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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 詩와 꽃

시와 꽃_복숭아_복사꽃

by isanjo 2023. 7. 20.

# 복숭아_복사꽃

 

복숭아는 장미과에 속하는 교목성 낙엽과수로, 원산지는 중국 화북의 산시성(陜西省)과 간쑤성(甘肅省)의 고원지대이다. BC.2BC.1세기 경에 페르시아 지역으로 전해졌고 다시 유럽으로 전래되었다우리나라의 남부에도 야생종이 있으나 대과종(大果種: 큰 열매를 맺는 종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종과는 그 계통이 다른 종류로 추측된다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남쪽에서 재배하며 매화, 살구와 함께 봄꽃의 대명사로 꼽힌다. 복숭아는 여름 과일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여름 하면 떠오르는 대표 과일이다. 덩굴에서 열리는 수박, 참외와 함께 나무에서 열리는 대표 과일로 제철이 아니면 생으로 먹기 어려웠던 과일이다.

 

복숭아는 나무를 지칭할 때와 꽃을 지칭할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나무는 복사나무, 복숭아나무, 꽃은 복사꽃, 복숭아꽃으로, 열매는 복사, 복숭아[복숭]로 불린.

 

 

 

<우리말샘>에는 복숭아의 한글 어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현대 국어 복숭아의 옛말인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났다. ‘복숭아를 의미하는 명사 에 한자어 ()’가 결합한 합성어로, 15세기 문헌에는 만 단독으로 쓰이거나 로 표기된 예도 보인다. 16세기에는 에서 두 번째 음절의 모음 로 바뀌고 세 번째 음절의 자음 이 탈락한 ‘복숑와’ 형태가 등장하였는데, 16세기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17세기 문헌에 보이는 복숑화가 실제는 ‘복숑와’보다 이전 형태로 파악된다. 17세기에는 복숑와의 이중 모음 에서 가 탈락한 ‘복숑아’ 형태가 등장하였다. ‘복숑아에서 두 번째 음절의 모음 가 음성 모음인 로 바뀌고, 뒤에서 모음 로 바뀌어 19세기 문헌에서부터는 현대 국어와 같은 복숭아형태가 등장하게 되었다. 한편 17~18세기 문헌에는 ‘복숑화, 복숑와, 복숑아에서 자음 [ŋ]이 탈락한 ‘복쇼화, 복쇼와, 복쇼아’ 형태도 나타난다문헌의 내용을 참고할 때 복숭아의 이표기는 복, , , 복숑화, 복숑와, 복숑아, 복숭아, 복쇼화, 복쇼와, 복쇼아 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기별 용례를 참고할 때 단어별 사용 시기는 15세기~16세기, ‘복숑화17세기~18세기, ‘복숑와16세기~17세기, ‘복숑아17세기~19세기, ‘복숭아19세기~현재까지 사용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우리말샘>에 수록된 복숭아의 사투리 종류이다.

 

방사, 벅성, 벅송, 벅숭아, 보썽, 보쑤아, 복상, 복새, 복새이, 복생, 복생이, 복서아, 복성, 복성게, 복성아, 복소아, 복송, 복송개, 복송게, 복송수, 복송시, 복송아, 복송화, 복솨, 복쇄, 복수아, 복수애, 복수왜, 복순, 복숭, 복숭개, 복숭애, 복숭와, 복숭왜, 복숭화, 복슈애, 복승, 복승애, 복시, 복시아, 복싱, 복싱아, 봉사, 봉송, 봉쇄, 봉숭, 봉쏭, 북숭아, 뽁상

 

이들을 가나다순으로 정렬하면 대략 50여 개로 확인되는데, 이들 단어는 주로 근현대에 사용된 사투리를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옛 문헌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결국 복숭아라는 이칭은 크게 ‘복숭’와 ‘복상처럼 이 남아 있는 계열, ‘복사복시처럼 이 탈락된 계열, ‘복송아’ 와 ‘복승애’‘처럼 ’복숭+花’의 형태가 변화하여 뒤가 의 형태로 바뀐 계열, ‘복새이’와 ‘복수아처럼 앞에 있는 이 생략된 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

 

나무는 한자로 도수(桃樹) 한글로 봉숭아, 복사나무라고도 한다. 나무껍질은 도백피(桃白皮), 꽃은 도화(桃花), 잎은 도엽(桃葉), 잔가지는 도지(桃枝), 뿌리는 도근(桃根), 나무진을 도교(桃膠), 복숭아씨의 알맹이는 도인(桃仁), 도핵인(桃核仁), 탈핵인(脫核仁)이라 하며 한약재로 사용한다. 맛은 쓰다.

