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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

2016_베이징 국가박물관 지층2_상(商)시기10

by isanjo 2020. 4. 16.

2016_베이징 국가박물관 지층2_상(商)시기10

 

 

◆ 4 마리 청동 네모 준[四羊靑銅方尊]

 - 상 후기

- 1938년 호남 영향(寧鄕) 황재진 월산포전이륜(黃材鎭月山鋪轉耳侖) 출토.

- 이 방준은 크고 웅장하며 견부(肩部), 복부(腹部)와 족부(足部)가 한 몸이 되게 만들고 기교하게 설치한 4마리 뿔이 말린 양이 장중하게 돌출한 생동감은 매우 독창적이다.

준의 모서리에 견릉(扉棱)을 두어 주조의 흔적을 가리고 기물의 모서리의 단조로움을 변화시켜 조형미를 보강하여 혼연일체가 되게 하였다. 이 기물은 제작하는 과정에서 선각(線刻), 부조(浮彫), 원조(圓彫)기법을 모두 사용하여 기물과 장식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주조공예의 정수라고 하겠다.

 

 

 

*참고

四羊青銅方尊은 중국에 남아 있는 商代 青銅方尊 중 가장 큰 것이다. 각 변의 길이 52.4cm, 높이 58.3cm, 무게 34.5Kg이다. 긴 목에 높고 네모난 발이 있다.
頸部는 높이 솟아 있고 4면의 위에는 파초 잎 무늬, 삼각夔 무늬와 獸面 무늬가 있다. 尊의 中部는 기물의 중심으로 尊의 네 모서리에 각기 양 한 마리씩 조소되어 있다.
肩部의 네 모서리는 뿔이 말린 양머리이다. 양 머리와 양 목이 기물 외부로 튀어나왔으며, 양의 몸과 대퇴부는 복부 및 네모난 발에 붙어 있다. 또 方尊의 어깨에는 뱀의 몸이 부조되어 있고 발톱이 있는 용무늬가 있다. 尊의 4면 정 중앙은 두 마리 양이 만나는 곳에 각각 두 개의 뿔이 달린 용의 머리가 기물 밖으로 나와 각 면의 중간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 <中國國家博物館>

- 기물은 전체적인 외관이 사각형을 이루고 큰 입이 밖으로 벌여져 있으며 복부가 불룩하고 네모나며 고리형 발을 가지고 있다. 네모 존의 입 부분과 목 부분은 호형을 이루고 있고 존의 전체 목부분은 정교한 파초잎 무늬와 기룡 무늬로 장식하였으며, 어깨 부위의 네 변에 각각 반룡 한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 뿔이 2개인 용머리를 네모 존의 표면으로 내밀고 있다. 중간의 양 모양 장식 조각은 모든 작품가운데서 가장 이채로운 부분으로서 4가지 모양이 웅위롭고 특이하다. 커다랗고 휜 양 뿔을 내민 양머리의 모양은 용기의 사방 가각에 배치되었고 약간 벌린 입, 부드러운 눈빛, 자유로운 모습은 양의 온순하고 조용한 특징을 생동하게 그려내었다. 고대에서 “양”은 “상(祥)”의 발음과 비슷하며 상서로움을 의미한다. 때문에 고대 선조들은 늘 양의 모양을 예술적으로 그려내어 용기와 물품의 장식에 사용하였다. 양은 등과 흉부에 비늘 무늬가 그려져 있고 다리에 봉황새 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고리형 발에는 기룡 무늬와, 구름 및 릉형 소용돌이 무늬가 장식되었다. 무늬는 윤곽이 힘이 있고 매끄럽다. 존은 입구가 아주 크지만 존의 4개 모서리의 양 모양 장식때문에 중심을 잃지 않은 힘있는 모습으로 존의 중량을 이겨내고 있어 머리쪽이 무겁고 발쪽이 가벼운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작성자: 장위)

 

# <中國國家博物館>

四羊铜尊

上口最大径44.4厘米、高58.6厘米、重34.6千克
1938年湖南省宁乡市出土

此器采用了圆雕与浮雕相结合的装饰手法,将四羊与器身巧妙地结合为一体,使原本造型死板的器物,变得十分生动,将器用与动物造型有机地结合成一体,并擅于把握平面纹饰与立体雕塑之间的处理,达到了技术与艺术的完美结合。出土器物的湖南洞庭湖周围地区在商代是三苗活动区,在此地发现造型与中原近似的铜尊,表明商文化的影响已远及长江以南的地区。 

 

 

 

 

 

 

 

코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뿔과 함께 살아 있는듯 맑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다.

