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1_나라(奈良)24_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2
- 나라국립박물관 신관에 있던 유물들 중에 춘일대사 소장이 많았다.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한다. 동선이 썩 순조롭지 않다.
- 매표소 오른쪽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정석이다.
#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다.
# 이 건물이 가장 화려했는데, 여기만 촬영금지이다.
# 사찰관란료 500엔.
# 이 작은 건물도 신사란다. 이름도 생소한 신신신사(辛榊神社)와 천신신사(靑榊神社)이다.
# 여기가 바로 춘일대신사 어신(御神)이다.
- 中門과 동어랑(東御廊) 서쪽 북쪽 어랑이 중요문화제이다.
# 관람순서
- 오른쪽으로 갔다서 다시 한 바퀴 돌고 나온다.
# 회랑의 금등
# 어개산 부운봉 참배소는 여기서 좌회전해서 직진이다.
# 왼쪽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저 표지판을 보며 직진해야 어개산 부운봉 참배소가 나온다.
#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서 오른쪽 문으로 들어간다.
# 계창원(桂昌院) 봉납 등롱
- 이 桂昌院이 とくがわつなよし [徳川綱吉]의 생모이다.
# 등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 왼쪽:うきたひでいえ우키다 희데이에 [우희다수가宇喜多秀家] 安土桃山 시대의 무장이다.
노부나가 사후에도 도요토미의 총애를 받아 유시(猶子)의 연을 맺고, 1586년에는 히데요시의 양녀 고히메(豪姫, 마에다 도시이에의 딸)를 정실로 맡는다. 어린 나이임에도 히데요시의 신임이 지극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에다 도시이에, 모리 데루모토,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등과 함께 고다이로에도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총대장으로 참전하여 벽제관 전투에서 승리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 그러나 행주대첩에서는 권율에 맞서 싸워 대패하였다. 우키타 히데이에는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부하 병사들이 우키타 히데이에를 업고 도망쳐서 겨우 살아남았다. 《간양록》에는 임진왜란 때 히데이에가 능성(綾城)ㆍ화순(和順)을 치고 한양의 남별궁까지 들어온 일이 있으며,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약탈하는 일을 엄하게 금하면서도 조선 사람들을 많이 포로로 잡아갔고 또한 정유재란 때에는 실책이 많아서 휘하 군졸들의 신망을 잃었다고 적었다. <위키백과 요약>
오른쪽: なおえかねつぐ나오에 가네쓰구 [직강겸속直江兼続] 봉납 조등롱. 直江兼続은 安土桃山あづちももやま 시대의 무장이다.
1588년 10월 7일에는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도요토미 성씨를 하사받아, 도요토미 가네쓰구로 이름을 고침과 동시에 야마시로노카미 자리를 하사받았다. 그 후, 1589년의 사도 정벌에 가게카쓰를 종군하였고, 그 공으로 평정 후의 사도를 지배하도록 명을 받았다. 1590년의 오다와라 정벌에서도 가게카쓰를 수행하여 마쓰야마 성을 수비하고 있던 야마다 나오야스 휘하의 가네코 이에모토, 난바다 노리쓰구, 와카바야시 씨 등의 항복을 받아내고, 선봉으로써 하치오지 성을 공격하는 등 간토의 여러 성을 공략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에서는 가게카쓰를 따라 참전하여 웅천(熊川)에 왜성을 축성하였다. <위키백과 요약>
# とうどうたかとら도우도 다카도라[藤堂高虎] 安土桃山あづちももやま ‧ 江戸えど 전기의 무장이다.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전기에 활약한 다이묘이다. 축성술이 뛰어나 우와지마성, 이마바리성, 사사야마성, 쓰성, 이가 우에노성, 제제성, 순천왜성 등을 축성했다. 다카토라의 축성은 석벽을 높게 쌓는 것과 해자의 설계에 특징이 있다.
우리에게는 이 사람을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덴쇼 19년(1591년) 히데나가가 죽자, 그의 조카 하시바 히데쓰구를 주군으로 모신다. 히데쓰구의 대리로 다음 해인 분로쿠 원년 임진왜란 때 군을 이끌고 출정한다. 수군 9000여 명을 이끌고 참전하였으나,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에게 여러 차례 패전하였다. 일본 수군의 첫 패배였던 옥포 해전 당시 지휘관이기도 했다. 분로쿠 4년(1595년) 히데쓰구가 처형당하자 고야산으로 출가한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소환에 응해 환속한다. 5만 석을 가증받아 이요 사카지마(현재 우와지마시) 7만 석 다이묘로 승진했다. 이때 히데요시로부터 니혼마루라는 군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게이초 2년(1597년)부터 정유재란때 수군을 이끌고 참가한다. 조선 수군의 장수 원균이 이끄는 수군을 칠천량 해전에서 섬멸시켰지만, 명량 해전에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위된 이순신에게 대패하였다. 그리고 귀국 후 1만 석이 가증되어 8만 석의 다이묘가 된다. 그리고 거성이었던 사카지마 마루토키 성을 대규모로 개축한다. <위키백과 요약>
#とくがわつなよし도쿠가와 쓰나요시徳川 綱吉 寄進燈籠
생모는 이에미쓰의 측실 오타마노가타(お玉の方, 후일의 게이쇼인(桂昌院)이다.
동물의 생명을 중시하는 살생금지령을 발표해 많은 빈축을 샀으며 특히 개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누쿠보(犬公方: 개 쇼군)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 춘일대사 대왕 삼나무
1309에 그린 그림에 묘사되어 있다.
'일본(にっぽん)Japan > 나라(奈良)'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_1_나라(奈良)26_가스가 타이샤(春日大社)4 (0) | 2023.02.20 |
---|---|
2023_1_나라(奈良)25_가스가 타이샤(春日大社)3 (0) | 2023.02.20 |
2023_1_나라(奈良)23_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1 (0) | 2023.02.20 |
2023_1_나라(奈良)21_이카루가(斑鳩)10_호키지(法起寺) (0) | 2023.02.19 |
2023_1_나라(奈良)20_이카루가(斑鳩)9_호린지(法輪寺) (0) | 2023.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