 

 

예로부터 복숭아나무와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 왔으므로 집안에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을 금기하였으며 제사상에도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다. 특히 복숭아나무 가지 중에서 동쪽으로 난 가지인 동도지(東桃枝)는 더욱 힘이 강하다고 여겨 귀신뿐 아니라 음식의 맛이 나빠지는 것도 막아 준다고 믿었다. 요즘은 도로에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복숭아는 옛날부터 행복과 부귀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져 왔다. 또한 악마를 제거하는 힘이 있는 과일로 알려져 선과(仙果)라 부르기도 하는데, 옛날부터 귀신을 쫓기 위해 복숭아나무를 신장대로 써왔다. 복사꽃이 필 때면 과수원에서 야외수업을 하기도 했다.

 

복숭아는 크게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털이 있는 것과 털이 없는 것, 털이 없는 복숭아로는 천도와 황금복숭아가 있으며, 털이 있는 봉숭아로는 백도, 황도 등 종류가 다양하다. 예전에는 경북 경산과 영천, 충북 음성, 경기 이천과 장호원에서 많이 재배되었다.

둘째 과육의 색이 하얀 백도와 과육이 노란 황도로 구분할 수 있다.

장호원에서 재배되는 햇사래도 그 중 하나이다.

 

복숭아의 꽃 색깔로 분류할 때 백색꽃이 피는 백도, 백도 중 잎이 겹인 만첩백도, 적색꽃이 겹인 만첩홍도, 붉은빛이 도는 백색 비슷한 꽃이 피는 바래복사로 분류하며, 감처럼 편평한 감복사[납작봉숭아], 열매에 털이 없는 숭도[천도], 씨가 잘 떨어지며 밑부분이 들어가고 끝이 뾰족하며 둥근 용인복사, 잎끝이 셋 또는 결각상으로 갈라지는 풀또기로 분류한다. 이 중 꽃잎이 여러 겹인 만첩백도와 만첩홍도는 꽃을 보기 위해 심는다.

물이 많은 수밀도(水蜜桃), 꽃을 보기 위해 심는 천엽백도, 붉은색 겹꽃이 피는 홍도, 버드나무처럼 처지는 수양복숭아, 키가 작고 어린 가지에 붉은색 줄무늬가 있는 삼색도 등이 있다.

 

복숭아는 형태에 따라 백도, 대구보, 유명, 황도 등으로 구분한다. 백도는 과육이 희고 달며 7월 하순에 익고, 대구보도 과육이 희며 8월 중순에 익고, 유명도 과육이 희며 8월 중순부터 익기 시작한다. 이밖에 과육이 노랗게 익는 황도가 있다. 특히 황도는 추석이 지나서 먹을 수 있는 복숭아이다. 백도와 황도 모두 통조림으로 만들지만 주로 크기가 작은 황도가 호프집 등에서 안주로 팔리면서 유명해졌다. 복숭아는 통조림 말고도 오래 두고 먹는 방식이 있는데 그 중한 하나는 밀가루 풀을 쑤어 식혀서 항아리에 담고 그 속에 물기를 없앤 복숭아를 넣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제철이 지난 복숭아를 즐길 수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 년 전인 백 온조왕 03(15)10월에 벼락이 치고 복사나무와 자두나무 꽃이 피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삼국시대와 고려 및 조선왕조를 거치면서 복숭아는 우리의 귀화 품종으로 자리 잡았으며, 반도(蟠桃), 홍도(紅桃), 벽도(碧桃) 등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복숭아는 도핵인(桃核仁:씨), 도화(桃花:), 도효(桃梟:나무에 달린 마른 복숭아), 도모(桃毛:), 도두(桃蠹:좀벌레), 경백피(莖白皮:속껍질), 도엽(桃葉:), 도교(桃膠: ), 도실(桃實:열매), 급성자(急性子:붉은 빛 작은 복숭아씨)는 물론이고 도부(桃符:복숭아나무에 새긴 부적)까지 모두 질병 치료에 쓴다고 했다.

