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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하남 정저우박물관

하남 정저우박물관|삼진으로 분열하다4(2024)

by isanjo 2026. 7. 8.

# 하남 정저우박물관|삼진으로 분열하다4(2024)

 

# 제3단원 여열삼진(餘烈三晉)4

 

# 삼가분진(三家分晉)

- 기원전 497년, 진(晉)나라에 범(范)씨와 중행(中行)씨의 난이 발생하여 두 가문이 축출되었습니다. 기원전 453년, 한(韓)·조(趙)·위(魏) 세 가문이 연합하여 지(智)씨를 공격해 멸망시켰습니다. 이로부터 진나라의 권력은 세 가문에 의해 독점되었고, 국군(나라의 임금)은 겨우 곡옥(曲沃)과 신강(新絳) 두 읍만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403년, 한·조·위 세 가문은 주나라 위열왕(威烈王)을 매수하여 진나라 국군과 마찬가지로 제후로 책봉되었습니다. 진나라 국군은 차례로 단씨(端氏), 둔류(屯留) 등의 지역으로 쫓겨났습니다. 기원전 376년, 진 정공(晉靜公)이 폐위되어 평민(庶人)이 되었고, 이로써 진나라는 소멸했습니다.

 

公元前497年,晉國爆發範、中行氏之亂,範與中行兩家被驅逐;公元前453年,韓、趙、魏三家聯合攻滅智氏,此後晉國權力被三家壟斷,國君只保有曲沃、新絳兩邑。公元前403年,韓、趙、魏通過賄賂周威烈王,與晉國國君一樣被立爲諸侯,晉國國君先後被遷徙至端氏、屯留等地。公元前376年,晉靜公被廢爲庶人,自此,晉國消亡。

 

# 조(趙)

서주(西周) 말년부터 이미 진(晉)나라 정치 무대에서 활약했던 조씨(趙氏) 가문은 춘추시대 말기에 이르러 한(韓)·위(魏) 두 가문과 함께 진나라를 공동으로 장악했습니다. "조씨는 명색이 진나라의 경(卿)이었으나, 실제로는 진나라의 권력을 독점하여 그 봉읍과 세력이 제후들과 맞먹었다"고 합니다. 조씨의 초기 식읍은 진양(晉陽)이었는데, 조간자(趙簡子) 시기에 이르러 그들의 군사 기지이자 정치적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한·조·위 세 가문이 진나라를 분할한 후, 진양은 새로 태어난 조나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조나라는 차례로 진양(현 산시성 타이위안), 형(현 허베이성 싱타이), 중모(현 하난성 허비, 일설에는 현 하난성 린저우)에 도읍을 정했다가, 최종적으로 한단(현 허베이성 한단)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조나라 건국 초기의 강역은 오늘날 산시성(山西省) 동북부·동남부 및 중부, 허베이성(河北省) 중남부, 산시성(陕西省) 동북부, 그리고 산둥성(山東省) 서쪽 모퉁이와 허난성(河南省) 북쪽 끝자락을 포함했습니다.

 

西周末年就在晉國政治舞台上活躍的趙氏家族,到春秋晚期,與韓、魏二氏共掌晉國。"趙名晉卿,實專晉權,奉邑侔於諸侯"。趙氏的早期食邑晉陽,在趙簡子時成爲其軍事基地和政治大本營。三家分晉後,晉陽成爲新生趙國的都城。

趙國先後建都晉陽(今山西太原)、邢(今河北邢台)、中牟(今河南鶴壁,一說今河南林州),最終定都邯鄲(今河北邯鄲)。趙國建立之初,疆域包括今山西省東北部、東南部和中部,河北省中南部,陝西省東北部,以及山東省西邊一角和河南省的北端。

 

◆ 반리문정(蟠螭紋鼎)

- 춘추시대 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금승촌(金勝村) 조씨묘 출토

- 산서박물원 소장

 

 

반리문정(蟠螭紋鼎)

- 춘추(春秋, 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 금성촌(金勝村) 조씨묘(趙氏墓) 출토(出土)

- 산서박물원(山西博物院) 소장

 

 

 

 

 

# 태원 조씨묘지(太原趙氏墓地)

- 태원(太原) 조씨묘지(趙氏墓地)는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 진양고성(晉陽古城) 북쪽의 금승촌(金勝村)에 위치(位置)하고 있으며, 총 1,000여 기(基)의 묘장(墓葬)이 발견되었다. 묘지의 연대는 춘추시대 말기부터 전국시대 초기에 이른다. 규모가 거대한 조경묘(趙卿墓)가 발견된 것 외에도, 춘추시대 말기의 칠정묘(七鼎墓) 4기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이 구역은 진(晉)나라 말기 조씨(趙氏) 종족의 묘지이자 조(趙)나라 초기 공묘(公墓)가 있던 곳으로 추측된다.

 

太原趙氏墓地位於山西省太原市晉陽古城以北的金勝村, 共發現墓葬1000多座, 墓地年代爲春秋晚期至戰國早期。除發現有規模巨大的趙卿墓外, 還發現有4座春秋晚期的七鼎墓, 推測這一區域應爲晉國晚期趙氏宗族墓地和趙國早期公墓所在。

 

◆ 반리문정(蟠螭紋鼎)

- 춘추시대 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금승촌(金勝村) 조씨묘 출토

- 산서박물원 소장

 

# 조경묘(趙卿墓)1

- 조경묘(趙卿墓)는 춘추시대 말기의 대형 적석적탄묘(積石積炭墓)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부장품이 가장 풍부하고 청동 예기의 규격이 가장 높은 진(晉)나라 고급 귀족의 무덤이다. 총 3,421점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동북쪽에서는 차마갱(車馬坑)이 발견되었는데, 순장된 말이 46필, 수레가 16대였다. 무덤의 규모, 형태와 구조, 부장품 및 문헌 기록에 따르면, 이 무덤의 주인 신분은 조간자(趙簡子)와 조양자(趙襄子) 중 한 명일 것이다.

 

趙卿墓是一座春秋晚期大型的積石積炭墓, 也是迄今爲止所發現的隨葬品最豐富、青銅禮器規格最高的晉國高級貴族墓葬, 共出土隨葬品3421件。墓葬東北側發現有車馬坑, 有殉馬46匹、車16輛。根據墓葬規模、形制、隨葬品及文獻記載, 該墓的墓主人身份應爲趙簡子、趙襄子其中之一。

 

◆ 동감(銅鑑)

- 춘추시대 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금승촌(金勝村) 조씨묘 출토

- 산서박물원 소장

 

 

 

 

 

◆ 1. 누공평산형격(鏤空平鏟形格)

- 춘추시대 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금승촌(金勝村) 조씨묘 출토

- 산서박물원 소장

 

 

◆ 2. 착금와호형식(錯金臥虎形飾)

- 춘추시대 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금승촌(金勝村) 조씨묘 출토

- 산서박물원 소장

 

◆ 착금대구(錯金帶鉤)

- 춘추시대 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금승촌(金勝村) 조씨묘 출토

- 산서박물원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