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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박물관/국립김해박물관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0_1층_10

by isanjo 2024. 11. 10.

2024_09_국립김해박물관10_1층_10

 

3. 가이의 발전1

변한(弁韓)의 여러 작은 나라에서 출발한 가야는 발달한 철기 생산 능력과 남해안 바닷길 중개 교역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차츰 축적된 국력과 나라 안팎으로 높아진 위상은 마침내 큰 변화를 불러왔다. 3세기 후반 무렵 지배계층 무덤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모습에서 그러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큰 무덤을 만들고 많은 재물을 장례에 소비했을 뿐만 아니라 순장 풍습도 나타났다. 4세기는 금관 가야의 눈부신 성장이 주목된다. 5세기 이후에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아라가야, 소가야가 함께 발전했다. 옛 가야 지역 곳곳에 남은 커다란 무덤과 다양한 출토 유물은 당시 지배자들의 우월한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 단단한 토기의 등장, 그리고 성대한 장례

3세기 후반, 가야 지역에서는 새롭게 도입된 기술로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밀폐된 굴가마에서 약 1,000℃ 넘는 온도로 구운 토기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어깨에 꼭지 두 개가 달린 짧은목 항아리를 시작으로 다양한 종류의 토기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울러 제사 음식을 넉넉하게 담았을 토기 수십 개를 지배자의 무덤에 껴묻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죽은 이를 위한 성대한 장례는 이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었지만 이 즈음의 극적인 변화는 부와 권력이 지배계층에 한층 더 집중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 1. 두 귀 달린 항아리

- 김해 대성동/양동리

 

◆ 2. 짧은목 항아리

- 김해 대성동.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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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 

 

 

◆2.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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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짧은목 항아리

- 김해 대성동.

 

◆ 2. 짧은목 항아리

- 김해 대성동.

 

◆ 

 

 

 

◆ 2. 짧은목 항아리 

 

 

◆ 3. 화로모양 그릇받침

- 김해 구지로/대성동/양동리.

 

 

 

 

 

 

 

 

 

 

 

 

 

◆ 4. 원통모양 그릇 받침

- 김해 대성동. 

 

 

 

 

# 말갖춤과 여러 철제품

말을 기르고 말갖춤*을 만드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말과 말갖춤은 고대사회에서 신분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발걸이와 안장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꾸미개로 완성된 실용적 말갖춤이 4세기 대 금관가야 지배층 무덤에서 발견됩니다. 다양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이자 화폐 역할을 한 덩이쇠와 함께 고리자루 큰칼, 투겁창, 화살촉 같은 무기들도 대량으로 장례에 사용되었습니다.

* 말을 부리기 위해서 만든 각종 장비를 통틀어 이르는 말.

 

◆ 덩이쇠

- 3세기

- 김해 대성동


쇳덩이를 얇게 두드려서 만든 철판으로, 낫이나 도끼, 창 같은 여러 용도의 도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이다. 긴 사각형 모양으로 가운데 부분을 잘록하게 만들기도 한다. 덩이쇠는 크기, 모양, 무게를 비슷하게 만들어 화폐나 금괴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지배자 계층의 무덤에서는 다량의 덩이쇠가 10매 단위로 묶여 확인되기도 한다.

 

 

#  금관가야의 말갖춤.
- 김해 대성동.

 

 

1. 말머리 가리개 

- 3~5세기

 

 

2. 발걸이

- 3~5세기

3. 말갑옷 

- 3~5세기

 

 

4. 말띠 드리개

- 3~5세기

5. 조개껍질 말띠꾸미개

- 3~5세기

6. 청동 말띠꾸미개

- 3~5세기

8. 금동말방울

- 3~5세기

 

 

7. 재갈

- 3~5세기

 

 

9. 쇠화살촉

- 3~5세기

- 김해 대성동.

 

 

10. 고리자루 큰칼

- 3~5세기

- 김해 대성동.

