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08_베이징_중국고고박물관
# 베이징 중국고고박물관(中國考古博物館) 찾아서
그림 <중국고고박물관>
중국고고박물관은 중국역사연구원 산하의 박물관으로, 고고학 발굴 유물과 귀중한 고문헌 등 6천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2023년 9월 15일에 일반에게 처음 공개되었기 필자도 이번이 첫 방문이다. 출입은 예약자에 한해 정문이 아닌 임시막사에서 여권 등 신분증을 확인하고 휴대물품과 몸 검사를 거친 후 전시관으로 이동한다. 중국역사연구원과 중국고고박물관을 겸한 건물의 지붕아래에는 박물관의 상징인 ‘史’가 전서 형태인 ‘’로 조각되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이곳이 박물관이라는 생각에 ‘鼎’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입구 왼쪽에 “용-중화민족의 토템[龍ㆍ中華民族的圖騰]”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이곳에는 중국 8천년 용문화와 관련된 진귀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시간 관계상 이곳은 아예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1층에는 정면에는 “歷史中國 鼎鑄文明-中國歷史硏究院 文物文獻精品展示”는 높은 벽 속에 창고 식으로 되어 있다. 바닥에서 고대에서 현대까지 중요 사건을 위주로 연표가 작성되어 있다. 박물관은 1단원 “문명기원(文明起源)”, 2단원 “중국거주()”, 3단원 “대국통일(大國統一)”, 4단원 “화합과 융합(和合融合)”, 5단원 “민족각성(民族覺醒)”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도 같이 참관하겠다는 분이 있어 동행하며 간단히 설명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A섹션이 ‘문명기원’이다. 2층 남쪽 전체가 1개의 전시관이다. 이 전시관에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의 고대 유물은 설명서의 이름만으로는 유물의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해당 유물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 원래 기록된 유물의 중국어 제목을 병기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문명기원’ 전시관을 들어서면 구석기시대 유물부터 신석기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문명기원’ 설명문에는 “중국은 인류의 기원 지(起源地) 가운데 한이다. 지금으로부터 170여만 년 전 원모인(元謀人)을 시작으로 기나긴 발전을 거쳐 지금으로부터 2만 년에서 1만 년을 전후하여 선민(先民)은 차가운 빙하기를 벗어나, 온난한 홀로세[Holocene Epoch]의 햇볕 아래에서 노동을 통해 점차 석기를 만들고, 도기를 굽고, 동물을 길들이고, 식물을 재배하고 정착 생활을 배우게 되었으며, 인류는 채집과 수렵을 하던 경제에서 발전하여 생산적인 재배와 양식(養殖) 경제로 전환하는 신기원을 맞이하였다. 생산력의 수준이 끊임없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가 분화되기 시작하고 사유제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문명의 서광이 시작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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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기원’에서 만나는 유물은 1970년에 하천유지(下川遗址:산서(山西) 진수(沁水))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의 유물인 뗀석기, 곡물을 갈 때 사용한 마반(磨盤)과 마추(磨錘), 칼을 갈던 숫돌, 돌공[石球], 긁개[刮削]와 대암유지(大岩遺址:광서(廣西) 임계(臨桂))에서 출토된 찍개[砍砸] 등이다.
# 신석기시대
<정사산문화(頂獅山文化:기원전 800~기원전 7000년)>
정사산유지(頂獅山遺址:광서(廣西) 옹녕(邕寧))에서 출토된 밑이 둥근 질 단지[圜底陶罐], 통다리 질 단지[圈足陶罐], 목이 목은 질 단지[高嶺陶罐], 구멍 뚫린 석기[穿孔石器], 돌도끼[石斧]가 전시되어 있다.
그림 <권족도관(圈足陶罐)>
<배리강문화(裴李崗文化:기원전 6200~기원전 5500년)>
배리강문화 유적에는 배리강유지, 수천유지(水泉遺址) 등이 있다. 배리강문화는 거주지와 묘지가 분리되었으며 전형적인 도기인 발이 세 개인 발(鉢), 호(壺), 정(鼎) 등이 있었으며, 대량의 가는 기술을 채하였는데 톱날이 있는 돌낫, 신발 모양 돌 자귀, 네 발 갈판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농업이 발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리강유지(裴李崗遺址)에서 출토된 톱니가 있는 돌낫[石鎌], 손잡이가 2개인 질 병[雙耳陶壺], 다리가 3개인 질 바리때[三足陶鉢], 다리가 3개에 양쪽에 구멍 뚫린 손잡이가 있고 목이 긴 질 병[三足陶壺] 등이 전시되어 있다.
