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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박물관/국립전주박물관

전주박물관 미술공예 5 조선백자 1(2025)

by isanjo 2026. 1. 6.

# 전주박물관 미술공예 5 조선백자 1(2025)

 

# 조선 선비를 닮은 백자

백자는 조선의 기술력과 예술성을 두루 담아낸 도자기이다. 조선 초부터 왕릉 의례에 사용하는 도구를 비롯하여 접시, 항아리, 병 등의 생활 용기가 백자로 만들어져 조선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백자의 소박하면서도 깨끗한 기품은 성리학의 청렴하고 검소한 삶을 중요하게 여긴 가치와 꼭 들어맞았다. 그래서 희고 깨끗하며 단단한 조선의 백자는 당시 선비들이 선망하는 대상이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연적, 필통 등 각종 문구류와 제사 용기들이 만들어졌고, 민화가 유행하면서 백자에도 민화를 그려 넣었다.

 

◆ 술병? #S22

 

 

# 상형백자 象形白磁
- 조선시대 Joseon Dynasty

자연물의 형태를 본떠서 만든 백자이다. 고려청자에서 만들어진 상형청자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자연물의 형태를 편안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했습. 순백자보다는 청화백자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청화를 이용하면 어떤 부분적인 형태를 더욱 효과 있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소장품 번호 남산1650, 남산1651, 덕수1431, 덕수1571, 덕수1632, 신수4147

 

 

 

# 청화백자 靑畫白磁 Blue and White Porcelain

조선시대 Joseon Dynasty

순백의 바탕에 청화(靑畫)가 함유된 안료로 그림을 그려서 장식한 백자이다. 18세기에는 문인 취향의 무늬를 담백하게 표현한 청화백자가 제작되었고, 19세기에는 청화백자 안료의 색이 짙어지고 문양이 화려해지며 종류가 다양해졌다.

 

*소장품 정보
3. 백자 청화 접시(덕수6001, 덕수6002, 덕수6009)
4. 백자 청화 매죽문 항아리(덕수6004), 백자 청화 꽃무늬 작은 항아리(덕수6051), 백자 청화 복자문 항아리(덕수6104), 백자 청화 방패문 병(덕수7139)
6. 백자 청화 문갑무늬 항아리(덕수7222)

 

 

 

# 백자 白磁 White Porcelain

- 고려시대~조선시대
백자는 도자기 중 가장 단단하면서도 빛깔이 희고 깨끗하다. 고려백자는 형태, 장식 등이 고려청자와 거의 동일하며, 대부분 약간 옅은 녹색이 감도는 유백색을 띤다. 조선 초에 백자 제작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백자는 곧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가 되었다.

 

* 소장품 정보
1. (조선) 백자 항아리(동원296)
2. (고려) 백자 연꽃무늬 병(덕수598), 백자 꽃무늬 접시(덕수3834), 백자 합(덕수4991, 덕수6481)

 

◆ 송죽장강(松竹長彊)이 쓰여진 백자

 

 

 

백자 이수광 묘지명 白磁李晬光墓誌銘 Lee Sugwang’s Epitaph

- 조선 1633년, 김상헌 지음

묘지명은 죽은 이의 일생 중 중요한 사실을 기록한 글이다. 이수광(1563–1628)의 묘지명은 총 19개의 백자판에 이름과 자호, 세계世系, 약력, 장례와 묘, 자손 등을 정갈한 해서체로 빼곡하게 새겼다. 이수광은 광해 중전의 후손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지봉芝峰이다. 온화한 성품으로 40년간 내외직을 두루 맡았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나 국내외 문신들에게 존경받았다.

 

# 명기 明器 White Porcelain Miniature

- 조선시대 Joseon Dynasty

명기는 사람이 죽은 후의 생활을 위해 무덤에 넣는 껴묻거리[부장품]이다. 조선시대에는 15세기 전반부터 왕실을 중심으로 백자 명기를 무덤에 넣었고 성리학이 자리잡은 16세기부터는 전국적으로 명기를 매장했다. 전시된 접시형 명기는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반용리에서 출토되었다.

 


 제기 祭器  Utensils used in Ancestral Rites

- 조선시대 Joseon Dynasty

국가나 일반의 대·소연회나 제례 등에서도 백자를 사용했다. 제례는 조상을 받들어 추모하는 의식, 또는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을 드리는 의식이다. 제사에 사용하는 백자 향로, 접시, 발, 잔, 술병 등은 단순한 형태로 만들었으며 되도록 장식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