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경기전
- 경기전 입구에 2층으로된 목조 여행자라운지 건물이 있다. 1층에 화장실이 있다
<2025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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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경기전 하마비 / 전북 유형문화재
하마비는 누구든지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야 한다고 적혀 있는 비석으로 조선시대에 궁궐, 종묘, 문묘, 향교 등의 문앞에 세웠다.
경기전 하마비는 광해군 6년(1614)에 경기전을 고쳐 지을 때 처음 세웠고, 철종 7년(1856)에 고쳐서 다시 세웠다. 비석의 앞면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母得入' 이라고 새겨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 라고 적혀 있다.
*현재는 비석이 깨져서 '雜人母得入'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마비는 일반적으로 사각의 받침돌과 비석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경기전 하마비는 사자(혹은 해치) 암수 두 마리가 직사각형 받침돌에 세운 비석 몸체를 등으로 떠받치고 있는 보기 드문 형태이며, 말에서 내리도록 안내하는 기능뿐 아니라 경기전을 수호하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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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경기전
경기전은 전주에 건립한 태조 진전*으로 조선 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이다. 현재 남아 있는 태조 진전으로는 경기전이 유일하다.
태종 10년(1410)에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대대로 살았던 전주에 태조어진을 모셨으며, 세종 24년(1442)에 전주의 태조 진전을 경기전이라 이름하였다. '경기'는 조선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라는 의미이다. 경기전은 선조 30년 1597에 일어난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사라졌는데, 광해군 6년(1614)에 이를 다시 건립하였다. 숙종 2년(1676)에는 옛 전주사고* 자리에 별전을 세웠다. 별전은 유사시 태조어진을 임시로 모시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부속 건물과 별전을 철거하였는데, 1991년에 별전이 있던 자리에 전주사고를, 2004년에는 부속 건물을 복원하였다.
경기전 진전은 중앙에 태조어진을 모신 정전이 있고, 진전 동편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있으며, 진전 서편에는 태조어진을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부속 건물들이 있다. 경기전 북편으로는 조선 왕실의 시조 사당 조경묘가 있고, 그 옆으로 태조어진의 역사를 담은 어진박물관이 있다.
*진전(眞殿): 어진을 모신 처소.
*어진(御眞): 왕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전주사고(全州史庫):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국가 중요 서적을 보관하는 곳.
◆ 경기전 홍살문

# 조선 태조 어진 / 국보
조선 태조 어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이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살았던 조선 왕실의 본향이다. 조선은 건국 후 태종 10년(1410)에 조선 왕실이 일어난 전주에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그 후 경기전에 모신 태조 어진이 낡아서, 고종 9년(1872)에 영희전*의 태조 어진을 모사*하여 다시 모셨다.
태조 어진은 전주를 비롯해 태조가 태어난 영흥, 고구려의 왕도 평양, 신라의 왕도 경주, 고려의 왕도 개경 등 지방 5곳에 모셨으나 현재는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어진 속의 태조 이성계는 평상시 집무할 때 입는 청색의 곤룡포에 모자인 익선관을 쓰고 검은 가죽신을 신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위엄과 권위가 돋보이게 그려져 있다. 가슴과 어깨에는 왕을 상징하는 다섯 발톱을 가진 용이 그려져 있으며 비단의 뒷면에 색을 칠하여 색감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으로 그려 색감이 은은하고 깊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태조 어진은 경기전의 태조 어진을 옮겨 그린 한양 영희전의 어진을 고종 9년에 다시 옮겨 그린 것으로, 조선 초기의 어진 제작 기법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조선 태조 어진은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어진 박물관에 모셔져 있으며, 경기전 정전에 있는 것은 1999년에 원본을 그대로 옮겨 그린 복제본이다.
*영희전(永禧殿): 조선시대 태조·세조·원종·숙종·영조·순조의 어진을 모셨던 한양의 전각.
*모사(模寫): 어떤 그림을 본보기로 그와 똑같이 본을 떠서 그림.







# 경기전 부속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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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덕헌(慶德軒)
이 곳은 경기전을 지키는 수문장이 일을 맡아보는 곳이다. 경기전의(慶基殿儀)*에 수문장청*을 갑자년 신설하여 을축년 준공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경덕헌은 수문장청에 붙여진 이름이다.
* 경기전의([慶基殿儀): 경기전의 규모와 연혁, 제향(祭享: 제사)를 맡은 관원의 역할과 각종 제향 절차 등을 한자 등으로 기록한 책.
*수문장청: 조선시대 궁궐문을 지키던 수문장들의 소속 관청.




◆ 수복청(守僕廳)
이 곳은 경기전의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낮은 직급의 벼슬이지들이 있던 곳이다. 살림집의 안채와 같은 형식이지만 주로 큰 일이 있을 때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정 기간 임시로 거처하는 것이다. 세조실록 세조8년 8월 6일의 기사에 의하면 전주 경기전에 수복의 수가 관노(종) 1명, 양민(일반 백성) 18명이 교대로 지켰다고 한다. 이들 미루어 볼 때 수복창에는 항상 몇 명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마청(馬廳)
경기전의 의식이나 관청, 관리의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청을 두었다. 특히 조정(朝廷)*에서에서 참례(參禮)*하기 위해 내려온 관리의 말을 두는 곳이다.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된 고지도에는 마청의 그림이 없으며 이후 제작된 문화재연구소 소장 고지도와 경기전(慶基殿儀)에 마청이 나타난다.
* 조정(朝廷):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정치를 의논하고 집행하는 곳.
* 참례(參禮): 예식에 참여함.

