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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

2016_베이징 국가박물관 지층4_서한(西漢)시기

by isanjo 2019. 4. 27.

2016_베이징 국가박물관 지층4_서한(西漢)시기

 

 

# 西漢(前漢): 기원전 202년부터 서기 8년까지.

 

 

<https://baike.baidu.com/item/%E8%A5%BF%E6%B1%89>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D%95%9C>

<https://zh.wikipedia.org/wiki/%E8%A5%BF%E6%B1%89>

 

◆ 금실로 엮은 합[金縷玉柙]

 

- 西漢

- 1973년 하북 정형(定縣) 팔각랑촌 40호묘 출토.

- 길이 182cm,너비 9cm

- 玉柙은 玉匣, 玉衣라고도 하는데, 한나라 황제와 고급 귀족이 사만한 후 입은 수의이다. 신분이 차이에 따라 옥 조각에 금실, 은실, 동실과 실을 합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이 玉衣의 주인은 中山懷王 劉修로 기원전 55년에 죽었다.

 

# <中國國家博物館>

-  한나라는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섬겼다. 그들은 사람이 사망한 후 옥갑을 입으면 시체가 부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옥을 수장하는 최고 형태로서 서주 이래 유행된 옥 얼굴가리개로부터 발전되었다. 귀족의 신분이 다름에 따라 옥갑은 금실, 은실과 동실로 나눌 수 있다. 서한시기는 옥의 사용에 대해 엄격한 등급제도를 확정하지 않았다. 동한에 이르러 옥의 사용 제도가 명확하여져 황제가 붕하한 후에야 금실 옥의를 사용할 수 있다.
헤드 캡, 얼굴 덮개, 상의 앞부분과 뒤부분, 좌우소매, 좌우장갑, 좌우바짓가랑이와 좌우발씌우개 등 부분이 포함되고 모두 옥 조각 1,203개, 금실 약 2,567g으로 연결되어 구성되었다. 옥갑주인 중산회왕 류수는 저명한 하북 만성 한나라 무덤 주인 류승의 후대로서 기원전 55년에 사망하였다. 이때 제후왕의 정치, 군사세력은 대폭 약화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 무덤은 도굴때문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옥의는 불에 탄 후의 잔여물이지만 색상이 매우 아름답다. 때문에 이 문물은 보다 진귀하다. (작성자: 왕낙사)


# <中國國家博物館>

金缕玉衣

长182厘米
1973年河北省定县八角廊村40号汉墓出土

 此玉柙分为头罩、脸盖、上衣前片和后片、左右袖筒、左右手套、左右裤筒和左右脚套等部分,共用玉片1203片,金丝约2567克,系分片连缀而成。玉柙主人为中山怀王刘修,是著名的河北满城汉墓墓主刘胜的后代,死于公元前55年。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chlht&logNo=80132589629>

 

 

 

 

 

 

 

 

◆ '漢幷天下' 와당

 

- 西漢

- 섬서 서안 한(漢) 장안성 유지 출토.

*천하를 통일한 기쁜 마음이 지붕의 기와에도 남아 있으니, 얼마나 통일을 원했는지 상상은 된다. 그러나 진정 기뻐한 것은 무엇?....

 

 

 

◆ 三官 '五銖' 청동전

<https://baike.baidu.com/item/%E4%B8%89%E5%AE%98%E9%92%B1/6015299?fr=aladdin>

 

- 西漢

- 기원전 113년 한무제는 군국에서 동전을 주조하는 것에 대해 금지령을 내리고 鑄幣 권한을 중앙에 귀속시켰다. 이때 새로 주조한 五銖錢을 '三官五銖'라고 하는데, 여기서 '三官'은 주조를 맡은 

鍾官,  화폐의 질을 검사를 맡은 辨銅令, 판형을 새기는 것을 맡은 技巧(均輸)令을 가리킨다.

 

 

 

◆ <의례_사상견지례(儀禮 士相見之禮)> 목간(木簡)

 

- 西漢

- 1956년 감숙 무위(武威) 마취자(磨嘴子) 한묘(漢墓) 출토.

- 감숙성박물관소장

*이 것은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 띠 도르래 수조의 질그릇 우물(帶轆轤水槽的陶井)

 

- 西漢

- 1953년 하남 낙양 소구(燒沟) 출토.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chlht&logNo=80132589629>

 

 

◆ 용 봉황 무늬 옥패[龍鳳紋玉佩] 

 

- 西漢

- 1958년 하남 섬현 후천 출토.

* 일부는 없고 일부는 잘라진 형태이다.


 

 

 

 


 

 

 

◆ 쌍수이 청유경도부(雙獸耳靑釉硬陶瓿)

 

- 西漢

- 1955년 절강 영파


 

 

 

 

◆ 채회 용호 문양 질그릇 호[彩繪龍虎紋陶壺]

 

- 西漢

- 1953년 하남 낙양 소구 출토.


 

◆ '백미 만석' 질그릇 곳집['白米萬石' 陶倉]

 

- 西漢

- 1953년 하남 낙양 금곡원(金谷圓) 출토.

