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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나라박물관

2023_1_나라(奈良)3_국립 나라박물관 청동관1

by isanjo 2023. 2. 13.

2023_1_나라(奈良)3_국립 나라박물관 청동관1

 

# 중국고대 청동기

 

불상관 관람을 마치고 복도를 따라 별관으로 가면 <청동기관(靑銅器館)>이 있다. <청동기관>에는 중국고대청동기 명품전이 진행 중이다. 이곳에 전시된 청동기는 일본의 청동기가 아니고 모두 중국 고대청동기이다. 유물 전시가 시작되는 곳에 <중국고대청동기(中國古代靑銅彝器)>라는 설명서가 있다.

중국 하남성 언사(偃師)의 이리두(二里頭)유적, 정주(鄭州)의 상성(商城)유적, 안양(安陽)의 은허(殷墟) 등 세 개의 대규모 유적은 각각 하나라, 상나라 전기, 상나라 후기의 도읍으로 추정하는 연구자들이 많다. 초기국가의 왕은 천지일월, 자신의 조상신, 천제(天帝)에게 제사하는 것이를 중요한 일이었다. 조상신을 제사 지내는 종묘에서는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를 마련

하였다. 청동으로 만든 기물의 종류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을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는데, 서주시기와 춘추 전 국시기까지 계승되었다. 청동제기는 삼거나 찌는 데 쓰는 기구, 술을 마시는 세 트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유행하는 기물의 종류와 조합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다.

전시 순서는 크게 <청동기의 始作>, <戰國秦漢代>, <각종 炊器>, <春秋戰國時代壺類>, <靑銅器衰退>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관람하게 되어 있다. 중앙에는 상대 말 기~주대 초기의 도철문대정(饕餮文大鼎)과 봉황문유(鳳凰文卣), 상대 후기의 치

효문유(鴟梟文卣), 서주 전기의 대미도철문궤(大眉饕餮文簋), 서주 후기의 곤선문호(曲線文壺) 등 화려한 대형 청동기 5기가 전시관 중앙에 별도로 전시되어 있다.

 

 

 

- 청동기의 마력

 

- 일본 것이 아니고 모두 중국에서 가져 온 것이다. 오히려 남의 것은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자국의 유물은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

 

- 맨 처음 만나는 청동기는 작(), (), (), (), (), () 등과 같이 술과 관련된 주기(酒器)이다.

 

# ()

청동으로 만든 ()’은 이리두문화 시기에 출현하였으며 청동 이기(彝器)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은 술을 데우는 데 사용한 기물로 3개의 다리와 손잡이, 따르는 입구는 작으면서도 길게 만들었다.

상대 전기의 은 밑이 평평한 형태였으나 상대 후기의 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밑이 둥근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술을 따르는 주둥이[]와 꼬리[] 부분이 있는데 중간에 2개의 뿔 모양 기둥이 있다.

 

청동으로 만든 작()은 처음에는 가운데 튀어나온 기둥이 없었고, 이후 1개의 기둥이 있는 형태와 2개의 기둥이 있는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술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게 발과 기물의 사이는 높이가 벌어져 있다. 데운 술을 옮길 수 있게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은 언뜻 보면 다리가 3개인 가()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가()에는 류()와 미()가 없다.

 

작(爵)의 이체자는 모양이 유사한 𩰥, 𩰨, 𩰣 등과 모양이 구조가 다른 𥥼, 𥥼, 𠕢 등 다양하다.

 

 

2, 3, 1. 작(爵)_은대 전기(이리강기(二里岡期)(B.C.17~B.C.15) 

 

 

# 중국 고대 청동 이기(彝器)

<中國古代靑銅彝器>에는 중국 하남성 언사(偃師)의 이리두(二里頭)유적, 정주(鄭州)의 상성(商城)유적, 안양(安陽)의 은허(殷墟) 등 세 개의 대규모 유적은 각각 하나라, 상나라 전기, 상나라 후기의 도읍으로 추정하는 연구자들이 많다. 초기국가의 왕은 천지 일월과 자신의 조상신과 천제(天帝)의 제사를 중요한 일이었다. 조상신을 제사지내는 종묘에서는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를 마련하였다. 그 시기에는 청동으로 만든 기물의 종류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을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었는데, 서주시기와 춘추 전국시기까지 계승되었다. 청동제기는 삼거나 찌는 데 기구, 술을 마시는 세트,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유행하는 기물의 종류와 조합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다.

 

 

# ()

다리가 3개인 기물(器物) 중 몸체부터 발까지 전체가 주머니 형태인 것을 력()이라고 하는데, 신석기시대 후기에 출현한 흙으로 만든 은 이리두문화(二里頭文化) 이후 황화 진성(溱城)을 중심으로 최초로 보급된 취사도구로 장식성이 부족했으나 그 종수는 적지 않다고 한다.

