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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베이징 중국고고박물관_중국역사연구원

2024_0820_중국고고박물관5_문명기원(文明起源)5

by isanjo 2024. 11. 27.

2024_0820_중국고고박물관5_문명기원(文明起源)5

#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5

 

<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

 

중화문명탐원공정의 전칭은 "중화문명기원과 조기발전 종합연구"로서 국가 "9.5" 중점과학기술난제해결프로젝트 - "하상주단대공정"에 이어 국가가 지원하는 또 하나의 여러 학과가 중국고대의 력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중대한 과학연구프로젝트이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베이징대학 고고문박학원을 주요 담당단위로 고고학조사 발굴을 관련자료 획득의 주요 수단으로 하고 현대과학기술을 지탱으로 여러 학과가 교차연구의 방식으로 진행하며 국가 "十五" ,"十一五", "十二五" 과학기술 난관 돌파, 과학기술 지탱 프로젝트이다. 2002년 6월 말 탐원공사가 예비성 연구를 시작한 이래 2016년 12월까지 공사 4단계는 이미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현재 연구의 5단계에 들어섰다.
중화문명탐원공정이 이룩한 풍성한 성과는 중화민족 5000여년의 문명기원과 조기발전과정을 제시하였다. 지금으로부터 5800년을 전후하여 황하, 장강 중하류 및 서요하 등 지역에 문명의 기원 징후가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5300년 이래 중화대지의 각 지역은 계속하여 문명단계에 들어섰으며, 지금으로부터 3800년을 전후하여 중원지역은 더욱 성숙된 문명형태를 형성하고 아울러 사방에 문화영향력을 방출하여 중화문명의 모든 발달과정의 핵심과 인도자로 되었다 .중화문명탐원공정프로젝트에서 이룩한 또 하나의 중대한 성과는 중화문명의 다원일체구도의 형성에 대해 총체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중화문명의 "다원일체, 겸용병축, 면면부단"의 총체적인 특징을 실증하였다.

 

# <中華文明探源工程>

中华文明探源工程全称是“中华文明起源与早期发展综合研究”, 是继国家“九五”重点科技攻关项目 “夏商周断代工程”之后, 又一项由国家支持的多学科综合研究中国古代历史与文化的重大科研项目。由中国社会科学院考古研究所和北京大学考古文博学院为主要承担单位, 以考古调查发掘为获取相关资料的主要手段, 以现代科学技术为支撑, 采取多学科交叉研究的方式进行, 是国家“十五”“十一五”“十二五”科技攻关、科技支撑项目。自年6月末探源工程启动预备性研究, 至2016年12月工程第四阶段已顺利结项, 目前进入到研究的第五阶段。

中华文明探源工程取得的丰硕成果, 揭示了中华民族五千多年文明起源与早期发展过程。距今5800年前后, 黄河、长江中下游以及西辽河等区域出现文明起源迹象; 距今5300年以来, 中华大地各地区陆续进入文明阶段;距今3800年前后, 中原地区形成更为成熟的文明形态, 并向四方辐射文化影响力, 成为中华文明总进程的核心与引者。中华文明探源工程项目取得的另一项重大成果, 是对中华文明多元一体格局的形成有了总体认识, 并证实了中华文明“多元一体、兼容并蓄、绵延不断”的总体特征。

 

 

# <관묘산유지>
호북성 지강시 문안진 관묘산촌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약 3만이다. 대계문화(약 기원전 4400~기원전 3300년)와 굴가령문화(약 기원전 3000~기원전 2300년)의 유물을 포함한다. 발견 유적은 주로 집터와 무덤, 회갱[재 구덩이] 등이 있으며 출토 유물은 토기와 석기를 위주로 한다.

 

# <关庙山遗址>

位于湖北省枝江市问安镇关庙山村。面积约3万平方米。包含大溪文化(约公元前4400~公元前3300年)和屈家岭文化(约公元前3000~公元前2300年)遗存。发现遗迹主要有房址、墓葬和灰坑等, 出土遗物以陶器和石器为主。

 

◆ 채도(彩陶) 그릇받침.