 

중국 여행 중 우리나라에는 없는 납작 복숭아와 황금복숭아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개복숭아가 건강에 좋다고 매실처럼 익기 전에 효소를 담지만 예전에는 덜 익은 개복숭아를 쪄서 먹기도 했다. 또한 잘 익은 개복숭아는 입으로 깨물면 작 익은 살구처럼 반이 딱 쪼개진다. 그때 입으로 퍼지는 새콤달콤한 맛은 지금 생각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개복숭아도 털이 있는 것과 털이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복숭아가 포함된 속담>

# 장마당 돼지 복숭아 싫달 적 있을가

- 북한어탐욕스러운 사람은 자기 손에 굴러들어온 이익이나 뇌물 따위를 거절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귀신에 복숭아나무 방망이: 귀신이 복숭아나무 방망이를 무서워한다는 데서, 무엇이든 그것만 보면 꼼짝 못 하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돋우고 뛰어야 복사뼈라: 아무리 도망쳐 보아야 별수 없다는 말.

 

<복숭아가 포함된 신체부위>

발목 아래 양쪽으로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뼈의 모양이 둥글어서 복숭아뼈라고 하는데 많은 과일 중에 복숭아로 표현했는지도 궁금하다. ‘복사뼈의 옛말인 복쇼아뼈17세기부터 나타나고 있고, ’복숭아+뼈’의 옛말인 복숭아19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한국문집총간에서는 복사뼈桃骨이라고 표기한 것은 문헌은 오횡묵(吳宖默)󰡔총쇄(叢瑣)󰡕가 유일하다.

 

<복숭아가 포함된 동물>

<우리말샘>을 기준으로 동물에 복숭아가 포함된 것은 대부분이 나비나 나방 등 곤충이며 유일하게 어패류에 복숭아꽃조개’ 1건이 있었다.

 

 

 

홍만선(洪萬選)󰡔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복숭아나무의 재배법이 언급되어 있는데 매우 상세하다. 파종할 때 복숭아 과육을 제거한 후 구덩이를 파서 거름을 넣고 씨의 뾰족한 부분이 아래로 향하도록 심은 뒤 이듬해 싹이 나면 진흙을 붙여 옮겨 심는다고 설명하였다. 심은 지 3년이 되면 열매를 맺고, 5년이면 가장 왕성하며 7년이면 늙고 10년이면 죽는다고 하였다. 심은 지 3년째 되는 해 곧게 자란 대여섯 줄기의 껍질을 날카로운 칼로 그어 찢어주면 그 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하였는데, 이 방법은 감나무가 해거리를 막으려고 일부러 날카로운 돌로 가지 사이에 상처를 내는 것과 유사하다. 시골에서 하우스에서 수박 모종을 포트에 심을 때 싹을 빨리 틔우기 위해 쪽가위로 뾰족한 부분을 자른 기억이 있다.

 

 

 

 

<복사꽃과 복숭아에 대한 사랑>

조선시대 사람들의 복숭아 사랑은 남달랐던 것 같다. 사군자에 대한 내용도 물론 많지만 먹는 과일 중에서 유독 복숭아에 대한 느낌이 남달랐던 것 같다. 서거정의 󰡔四佳詩集󰡕에는 복숭아나무를 옮겨 심은 박윤검(朴允儉)에게 보낸 시()가 있고,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어린 복숭아나무를 옮겨 심고 지은 시가 실려 있다.

