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0820_중국미술관10_5층_1
# 절강성박물관 소장
- 명청서화 정품전(明淸書畵精品展)
# 호산승경(湖山勝景)
서호는 자연풍경과 인문역사가 서로 어우러진 명승지로서 지각운동으로 형성된 산기슭ㆍ호수가 있을 뿐만아니라 시인과 학자의 건물[營建]ㆍ제사(題寫)로 형성된 인문경관도 있다.
오늘날 서호의 전체적인 구조는 5대 양송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서호 연안의 상징적인 건축도 이 시기에 많이 생겼다. 예를 들어 남로(南路)의 정자사ㆍ뇌봉탑ㆍ육화탑, 북로(北路)의 보탑ㆍ소경사 등이다. 북송의 소식은 항주에서 관리로 근무할 때 서호를 준설하여 서호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소제(蘇堤)를 건설하였다. 남송이 임안(항주)을 수도로 정한 후, 시인ㆍ사인ㆍ서가ㆍ화가가 서호에 대한 음영ㆍ묘사가 새로운 고봉에 이르렀고, "서호 10경"도 이로부터 형성되었다. 명청(明淸) 이래 각지의 문인묵객들이 서호에 와서 산수를 감상하고 결사부시(結社賦詩:모임을 만들어 시부를 짓다)하여 서로 다른 지역간의 예문교류를 불러일으켰는데 그중 오문ㆍ송강을 중심으로 해서 두 지역의 수로가 통하고 항주를 왕래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게 되었다.
西湖是自然风光与人文历史交相辉映的名胜, 既有因地壳运动形成的山麓、湖泊, 亦有因诗人、学者的营建、题写 形成的人文景观。
今日西湖的整体布局是在五代两宋时期形成的, 西湖沿岸的标志性建筑也多在此时期产生, 如: 南路的净慈寺、雷峰塔、六和塔, 北路的保俶塔、昭庆寺。北宋苏轼主政杭州时, 疏浚西湖, 修建了横贯西湖南北的苏堤。南宋定都临安 (杭州)后, 诗人、词人、书家、画家 对于西湖的吟咏、描绘达到了新的高峰, 『西湖十景』也由此形成。明清以降, 各地文人墨客来西湖赏玩山水、结社赋诗, 激发了不同地域之间的艺文交流, 其中 以吴门、松江为最, 两地水路通达, 往 来杭州最为便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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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전 서령(印傳 西泠)
- 서령팔가(西泠八家)는 청대 절강에서 전서로 유명한 8명의 대표적인 인물을 가리키는데, 정경(丁敬), 장인(蔣仁), 황역(黃易), 해강(奚岡), 진예종(陳豫鍾), 진홍수(陳鴻壽), 조지침(趙之琛), 전송(錢松)의 통칭이다. 정경(丁敬)은 서령팔가의 대표로 그의 제자인 장인(蔣仁), 황역(黃易), 해강(奚岡) 등을 통틀어 서령( 西泠) 4가라고 칭하였다. 이후 진예종(陳豫鍾), 진홍수(陳鴻壽), 조지침(趙之琛), 전송(錢松)이 전현의 본받아 이름이 당시에 높았기 때문에 '서령팔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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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서 임 서고문 축(篆書臨石鼓文軸)_석고문을 베낀 두루마리.
- 청대
- 오창석(吳昌碩:1844~1927)
# 正文
田车孔安, 鉴勒, 既简, 左骖播播, 右骖腱腱, 吾以郪于原, 吾止陆。宫车其写, 秀弓寺射, 麋豕孔庶, 鹿鹿雉兔。
款识
勤士大兄正腕, 吴昌硕。
钤印
仓硕(白文)
◆ 행서 환선 축(行書紈扇軸)_엷은 깁으로 바른 부채용 행서 두루마리.
- 청대
- 완원(阮元)
- 乙未三月末, 江洲紅船在徐林門外, 卽襆被乘此船, 往長蘆庵一游卽回, 連日風平浪靜, 京口諸山, 靑翠欲滴, 高資山, 金山近在, 凡席蘆葦已長丈許, 萬綠一片, 更勝于萬柳堂. 水巡者罔得鰣魚, 烹以爲頤, 亦一時嘉興也.