 

 

11. 쇠투겁창

- 3~5세기

- 김해 대성동/양동리

 

 

◆ 12. 목걸이

-3~5세기

- 김해 대성동/망덕리/본신리,여래리/양동리/죽곡리/칠산동, 부산 복천동, 창원 삼동동/현동.

 

 

 

◆ 13. 곱은 옥

- 3~5세기

- 김해 대성동.

 

 

 

 

 

 

# 외래물품

동아시아 해상 교역망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낙동강 하구와 연안 일대에서는 다양한 지역의 외래 문물이 발견되어 당시 발전한 가야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옛 김해만 일대 가야 유적에서 발견 사례가 두드러지는데 금관가야 지배층의 공동묘지였던 김해 대성동유적이 단연 돋보인다. 중국 진晉의 청동 솥과 허리띠, 북방 선비족 계통의 말갖춤, 일본계 청동 제품과 비취 경옥, 열대 조개 등 다양한 물품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물건 들은 필요에 따라 가야에서 현지화되기도 하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 13. 청동솥

- 3세기

- 김해 대성동.

 

◆ 14. 쇠창

- 3~4세기

- 김해 대성동.

 

 

 

◆ 15. 원통모양 청동기

- 3~4세기

- 김해 대성동.

 

 

 

◆ 16. 청동 화살촉

- 3~4세기

- 김해 대성동, 창원 삼동동.

 

 

◆ 17. 돌화살촉

- 3~4세기

- 김해 대성동

◆ 18. 가락바퀴모양 석제품.

- 3~4세기

- 김해 대성동.

 

◆ 19. 일본계 토기_하지키(土師器). 손잡이 달린 항아리.

- 3~4세기

- 김해 대성동.

 

 

 

 

◆ 20. 일본계 토기_하지키(土師器). 굽다리 접시

- 3~4세기

- 창원 현동.

 

 

◆ 21. 청동 바리

- 3~4세기

- 김해 대성동.

 

◆ 22. 창동솥_동복(銅鍑)

- 3세기

- 김해 대성동

*북방 초원지대에서 주로 사용하던 청동으로 만든 솥이다. 한반도에서는 평양과 김해의 대성동 유적과 양동리 유적에서 출토 되었다. 솥의 몸통은 길쭉한 편이며, 손잡이가 얇다. 청동솥은 열을 가해 액체를 끓이거나 음식을 삶아 조리하는 데 토기보다 훨씬 효율성이 높다. 가볍고 윤이 나는 겉모습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데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3.  금동 허리띠꾸미개 *복제품.

- 4세기

- 김해 대성동

 

*| 중국식허리띠장식[中原式帶裝飾具]

고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회·경제적 위세를 과시하는 방법 중 하나로 금·은·동과 같은 귀금속을 지니거나 몸에 치장했다. 김해 대성동유적 88호 무덤에서는 중국식허리띠장식이 발견 되었는데 3~4세기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행하던 형태이다. 가죽이나 비단 등으로 만든 허리띠에 금동으로 만든 장식판과 버클을 덧대어 만들었다. 장식판에는 두 마리 용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뚜껑 있는 긴목항아리 / 바리모양 그릇 받침

- 5세기

- 김해 대성동.

 

 

 

 

 

  1. 용과 봉황 장식 고리자루 큰갈. *보물.

- 5세기

- 합천 옥전.

  2. 고리자루 큰갈. *보물.

- 5세기

- 함안 마갑총.

 

 

  미늘쇠

- 5세기

- 함안 도항리

 

* 얇은 철판 가장자리에 여러 개의 가시 모양 미늘을 달아놓아 미늘쇠라 불린다. 아래쪽에는 나무 자루에 꽂을 수 있는 투겁이 있다. 무기나 의례용 도구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함안, 합천지역에서는 유달리 큰 철판에 새모양 미늘을 달아 만들기도 했다. 가야 사람들의 새에 대한 특별한 관념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