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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

2024_0820_베이징국가박물관19_4층 북19_중국고대옥기3

by isanjo 2024. 12. 6.

2024_0820_베이징국가박물관19_4층 북19_중국고대옥기3

 

# 제2단원_당황옥례(堂皇玉禮)_의식적 상징으로서의 옥.
- 서주시기(西周:기원전 11세기경~771년)에는 종법제[혈통]과 위계[등급제]에 중점을 둔 의례제도가 확립되었다. 옥기는 예전의 물질적 상징이 되었으며, 복잡한 사용 규범이 형성되었다. 통치계급이 천하를 다스리는 도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옥을 가공하는 기술은 날이 갈수록 더 다양해졌고, 이중선을 새기는 기술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입체적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동주 왕조(기원전 770-221년)이 쇠퇴하면서 사회질서와 예의제도는 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점차 각각의 제후와 경대보가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 정치적 무기로서 옥벽(玉璧) 등 귀종한 옥기와 금은, 거마를 동일하게 제후 교빙의 중요한 예물로 여겼다. 사람들은 광물학 지식이 풍풍해지면서 섬석(閃石)이 옥석의 주체가 된다는 관념이 이추 차츰 형성되었다. 철제 공구와 사용은 옥기의 조각 기술이 전에 없을 만큰 발전하게 되어 음각 양각 쌍선을 조각하는 기법에 무궁무진하였으며, 반부조, 투조 기술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량 조형물은 의미가 있고, 설계는 뛰어났으며, 문식이 정밀한 옥기는 생동감이 있었다.

한대에 천하가 통일되면서 나라를 부유하고 백성은 강해졋으며 옥을 다루는 기법을 동주의 유서(遺緖) 깊은 전통을 계승하고 아울러 발명과 창조를 통해 뛰어난 옥기는 설계부터 조각에 이르기까지 완미(完美)의 경지에 이르렀다.

전통 예기와 장식품 이외에도 일용품과 관상품이 증가하여 당송시대 세속의 옥기 발전에 기초나라를 이루게 된다.

 

 

# 옥이재례(玉以載禮)_옥을 사용하여 예를 세우다.


《예기·악기》에는 "예는 천지의 질서"라고 하였다.예는 중화문명의 중요한 표식(標識)으로 고대 중국 철학자들의 자연과 사회의 질서에 대한 느낌과 이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서주시대(기원전 11세기경~771년)에는 이전 세대의 의례 전통을 정리하여 다시 계통적인 예악제도를 확립하여 국가통치 이념 또 신치(神治)에서 덕치(德治)를 나아갔는데, 옥기 또한 예제와 함께 초고의 윤리 체제를 이루었다. 조패(組佩:세트)는 집중적으로 귀족 신분을 드러내는 예옥(禮玉)이 되었다.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년)에 옥구검(玉具劍)은 또 귀족의 신분과 지위를 강조하는 의례 도구가 되었다. 옥 패식과 옥 구검(具劍)은 서로 보완하며 발전하여 선진과 양한 시대의 예법과 긍급 제도로 함께 발전하게 되었다.

 

 

◆ 7. 종(琮)
- 서주(西周)약 기원전 11세기경~771년)

 

 

◆ 8. 용수곡문황(龍首穀紋璜)_용머리 모양에 곡식문양을 새긴 황.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950년 하남성 휘현(輝縣) 고위(固圍)  출토.
- 양쪽에 머리가 있고 몸은 하나인 용 모양 옥황(玉璜) 장식은 서주시기에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전국시대에 완성기에 접어진다. 그 조형은 옛날 고적 가운데 "虹爲龍飮" 전설과 관련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용이 비를 내리게 하는 일을 맡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용의 모양을 무지게 모양의 옥패 숙에 우의하여 바람을 찾고 비를 조절하는 뜻을 바랬다.

 

 

◆ 6. 규(圭)_홀.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950년 하남성 휘현(輝縣) 고위(固圍)  출토.
- 머리부분이 뾰족한 형태의 홀은 신석기시대 말기 도사문화(陶寺文化)에서 처음 나타나며 춘추 전국시기에 성행하였다. 규(圭)는 주대의 책명(册命)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대의 묘장에서 큰 옥규(玉圭)는 항상 무덤 주인의 흉부와 복부에서 확인되었다. 춘추 전국시기에 천자와 제후, 제후와 제후, 제후와 경대부 사이에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항상 회맹을 거행하고 그 중거로 맹악과 맹세를 하였는데 맹세의 기록이 옥규나 석규(石圭) 위에 있다. 1개의 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한 부분은 맹부(盟府)에 보관하고 한 부분은 지하에 매장하거나 물속에 넣어 천지 귀신에게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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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옥비덕(以玉比德)_옥으로 덕을 비유하다. _인간의 미덕에 대한 은유.