 

 

 

 

 

 

 

 

 龍虎 무늬 청동 술잔_준[龍虎紋靑銅尊]

- 상 후기

- 1957년 안휘 부남(阜南) 월아하(月兒河) 출토.

- 어깨에는 3조(條)의 굽은 몸의 용무늬에 둥근 조각의 용머리가 수식되어 있고, 복부에 3조(組)의 호랑이가 사람을 먹는 무늬, 구름과 우래 무늬가 있고, 호랑이 머리를 새겨 중심에 두고 좌우에 두쌍의 몸이 있고 호랑이의 입이 한 사람을 물고 있으며, 둥근 발에 도철 무늬가 수식되어 있다.

공예가 매우 담박하여 상주 시대 청동기 중에 정품으로 꼽힌다.

안휘성 부남 지역은 상대 회이(淮夷) 집단거주지이만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기의 형제(形制)와 문식(紋飾)은 분명히 중원의 상(商)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 <中國國家博物館>

- 용 호랑이 존은 상나라 시기 문물로서 1957년에 안휘 부산에서 출토되었다. 존은 술을 담는 용기이다. 이 준은 원형을 이루고 주요 꽃무늬가 존의 어깨 부위와 복부에 장식되어 있다. 어깨 부위에 용 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용 몸체가 두드러 졌으며 용 머리가 용 몸체 밖으로 드러내 놓았다. 복부에는 세줄의 문 모서리가 세겨져 있고 그 중간에 몸체가 두개인 호랑이가 세겨져 있다. 호랑이는 머리를 몸체 밖으로 내밀고 있으며 호랑이 잎 아래에 사람 한명이 있다. 맹호가 사람을 잡아 먹는 무늬는 상나라와 주나라 시기의 청동기와 옥기에서 늘 나타났다. 《산해경》의 기재에 따르면 고대의 삭산에 신이 살고 있었는데 늘 사람을 해치는 귀신을 바줄로 묶어 호랑이에게 먹였다. 때문에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는 것은 사악을 피면하여 당시의 귀족과 평민을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몸체가 둘인 호랑이의 장식은 미학적으로 다시점 투시라고 하며 중국 고대의 일종 예술 공법이다. 이 청동은 정면에서 보든 측면에서 보든 모두 호랑이 한마리가 사람을 잡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교묘한 예술 구상을 보여주고 있다.
안휘 부남지구는 상나라시기에 회이부족의 집거지역이었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동기의 형태와 무늬는 중원 상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용 호랑이 무늬 동 존 또한 그 중에서 비교적 대표적인 기물 중의 하나이다. (작성자: 장위)  

 

 

 

 

 

 

 호랑이 무늬 청동 징[虎紋靑銅鐃]

 

 *바이두(baidu.com)에는 '코끼리무늬'라고 되어 있다.

- 상 후기

- 1959년 호남 영향(寧鄕) 출토.

 

 

 

 원형 청동 술잔_가[靑銅斝]

- 상 후기

- 1957년 안휘 부남(阜南) 월아하(月兒河) 출토.

 

 

 

 

 

 청동 술잔_고[靑銅觚]

- 상 후기

- 1957년 안휘 부남(阜南) 월아하(月兒河) 출토.

 

 

 기용 모양 발 청동 솥_정[蘷龍形扁足靑銅鼎]

- 상 후기

- 1974년 강소 청강(淸江) 오성(吳城) 출토.

 

 

 

 

 청동 단지_부[靑銅瓿]

- 상 후기

- 호남 신소(新邵) 출토.

- 무늬 사이사이에 아직도 흙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