 

 

 

 


 

 

 

◆ 돌 돼지[石猪]

 

- 西漢

- 1956년 호남 장사 남문밖 출토.

*어미돼지와 3마리 새끼.


 

 

 

◆ 청동 염기(靑銅染器)

 

- 西漢

- 1956년 하남 섬현 후천 출토.


 

 

 

◆ 금은을 상감한 鳥篆文이 있는 청동 호[錯金銀烏篆文靑銅壺]

 

- 서한

- 1968년 하북 만성 중산왕 유승(劉勝) 묘 출토.

- 이 호의 외부에는 금은의 실로 상감한 조전문이 있고, 어께와 복부에는 호랑이와 용이 싸우는 그림도 새겼는데, 정치하며 아름답게 제작하였다.

*뚜겅에는 3개의 고리가 있고 복부에는 2개의 손잡이 고리가 있다.


 

 

 

◆ 채회 기러기 물고기 청동 등잔[彩繪雁魚靑銅釭燈]

 

- 서한

- 1985년 산서 삭현 조십팔장 출토.

- 각부위별로 분해해서 청소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구상과 설계가 정교하고 합리적다.

- 기러기가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 <中國國家博物館>

彩绘雁鱼青铜釭灯

高53厘米
1985年山西省朔县照十八庄出土

 这件彩绘铜雁鱼灯采用传统的禽鸟衔鱼的艺术造型。此釭灯整体作鸿雁回首衔鱼伫立状,由雁衔鱼、雁体、灯盘和灯罩四部分分铸组合而成。雁颈修长,回首衔一鱼。雁体肥硕,其身两侧铸出羽翼,短尾上翘,双足并立。灯盘带柄,位于雁背。灯罩为两片弧形板。灯盘、灯罩可转动开合以调整挡风和光照,鱼身、雁颈和雁体中空相通,可纳烟尘,各部分可拆卸以便清洗,构思设计精巧合理,达到了功能与形式的完美统一,是一件难得的艺术珍品。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chlht&logNo=80132589629>

 

 

 

 

 

◆ 유금 조수 문양 청동 잔[鎏金鳥獸紋靑銅尊]

- 서한


 

 

 

◆ 금은을 상감한 구름 무늬 청동 무소동 잔[錯金銀雲紋靑尊]

 

- 서한

- 1963년 섬서 흥평(興平) 출토.

- 이 준은 전체를 금은으로 구름 문양을 상감하였는데 정치하고 화려하다. 물소의 몸이 웅건하며 비례가 정확하고 肌肉이 발달하였는데 이는 고대 생활에서 물소의 형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지름 34.1cm, 길이 58.1cm

# <中國國家博物館>

- 존은 고대의 일종 술을 담는 용기이다. 이 청동 존은 머리를 치켜들고 서 있는 무소의 모양을 보여주었다. 무소는 근육이 발달되고 네다리가 짧고 굵으며 두 뿔이 뾰족하고 한쌍의 작은 눈은 검은색 진주로 상감하였다. 존의 복부는 술을 담을 수 있도록 비어 있다. 존의 잔등 부위는 타원형 주입구가 구비되어 있고 주입구 위에는 덮개가 있다. 무소 입 오른쪽에는 둥근 호스가 구비되어 있으므로 무소의 꼬리를 잡고 천천히 들어 올리면 복강내의 술이 흘러 나온다. 무소는 전체 몸체에 가는 금실과 은실로 상감한 구름 무늬가 세겨져 있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화려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무소는 고대에 중국에서 생활하였던 무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대에 중국은 무소가 생활하고 있었으며 그 수량 또한 아주 많았다.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이미 여러차례 무소의 뼈를 발견하였으며 춘추전국시기에는 무소 가죽으로 제작한 갑옷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대규모적인 포살에 의하여 북방의 무소의 수량이 신속히 감소되었으며 가장 늦게 서한 말기에 이르러 관중 일대의 무소는 이미 멸종되었다.
이 금은실 상감 구름무늬 청동 무소 존은 몸체가 건장하고 비례가 정확하다. 실용성을 가지는 귀중한 기구지만 활력이 넘치어 한나라 청동기 중의 기적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작성자: 유녕)

 

# <中國國家博物館>

错金银云纹青铜犀尊

高34.1厘米、长58.1厘米
1963年陕西省兴平县出土

 此尊呈犀牛形,犀牛昂首伫立,身体肥硕,四腿短粗,皮厚而多皱,两角尖锐,双眼镶嵌黑色料珠。尊腹中空,用来盛酒。尊背有椭圆形口,口上有盖。犀牛口右侧有一圆管状的“流”。通体饰细如游丝的错金银云纹,熠熠生辉,华美无比

 

 

 

 

 

- 이 아름다운 물소는 기념주화 3종에도 포함되어 있다.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chlht&logNo=80132589629>

 

 

 

 

◆ 아연으로 만든 산가지[鉛質算籌]

 

-서한

- 1982년 섬서 서안 동교 출토.

- 산가지는 주산 발명 이에 응용한 일종의 계산 도구이다.


 

 

 

◆ 의학용 청동 동이['醫工' 靑銅盆]

 

- 서한

- 1968년 하북 만성 중산왕 유승 묘 출토.

