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2_1층_12
4. 신라세력의 확산1
남해안 바닷길의 중개교역을 바탕으로 발전한 금관가야는 4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400년 고구려·신라 연합군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가야의 여러 나라들은 신라의 팽창에 영향을 받기 시작다. 낙동강 동쪽에 자리한 비화가야부터 신라문물이 확산되었고 532년에는 금관가야의 왕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했습니다. 신라는 낙동강 서쪽으로 계속 진출하여 마침내 562년 대가야를 정복함으로써 가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가야의 다양한 문화는 신라의 지방 문화로 바뀌었는데, 옛 가야 지역의 유적과 유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1. 굽다리 긴목 항아리
- 5~6세기
- 창녕 교동/계성리
◆ 2. 굽다리 바리
- 5~6세기
- 창녕 교동.
◆ 3. 손잡이 굽다리 바리
- 5~6세기
- 창녕 교동.
◆
◆ 4.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 5~6세기
- 창녕 교동/계성리.
◆ 5. 병
- 5~6세기
- 창녕 계성리.
# 창녕지역의 신라문물
창녕지역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비사벌(比斯伐)', '비화(非火)'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여러 가야 지역을 관통하는 황강과 남강의 물길이 낙동강과 만나는 곳에 폭넓게 자리하고 있어 예로부터 낙동강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장점은 역설적이게도 가야로 진출하고자 했던 신라 세력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은 원인이 되기도 했다. 창녕읍과 계성면 일대의 거대한 무덤에서는 당시 신라의 문물이 확산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6. 발걸이
- 5~6세기
- 창녕 교동.
◆ 7. 청동 말방울
- 5~6세기
- 창녕 교동.
◆ 8. 말띠드리개
- 5~6세기
- 창녕 교동/계성리.
◆9. 청동뿔모양 잔
- 5~6세기
- 창녕 교동.
◆ 10. 청동합
- 5~6세기
- 창녕 교동.
◆ 11. 청동다리미
- 5~6세기
- 창녕 교동.
◆ 12. 금동말안장꾸미개
- 5~6세기
- 창녕 교동.
◆ 13. 말띠꾸미개_운주(雲珠)
- 5~6세기
- 창녕 교동.
◆ 14. 재갈
- 5~6세기
- 창녕 교동.
◆ 15. 은제 새날개모양 관꾸미개
- 5~6세기
- 창녕 교동.
◆ 16. 목걸이 / 곱은옥
- 5~6세기
- 창녕 교동.
◆ 17. 금귀걸이
- 5~6세기
- 창녕 계성동/교동.
◆ 18. 금동제 나비모양 관꾸미개
- 5~6세기
- 창녕 교동.
◆ 19. 은장식
- 5~6세기
- 창녕 교동.
◆ 20. 청동 자루솥
- 5~6세기
- 창녕 교동.
◆ 21. 은팔찌
- 5~6세기
- 창녕 교동.
◆ 22. 금반지 / 은반지
- 5~6세기
- 창녕 교동.
◆ 24. 글자 새긴 둥근 자루 큰칼
- 5~6세기
- 창녕 교동.
# 1. 신라식 꾸미개
관꾸미개는 고깔모자처럼 생긴 관모 앞에 끼우는 것으로, 새날개나 나비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넝쿨무늬로 장식한 허리띠 장식은 금, 은 혹은 금동으로 만들었다. 허리띠 장식판 아래로 물고기 모양, 숫돌 등으로 꾸민 드리개를 달기도 했다. 5세기 이후 신라지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꾸밈새가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 이자 복식의 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신라의 영향을 먼저 받은 창녕지역에서 다수 출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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