 

은 원형의 정()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정()과 가장 큰 차이는 3개의 다리 속이 비어있고 원뿔형의 다리가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다. 다리가 비어있기 때문에 음식을 조리할 때 빨리 끓는 장점이 있다. 서주시기에는 네모난 형태의 도 출현했는데 몸체가 장방형으로 생겨 기물 아래에 직접 불을 피워 조리를 할 수도 있었다. ‘은 상대 초기에 출현하여 전국시대 중기에 차츰 줄어 들었다.

 

력(鬲)의 이체자는 성부를 추가한 㽁, 𩱔, 𨬑 등과 의부를 대체한 鎘, 䰛 𩱉 등 다양하다.

 

143. 력(鬲)_맨 왼쪽.

- 은대 전기(이리강기(二里岡期)(B.C.17~B.C.15)

 

 

# 중국 고대 청동 이기(彝器)의 시작에 대한 설명.

력(鬲)과 작(爵)에 대한 설명이다.

력(鬲)은 다리가 3개인 기물(器物) 중 몸체부터 발까지 전체가 주머니 형태인 것을 력()이라고 하는데, 신석기시대 후기에 출현한 흙으로 만든 은 이리두문화(二里頭文化) 이후 황화 진성(溱城)을 중심으로 최초로 보급된 취사도구로 장식성이 부족했으나 그 종수는 적지 않다.

 

작(爵): 청동으로 만든 ()’은 이리두문화 시기에 출현하였으며 청동 이기(彝器)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은 술을 데우는 데 사용한 기물로 3개의 다리와 손잡이, 따르는 입구는 작으면서도 길게 만들었다. 상대 전기의 은 밑이 평평한 형태였으나 상대 후기의 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밑이 둥근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술을 따르는 주둥이[]와 꼬리[]라는 부분이 있는데 중간에 2개의 뿔 모양 기둥이 있다.

 

 

# 력(鬲)과 작(爵)에 대한 설명이다.

 

 

# 14, 8 작(爵)

- 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 37 왼쪽: 각(角)_상말 주초(B.C.11)

# 17오른쪽 작(爵)_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 ()

()는 작()과 함께 사용된 제사용 음주기(飮酒器)이다. 상대 전기에 출현하여 작과 반드시 함께 사용되었으며 상대 후기에 가장 성행하였다. 자 형태의 구멍이 있으며 권족(圈足)이다. 넓은 아가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는 이리두 문화 시기에 처음 출현해서 상대와 서주 초기에 성행하였으며 서주 중기부터는 드물게 나타난다.

아가리와 밑 부분은 모두 나팔 모양으로 되어 있다.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말한 고불고 고재고재(觚不觚 觚哉觚哉)”라고한 고()가 바로 이 기물이다. 네 개의 모서리에 화살나무처럼 돋아난 모서리가 특징이다. 대부분의 는 원형인데 네모난 형태도 있다. 청나라 때까지 도자기로 만들어질 정도로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공자가 말했던 것처럼 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모양을보고 고()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많다. 언뜻 보면 치()나 준()과도 비슷해 보인다.

 

()의 이체자는 의미 구건을 대체한 𨠋, 성부를 대체한 𧣗 등이 있다.

 

# 뒷:  42,  39, 38. 고(觚)_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 앞: 49, 48.치(觶)

 

 

# ()

()는 아랫부분이 네모나고 둥글게 부푼 형태의 작은 형태의 컵으로, 뚜껑이 있는 것도 있다. 상대 후기에 출현하였으며 서주 시기에 들어와서 는 고()를 대신하여 유행하였다고 한다.

()는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상대에 유행한 것으로 작은 병() 모양이며 큰 것은 뚜껑이 있다. 두 번째는 서주 시기에 출현한 것으로 네모난 기둥 모양이다. 세 번째는 춘추 말기에 출현한 것으로 긴 몸에 모양은 고()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에 그 모양

을 보고 그 이름을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치(觶)의 이체자는 성부를 대체한 觗, 𦨟, 𧣄와 구조가 다른 𧣨 등이 있다.

 

 

# 49, 48. ()

- 서주 전기(B.C.11~B.C.10)

 

 

# 고(觚)와 치(觶) 설명서.

고(觚)는 작(爵)과 함께 사용된 제사용 음주기(飮酒器)이다. 상대 전기에 출현하여 작과 반드시 함께 사용되었으며 상대 후기에 가장 성행하였다. 十자 형태의 구멍이 있으며 권족(圈足)이다. 넓은 아가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치(觶)는 아랫부분이 네모나고 둥글게 부픈 형태의 작은 형태의 컵으로 뚜껑이 있는 것도 있다상대 후기에 출현하였으며 서주 시기에 들어와서 ‘치’는 고(觚)를 대신하여 유행하였다.