을미년() 3월 말, 강주(江洲)의 붉은 배가 서림문 밖에 있었다. 즉시 이 배를 타고 장로암으로 가서 유람하고 돌아왔다. 며칠 동안 바람이 잔잔하고 물결이 잔잔했다. 경구(京口)의 여러 산들이 푸르고 물어 젖은듯하였으며 고자산(高資山)과 금산(金山)이 가까이 보였다.
모든 곳의 갈대가 이미 길이가 한 자쯤 자라 있었고 만 가지 푸름이 한조각같아 경치가 만류당( 萬柳堂)보다 아름다웠다.
물고기잡이꾼이 가시돔은 잡지 못했으나, 끓여서 먹으니 한때의 즐거움이었습니다.
玉甫世長兄屬書 頤性八四老寫.
- 蒹葭伊人 實同樵父, 蒲葦敏政 還讀中庸.
蒹葭같은 저 사람들 실로 나무꾼과 같으니, 부들같이 민감한 정치 상황에 돌아와서 중용일 읽었다.
右聯句可載入楹聯句也 元又筆
오른쪽의 연구는 기둥에 적을 수 있는 문구이다. 元又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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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여래최소지제(我是如來最小之弟) '인'
- 청대
- 정경(丁敬)
◆ 천경피어정장(千頃陂魚亭長) '인'
- 청대
- 정경(丁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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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과선혈(花果扇頁)
- 청대
- 조지겸(趙之謙:1829~1884)
◆ 화조선혈(花鳥扇頁)
- 청대
- 임이(任頤:1840~1895)
# 해상절조(海上浙潮)
근대 이래 상하이는 동남 연해의 경제문화 중심과 중국과 서양의 교류 창구가 되었다. 강소ㆍ절강ㆍ안휘 일대의 문인과 직업화가들이 상해로 몰려들어 점차 개방성ㆍ포용성ㆍ혁신성을 겸비한 "해파(海派)"를 형성하였다. 그중 조지겸ㆍ포화ㆍ임백년ㆍ오창석 등을 대표로 하는 절강이 본적인 서화가들은 제재ㆍ기법ㆍ풍격에서 선명한 개성을 갖고있어 새로운 예술조류를 가져왔으며 중국화의 현대전환에 중요한 추진역할을 하였다.
임백년의 회화 제재는 매우 광범위하며, 산수ㆍ화조ㆍ인물의 여러 과목을 겸비하고, 쌍구(雙鉤)ㆍ점슬(點虱)ㆍ몰골(沒骨)ㆍ사의(寫意) 등 기법이 변화무쌍하다. 전통적인 자양에서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의 교묘한 생각을 섭취하고 서양의 수법을 더욱 참고하여 속속 된 것을 바꾸어 우아한 것으로 만들고 서방의 것을 변화시켜 중화으로 것으로 만들고, 융합하고 관통하여 스스로 면모를 이룰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해파(海派)" 예술도 청나라 금석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창석은 서령인사의 초대 대표를 맏아 시서화인을 융통하고 금석으로 입화(入畵)하여 사의(寫意) 예술을 새로운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近代以来, 上海成为东南沿海的经济文化中心及中西交流窗口。江浙皖一带的文人与职业画家涌入上海, 逐渐形 成了兼具开放性、包容性、创新性的『海 派』。其中, 以赵之谦、蒲华、任伯年、吴昌硕等为代表的浙江籍书画家在题材、技法、风格上具有鲜明的个性, 带来了新的艺术潮流, 对中国画的现代转型起 到了重要的推动作用。
任伯年的绘画题材十分广泛, 山水、花鸟、人物诸科兼擅, 双钩、点虱、没骨、写意等技法多变。既源于传统滋养, 又汲取民间巧思, 更参鉴西方手法, 而能化俗为雅、化西为中, 融会贯通、自成面貌。同时, 『海派』艺术也深受清 代金石学的影响。吴昌硕作为西泠印社 的首任社长, 融通诗书画印, 以金石入画, 将写意艺术推向了新的高度。
◆ 옥국관선도축(玉局觀禪圖軸)
- 청대
- 임이(1840~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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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훼책(花卉冊)
- 청대
- 오창석(吳昌碩:1844~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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