<흥륭와문화(興隆洼遺址:기원전 6200년~기원전 5200년)>
흥륭구유지(興隆沟遺址:내몽고자치구 대릉하(大凌河) 북쪽지류)에서는 흥륭와문화, 홍산문화, 하가점하층문화 3단계의 유적이 드러났다.
그림 <석마봉(石磨棒(/석마반(石磨盤)>
이곳에서는 돌로 만들 갈개[石磨棒]와 갈판[石磨盤], 도기(陶器), 석기(石器), 옥기(玉肌), 골기(骨氣), 방기(蚌器), 동물뼈 등이 출토되었다. 아가리가 넓은 도배(陶杯), 배가 볼록하고 납작하며 다리 4개 달린 도호(陶壺), 3명이 여신을 끌어안고 있는 도상(陶像)이 출토되었다.
<대지만문화(大地灣文化:기원전 6000~기원전 5000년)>
백가유지(白家遺址)에서는 회색 질 주발[陶碗], 밑이 둥근 질 단지[圜底陶罐]와 다리가 3개인 질 바리때[三足陶鉢] 등 최초의 홍색(紅色) 채색도기 출토되었다.
<북신문화(北辛文化:기원전 5300~기원전 4300)>
북신유지(北辛遺址)에서는 항아리 모양의 도정[罐形陶鼎], 아가리가 좁고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질 항아리[小口雙耳陶罐], 붉은색 질 바리때[紅陶鉢], 바닥이 뾰족한 채도 항아리[尖底彩陶罐], 주둥이는 작은 술잔 모양이며 배는 볼록하고 배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병[陶甁], 조[좁쌀]와 기장, 집에서 기르던 돼지와 개 등이 출토되었다.
그림 <罐形陶鼎>
<앙소문화(仰韶文化:기원전 5000년~기원전 3000년)>
북수령유지(北首嶺遺址:섬서 보계시)에서는 채도병(彩陶甁), 배 부분이 직각이고 바닥이 평평하고 좁은 형태의 단지[直腹小平底陶罐]와 아가리 가장자리[緣] 아래에 여러 개의 구멍이 나 있으며, 연배 부분이 갑자기 꺾이고 바닥이 평평하고 좁은 형태의 단지[折腹小平底陶罐]와 검은 색으로 눈썹과 수염을 그렸고 눈과 입에 구멍을 뚫었으며 양쪽 귀가 납작하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이마 앞머리는 줄무늬로 표현했고, 얼굴은 풍족하고 콧날은 곧게 펴 당시 남성의 얼굴 모습을 표현한 도인면상(陶人面像)이 출토되었는데 마치 가면을 보는 느낌이다.
그림 <도인면상(陶人面像)>
반파유지(半破遺址:기원전 4800~4300년)에서는 주둥이가 좁고 바닥이 뾰족하며 배 부분에 양쪽에 고리가 달린 <소구첨저도병(小口尖底陶甁)>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형태의 병은 앙소문화의 전형적인 기물로 주방을 비롯하여 무덤, 재 구덩이에서도 모두 출토되었으며 앙소문화부터 용산시대 조기에도 모두 발견되는데 이 병의 용도는 물통, 술통, 예기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이 외에도 모래가 섞인 흙으로 만든 협사도관(夾砂陶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소구첨저도병(小口尖底陶甁)>
앙소문화 중기(기원전 4000~기원전 3500년)로 분류되는 하남 영보(靈寶) 양평진(陽平鎭) 서파유지(西坡遺址)는 묘저구 유형의 전형적인 형태로 앙소문화 초기의 취락구조와 현저하게 다르다. 이 유적에서는 깊이가 낮은 도발(陶鉢), 골잠(骨簪), 골추(骨錐), 옥월(玉鉞), 양쪽에 귀가 있고 주둥가 이중인 도병(陶甁), 도부조(陶釜竈), 뚜껑이 있고 배가 이중인 궤(簋) 모양의 도기(簋形陶器)가 전시되었다.