 

 

52. 고(觚) 형태의 준(尊)

- 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 고(觚) 형태의 준(尊) 설명서.

 

 

# 57. 고형준(觚形尊)_서주 전기(B.C.11~B.C.10)

# 52. 고형준(觚形尊)_상대 후기(B.C.15~B.C.11)

 

 

 

 


 50. 목이 긴 
 준(尊)

- 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64. 네모 이(方彝)

- 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 바닥은 4개의 아치형 다리모양이다.

 

 

 

75. 가(斝)

- 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 ()

()는 이리두(二里頭) 시기, 상대 전기[二里岡時期], 상대 후기를 통틀어 중요시된 이기(彝器) 중 하나로 술을 데우는 기물이다. ()는 왕의 무덤과 중요한 귀족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을 볼 때 귀중한 것으로 여겨진다. ()는 상대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지 않았으며 서주 시기에는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가는 다리가 3개이며 아가리에 튀어나온 부분이 없는 형태에서 시작하여 1개 있는 형태, 2개 있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1개의 경우 손잡이 반대쪽에 기둥처럼 튀어나온 것이 있었으며, 2개의 경우는 양손잡이의 정면 앞쪽에 있는 경우와 양쪽의 정중앙에 대칭으로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나라박물관에 소장된 가()의 경우 튀어나온 것이 양쪽 정중앙에 크게 붙어 있다.

술을 따르는 아가리[]와 꼬리[]가 없는 것이 작()과 구별되는 점이다. 도기(陶器)로 만든 가()의 경우 토기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인지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의 이체자는 아랫부분이 다른 등이 있다.

 

 

 76. 가(斝)

- 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 네모 이(方彝)와 가(斝) 설명

네모 이[方彝]

4각 상자 모양의 몸에 지붕 모양의 뚜껑이 형태의 네모 이[方彝] 는 복잡하게 주조하여 조합한 것으로 매우 복잡한 기물이다. 술을 담는 준(尊)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가(斝)

이리두(二里頭)문화 시기, 상대 전기[二里岡時期], 상대 후기를 통틀어 중요시 된 이기(彝器) 중 하나로 술을 데우는 기물이다. ()는 왕의 무덤과 중요한 귀족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을 볼 때 귀중한 것으로 여겨진다. ()는 상대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지 않았으며 서주 시기에는 사라지게 되었다.

 

 

# 중국고대 왕조사략 연표와 주요 청동기 출토유적 지도

 

 

 

 

 

 

81. 부(瓿)

- 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82. 부(瓿)

- 상대 후기_은허기(B.C.15~B.C.11)

 

 

# 부(瓿) 설명서

 

 

뢰(罍) 술독

 

 

# 뢰(罍) 설명서

()는 고대에 술을 담는 기물이다. 무게는 이()에 비해 약간 가벼우며, 형태는 네모 형태와 둥근 형태 두 종류가 있다. 상대 말기에는 네모 형태의 뢰()가 출현하였으며,

둥근 형태의 뢰는 상대와 주대 초기에도 있었다. 상대에서 주대를 거치며 뢰의 형태는 날씬하고 높은 형태에서 작은형태로 바뀌었고, 복잡한 도안도 차츰 적어져 소박하고 단아한 형태로 변했다. 상대 말기에 처음 사용하여 서주 때 유행하였으며, 전국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주대에 출토된 유물 중 청자뢰(靑瓷罍)도 있다.

 

뢰(罍)의 이체자는 罍의 변형인 𦉩와 의부를 대체한 櫑, 鑘, 𨯔 등이 있다.

 

 

 

# 이무기 문양이 있는 뢰()

이 뢰()는 전국시대 중기에 만들어 진것으로, 염부(鹽缶), 욕부(浴缶)의 별명이 있다. 기물은 큰 어깨부분에 짐승의 머리로 양쪽의 귀를 붙였는데, 이것은 이전 시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것이다. 기물의 몸체는 낮고, 아랫부분의 환()이 생략되었다. 이무기 문양도 문양이 변하여 둥근 쟁반 문양이 되었다. 이것이 상대와 주대에 명맥을 유지한 사례이다.

 

이무기 문양 뢰(罍)

- 전국 중기(B.C.4)

 

 

# 이무기 문양 뢰(蟠螭文罍) 설명서

이 뢰(罍)는 전국시대 중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염부(鹽缶), 욕부(浴缶)의 별명이 있다. 기물은 큰 어깨부분에 짐승의 머리로 양쪽의 귀를 붙였는데 이것은 이전 시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것이다. 기물의 몸체는 낮고, 아랫부분의 환(環)이 생략되었다. 이무기 문양도 囧 문양이 변하여 둥근 쟁반 문양이 되었다. 이것이 상대와 주대에 명맥[名殘]을 유지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