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박물관 역사관 4(2025)
♚ 전북 동부 산간 지역의 가야
전북 동부지역에 가야가 처음 등장한 것은 5세기 초반의 소가야小伽倻 세력이며, 가야는 남강 상류 지역을 통하여 한성백제와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이후 5세기 후반에 백제가 일시작으로 약해진 틈을 타 대가야大伽倻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남강의 상류 지역인 남원과 섬진강 유역인 임실, 금강 유역인 장수, 진안에서는 많은 수의 대가야계 구덩이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이 확인되었으며, 무덤의 형태뿐 아니라 부장품의 종류가 대가야 중심 지역과 거의 동일하다. 또한 남원 월산리와 두락리 고분 일대에는 가야의 집단인 기문己汶이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6세기 이후 국력을 회복한 백제가 전북 동부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이 일대는 백제와 가야, 신라의 세력 다툼의 주요 무대인 동시에 완충 지대의 역할을 하였다.
# 가야의 토기
가야 토기는 지역에 따라 함안을 중심으로 아라가야양식, 진주·고성을 고집한 소가야양식, 고령을 고집한 대가야양식으로 수 있다. 남원과 장수, 진안 등 전북지역 가야 고분에서 확인되는 토기 대부분은 5세기 때 대가야 양식으로 긴목항아리와 그릇받침, 뚜껑 달린굽다리접시 등이 대표적이다. 5세기는 전반에는 소가야 양식 토기와 대가야 양식 토기가, 6세기 때에는 백제, 신라 토기가 함께 확인되어 내륙 교통의 요지인 전북 동부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가야와 백제, 신라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 가야의 토기
# 1. 상
◆ 굽다리 접시 /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

◆ 손잡이 달린 완 / 장수군 장수읍 동촌리
# 2. 하
◆ 굽다리 접시 /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 굽다리 긴목 항아리 / 진안군 융담면 월계리

# 3 상
◆ 손잡이 달린 바리 / 남원시 동면 건지리
◆ 뚜껑 접시

# 4. 하
◆ 입큰 긴목 항아리 /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 장수군 장수읍 동촌리
◆ 뚜껑 있는 굽다리 바리 /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 뚜껑 접시 /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


# 5.
◆ 원통형 그릇 받침 /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 /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 짧은목 항아리, 그릇 받침 /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 입큰 긴목 항아리, 그릇받침 / 장수군 장수읍 동촌리 /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 뚜껑 있는 긴목 항 /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 가야의 말을갖춤마구과 무기
가야 고분에서는 재갈, 발걸이, 말띠드리개, 기꽂이 등 철제 말갖춤과 고리자루큰칼, 화살촉, 쇠투겁창 등 철제 무기가 출토되어 철의 왕국 가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남원 월산리와 두락리에서 출토된 고리자루칼은 백제 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대가야와 백제가 제작기술을 교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임실 금성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뱀모양칼은 일본에서 주로 확인되어 일본과 대가야지역의 교류관계를 보여준다.

# 가야 무덤의 부장품
가야 사람들은 죽은 이를 위하여 무덤에 아주 많은 양의 부장품을 함께 묻었다. 중심이 되는 무덤에는 위세품과 장신구뿐만 아니라 죽은 이와 가깝거나 죽은 이를 따르던 사람들을 함께 묻기도 하였다.
남원 월산리 유적의 청자계수호와 철제자루솥, 남원 두락리 유적에서 출토된 흑옥과 은팔찌 등은 백제 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으로, 백제와 전북 동부지역 가야 사이의 교류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외에도 가야 무덤에는 악귀를 물리치기 위하여 무기나 농·공구를 축소한 철기를 함께 묻기도 하였다.
◆ 닭머리 모양 청자 / 가야
- 남원시 월산리

◆ 솨자루솥 철제 초두(鐎斗) / 가야
-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 ◆ 4. 장신구 / 가야
-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 / 임실군 청융면 석두리 / 장수군 산서면 하월리 /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 장수군 천전면 삼고리.

