乃許,曰:“餘審賈田五田。” 丼白、白邑父、定白、黥白、白俗父乃顜。吏厲誓。乃令參有司:司土邑人越、司馬婚人邦、司工陲(隨)(附)矩、內史友寺芻,帥履裘衛厲田亖田。乃舍宇於氒邑:氒逆強眔厲田、氒東強眔散田,氒南強眔散田,眔政父田,氒西強眔厲田。邦君厲眔付裘衛田:厲吊子夙、厲有司申季、慶癸、燹表、荊人敢、丼人偈屖。衛小子者逆其卿剩。衛用乍朕文考寶鼎。衛其萬年永寶用。隹王五祀。
◆ 12. 백동음호(伯冬+戈飮壺)
- 서주
- 보계시(寶鷄市) 부풍현(扶風縣) 장백(庄白) 출토
◆ 13. 사속각(史速角)
- 서주
- 보계시(寶鷄市) 기산현(岐山縣) 하가촌(賀家村) 출토
<陝西曆史博物館>
西周,高21.5厘米,兩尾間距離17厘米,重量1.25千克。1966年寶雞市岐山縣何家村出土,現藏於陝西曆史博物館。
角是一種飲酒器,兩端均爲“尾”,沒有流。形制像“爵”,但,最大的區別是,爵有“流”,有“柱”,而“角”沒有“流”也沒有“柱”。角,讀作“決”,但器形很像是一對尖尖的牛角。根據出土文物的銘文來看,角和爵最初都曾被叫做“爵”。而自宋代開始,金石學家將這種兩端均爲尖“尾”的器物,稱爲“角”。除口沿處的區別,其餘部位角與爵沒有明顯區別,均爲深腹圜底,三個外撇的錐狀足。角同爵的用途一樣,都是飲酒器。大小、重量、器形,方便單手抓握。喝酒不是從兩個尖尾處喝,而是從中間——否則酒在流進口中之前,酒從尾邊沿流光了。
這件史速角,兩端尖尾高高翹起,真的很像牛的一對尖角,曲線優美,造型霸氣。有一個與器身口沿曲線嚴絲合縫的器蓋。束頸鼓腹,圜底,三個錐狀足,足尖外撇。器身有一獸首鋬。器蓋有一半環形鈕。蓋、身均施鳥紋,頸部爲蕉葉紋。器身、器蓋鑄有相同銘文:“史速做寶尊彝”,器物主人名爲“史速”。
◆ 14. 차정(此鼎)
- 서주
- 보계시(寶鷄市) 기산현(岐山縣) 동가촌(董家村) 출토
◆ 15. 차궤(此簋)
- 서주
- 보계시(寶鷄市) 기산현(岐山縣) 동가촌(董家村) 출토
◆ 16. 조생력(琱生鬲)
- 서주 중기
- 보계시(寶鷄市) 진창구(陳倉區) 고천촌(高泉村) 출토
<陝西曆史博物館>
通高25.5厘米,口徑25厘米,腹深12.4厘米,重7.62千克,1949年前扶風縣北岐山一帶出土
此器侈口束頸,低體淺腹,襠部近平,三實足,足的下端呈粗柱狀,口緣上有一對半環狀立耳,頸部飾目雷紋。三足相應的腹部有扉棱,扉棱兩側飾兩兩相背的花冠龍紋,以雲雷紋填地。足根部有弦紋三道。此器是西周中期新出現的一種造型較大的寬體平襠式鬲的代表。
琱生鬲器腹裝飾的龍紋極具特色,形狀呈“∽”形,仿照大鳥紋,垂冠回首,似鳥非鳥,沒有腹足。花冠是龍角委曲迤邐,由兩側下垂而形成的。這種龍紋是西周中期出現的一種新的形式,是隨著大鳥紋的興盛而出現的。
器腹內壁鑄有銘文五行二十二字,記錄了作器者琱生爲其父鑄造器物的有關情況。在青銅器中,屬於琱生所鑄之器還有五年琱生簋、六年琱生簋(原稱召伯虎簋)等器。琱生是周公之後,琱即“周氏”的周。存世青銅器中還有一件周生豆,在它的銘文中“周”字不從王。一般認爲,琱生和周生是同一人,“琱”和“周”爲同一字。相關的銅器還有琱我父簋,其銘文中的“琱我父”當即琱生,也就是周生。曾在其它青銅器的銘文中發現“宰琱生”字樣,說明周公的後代仍是周王朝的重臣,已經坐到了 “宰”這樣的高位。周生組器的發現對我們研究西周世族提供了珍貴的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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