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역사박물관 근대관 (5) (2026)
6.0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일본 침략자에 맞서다
상해(상하이)는 침략에 반대하여 투쟁해 온 전통을 가진 도시이다. '1·28'과 '8·13' 두 차례의 송호항전(상하이 전투)에서 중국 군대는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 피비린내 나는 혈전을 벌였으며, 두 번 모두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중국 공산당의 항일 민족 통일 전선의 기치 아래, 상해 인민들은 다양한 형태로 일본 침략자들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였고, 인적·물적·재정적 자원을 동원해 신사군과 전국 각지의 항일 군대를 지원했다. 동시에 국내외의 진보적인 인사들이 서로 지지하고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상해는 세계 반파시즘 투쟁 통일 전선의 중요한 전장이 되었다. 고난과 역경의 항전 기간 동안 상해의 각계각층은 정의로운 투쟁을 멈추지 않았으며, 고귀한 민족적 기개를 보여줌으로써 마침내 항일 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 同心戮力 抗擊日寇 JOINING HANDS TO FIGHT AGAINST JAPANESE INVADERS
上海,是一座具有反侵略鬥爭傳統的城市。在一·二八、八·一三兩次淞滬抗戰中,中國軍隊為反抗日軍侵略浴血奮戰,兩度重創日軍。在中國共產黨抗日民族統一戰線旗幟下,上海人民以各種形式展開反對日本侵略者的鬥爭,並以人力、物力、財力支援新四軍和全國各地抗日軍隊。同時,中外進步人士相互支持、通力合作,使上海成為世界反法西斯鬥爭統一戰線的重要戰場。在艱苦卓絕的抗戰歲月裏,上海各界從未停止過正義鬥爭,展現出可貴的民族氣節,最終贏得抗日戰爭的偉大勝利。
6.1 두 차례의 송호지전(淞滬之戰: 상하이 전투)
1932년과 1937년, 상해(상하이)는 국내외를 놀라게 하고 산하를 뒤흔들 만큼 웅장했던 두 차례의 송호지전을 겪었다. 전쟁 중에 각계의 명사들은 앞장서서 소식을 알렸고, 일반 백성들은 만인이 한마음이 되어 고향과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일본 침략자에 맞서 사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거대한 희생을 치렀으나, 이는 동시에 온 나라 국민의 항일 투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다.
1932年和1937年,上海經歷了兩場震驚中外、氣壯山河的淞滬之戰。戰爭中各界名人、奔走相告,普通百姓、萬眾一心,為守護家園與民族尊嚴,與日本侵略者展開殊死搏鬥,付出巨大犧牲,也點燃了全國人民的抗日鬥志。
◆ 근교 농민이 방공호 공사를 도왔다.


◆ 8.13 송호전투[淞滬會戰]

◆ 항일신문 편집국


6.2 구국 운동
9·18 사변(만주사변) 이후, 중국 공산당은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며 대중적인 구국운동을 전개할 것을 주장했다. 두 차례의 송호항전 기간 동안 상해의 각계각층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구망운동에 적극적으로 투신하였으며, 상해는 전국 구망운동의 조직적 중심이자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이는 '고도(孤島)' 시기의 투쟁과 장기적인 항전을 지속할 수 있는 견고한 조직적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 救亡運動 National Salvation Movement
自九一八事變後,中國共產黨就主張開展群衆救亡運動,反對日本侵略。兩次淞滬抗戰期間,上海各界堅定信心,積極投身於救亡運動,上海成爲全國救亡運動的組織中心和活動中心,爲堅持“孤島”鬥爭、長期抗戰打下了堅實的組織基礎。
◆ 상해 각계의 구망운동(救亡運動)

◆ 8.1 선언(宣言)

◆ 일군포고(日軍佈告)
- "일본군의 인가를 받은 출판검사기관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모든 출판물은 일절 출판 및 배포를 금지함. 이를 어기는 자는 엄벌에 처함. 또한 일본군이 인가한 검사 기관은 '상해 홍보부'임."
未經日軍認可之出版檢査機關承認之一切出版物一概禁止出版頒布 故違者處以嚴罰 又日軍認可之檢査機關爲上海弘報部