앙소문화 중기로 분류되는 묘저구유지(廟底沟遺址:하남성 섬현(陝縣))에서 출토된 앙소문화시기의 채색한 질 주발[彩陶碗], 다이아몬드 문양을 그린 질 주발[方格紋陶碗], 물고기 모양을 형상화한 채색 질 동이[彩陶盆], 사람을 형상화한 밑이 좁은 채색 질 동이[彩陶盆], 채색한 질 주발[彩陶碗], 화산분화구처럼 생긴 구멍 뚫린 그릇받침[陶器座], 윗부분은 원통형이고 아랫부분의 배가 볼록한 질 항아리[陶罐], 가장 자리가 톱니바퀴처럼 생긴 돌기가 나 있는 도환(陶環), 석환(石環)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채도분(彩陶盆)>
그림 <도관(陶罐)>
연자파유지(碾子坡遺址:섬서 장무(長武) )에서는 배 모양 도호[船形陶壺]가 발견되었는데, 이 유물은 진흙으로 만든 붉은색 도기로 양쪽 끝은 둥글고 뾰족하며 가운데 부분은 둥근 관 형태의 주둥이가 있는데 주둥이 양쪽에는 각각 1개의 귀가 있으며 몸 전체가 광채가 난다.
그림 <배 모양 도호[船形陶壺]>
동장촌유지(東庄村遺址:산서 예성(芮城))에서 발굴된 채도발(彩陶鉢), 횡진유지(橫陣遺址:섬서성 화양시(華陽市) 부수진(敷水鎭) 횡진촌(橫陣村) )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도발(陶鉢)과 도관(陶罐), 채도분(彩陶盆), 소구첨저도병(小口尖底陶甁)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황진유지에서 발굴된 매장갱은 반파유형 단계의 사회조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앙소문화 후기에 해당하는 위지사유지(尉遲寺遺址:안휘 몽성현(蒙城縣) 허탄진(許疃鎭) 필집촌(畢集村)) 중에는 또 용산문화의 유물이 나왔는데 이는 대문구문화의 발전과 연속이다. 이 유지의 대표 유물로 칠족루공도기(七足鏤孔陶器)로 7건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의 재료는 가는 모래가 섞인 붉은 흙이다. 아가리는 넓고 언저리가 각지며 목이 길고 둥근 북 모양의 배에 바닥은 원형이다. 배 부분 가운데는 3개의 둥근 구멍이 있고, 7개의 송곳모양 다리가 그릇 바닥에 고르게 붙어 있는데 높이는 들쑥날쑥하다. 현재 보이는 유물은 크기, 구조, 문식이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은 일종의 종교와 관련이 있는 기물이 가능성이 높다.
<조보구문화(趙寶沟文化:기원전 5200년~기원전 4500년)>
조보구유지(趙寶沟遺址:내몽고 오한기(敖漢旗))에서는 도(陶), 석(石), 골(骨), 방기(蚌器) 및 돌로 만든 제단 1기가 출토되었으며, 소산유지(小山遺址:내몽고 오한기(敖漢旗))에서는 진귀한 조수도(鳥獸圖)를 새긴 준(尊)을 닮은 도기[尊形陶器]가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바닥이 타원형인 도완[橢圓底陶碗], 바닥 평평한 도완[平底陶碗]」, 원형의 발이 있는 도완[圈足陶碗], 질로 만든 타악기, 돌로 만든 보습[石耜] 등이 출토되었다.
<홍산문화(紅山文化)>
지주산유지(蜘蛛山遺址:내몽고 적복시(赤峯市) 영금하(英金河) 남쪽 언덕에 위치)에서는 윗부분이 붉은 주발 형태의 발[紅頂碗式陶鉢], 비늘 모양 문양의 도관[鱗形紋陶罐]이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홍산문화 중기의 전형적인 기물이라고 한다. 서태유지(西台遺址:내몽고 우하(牛河) 북쪽 언덕에 위치)에서는 배 부분이 꺾인 형태의 채색 도관[折腹彩陶罐], 채색한 도기 그릇받침[彩陶器座], 아가리에 실을 꼰 듯한 문양이 있는 도관(陶罐) 등이 출토되었다.
