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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시와 꽃

시와 꽃_장미(薔薇)_매괴(玫瑰)_간략본

by isanjo 2025. 9. 18.

# 장미(薔薇)_매괴(玫瑰)_간략본

 

장미(薔薇)는 장미과 장미속(Rosa)에 속하는 관목으로 기원전 3000년경부터 중국과 중동지역에서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장미는 동양의 많은 야생 장미속 식물 중 꽃이 중국산 야생장미가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산 야생장미 사이에 잡종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약간의 품종이 20세기 초에 일본을 거쳐 유입되었고, 1950년 이후에 많은 품종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장미는 북반구의 한대, 아한대, 온대, 아열대에 걸쳐 자란다. 특히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있어 관상용이나 향료용으로 키운다. 요즈음 건조하여 꽃차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색상도 다양해서 빨강부터 하양, 노랑, 분홍, 파랑 등 다양한 색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들장미라고 부르는 찔레가 바로 야생장미이다. 특히 남쪽의 찔레는 꽃잎이 크고 색이 연분홍색에 가깝다. 대중가요의 가사 중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이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남쪽에서 자생하는 찔레가 북쪽보다 더 붉고 꽃잎도 크다. 현재는 거제도에서 발견되어 거제왕찔레로 알려진 하얀찔레꽃도 있다. 󰡔의림촬요󰡕에는 입이 짓무르거나 혀가 터진 데는 찔레 뿌리[野薔薇根]를 달인 물로 늘 양치하면 치료된다고 하였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에서 처방하는 육물산(六物散)의 재료도 말린 장미 뿌리〔乾薔薇根〕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장미는 자라는 모양에 따라 덩굴장미[줄장미]와 나무장미로 나뉜다. 요즈음 하천에 터널 형태의 철제 구조물을 만들에 덩굴장미를 심고, 화단에는 키가 작은 나무 장미와 꽃이 작은 미니장미도 많이 심는다. 예전에는 장미를 ‘5월의 여왕이라고 부르고 5월을장미의 계절이라고 불렀으나, 사실 요즈음 한국 날씨에서는 영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실외에도 1년 내내 장미꽃을 감상할 수 있다.

장미의 옛말인 16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쟝미의 제1음절은 치음이었던 이 구개음으로 바뀌어의 발음이 구별되지 않게 되면서장미가 되었는데, 장미 19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진다.

 



조선시대 효종 연간에 전동흘(全東屹)이 평안도 철산 부사로 지내면서 계모의 흉계로 원통하게 죽은 사건을 처리한 내용을 소설로 쓴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언니의 이름인장화가 바로薔花즉 장미꽃이다. 여고생의 불량 서클 이름 중에흑장미파가 있었던 것도 장미가 여성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꽃이라는 생각에서 지어진 것이다. 또 사람이 겉으로는 좋고 훌륭하여 보여도 남을 해롭게 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어 상대편이 해를 입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장미에 가시가 있다.’라고 한다.

조선 시대 태종이 초여름에 예문관 관원들에게 장미를 상으로 내리고 잔치를 베풀어 주던 것을장미연(薔薇宴)’이라고 불렀으며, 이때 모여서 술을 마시는 것을장미음(薔薇飮)’이라고 한다. 이후 3년마다 한 번씩 열렸다. 

 

장미는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장미와 동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 나오는 설명으로 볼 때 현재의 장미와 거의 같은 형태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미는 장미과인 해당화와도 꽃이 비슷하고 한자 이름도 장미(薔薇)로 동일하다.

󰡔삼국사기󰡕에도 장미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모란과 함께 삼국시대에 이미 중국을 통하여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열전 「설총」조에 홀연히 한 가인(佳人)이 붉은 얼굴과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간들간들 걸어와 말했다. “첩은 눈같이 흰 모래밭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마주보며 유유자적하옵는데,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왕의 훌륭하신 덕망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는데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라고 했다. 내용으로 봐서는 해당화라고 생각되나 이름은 장미라고 했다. 키우고 있던 장미꽃을 아름다운 여인의 대표로 나타낸 것이다.

󰡔고려사󰡕에는 「한림별곡」의 가사를 소개하면서황색 장미’ ‘자색 장미라는 내용이 보이며, 조선시대 강희안(姜希顏)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장미를 사계화(四季花)란 이름으로 소개하며, 장미는 자태가 아리땁고 아담하다고 평하였으며, 가우(佳友)라 부르면서 화목 9등품제 중 5등에 놓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장미에 대한 내용이 보인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봄날에 장미꽃을 따다가 떡을 만들어 기름에 지져 먹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가 봄에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장미(薔薇)를 해당(海棠)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사람들이 자장미(紫薔薇)가 바로 해당(海棠)이라고 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 <넝쿨장미>

󰡔사가시집󰡕 4권 시류(詩類) 「영물(詠物) <장미(薔薇)>에는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휘어진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홍일휴(洪日休)에게 차운한 시와 이원(李原)󰡔용헌집(容軒集)󰡕에는 비를 맞은 장미꽃이 시렁에 만발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성삼문의 󰡔성근보선생집(成謹甫先生集)󰡕󰡔미산집(眉山集)󰡕에는 울타리에 만개한 넝쿨장미를 꺾었던 추억이 묘사되어 있다. 이수광의 󰡔지봉집󰡕에는 붉은 장미꽃이 시렁에 얽혀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서거정의 「사가시집」, 정종로(鄭魯)󰡔입재집(立齋集)󰡕, 성현(成俔)󰡔허백당시집󰡕, 󰡔낙전당집󰡕, 이응희(李應禧의 󰡔옥담시집(玉潭詩集)󰡕에는 노란색 장미를 노래한 시가 있고, 󰡔익재집󰡕에는 노란색 장미꽃과 붉은색 장미꽃이 함께 피어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허균의 󰡔성소부부고󰡕에는 서울 사람들은 여름에 장미전(薔薇煎)을 먹은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동국여지지󰡕 1권 경도(京都) 개성부〔開城府〕 「고적(古蹟)」의사루(紗樓)’ 숙종(肅宗)이 일찍이 이 누각에 행차하여 〈중광전옥매괴화(重光殿玉玫瑰花)〉란 시를 읊고 문장하는 신하들을 불러서 화답시를 지어 올리게 하였다. 예종도 이 누각에 행차하여 문신을 불러서 시각을 정하고 〈목단(牧丹)〉 시를 짓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