 

 

◆ 분형채도두(盆形彩陶豆)_ 동이 모양 채도 두(豆)

 

 

도(陶) 그릇받침.

 

 

◆ 도두(陶豆)

 

 

◆ 채도분(彩陶盆)

 

 

◆ 쌍복도완(雙腹陶碗)

 

 

채도관(彩陶罐)

 

 

◆  편복채도관(扁腹彩陶罐)_배가 납작한 채도 단지.

 

 

◆  단이채도배(單耳彩陶杯) 

 

 

 

 

◆  통형도병(筒形陶甁)

 

 

 

 

◆  채도호형기(彩陶壺形器)

 

 

#<성하유적>
장강중류 신석기시대의 중요한 성터로 호북성 형문시 사양현 후항진 성하촌에 위치해있으며, 지금으로부터 5000~4300년이다. 현재  5000년전 4.8m에 달하는 성벽을 볼수 있다. 성벽 및 내면적은 약 70만㎡이고 성밖의 대형 환호와 환진은(環鎭), 북성벽 밖은 200m 내외의 대형묘지가 있다. 성내에는 인공수계ㆍ중심광장ㆍ대형정원식 건축ㆍ일반거주지ㆍ제사유물,ㆍ도기생산구역 등이 배치되어 있다. 환호의 가장 넓은 곳은 61m, 깊이는 6m 이상이다. 묘지에는 235기의 무덤이 있고, 면적이 10㎡ 이상인 대형무덤이 7기이며 규격이 가장 높은 112호 묘의 면적은 22.4㎡에 달하고 옥월(玉鉞)ㆍ석월(石鉞)ㆍ상아기(象牙器)ㆍ칠기(漆器) 등 중요한 기물이 수장되어 있다. 이것들은 모두 높은 등급의 유지이며, 또 당시 이미 뚜렷한 사회 분화가 나타났으며, 다른 지역과 상당한 문명 여정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 <城河遗址>

长江中游新石器时代重要城址, 位于湖北省荆门市沙洋县后港镇城河村, 距今5000~4300年, 目前公然可见5000年前高达4.8米的城墙。城墙及以内面积约70万平米, 城外大型环境环绕, 北城垣200米左右有大型墓地。城内布局有人工水系、中心“广场”、大型院落式建筑、一般性居址、祭祀遗存、陶器生产区等;环壕最宽处达61米、深6米以上;基地有墓葬235座, 面积在10平方米以上的大型墓葬有7座, 规格最高的112座号基达22.4平方米, 随葬有玉城、石城、象牙器、面积漆器等重要器物。这些都表明, 是一处高等级地点, 且当时已出现明显的社会分化, 呈现出与其他地区相当的进程文明遊程。

 

◆ 도관(陶罐)

- 신석기시대 굴가령문화

- 호북 사양현 성하유지

 

 

 도관(陶罐)

- 신석기시대 굴가령문화

- 호북 사양현 성하유지

 

 

◆ 도두(陶豆)

- 신석기시대 굴가령문화

- 호북 사양현 성하유지

 

 

◆ 도두(陶豆)

- 신석기시대 굴가령문화

- 호북 사양현 성하유지

 

* 모양이 특이하다.  

