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_대성동고분박물관5_금관가야의 황혼.
# 광개토대왕비.
- <고구려가 경자년(서기400년)에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어 왜를 격퇴하였고, 임나가라 종발성에 이르니 즉시 항복하였다.>
*여기에서 말한 왜는 가라와 왜의 연합군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고구려 남정 이후 20여년이 지난 시점부터 대성동고분군에 93호 덧널무덤, 73호 구덩식돌덧널무덤과 같은 대형무덤이 존재하지만, 초대형급무덤과 별도의 딸린덧널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한 앞 시기에 주로 부장되었던 금동제 장식마구와 왜의 위세품 등은 더 이상 부장되지 않았다. 그리고 5세기 후반부터는 고령과 합천의 대가야와 함안의 아라가야가 급성장한다. 이는 대성동고분군세력의 몰락을 말하는 것으로, 아마도 5세기 중엽부터 금관가야는 중국-서, 남해안-일본을 잇는 해상교섭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분열된 금관가야의 지배층이 고령, 합천, 함안으로 이동해 간 것으로 보인다.
# 혼동의 시대, 새로운 묘제의 탄생.
- 대성동고분군의 대형무덤이 5세기 전기까지만 조성되고 그 이후로 더이상 축조되지 않은 점을 들어, 서기 400면 고구려군의 기야 출병으로 김해의 금관가야가 5세기 초엽에 사실상 멸망했다는 견해가 주목받았다. 하지만 2011년 대성동고분군 6차 학술박굴조사에서 무덤 구덩이의 길이가 8m가 넘는 대형 구덩식돌덧널무덤(대성동 73호분)이 발굴됨으로써 김해지역에 5세기 후반까지 금관가야가 여전히 존재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또한 이를 통해 후기 금관가야 시기에도 주변 국가들과 역학적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대성동 73호분 구덩식돌덧널무덤
- 구덩식돌덧널무덤은 곽을 돌로 짜서 만든 것으로, 영남지방 중 김해와 부산 지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대성동고분 6차 발굴에서 조사된 73호분은 김해에서 조사된 구덩식돌덧널무덤 가운데 가장 크고 북쪽 단벽 부근에 길이 165cm, 너비 135cm 규모의 부장갱이 있다. 석곽을 덮는 뚜껑돌은 3개이며, 별도의 딸릿덧널은 없다. 내부에서 금동화살통장식, 금귀걸이, 은제칼손잡이장식, 미늘갑옷, 재갈 등과 다량의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위치한 남쪽의 시상석 부근은 대부분 도굴되어 부장품이 출토되지 않았다.
# 대성동고분군 돌방무덤
- 돌방무덤은 무덤의 구조에 따라 앞트기식 돌방무덤과 굴식 돌방무덤으로 분류한다. 대성동고분군에서는 앞트기식 돌방무덤 5기(基)와 굴식 돌방무덤 3기 등 총 8기가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굴식 돌방무덤만 보고가 되었는데, 모두 후대의 교란과 도둘로 돌방과 널길의 하단석만 남아 있다. 돌방무덤은 금관가야 멸망 이후에 만들어진 상위지배층의 무덤이다.
# 대성동고분군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의 출토유물.
◆ 1. 뚜껑굽다리접시_유개고배(有蓋高杯)
- 김해 대성동
◆ 2. 굽다리접시_고배(高杯)
- 김해 대성동
◆ 3. 4. 굽다리긴목항아리 / 긴목항아리
◆ 3. 굽다리긴목항아리_대부장경호(臺附長頸壺)
- 김해 대성동
◆ 4. 긴목항아리_장경호(臺附長頸壺)
- 김해 대성동
◆ 5. 6. 굽다리곧은입항아리 / 굽다리항아리
◆ 5. 굽다리곧은입항아리_대부직구호(臺附直口壺)
- 김해 대성동
◆ 6. 굽다리입항아리_대부호(臺附壺)
- 김해 대성동
◆ 7. 손잡이달린 굽다리바리_대부파수부배(臺附把手附杯)
- 김해 대성동
*'杯'는 '鉢'의 오류로 보임. 아니면 제목을 '굽다리잔'으로 수정해야 한다.
◆ 8. 손잡이달린굽다리잔_대부파수부배(臺附把手附盞)
- 김해 대성동
*손잡이가 180도가 아니고 135도로 되어 있다.
◆ 9. 입큰작은항아리+광구소호(廣口小壺) / 작은 그릇받침_소형기대(小形器臺)
- 김해 대성동
◆ 10. 원통모양 그릇받침_통형기대(筒形器臺)
- 김해 대성동
◆ 11. 긴목항아리_장경호(長頸壺) / 바리모양 그릇받침_발형기대(鉢形器臺)
- 김해 대성동
◆ 12. 뚜껑굽다리접시_유개고배(有蓋高杯)
- 김해 대성동
# 황토색
# 검은색
# 회색.
◆ 13. 뚜껑굽다리접시_유개고배(有蓋高杯)
- 김해 대성동
◆ 14. 뚜껑굽다리바리_유개부완(有蓋臺附碗)
- 김해 대성동
◆ 15. 병(甁)
- 김해 대성동
◆ 16. 뚜껑납작바리항아리 / 17. 뚜껑굽다리곧은입항아리
◆ 16. 뚜껑납작바리항아리_유개평저호(有蓋平底壺)
- 김해 대성동
*뚜껑이 있고 바닥이 납작한 항아리. 한자 설명에는 '납작'에 대한 글자가 없다. ' 平底'는 바닥이 납작하다는 뜻.
◆ 17. 뚜껑굽다리곧은입항아리_유개대부직구호(有蓋臺附直口壺)
- 김해 대성동
◆ 18. 원통모양 그릇받침_통형기대(筒形器臺)
- 김해 대성동
# 마무리하며.
- 대성동고분군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경성대학교 및 대성동고분박물관에 의해 10차례 발국조사가 이루어졌다. 그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대성동고분군이 금관가야 왕등의 묘역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가야와 신라 권역에서 출토된 적이 없었던 중국대륙계 금동제 유물과 일본게 유물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금관가야가 철을 매개로 동아시아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렇듯 대성동고분군은 구릉 능선부의 지배계층 묘역과 주변 하위계층 묘역으로 구성되어 복합적인 계층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능선부에 거대한 고인돌도 확인되어, 이곳이 금관가야 성립 이전 시기부터 특별하게 중시되었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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