이덕무(李德懋)󰡔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마당에 심은 아홉 그루의 복숭아나무에 대한 단상이 기록되어 있다. 처마 높이 되는 복숭아나무에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면 때로 서늘한 그늘에서 복숭아 잎을 따서 글씨를 쓰는 지금이 내 생에서 몇 안 되는 행복한 시간임이며 사람이 살면서 과연 1년이나 한 달에 중에 기쁠 때가 얼마나 있겠으며 하루 중에 기쁜 시간이 얼마냐고 반문하며 세상 근심 없어 하늘 밖에 구름처럼 노닐며 기쁘게 세월을 마치는 지인(至人)을 부러워한다.

 

<복사꽃>

이상정(李象靖)󰡔대산집(大山集)󰡕에는 4월에 산촌 초가에서 바라본 늦게 핀 복숭아꽃에 대한 감회를 읊은 시가 있다.

 

산촌에는 온종일 찾는 객이 드물어 / 盡日山村客到稀

초가에는 적막하게 사립문이 닫혀 있네 / 茅齋寂寂掩柴扉

창을 열면 오직 도화만 보이는지라 / 開窓只對桃花面

봄 석 달이 이미 다 간 줄도 몰랐네 / 不記三春已盡歸

 

박세당의 󰡔서계집(西溪集)󰡕에는 시냇가에 심은 천 그루의 복숭아나무에서 분홍색 꽃이 활짝 핀 모습을 읊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시냇가에 손수 심었던 복숭아나무 천 그루 / 傍溪手種桃千樹

금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꽃을 피웠네 / 得到今年初見花

거처가 무릉과 비교하면 깊고 또 외지니 / 居較武陵深更僻

그 누가 이곳에 인가가 있는 줄 알리오 / 何人知此有人家

 

김상헌(金尙憲)󰡔청음집(淸陰集)󰡕에는 죽음(竹陰)의 작은 복숭아나무에 이미 늦은 봄이 되어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작은 복사꽃이 피었다고 떨어지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성 북쪽서 정원 좋기 첫째가는 집인데도 / 城北名園第一家

겹 대문을 닫아걸어 가 볼 길이 끊어졌네 / 重門深銷斷經過

주인 아직 안 왔는데 봄은 먼저 저물어서 / 主人未到春先老

작은 복사 붉고 흰 꽃 피었다가 떨어지네 / 開落小桃紅白花

 

이관명(李觀命)󰡔병산집(屛山集)󰡕에는 1010여 일을 관소 안에서 지내느라 관소 밖에 천 그루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지만 본인은 가보지 못하고 소식으로만 전해 듣고 시로 대신 감흥을 노해한 시가 있고, 윤근수(尹根壽)󰡔월정집(月汀集)󰡕에는 하나의 복숭아나무에 세 가지 색깔의 복사꽃을 바라보면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는 시도 실려 있다.

조호익(曺好益)󰡔지산집(芝山集)󰡕에는 지산(芝山)으로 이사와 살면서 시냇가에 제방을 쌓고 제방 위에 복숭아나무를 심은 진짜 이유가 시냇물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곳이 무릉도원임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도화동시축발(桃花洞詩軸跋)은 한양의 북악(北岳) 아래에 있었던 도화동에 대해 읊은 시축에 대한 발문이다. 조선시대 혜화문[東小門] 밖 동소문동 일대에는 복숭아나무가 많아 도화동(桃花洞)’이라고 불렀다. 청헌(淸軒) 문성(文晟)이 이 마을에 살았고,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옛 집터도 있었다. 연암은 도화동시축발(桃花洞詩軸跋)에서 도화동의 풍경을 보고 한 나무도 복사 아닌 것이 없고 한 가지도 꽃이 피지 않은 것이 없어, 온후하면서도 빼어나게 환해서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이 가라앉고 기()가 평온해지니, 평소의 편벽된 성품이 어찌 이에 이르러 누그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도화동에 핀 복사꽃에 대해 감탄하며 시를 지었다.