 

 

◆ 도두(陶豆)

- 신석기시대 굴가령문화

- 호북 사양현 성하유지

 

 

◆ 도두(陶豆)

- 신석기시대 굴가령문화

- 호북 사양현 성하유지

 

 

쌍복도두(雙腹陶豆)

- 신석기시대 굴가령문화

- 호북 사양현 성하유지

 

 

도증(陶甑)_질시루

- 신석기시대 굴가령문화

- 호북 사양현 성하유지

 

 

# 중국은 세계에서 옥 채굴과 사용이 가장 빠르고, 가장 광범위하며, 가장 오래 지속되는 나라이다. 옥은 신석기시대에 하늘과 땅을 소통하는 사자였고, 하상주(夏商周)시기에는 국가의 예악체계의 핵심담체였으며, 진한시기 이후에는 수신유덕(修身喻德)의 상징이 되었다.
《예기(禮記)·학기(學記)》에는 "옥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옥을 다듬는다는 것은 고대 옥기 제작의 총칭이다. 신석기시대의 옥을 다듬는 공예는 상대적으로 간단하며, 절차는 주로 재료 선택, 절단, 구멍 뚫기(무늬 새김), 다듬기와 광택 등 절차가 있으며, 석기 제작과 비슷하다. 하상(夏商)시기에 옥 제조공예는 전문업종으로 되었다. 청동, 철 등 금속공구의 운용에 따라 기예수준과 공예절차의 분업이 더욱 세분화되어 청조말기에 이르면 13단계 옥기제작의 완전한 절차가 형성되였다. (청조말기 이징연의 ≪ 옥작도(玉作圖)≫ 참조).

 

中国是世界上开采和使用玉最早、最广泛、延续最长的国家。玉在新石器时代是沟通天地的使者, 在夏商周是国家礼乐体系的核心载体, 秦汉后则成为修身喻德的象征。

《礼记·学记》记载“玉不琢, 不成器”, 琢玉是古代玉器制作的总称。新石器时代的琢玉工艺相对简单, 流程主要有选料、切割、钻孔(刻纹)、打磨抛光等程序, 和石器制作相近。夏商时期, 制玉工艺成为专门行业, 随着青铜、铁等金属工具的运用, 技艺水平和工艺流程分工更细, 至清代晚期形成了十三道玉器制作完整流程(参见清末李澄渊的《玉作图》)。

 

# <신석기시대 옥기 제작 공정도>
1.재료선택: 신석기시대 초기에 사람들은 광택도가 좋고 질감이 온윤한 미석을 옥으로 여겼는데, 후에 점차 의식적으로 투섬석연옥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다듬거나 다듬는 방식으로 가공하다.
2. 절단: 슬라이스 절단이나 선 절단으로 절단이나 펀칭 제작에 많이 사용된다. 사용 시 양손에 각각 밧줄의 한쪽 끝을 잡고 물에 찍어 옥사(玉砂)를 해체하여 몸 방향으로 반복적으로 톱질을 하여 부분적으로 옥사를 분해하여 밧줄에 끼워 넣어 옥재를 소모하는 목적을 달성한다.
3-1. 드릴링: 스레드 드릴이나 파이프 드릴. 정 (ting) 드릴: 나무, 뼈 등 원추형 도구로 구멍을 뚫는다. 단면 드릴과 양면 대드릴 두 가지가 있다. 그런 뒤에 연마봉을 통해 구멍을 섬세하게 다듬는다. 파이프 드릴: 드릴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하나는 실심(空芯:속이 찬 것 )이고 하나는 공심(空芯:속이 빈 것)이며 기타 원리는 같다.
3-2.문양 새김: 신석기시대 말기에 옥기 표면에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주로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타구(砣具) , 직인(直刃)을 사용하여 새기고, 경도가 비교적 높은 뾰족하고 예리한 기물을 사용하여 맨손으로 새기는 것이다.
4.다듬기(광택): 다듬기와 광택은 옥기 제작의 마지막 공정이자 옥을 다듬에 그릇을 만드는데 관건이 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먼저 다듬어 가공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옥기의 외형을 다듬은 다음, 다시 숫돌, 옥사를 사용하여 그 표면이나 칼날, 공벽을 다듬고, 그 후 짐승의 가죽, 나무 조각 등 도구로 기물의 표면을 광택을 내어 광택이 나고 밝게 하여 옥질과 빛깔을 부각시킨다.(참고자료 ≪ 옥회금사 ≫ 와 ≪ 옥기원탐색 ≫)