그림 <채도관(彩陶罐)>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왕인유지(王因遺址:산동성 연주시에 위치)는 대문구문화 초기(기원전 4300~기원전 3500년)의 유적으로 발굴된 유지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곳 중 한 곳이다. 이 유지를 통해 대문구문화 조기의 문화와 장례풍속을 알 수 있었으며 북신문화와 대문구문화 초기의 층위 증거를 얻어 양자 간의 전승관계를 확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왕인유지에서는 실을 꼰 모양의 손잡이에 주중이 위쪽이 넓은 도규(陶鬹), 아가리가 가장자리가 넓고 배는 볼록하며 3개의 다리가 납작한 도정(陶鼎), 고(觚) 형태의 도기[陶觚形器], 목과 다리가 긴 부(釜) 형태의 질 솥[釜形陶鼎], 그림을 그린 듯 채색한 질 바리때[彩陶鉢], 배 부분에 문양이 둘러 있는 채도분(彩陶盆) 등과 산동성 곡부시 서하후유지(西夏侯遺址:기원전 4300~기원전 2600년)에서 출토된 두께가 얇은 검은 색 질 술잔[薄胎黑陶杯], 허리가 잘록하고 1개의 고리 모양 손잡이가 있는 도백(陶杯), 다리에 세모 형태의 구멍이 뚫린 도두(陶豆), 다리에 원형의 큰 구멍이 뚫린 도두[鏤孔陶豆], 손잡이를 꽈배기 모양으로 장식하고 손잡이 아랫부분에 실을 꼰 문양으로 테를 두르고 주둥이는 하늘을 향하듯 높은 도규(陶鬹), 홍도정(紅陶鼎), 뚜껑 손잡이에 띠 모양을 장식한 질 솥[帶蓋陶鼎], 다리가 잘록한 궤(簋) 모양 도기[陶簋形器], 홍도관(紅陶罐), 사람의 얼굴을 정교하게 표현한 도상(陶像)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채도분(彩陶盆)>
그림 <도규(도규(陶鬹)>
그림 <도규(도규(陶鬹)>
<대계문화(大溪文化)와 굴가령문화(屈家嶺文化)>
관묘산유지(關廟山遺址:호북 지강시(枝江市) 문안진(問安鎭))에서 발굴된 배 부분에 6개의 큰 구멍이 뚫린 도기좌[(陶器座], 채도기좌(彩陶器座), 동이 형태의 채도 두[盆形彩陶豆], 도두(陶豆), 채도분(彩陶盆), 쌍복도완(雙腹陶碗), 아가리가 벌어진 채도관(彩陶罐), 배 부분이 볼록하고 납작하며 주둥이가 원통형인 도관[扁腹彩陶罐], 손잡이가 한 개인 채도 잔[單耳彩陶杯], 원통형 채도 병[筒形陶甁], 쐐기 문양이 두 줄씩 나란히 있는 원통형 병[筒形陶甁], 호 형태의 채도 기물[彩陶壺形器]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도기좌(陶器座)>
그림 <쌍복도완(雙腹陶碗)>
굴가령문화(屈家嶺文化:기원전 2900년~기원전 2600년)로 분류되는 장강 중류의 호북 사양(沙洋)의 성하유지(城河遺址:5000~4300년 이전)에서 발굴된 두 귀와 뚜껑이 있는 커다란 도관(陶罐), 작은 단지[陶罐], 도두(陶豆), 뚜껑이 있는 도두[陶豆], 배가 이중인 도두(雙腹陶豆), 단지 형태의 도증(陶甑), 등이 전시되어 있다.