6.3 문화항전(文化抗戰)
# 20세기 30년대에 상해(상하이)는 "중국 문화의 절반을 차지한다"라는 미명을 가지고 있었다. 두 차례의 송호전역(상하이 전투) 중에 원래 서로 다른 문화 파벌에 속하고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졌던 문인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항전(일본에 맞서 싸움)을 호소했다. 상해가 함락된 후에도 은밀한 문화 활동은 여전히 지속되어, 독자적인 풍격의 '고도(孤島)' 항전 문화를 형성했다.
在 20 世紀 30 年代,上海擁有著 “中國文化半壁江山” 之美譽。在兩次淞滬戰役中,原先分屬不同文化派別、具有不同政治傾向的文人們聯合起來,以各種方式呼吁抗戰;上海淪陷後,隱蔽的文化活動依然持續,形成獨樹一幟的 “孤島” 抗戰文化。
◆ 만화(漫畵)

◆ 신사군(新四軍)을 지원.

6.5 세계 반파시즘의 유대
전쟁의 불길 속에 있는 상해(상하이) 인민들은 고립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시종일관 상해를 주목해 왔다. 세계적인 반파시즘 투쟁 속에서 적지 않은 국제 진보 인사들이 바다를 건너 상해로 찾아와 중국 인민과 함께 항전에 투신했다. 상해 인민들 또한 넓은 흉중으로 이곳을 2차 세계대전 시기 극동 지역에서 가장 이른 난민 피난처로 만들었으며, 파시즘 침략자들에게 똑같이 박해받던 민족들을 굳건히 수호하였다.
#
世界反法西斯紐帶 Tie of World Anti-Fascist War
戰爭烽火下的上海人民並不孤獨,世界各國愛好和平、反對戰爭的人們始終關注上海,在世界反法西斯鬥爭中,不少國際進步人士遠涉重洋來到上海,同中國人民一起投身抗戰;上海人民也以博大的胸懷,使之成爲二戰時期遠東最早的難民庇護地,堅定地守護着同樣遭受法西斯侵略者迫害的民族。
◆ 전 세계의 도시들이 유대인들에게 대문을 닫아걸었을 때, 상해(상하이)는 유일한 예외였습니다.
全世界的城市都對猶太人關上了大門,上海是唯一的例外。 All cities denied access for Jews. Shanghai was the only exception.


7.0 민주주의 쟁취와 도시의 신생
# 항일 전쟁 승리 후, 온 나라 국민은 통일되고 독립적이며 자유롭고 부강한 신중국 건설을 갈망했다. 중국 공산당 상해 당 조직의 지도 아래 상해 인민들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쟁취하며 웅장한 애국 민주 운동을 일으켰다. 해방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시 전체 인민들은 상해 당 조직의 이끌림에 따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내부에서 호응했으며, 중국 인민해방군이 압도적인 기세로 상해를 점령하는 데 협력했다. 이로써 중국 최대의 공상업 도시인 상해를 온전하게 인민의 손에 넘겨주었다. 1949년 5월 27일, 상해의 역사는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 爭取民主 都市新生 FIGHTING FOR DEMOCRACY AND THE REBIRTH OF THE CITY
抗日戰爭勝利後,全國人民渴求建立一個統一、獨立、自由、富強的新中國。在中共上海黨組織的領導下,上海人民積極爭取和平、民主,不斷掀起波瀾壯闊的愛國民主運動。在迎接解放的進程中,全市人民在中共上海黨組織的帶領下積極準備、里應外合,並配合中國人民解放軍以摧枯拉朽之勢佔領上海,把這座中國最大的工商業城市完整地交到人民的手中。1949 年 5 月 27 日,上海的歷史翻開嶄新的一頁。
7.1 민주화 운동
# 전 승리 후, 중국 공산당 중앙은 "평화, 민주, 단결"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으나, 국민당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내전을 일으켰다. 중국 공산당 상해 당 조직은 당의 노선에 따라 세밀한 홍보와 조직 작업을 진행했다.이로써 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각 계층의 시민을 포함하며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을 갖춘, 국민당 통치에 반대하는 '제2전선'이 정식으로 형성되었고, 애국 민주 운동은 이를 계기로 활발히 발전했다.
抗戰勝利後,中共中央提出 “和平、民主、團結” 口號,然而,國民黨不顧國家民族的利益,悍然發動內戰。中共上海黨組織根據黨의 路線, 進行深入細緻的宣傳和組織工作,一個以學生運動為中心,包括各階層市民、具有廣泛群衆基礎、反對國民黨統治的第二條戰線正式形成,愛國民主運動由此蓬勃發展。
◆