 

# <新石器时代玉器制作流程图:>

1.选料: 新石器时代早期, 人们将光泽度好的、质感温润的美石看作玉,后来逐渐开始有意识的选择透闪石软玉。采用打制或琢 制方式加工。

2.切割: 片切割或线切割, 多用于切割或镂空的制作。使用时 双手各执线绳一端, 以水蘸取解玉砂朝身体方向反复拉锯, 以便部分解玉砂嵌入线绳之中, 达到消耗玉料的目的。

3-1.钻孔: 程钻或管钻。程(ting)钻: 用木、骨等锥状工 具进行打孔, 有单面钻和双面对钻两种, 然后通过研磨棒将孔道打磨细腻。管钻; 与程钻唯一不同之处在于一个是实芯一个空芯,其他原理相同。

3-2.刻纹: 新石器时代晚期, 玉器表面开始装饰精美的刻纹。 方法主要有三种: 使用砣具、直刃工具刻划、硬度较高的尖锐器徒手刻划。

4. 打磨(抛光): 打磨抛光是玉器制作的最后一道工序, 也是琢玉成器的关键环节。一般先采用琢制加工的方式, 将玉器外形琢成, 然后再用磨石、解玉砂对其表面或刃部、孔壁进行打磨, 随后用兽皮、木片等工具对器物表面进行抛光, 使其光润明亮, 凸显玉质和色泽。(参考资料《玉汇金沙》和《玉器起源探索》)

 

 

# <서파유적>
하남성 영보시 양평진 서파촌에 위치해있는데, 앙소문화 묘저구유형 핵심지대의 중심형묘집락으로서 면적이 40만㎡이다. 앙소문화 중기((약 4000~3500년)의 전형적인 유지이다. 배치 구조는 앙소문화의 초기 취락과 현저하게 다르다. 취락은 참호로 둘러싸여 있고 중심지대에 가깝다. 대형과 중형의 집터 유지 중 가장 큰 집터의 면적은 516 이고 실내 면적은 204㎡로 교류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이다. 중형 집터는 75~106㎡로 귀족 가정이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참호 밖에서는 묘지가 발견되었고, 비교적 큰 무덤에서는 부장품이 많았으며, 작은 무덤에서는 부장품이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유지의 거주와 장례 형태는 사회등급의 출현과 사회분화를 의미하며, 앙소문화 중 초기의 복잡한 사회를 대표한다.

 

# <西坡遗址>

位于河南省灵宝市阳平镇西坡村, 是仰韶文化廟底沟类型核心地带的中心型庙聚落, 面积40万平方米。仰韶文化中等(约4000~3500年)典型布局。布局结构与仰韶文化早期聚落显着不同, 聚落以壕沟环绕, 接近中心地带是一组大中型房址最大的一个房址面积516平方米, 室内面积204平方米, 可能进行交往活动的场所。中型房址面积为75~106平方米, 可能为贵族家庭居住。壕沟外发现有墓地, 扩大的墓葬随葬品多、小墓中不见随葬品。一般安置的居住和丧葬形态意味着社会等级的出现和社会礼仪, 代表了仰韶文化中早期的复杂社会。

 

◆ 도발(陶鉢)

- 신석기시대 앙소문화 묘저구유형.

- 하남성 영보시 서파유지

 

 

 도발(陶鉢)

- 신석기시대 앙소문화 묘저구유형.

- 하남성 영보시 서파유지

 

 

◆ 좌: 골잠(骨簪) 뼈비녀

◆ 중: 골추(骨錐) 뿔송곳

◆ 우: 옥월(玉鉞) 옥도끼

- 신석기시대 앙소문화 묘저구유형.

- 하남성 영보시 서파유지

 

 

◆ 도병(陶甁)

- 신석기시대 앙소문화 묘저구유형.

- 하남성 영보시 서파유지

 

 

◆ 도부조(陶釜竈)

- 신석기시대 앙소문화 묘저구유형.