 

복사꽃 빛깔을 내 처음 보니 / 我見桃花色

발끈 성낸 모습 생동하는 듯 / 勃然如有神

복사꽃도 역시 향기가 있어 / 亦有桃花香

바람이 불면 사람 향해 뿜어 대네 / 臨風噴射人

꽃망울은 팥알만 한 불상 같고 / 菩蕾如豆佛

뒤집힌 잎사귀는 느슨해진 활 같네 / 反葉學弨弓

향기와 빛깔 모두 형체에 덧붙은 것일 뿐 / 香色皆附質

생명력은 도로 공()을 따라 사라지네 / 生意還從空

 

 

 

 

 

<복숭아>

이색의 󰡔목은시고(牧隱詩藁)󰡕에는 작은 복숭아를 읊다.라는 시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작은 복숭아가 개복숭아를 말하는지 아니면 큰 복숭아의 어린 것을 말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작은 복숭아가 익었다는 말로 볼 때 개복숭아라고 생각된다. 색이 푸르고 볼이 시다는 표현으로 볼 때 아직은 설익은 상태의 복숭아이다.

 

작은 복숭아 막 익어 푸르고 동글동글한데 / 小桃初熟碧團團

흰 살을 살살 씹으니 이와 볼이 시리어라 / 細嚼氷肌齒頰寒

동방삭과 소아가 몇 번이나 훔쳐먹었던고 / 方朔小兒偸幾度

봉래산은 붉은 구름 끝에 희미하기만 하네 / 蓬萊縹渺紫雲端

 

김종직의 󰡔점필재집(佔畢齋集)󰡕에는 한종유(韓從兪)가 복숭아를 보내며 보낸 시를 차운한 내용이 나온다. 복숭아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시()에서 묘사한 상도(緗桃)’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점필재 역시 서왕모가 살던 동네에 있는 종자는 아니지만 몸에 윤기가 날 만큼 맛있다고 칭찬하였다.

 

담황색 복숭아 좋은 과실이 있어 / 緗桃有佳實

이것이 완화옹에게서 왔는데 / 來自浣花翁

요지에서 자란 종자는 아니지만 / 不是瑤池種

수척한 용모를 윤택하게 할 만하네 / 猶堪澤瘦容

 

이민구(李敏求)󰡔동주집(東州集)󰡕에는 뜰 앞에 작은 복숭아나무에 포도처럼 주렁주렁 해마다 천 개의 복숭아가 수확하였다고 하였는데, 현재의 복숭아나무 한 그루에서 달린 개수라고 하기에는 숫자가 많다. ()의 내용에 반도(蟠桃)’라는 단어가 있지만 아마도 야생종인 개복숭아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또한 수확 시기도 지금처럼 한여름이 아닌 가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남효온(南孝溫)󰡔추강집(秋江集)󰡕에는 수락산(水落山)에 청은(淸隱) 김시습을 찾아가다가 계곡에서 만난 복숭아로 주린 배를 채웠다는 시가 있다.

 

 

 

<복숭아를 제사에 올리는 문제>

이익(李瀷)󰡔성호사설(星湖僿說)󰡕「천도(薦桃)에는 복숭아를 제사에 올릴 수 있느냐 없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공자가어(孔子家語)󰡕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공자는 복숭아가 하품이어서 제사에 쓰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제사에 올리는 과일 중에 복숭아 포함되어 있으니 󰡔공자가어󰡕의 말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자가 복숭아를 제사에 올리자 않는다고 한 말은 노나라 사람들이 복숭아를 천대하기 때문에 성인께서 세속을 들어 말한 것이지 본심은 아닐 것이라면서 지금 심는 복숭아는 과일 중에도 좋은 품종이니 제사에 쓰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하였다.

 

 

<국왕과 신하의 무능함을 비판>

진화(陳澕)󰡔매호유고(梅湖遺稿)󰡕에는 도원가(桃源歌)를 통해 백성들의 피폐한 생활상과 무능한 국왕과 그 밑에 있는 탐관오리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탐관오리가 없으면 바로 그곳이 무릉도원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후대 사람들이 잊지 않기를 당부하였다.

