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감영 전주성 1
<2025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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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영은 처음 가보왔는데 진짜 면적이 상상 이상이었다. 물론 현재는 일부만 복원되었다.


# 국가군저개고호남 약무호남시무국가(國家軍儲皆靠湖南 若無湖南是無國家)
- 충무공전서 하권에 실려 있다. 후학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이 삼가 쓰다.
* 이 내용은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卷11 附錄3 忠愍祠記[領議政李恒福]에 수록되어 있다.


◆ 가석(嘉石)과 폐석(肺石)
- 가석은 섬돌 아래 왼쪽(동편)에 설치하여 죄인들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표석이고, 폐석은 오른쪽(서편)에 설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억울함을 하소연 하게 하는 신문고 같은 표석이다. 가석과 폐석은 감영의 사법적 기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감사로 하여금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여 깨우치게 하고 재판을 공정히 하여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을 다루는 형조의 섬돌 아래에도 가석과 폐석이 있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가석은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로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이를 보고 뉘우치고, 폐석은 붉은 돌로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이 돌 옆에 서 있으면 억울한 일을 해결해 준다고 하였다.


◆ 선화당(宣化堂)


# 용호도(龍虎圖)

◆ 관풍각(觀風閣)
- 관풍각은 선화당에 이어 감사가 정무를 처리하는 제2의 정청이며, 감사가 쉬기도 하고 연회의 장소로도 사용했다. 관풍각 이라는 이름은 감사의 직무인 ㆍ풍속과 민정을 살핀다는 '관풍찰속觀風察俗'에서 유래하였다. 선화당과 관풍각 당호는 감사의 직무를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 관풍각 1층의 전시물




# 선정비(善政碑)
- 선정비는 선정을 베푼 관리들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그렇지만 조선말에는 선정비들이 으레 세워졌고 억지로 세워지기도 하였다. 조선말에는 전라감영 건너편에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가 다가공원쪽으로 옮겨졌으며, 2020년 감영을 복원하면서 감영 경내로 이전하였다. 관찰사 18기, 판관 5기, 중영장ㆍ별장ㆍ영의정ㆍ암행어사 각 1기로 총 27기의 선정비가 있다.
* 현재는 24기만 전시되어 있다.
◆ 판관이후창중 영세불망(判官李侯昌中永世不忘) 무술년 3월 일.
- 글씨가 가장 선명한 비석이다.

◆ 관찰사남공병철 영세불망(觀察使南公秉哲永世不忘) 감골명폐 어천만년(感骨銘肺於千萬年)


◆ 관찰사이공서구 영세불망비(觀察使李公書九永世不忘碑)

◆ 관찰사김공흥근 영세불망비(觀察使金公興根 永世不忘碑)

◆ 청백선정비(淸白善政碑)

◆ 관찰사이공호준 영세불망비(觀察使李公鎬俊 永世不忘碑)

◆ 판관이후돈상 영세불망비(判官李侯敦相 永世不忘碑)

◆ 중영장겸초포사이공근석청덕선정비(中營將兼討捕使李公根奭淸德善政碑)
복혜기흡 적훈차숭(洑惠旣洽 糴勳且崇)
발란해분 호심경충(撥亂解紛 虛心傾衷)
칭물평시 로겸유종(稱物平施 勞謙有終)

◆ 영의정김공좌근송덕(領議政金公頌德碑)

# 선정비 동영상
◆ 연신당(燕申堂)
- 연신당은 전라감사의 처소이다. 1688년숙종14에 전라감사 이유가 창건하였다. 연신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술이편」에 ‘공자께서 집에서 쉬고 계실 때는, 마음이 온화하고 너그럽고 즐거우신 듯 보였다[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에서 따온 것이다. 감사가 편히 쉬는 처소임을 의미한다. 참고로 경상감영은 징청각(澄清閣)이다.









# 전라감영 회화나무[繪畵木]
회화나무는 흔히 '선비나무', '학자수'라고 부른다. 나무 가지가 선비의 기상처럼 거침없이 자유롭게 뻗어나기 때문이다. 이 회화나무는 수명이 150 여년이 된 나무로 현존하는 전라감영의 유일한 흔적이다. 구 도청사 건물 철거 전에 회화나무가 의회동 건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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