- 하남성 영보시 서파유지

 

# 서파유적지에서 발견된 질솥아궁이는 모두 11세트로서 각기 11기의 무덤에서 나왔다. M14의 솥아궁이는 무덤 주인의 발부분 구덩이에 놓여 있었다. 아궁이는 협사도[모래도자기]만들었는데 어깨는 북돋아 있고 입구는 오무라져 있고 아가리에는 3개의 지지대가 있다. 안쪽 벽에는 3개의 원형 연기 구멍이 있고, 바닥에는 4개 발이 있는데 3개의 발은 앞에 1개의 발은 뒤에 있다. 그 중 2개의 발은 아궁이 입구 양쪽을 관통하여 마치 쭈그리고 앉아 있는 새의 발과 같은데, 그 위에 깃털 모양의 무늬가 찍혀 있고 땅에 닫는 부분에는 발가락 모양이 새겨져 있다. 아궁이 안쪽에는 진흙 쟁반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황하 유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섬서성산서성하남성[陝晉豫]이 교차하는 접경 지역은 뚜렷한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

 

西坡遗址发现成组陶釜灶共11套, 分别出自11座墓葬。M14的釜灶放置于墓主的脚坑。灶为夹砂陶, 鼓肩, 敛口, 口缘设三个支丁, 膛壁上有3个圆形出烟孔, 底部四足, 三足在前一足在后, 其中二足由灶膛口两侧贯通而下, 如蹲踞的鸟足, 其上压印出羽 状纹, 落地处刻出趾形, 灶膛内可见泥条盘筑痕迹。集中出现在黄河流域的陕晋豫交 界地区, 具有明显的地域性。

 

 

도궤형기(陶簋形器)_궤 모양 그릇

- 신석기시대 앙소문화 묘저구유형.

- 하남성 영보시 서파유지

 

 

 

#<조용비유지>
앙소시대 이래로 각 지역의 원시거주민 사이에는 연계가 끊임없이 증강되었다. 특히 일부 문화가 합류하는 지대에서는 여러가지 요소의 문화융합현상이 흔하게 나타났다. 조룡비유지(약 기원전 4200~기원전 2700년)는 호북성 조양시 녹두진 무장촌에 위치해 있다. 지리적으로 황하유역과 장강유역의 합류점에 있으며 문화양상은 앙소문화, 대계문화와 굴가령문화 등 여러가지 문화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앙소문화가 초기에는 단칸방이 유행되었것 것과 달리 이 유적지에 새로 나타난 여러 칸짜리 방은 가족세력이 흥기하는 것의 반영이고, 방안에는 공간을 절약하기 위해 설치한 미닫이문은 중국 최초의 미닫이문의 실례이다.


# <雕龙碑遗址>

仰韶时代以来, 各地区原始居民间的联系不断增强, 特别在一些文化交汇地带, 往往出现多种因素的文化融合现象。雕龙碑遗址(约公元前4200~公元前2700年)位于湖北省枣阳市鹿头镇武庄村, 地处黄河流域与长江流域的交汇处, 文化面貌呈现出仰韶文化、大溪文化和屈家岭文化等多种文化因素。与仰韶文化早期流行单间房不同, 该遗址新出现的多间房是家族势力兴起的反映, 房内为节省空间而设置的推拉门则是我国最早的推拉门实例。

 

 

부배권족도반(附杯圈足陶盤)_잔이 붙은 통발 소반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

 

 

 

소도호(小陶壺)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

 

*검은색 흙으로 만들었다.

 

 

채회공심도구(彩繪空心陶球)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

 

 

도구(陶球)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

 

 

령형도기(鈴形陶器)_방울모양 도기.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

 

 

도정(陶鼎)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

 

 

채도관(彩陶串)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

 

 

도정(陶鼎)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

 

 

도분(陶盆)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

 

 

◆ 통형도병(筒形陶甁)

- 신석기시대

- 하북 조양시 조룡비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