- '醫工'에 의거할 때 이 기물은 중산국에서 사용한 의료 기구였음을 알 수 있다. 

- 사진에서 왼쪽에 대야 테두리에 '醫工'이 새겨져 있다.


 

◆ 3명이 악기를 연주하는 청동 고리 띠[三人奏樂靑銅帶鉤]

 

- 서한

- 1956년 내몽고 준격이기(准格爾旗) 출토.


 

 

 

◆ 청동 솥(靑銅鍑)

 

- 서한

- 1956년 내몽고 집녕이란호구(集寧二蘭虎沟) 출토.

- 이런 종류의 鍑은 유목 생활에서 야영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위의 고리는 양쪽에 막대로 걸 수 있게 되어 있다.


 

 

 

◆ 두마리의 양

 


 

 

 

◆ 말모양 청동 장식

 

- 서한

- 1956년 요녕 서풍서차구(西豊西岔沟) 출토.


 

 

 

 

 

◆ 질그릇 박 호[陶匏壺]

 

-서한

- 1953년 광동 광주 화교신촌(華僑新村) 출토.


 

 

 

◆ 질그릇 제통[陶提筩]

 

- 서한

- 1953년 광동 광주 화교신촌 출토.

- 提筩은 전형적인 越나라식  술통으로 匏壺와 함께 사용했다.


 

◆ 우인 문양 청동 북[羽人紋靑銅鼓]

 

- 서한

- 1972년 광서 임보태(林普馱) 출토.

- 청동북은 고대 남방과 서남의 소수민족에게 일종의 권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물로 전례(典禮)용 악기, 전쟁용 북, 재물을 저장, 유골 보관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 네 곳이 연결된 질그릇 항아리[四聯陶罐]

 

- 서한

- 1953년 광동 광주 효교신촌 출토.

- 이것은 과일을 담는데 사용한 그릇이다.


 

 

 

 


 

 

 

◆ 越나라시 청동 솥[越式靑銅鼎]

 

- 서한

- 1983년 광동 광주 상강산 남월왕 묘 출토.

- 안쪽 윗부분에 10자의 글자가 있다.


 

 

 

 


 

 

 

◆ 공납 장면 조소가 있는 청동 저금통[貢納場面靑銅貯貝器]

 

- 서한

- 1955~60년 운남 보녕색채산(普寗石寨山) 출토.

- 입구에 주조한 조각상은 滇나라 국민이 滇王에게 공남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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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세장면 조소가 있는 청동 저금통[詛盟場面靑銅貯貝器]

 

- 서한

- 1955~60년 운남 보녕석채산 출토.

- 貯貝器는 滇에서 특별히 貝幣를 저장한 청동기이다. 이 청동기 위에는 진왕이 희생을 죽여 맹세하는 장면을 표현한 조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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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마리 소와 호랑이 손잡이가 있는 청동 조개 화폐 저금통[七牛耳靑銅貯貝器]


- 서한

- 1957년 운남 보녕석채산 출토.

- 소는 滇族 사회 경제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였으며 또 부를 헤아리는 중요한 지표였다.

- 지름 43.5cm,무게9.7kg

# <中國北京國家博物館>

- 조개화폐 보관용기는 전나라의 특유한 조개화폐를 보관하는 청동기이다. 전국 초기로부터 동한까지의 500년 사이에 전지지역에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왕국인 전나라가 존재하였다. 전나라는 편벽한 운남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목축업이 비교적 발달하였다. 당시의 가축과 가금은 주로 소, 말, 양, 돼지, 개, 닭, 오리 등이며 그 가운데서 소의 수량이 가장 많았다. 이 소들은 전부 황소로서 주로 체형이 비교적 크고 앞 이마가 넓으며 사지가 굵고 꼬리가 긴 소와 체형이 비교적 작고 앞 이마가 두드러 졌으며 두 소뿔이 굽어 아래로 드리워 지고 꼬리가 넓은 소로 나누어진다. 이 조개화폐 보관용기 덮개 위의 황소는 전자에 속하며 체형이 건장하고 위엄이 넘쳐 예술적인 특징으로 빛난다.
이 조개화폐 보관용기는 몸체가 통형을 이루고 허리 부위에 호랑이 귀 한쌍이 대칭되어 있으며 덮개 위에 6마라 소가 덮개 변두리를 둘러 싸고 있고 소 한마리가 동 북 위에 서서 여러 소 위에서 위임을 떨치고 있다. 소는 당시 부를 가늠하는 표시로서 전나라 사람들이 부유를 자랑하는 마음과 재부를 증가하려는 염원을 보여주고 있다. (작성자: 왕가문) 

 

# <中國北京國家博物館>

七牛虎耳铜贮贝器

通高43.5厘米,盖径16.8厘米,底径21.8厘米
1955-1960年云南晋宁石寨山出土

 此贮贝器器身作筒形,中束腰,腰部有对称虎形耳一对,器盖上铸七牛,其中六牛环绕于器盖边缘,一牛伫立于青铜鼓上,耸然独出于众牛之上。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chlht&logNo=80132589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