 

……

한스러운 것 백성들 생업이 날로 피폐해지는데 / 所恨居民產業日零落

고을 관리 세미 걷으러 문 두드리는 것 / 縣吏索米將敲門

다만 찾아와서 핍박하는 바깥일만 없다면 / 但無外事來相逼

산마을 곳곳이 모두 다 도원이리 / 山村處處皆桃源

이 시에는 뜻이 있으니 그대는 버리지 말고 / 此詩有味君莫棄

고을 기록에 적어 두었다가 자손에게 전하게 / 寫入郡譜傳兒孫

 

 

 

<복숭아나무로 인생을 비유한 내용>

윤기(尹愭)󰡔무명자집(無名子集)󰡕에는 화려한 꽃을 뽐내는 복숭아와 살구를 보잘 것 없는 가죽나무를 통해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인생을 재미나게 비유한 글이 실려 있다. 정원 안에 심어진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는 부귀한 경화갑족의 자제를 의미하고, 정원 밖에 사는 가죽나무는 출신이 한미한 사람을 가리킨다. 부귀한 집안의 자제는 좋은 재목이면 도끼로 베어지는 환란을 당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복숭아나무처럼 결국 횡액을 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에 비해 권력의 담장에서 배제된 한미한 가문의 사람은 자신의 천성대로 즐거움을 누리며 천수를 다할 수 있다고 노래한 시이다. 자신은 담장 밖의 사람이므로 겉보기만 화려할 뿐 끊임없이 시달리는 복숭아나무보다는 가죽나무처럼 천성대로 사는 삶을 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원 안엔 복숭아나무 / 園中有桃杏

정원 밖엔 가죽나무 / 園外有樗櫟

복숭아나무는 사랑받지만 / 桃杏足愛憐

가죽나무는 찬밥 신세 / 樗櫟本疎逖

복숭아나무는 애지중지 가꾸지만 / 栽護費人力

가죽나무는 울퉁불퉁 천성대로 사네 / 擁腫乃天錫

정원 안은 몹시 번잡하지만 / 園中極閙熱

 

정원 밖은 사뭇 적막하네 / 園外殊寥閴

이러한 부귀하신 용모로서 / 以此富貴容

늘 적적한 가죽나무 비웃네 / 笑彼長寂寂

 

 

 

<복숭아를 보낸 것에 대한 감사>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前集)󰡕에는 복숭아를 보낸 현 상인(玄上人)에게 사례하는 시와 시랑 이수(李需)가 복숭아를 선사하는 시에 차운한 시도 실려 있고, 차천로의 󰡔오산집(五山集)󰡕에도 윤자장(尹子長)이 복숭아를 보내온 것에 대해 사례하는 시가 있고, 󰡔용헌집(容軒集)」「이 참판과 권일민(權逸民)이 복숭아를 보내 주어 사례하는 시가 수록되어 있고, 김성일의 󰡔학봉집(鶴峯集)󰡕에는 고계화상(古溪和尙)이 복숭아를 보내 준 데 대해 사례하는 내용의 시가 있고, 황준량(黃俊良)󰡔금계집(錦溪集)󰡕에는 길을 가는 중에 유생에게 큰 복숭아를 대접받고 즉석에서 시로 사례하는 내용도 실려 있다.

아래는 이민구(李敏求)󰡔동주집(東州集)󰡕에 김지(金芝)가 보주낸 복숭아에 감사하는 시이다.

 

그윽한 사람이 복숭아 보내 주니 / 幽人肯餽園桃實

둥글고 붉은 가을 얼굴 한껏 싱그럽다 / 秋頰圓紅滿意新

늙은이의 지나친 감개 이상타 마오 / 莫怪老翁偏感慨

생각해 보니 봄날 궁궐에서 훔쳤었지 / 憶曾偸取漢宮春

 

이민구는 김지(金芝)가 보내준 복숭아를 한껏 칭찬하였다. 둥글고 붉은 얼굴이라고 묘사하여 나의 표현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전혀 준다면 분명 내년에도 큰 바구니에 복숭아를, 아니 해마다 복숭아를 보내주고 싶은 생각이 들것이다. 마침 이글을 쓰고 있는 계절이 바로 복숭아의 계절이라 이 시가 마음에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특이한 복숭아>