# 모택동과 장개석이 함께 찍은 사진

◆ 교육부, 민정국, 지정국 철인



◆


7.2 새벽 전야 (黎明之前)
전면 붕괴에 직면한 국민당 정부는 공산당원과 애국 민주 인사들을 광기 어린 태도로 체포하고 학살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중앙 상해국은 상해 해방 맞이 사업의 기본 방침을 확정한 후, 상해 인민 단체 연합회의 조직과 활동을 회복시켰다. 또한 광범위한 시민과 학생을 발동하여 공장, 기관, 학교 등 도시 공공시설을 보호했으며, 인민해방군과 협력하여 최후의 승리를 쟁취했다.
黎明之前 面臨全面崩潰的國民政府,瘋狂逮捕和屠殺共產黨人和愛國民主人士。而中共中央上海局在確定了迎接上海解放工作的基本方針後,恢復了上海人民團體聯合會的組織與活動,發動廣大市民、學生,保護工廠、機關和學校等城市公共設施,配合人民解放軍奪取最後的勝利.
◆





7.3 상해 해방
1949년 5월 12일 중국 인민해방군 제3야전군은 진의와 속유의 지휘 아래 ‘골동품 가게 안의 쥐를 잡듯’ 정교하고 뛰어난 전술로 적군을 섬멸했다. 전후 그들은 길바닥에서 잠을 자며 인민에게 조금도 민폐를 끼치지 않았고 전 세계가 이 예의 바른 군대 앞에 경의를 표하게 했다. 5월 27일 중국 근대사의 축소판이자 경제·문화의 중심이며 극동 최대 도시였던 상해는 마침내 인민의 손으로 돌아왔다.
上海解放 (The Liberation of Shanghai) 1949 年 5 月 12 日,中國人民解放軍第三野戰軍在陳毅、粟裕指揮下,以 “瓷器店裏打老鼠” 的高超戰術,殲滅了敵軍。戰後,他們席地而臥、毫不擾民,讓全世界對這支文明之師肅然起敬。5 月 27 日,上海,這座反映中國近代歷史縮影的經濟、文化中心、遠東第一大都市,終於回到人民手中.
◆

◆ 국휘(國徽)
- 단대우(單大禹) 기증
- 1950년 6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기 제2차 회의에서 국가 휘장 도안 방안이 통과되었다. 9월 말 첫 번째 국가 휘장들이 상해에서 제작 완료되어 국경절 행사에 사용하기 위해 북경으로 보내졌다. 이 유물은 1950년대에 제작된 국가 휘장이다.

◆ 신화사(新華社) 사론(社論) "축상해해방" 발취.


◆ 중화인문공화국 국가[義勇軍進行曲]
- 田漢 作詞 / 聶耳 作曲
-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 싫은 사람들아, 우리의 혈육으로 우리의 새로운 장성을 쌓자. 중화민족에 가장 위험한 시기가 닥쳐와 각자가 최후의 함성을 내지르니,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우리 모두 일치단결하여 적의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 적의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 전진하자, 전진하자, 전진!
起來!不願做奴隸的人們!把我們的血肉,築成我們新的長城!中華民族到了最危險的時候,每個人被迫着發出最後的吼聲。起來!起來!起來!我們萬衆一心,冒着敵人的炮火前進!冒着敵人的炮火前進!前進!前進!進!


'박물관 > 상하이역사박물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극동의 대도시 상해 (4) (2026) (0) | 2026.03.24 |
|---|---|
| 신해혁명과 상해의 광복 (3) (2026) (0) | 2026.03.23 |
| 중국과 서양의 교류 (2) (2026) (0) | 2026.03.20 |
| 개항의 시대 상해 (1) (2026) (0) | 2026.03.19 |
| 사람과 문화의 중심지 상해 (7) (2026) (0) | 2026.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