조룡비유지(雕龍碑遺址:기원전 4200년~기원전 2700년)는 황하와 장강이 교차하는 호북 조양시(棗陽市) 녹두진(鹿頭鎭)에 위치한다. 문화적인 특징은 앙소문화, 대계문화와 굴가령문화 등 여러 종의 문화요소가 나타나고 있다. 테두리에 1개의 잔이 달리고 통굽에 목이 긴 도반[附杯圈足陶盤], 검은색 흙으로 만든 소도호(小陶壺), 겉에 채색이 되어 있고 속이 빈 질 공[彩繪空心陶球], 방울 모양 도기[鈴形陶器], 색이 붉고 다리가 납작한 도정(陶鼎), 기물 상하에 그림이 있고 배 부분에 문양이 그려진 채색 단지[彩陶罐], 배 부분이 꺾인 도정(陶鼎), 도분(陶盆), 원통형 도병[筒形陶甁]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채회공심도구(彩繪空心陶球)>
<용산문화(龍山文化:기원전 2700년~기원전 2000년)>
서주봉유지(西朱封遺址:기원전 2500년~기원전 2000년)는 산동 임구현(臨朐縣) 서주봉(西朱封)에서 3기의 용산문화시기 대묘에서 대량의 흑도 예기(黑陶禮器), 옥월(옥鉞), 옥관식(玉冠飾)과 녹송석(綠松石)을 상감한 중기(重器)가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용산문화 묘장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수장 기물도 가장 풍부한 왕릉급 묘장으로 용산문화 시기의 해대(海岱) 지역이 초기 문명사회로 접어 든 것을 가리킨다.
전시관에는 도규(陶鬹), 흑도뢰(黑陶罍), 띠 모양 뚜껑이 있는 도정[帶蓋陶鼎], 긴 손잡이가 있는 흑도배(黑陶杯), 도합(陶盒), 구멍 뚫린 손잡이가 있는 질그릇 뚜껑[陶器蓋], 옥환(玉環), 옥(玉), 옥선기(玉璇璣)가 전시되어 있다. 이 중 흑도뢰(黑陶罍)는 고운 진흙으로 만든 빛이 나는 흑도 둥근 어깨에 공 모양 배를 가지고 있으며, 어깨와 배 부분에 각각 1상의 가로 귀가 있으며 평평한 머리에 통 모양 뚜껑이 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2줄로 된 호(弧)가 4쌍이 장식되어 있다.
그림 <도규(陶鬹)>
그림 <흑도뢰(黑陶罍)>
삼리하유지(三里河遺址:산동 교주시(㬵州市) 교현(㬵縣) 삼리촌(三里河村))는 주로 용산문화 유물이며 이외에 대문구문화 유물도 있다. 용산문화 묘장품 가운데는 매우 아름다운 손잡이가 높은 얇은 도배[高柄蛋殼陶杯]와 손잡이가 높은 얇은 흑도배[高柄蛋殼黑陶杯]가 다수 전시되어 있다.
그림 <흑도배(黑陶杯)>
사조촌유지(師趙村遺址:감숙 천수시(天水市) 진성구(秦城區))는 마가요문화(馬家窑文化:기원전 3300년~기원전 2000년), 제가문화(齊家文化:기원전 2300년~기원전 15000년), 신점문화(辛店文化:기원전 1000년 전후), 사와문화(寺洼文化:기원전 1500년~기원전 1000년) 등 다른 시기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유지 가운데 중요한 유물은 마가요문화로 출토된 도기들은 균일하게 마가요문화의 전형에 해당하는 기물로 사람의 모습을 그린 단지[人像彩陶罐]과 개구리 문양이 있는 채도 바리[蛙紋彩陶鉢] 등이 있다.
제가문화에 해당하는 유물로는 옥황(玉璜), 옥벽(玉璧), 옥종(玉琮), 목이 높고 배 부분에 2개의 귀가 있는 채도 단지[高領雙耳罐], 마가요문화에 해당하는 유물로는 도인면(陶人面), 도인두(陶人頭), 도수면(陶獸面), 복골(卜骨), 도방륜(陶紡輪), 뼈바늘[骨針]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옥황(玉璜)>
<도사문화(陶寺文化:기원전 2300년~기원전 1900년))>
도사유지(陶寺遺址: 산서 양분현(襄汾縣) 도사촌(陶寺村))는 산문화 말기의 대형 유적지로 고고학적으로 볼 때 도성(都城) 유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어 중국의 초기국가 형성과 중화문명의 핵심이 형성된 중요한 유적이다. 도사유지는 초기에는 북에서 남으로 3개의 판(板)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중기에는 ‘十’자 형태로 분할하여 4개의 판(板) 구조로 배치되었다. 이는 중국 고대 초기의 도시계획 발전사에 있어 위의 것을 받아들여 아래로 전해주는 기념비적인 의미가 있다. 유지의 위치, 연대, 규모로 볼 때 이곳은 요(堯)가 거주하던 도성인 평양(平陽)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이를 통해 중국 초기국가와 도시의 초기형태가 기원전 2300년 경 황화 중류지역에서 출현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도사유지 중기의 귀족 무덤에서 출토된 옥 도끼[玉鉞], 옥 짐승 얼굴[玉獸面], 옥황(玉璜), 옥 빗[玉梳], 옥가락지[玉環], 머리장식[頭飾]과 동치륜형기(銅齒輪形器), 옥벽(玉璧), 옥 3조각을 연결한 옥벽[三聯玉璧], 옥규(玉圭), 2개의 구멍이 뚫린 옥 칼[雙空玉刀] 등 매우 화려하다.