#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옛날의 필기(筆記)에 울릉도(鬱陵島)의 복숭아가 박처럼 크다는 말을 듣고 믿지 않았는데 어느 옥당(玉堂)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삼척부(三陟府)에 갔다가 복숭아 하나를 보았는데, 이는 장마에 떠내려온 것을 주운 것이었소. 그 절반은 벌레가 파먹었는데도 크기가 오히려 사발만큼이나 되었소.” 하였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文獻備考事實󰡕에도 실려 있는데, “복숭아씨가 큰 것은 술잔이나 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울릉도 복숭아의 크기를 상상할 수 있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또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 척독(尺牘)에 나오는 꼭지가 마주 붙은 특이한 복숭아가 소개되어 있다.

 

 

<복숭아 그림에 대한 화제>

윤기(尹愭)󰡔무명자집(無名子集)󰡕에는 반도해학도(蟠桃海鶴圖)에 대한 화제(畵題)가 실려 있다.

 

복숭아나무는 삼천 년에 한 번 열매 맺는데, 남쪽 창가의 저 아이는 몇 번을 몰래 따 먹었을까? 학은 곁에 있었으니 실상을 알리라.

 

제사(題詞)의 내용으로 보아 이 그림은 오래되어 옹이 지고 구불구불한 복숭아나무에 열린 선도(仙桃)를 남쪽 창가의 사내아이가 쳐다보고 있고 그 곁에 학이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기원하는 민화(民畫)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의 일종으로 추정된다.

 

[그림] 群鶴十長生圖吳桂煥 所藏서울

 

 

<복사꽃으로 담은 술>

홍만선(洪萬選)󰡔산림경제󰡕에는 도화주(桃花酒) 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매우 독특하다. 복숭아꽃이 필 때 술을 담는 것이 아니고 멥쌀가루에 끊는 물을 넣어 식힌 뒤 누룩가루와 밀가루를 항아리에 넣어 둔 상태에서 복숭아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복숭아꽃이 만발하면 멥쌀과 찹쌀을 불린 상태에서 끊는 끊인 물을 식혀서 쌀과 섞고 거기에 복숭아꽃을 바닥에 깔고 밑술과 함께 넣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월에 깨끗이 쓴 멥쌀[粳米] 2말 가웃을 매 씻어서 가루로 만들고, 흐르는 물[活水] 2말 가웃을 팔팔 끓여 고루 섞어 식힌 뒤에 누룩가루밀가루 각각 1되씩 독에 넣고, 봉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까지 기다린다. 이 시기가 되면 멥쌀찹쌀 각각 3말씩을 매 씻어 하룻밤 물에 불려 쪄서 흐르는 물 6말을 팔팔 끓여 식힌 뒤에 고루 섞는다. 밥이 완전히 식거든 봉숭아꽃 2되를 따서 먼저 독 바닥에 깔고, 먼저 빚은 술밑과 함께 넣고, 봉숭아꽃 두어 가지를 그 가운데 꽂아 놓았다가 익은 뒤에 술통에 뜬다.

 

김수항(金壽恒)󰡔문곡집(文谷集)󰡕에는 김수항이 16643월에 영릉(寧陵)의 제관이 되었다가, 전주(銓注) 문제로 파직되어 양주의 광릉 부근의 석실 서원으로 내려갔을 때 있을 때 무하당(無何堂) 홍주원(洪柱元)이 새로 빚은 복숭아술을 나누어 주어준 이야기가 보인다.

 

 

진루에서 당일에 쫓겨나 있던 생각하사 / 秦樓當日念漳濱

복사꽃에 누룩과 쌀로 빚은 술 멀리 부치셨지 / 遠寄桃花麴米春

떠도는 지금 친애의 정 끊어졌으니 / 流落只今親愛絶

초강에 홀로 술 깬 사람 누가 기억할까 / 楚江誰記獨醒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