◆ 서재(西齋)
이 곳은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어진 집으로 재각(齋閣)*이라고도 하며 제향(祭享: 제사)을 맡은 관원들의 재계의식(齋戒儀拭)을 하기 위한 곳이다. 재계의식(齋戒儀拭)은 제사에 임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신을 맞을 준비를 하는 의식이다.
* 재각(齋閣): 무덤이나 사당의 옆에 제사의 소용으로 지은 집.

◆ 동재(東齋)
이 곳은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어진 집으로 재각이라고 하며 제향[제사]을 맡은 관원들의 재계의식(齋戒儀拭)을 하기 위한곳이다. 재계의식은 제사에 임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실을 맞을 준비를 하는 의식이다.



◆ 제기고(祭器庫)
제향(祭享:제사) 때 사용하는 각종 그릇, 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제사 때 사용 하는 그릇은 일반 그릇과 달리 정갈하고 성스러운 물건이어서 별도의 건물에 보관하여야 하는 것이다. 대개 제기고와 같은 건물은 바닥을 마루바닥으로 만든다. 마루바닥은 지면과 분리되어 있어 습기가 차지 않아 기물을 보관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 우물

◆ 용실(舂室) 방아간
이 곳은 제사에 사용할 음식을 만드는 방앗간이다. 디딜방아와 절구를 두고 경기전 제례에 사용되는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경건하고 신성한 장소로 여기는 곳이다. 제사에 쓰는 여러 가지 재료의 준비를 위하여 조과소(造果所)나 전사청과 인접해 있어야 하며 주변에 불결한 시설이 없어야 한다.




◆ 전사청(典祀廳)
이 곳은 국가의 제사에 쓸 제수 준비와 제사상 차리는 일을 담당하는 전사관(典祀官)*이 사무를 행하면서 제사 준비를 하는 곳이다.
* 전사관(典祀官): 나라의 제사를 맡아보는 벼슬아치.


◆ 조병청(造餠廳) 떡공장
조병청은 떡이나 유밀과(油蜜菓)*, 다식(茶食)* 등의 제사 음식을 만들고 보관하는 장소 이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기록된 진전(真殿)의 찬실도(饌實圖)*에는 중박계(中朴桂)*, 붉은 산자, 흰 산자, 다식, 과일, 각색떡, 탕(湯) 등을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유밀과(油蜜菓): 튀겨서 꿀을 바른 약과와 비슷한 과자. 유과.
* 다식(茶食): 곡물 가루를 꿀에 반죽하여 판에 박아 만드는 과자.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가와 왕실, 왕과 신하와의 관계 등을 규정하는 제도를 도식으로 엮은 책.
* 찬실도(饌實圖): 제사음식을 차리는 방법을 그린 그림.
* 중박계(中朴桂): 작은 것은 소박계(小朴桂), 중간 것은 중박계(中朴桂), 큰 것은 대박계(大朴桂)라고 부름.

# 전주사고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춘추관과 예문관을 상설하고 사관을 두어 날마다 시정(時政)을 기록하였으며 한 임금이 전왕시대의 역사를 편찬하여 이를 실록이라 하고 특별히 설치한 사고에 봉안하여 왔었다.
조선왕조에서 실록을 편찬한 것은 1409년(태종9)부터 1413년(태종13)까지 4년간의 태조실록 15권을 편찬한 것이 처음이며 1426년(세종8)에 정종실록 6권을 편찬하고 1431(세종13) 태종실록 36권을 편찬한 후 태조· 정종·태종의 3조실록 각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의 춘추관과 1부는 충주사고에 봉안하였다. 그러나 2부는 실록만으로는 그 보존이 매우 걱정되므로 1445년(세종27)에 다시 2부를 더 등사하여 전주· 성주에 사고를 신설하고 각 1부씩 분장하였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때 춘추관·충주·성주의 3곳 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병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 등이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에 이안하여 사수하였기 때문이다. 전주사고에는 실록 784권 614책 47궤, 기타 전적이 64종 556책 15궤가 봉안되어 있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실록각은 소실되었는데 1991년 이를 복원하였으며,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실록각(實錄閣)
- 경기전 담 밖에 있다.


◆ 예종대왕 태실과 태실비
- 경기전 담 밖에 있다.






◆ 조경묘(肇慶廟)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조경肇慶은 '조선왕조 창업의 경사가 시작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경묘는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시조비 경주 김씨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조선 왕실의 시조 사당이다. 이한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이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가 강원도 삼척을 거쳐 함경도 의주로 옮겨갈 때까지 전주이씨가 대대로 살던 곳이다.
조경묘는 영조 47년(1771)에 경기전 북쪽에 세워, 영조가 세손(정조)에게 쓰게 한 전주이씨 시조 내외의 위패를 모셨다.
조경묘는 태조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신 경기전, 이한의 묘역인 조경단, 태조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가 살던 이목대와 함께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임을 상징하는 곳이다.
*위패位牌: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
# 현재는 문이 닫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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