그림 <三聯玉璧>
특히 붉은 글자가 있는 질 납작 병[朱書文字陶扁壺]은 도사문화 말기의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배 부분에 주사(朱砂)로 쓴 1개의 ‘文’자가 있는데 이 글자의 자체가 갑골문(甲骨文) 형체와 결구가 매우 닮았다. 다. 평평한 배 부분에는 한 면에 주서로 2개의 부호가 있으나 아직까지 해독을 하지 못했지만 학자들에 따라 각각 ‘堯’자, ‘邑’자, ‘唐’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 근거하여 이 유적이 ‘堯’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朱書文字陶扁壺>
이외에도 돌로 만든 주방칼[石廚刀], 도판와(陶板瓦), 윗부분에 양쪽에 손잡이가 있고 가운데 큰 구멍이 뚫린 도부조(陶釜竈), 진흙으로 만든 질북[陶鼓], 석경(石磬), 도훈(陶塤), 도령(陶鈴), 동령(銅鈴), 채회도궤(彩繪陶簋), 채회도호(彩繪陶壺), 채회삼족도호(彩繪三足陶壺), 채회도분(彩繪陶盆), 채회용문도반(彩繪龍紋陶盤) 등이 있다. 이 중 도고(陶鼓)는 모양이 매우 특이하다. 진흙으로 만든 질북은 목 부분에 가늘고 높으며, 주동이 밖에는 기둥 모양 원형 의 꼭지 12개가 붙어 있다. 공 모양의 배가 있고 바닥과 가까운 곳에 3개의 원통형 구멍이 있고, 배의 아랫부분 중앙에는 부분은 ‘凸’의 형태로 되어 있다. 긴 목과 배가 만나는 부분에는 사람이 허리에 손을 올린 모양의 손잡이가 양쪽에 있다. 이 북은 항상 타고(鼉鼓)와 석경(石磬)의 곁에 두었으며 타고와 석경과 함께 사용하는 악기이다.
그림 <채회도궤(彩繪陶簋)>
전시관 마지막에는 도기(陶器)의 역사를 설명한 <도적과(陶的故事)>가 있고, 그 옆에는 흙벽 속에 밑이 둥근 질 바리때[圜底陶鉢], 채색 질 주발[彩陶碗], 쌍이채도관(雙耳彩陶罐), 채도분(彩陶盆), 단이채도호(單耳彩陶壺), 쌍이채도호(雙耳彩陶壺), 도규(陶鬹), 도가(陶斝), 인상채도관(人像彩陶罐), 진열장처럼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인상채도관(人像彩陶罐)>
이번 답사에서는 시간관계상 박물관 전체를 살펴보지 못했다. 특히 3층에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청동기를 전부 살펴보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웠다. 그 때문인지 한동안 관심이 없던 북경(北京) 꼭 다시 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박물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고유물만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특히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지 못했던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다양한 문화와 해당 문화에 딸린 유적지를 중심으로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고대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전에 박물관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유적을 알게 되었고 처음 보는 유물도 매우 많았다. 이 다양한 유적의 유물이 소장된 각각의 박물관을 힘들여 가지 않고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유물의 설명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어떤 유물의 경우 모양이 특이하거나 채색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관(陶罐), 도규(陶鬹), 고령쌍이관(高領雙耳罐) 등으로 단순하게 명명한 것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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