◆ 금귀걸이 / 가야
-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

# 김해박물관 가야 유물.
'한국박물관/국립김해박물관' 카테고리의 글 목록
'한국박물관/국립김해박물관' 카테고리의 글 목록
필자가 살고 마을의 다양한 꽃들과 여러 고대유물을 전시한 국내외 박물관의 유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을 소개하는 사이트입니다.
donghong.tistory.com
♚ 백제로의 전환
독자적인 세력과 혈통을 유지하고 있던 전북지역의 정치세력들은 5세기 대에 백제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역의 세력들은 여전히 많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고, 금동장식신발과 금동관모가 출토된 고창 봉덕리와 익산 입점리 고분군에서 보듯이 백제 중앙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면서 자율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백제가 538년 수도를 사비로 옮긴 이후 백제의 지배가 한층 더욱 강화되면서 지역 세력들은 점차 백제로 편입된다.
# 백제의 지방통치와 전북
한성시기 백제는 고대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역에서 지역 수장首長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기 위해 금동관모金銅帽冠와 금동장식신발金銅飾履, 중국에서는 찍온 도자기 등의 위세품威勢品을 획득했다.
전북지역 고창 봉덕리와 익산 입점리에서는 마한의 흙무지무덤[墳丘墓] 안에 백제 무덤인 돌방무덤석실[石室墳]이 만들어졌고, 한성백제양식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는 마한 세력이 유지되는 가운데 백제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 1. 발걸이 등자(鐙子)
◆ 2. 청자항아리

◆ 3. 작은 단지로 장식한 구멍 항아리

◆ 4. 은 관꾸미개
◆ 5. 잔과 잔받침 탁잔(托盞)
◆ 6. 큰칼
◆ 7. 쇠재갈

# 고창 봉덕리고분 출토품
◆ 8. 유리구슬
◆ 9. 금귀걸이
◆ 10. 목걸이

◆ 11. 짧은목 항아리
◆ 12. 곧은입 항아리

# 정읍 운학리 고분 출토품 / 마한
7. 금동제 장신구 / 정읍시 영원면 운학리

# 백제토기

◆ 넓은입 항아리 / 군산시 대아면 산월리

◆ 뚜껑 있는 항아리 / 남원시 이백면 초촌리

♚ 백제로의 편입
전북 지역에는 한성백제 말인 5세기 중엽 경부터 백제 무덕인 굴식돌방무덤横穴式石室墳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백제가 지방지배를 확고히 하는 사비기泗沘期에 들어서면 전북지역은 완전히 백제 지방으로 편입된다. 고창 예지리, 완주 둔산리 등에서는 사비기의 굴식돌방무덤이 확인되고, 전북의 여러 곳에서 백제 관리들만 사용할 수 있는 은으로 만든 관꾸미개銀製冠飾와 도장인 등이 확인된다.

# 1. 백제토기

◆ 병(甁) / 군산시 성산면 어방리
◆ 세 귀 달린 항아리 / 고창군 아산면 대기리

◆ 아궁이 모양 토기 / 군산시 성산면 어방리

◆ 뚜껑 있는 세 발 접시 /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


# 2. 군산 산월리 유적 출토품 / 백제
◆ 큰칼 ◆ 고리자루 큰칼

# 3. 철기와 장신구 / 남원시 이백면 초촌리
◆ 쇠도끼 ◆ 쇠낫
◆ 유리구슬 ◆ 금동귀걸이

◆ 금동장식신발 金銅飾履
-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 1호분 4호 돌방무덤
- 마한·백제
고창 봉덕리 1호분 4호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금속판을 도려내고 용, 도깨비, 새, 연꽃 등 새긴 투조透彫 기법이 사용되었다. 바닥에는 연꽃무늬 중앙에 작은 금동 못을 박았다. 신발은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구조가 약해 무덤에 부장하기 위해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수준 높은 금속공예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장인집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백제 중앙에서 만들어서 각 지역에 보급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박물관 > 국립전주박물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주박물관 역사관 6(2025) (0) | 2025.12.29 |
|---|---|
| 전주박물관 역사관 5(2025) (0) | 2025.12.26 |
| 전주박물관 역사관 3(2025) (0) | 2025.12.23 |
| 전주박물관 역사관 2(2025) (0) | 2025.12.22 |
| 전주박물관 역사관 1(2025) (0) | 2025.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