- 서주(기원전 11세기경~기원전 221년)의 천명관은 왕조의 운명을 통치자의 도덕성과 연관시켰다. 나아가 춘추시대(기원전 770~476년)에는 "덕을 옥의 특성에 비유[君子比德于玉]"*하는 사회 이념이 형성되었다. 《예기(禮記)》 중에는 공자가 유가의 도덕적 규범을 옥의 품직과 결부시켜 옥의 仁 、樂 忠、信、天、地、德、道 등 11가지 미덕을 부여했다.

한나라(기원전 202~기원전 220년)에는 "五德終始說'이 유행하여 옥석의 따뜻하고 매끄러움, 소리가 맑음, 광태, 재질의 견고함, 순결함의 자연 속성을 군자가 갖추어야할 사랑, 의리, 지혜, 용기, 순수의 다섯 가지 미덕을 상징하게 되었다. 유가가 주장한 "군자는 이유 없이 옥을 몸에서 떼어 놓아서는 않된다.-항상 옥을 착용해야 한다-[ 君子無故玉不去身 ]"는 아울러 "패옥 제도[佩玉之度]"의 조화로운 행동거지, "환옥에 소리가 있음[環玉有聲]"의 우아한 풍경을 추가하여 옥을 착용하는 것이 점차 사회적 추세가 되었다.

* 君子比德于玉 :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군자의 덕은 옥에 비유된다. 매끄럽고도 윤택한 것이 곧 어짊이다.〔君子比德于玉焉 溫潤而澤 仁也〕”라는 말이 보인다.

* 五德終始說 :  오옥의 자연적 속성인 매끄러움, 투명함, 광택, 강인함, 순수함.

 

 

◆ 1. 어형패(魚形佩)_물고기 모양 패옥. (2件)
- 서주(약 기원전 11세기경~771년)

 

 

 2. 토형패(兔形佩)_토끼 모양 패옥. (2件)
- 서주(약 기원전 11세기경~771년)

 

 

 

◆ 6. 봉조형패(鳳鳥形佩)_봉황모양 패옥.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951년 하남성 휘현 고위 출토.

 

 

◆ 교사문환(絞絲紋環)_실을 꼰 모양을 새긴 팔찌.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9. 용문결(龍紋玦)_용 문양을 새긴 결옥.
- 춘추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1957년 하남성 삼문협(三門峽) 상촌령(上村嶺) 괵국(虢國)묘지 출토.

 

 

◆ 11. 조형식(鳥形飾)_새 모양 장식품.

- 서주시기(약 기원전 11세기경~771년)

 

◆ 8. 기룡형패(伎龍形佩)_보황 모양 패옥.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6. 봉조형패(鳳鳥形佩)_보황 모양 패옥.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951년 하남성 휘현 고위 출토.

 

 

◆ 10. 기룡형패(伎龍形佩)_보황 모양 패옥.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5. 용봉문섭형패(龍鳳紋韘形佩)_용과 봉황 모양의 깍지 모양 패옥. 2건.

 

 

◆ 14. 구운문용수대구(勾雲紋龍首帶鉤)_굽은 구름문양을 새긴 용머리 모양의 띠고리_버클.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950년 하남성 휘현(輝縣) 고위(固圍)  출토.

 

 

◆ 12. 용수구(龍首鉤)_용머리 고리.

- 춘추 전국시대(기원전 700년~기원전 221년)

 

 

◆ 17. 곡문섭(穀紋韘)_곡식 문양을 새긴 깍지.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운문섭(雲紋韘)_구름 문양을 새긴 깍지.

- 춘추 전국시대(기원전 700년~기원전 221년)

 

섭(韘:깍지)은 활쏘기를 연습할 때 시위에 거는 도구로, 후대에는 변하여 "扳指"가 되었다. 기울어진 통(筒), 곧은 기둥, 원형과 심형(心形) 등 형식이 일정하지 않다. 활을 당길 때 깍지를 엄지손가락 위에 끼우는데, 깍지를 사용하면 활시위를 팽팽하게 하여 활시위가 손가락을 다치게 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깍지는 신석기시대에 이미 출현하였으며, 전국시대 말기에는 쇠뇌가 생기면서 깍지는 차춘 사라지기 시작하여 실전에서의 기능은 변화하여 남자의 패식(佩飾)이 되었다.

《시경·환란》에는 :"환란의 잎이여 아이가 깍지를 찼네[ 芄蘭之葉 童子佩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적어도 춘추시기에 깍지기 완전히 활쏘기를 연습하는 도구로 사용되 않았으면 이미 패식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 옥조패(玉組佩)

 

 

◆ 1. 구운문황(勾雲紋璜)_굽은 구름 모양 황.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98년 호북성 수현(隨縣) 증후 을묘(曾侯乙墓) 출토.

 

◆ 2. 구운문황(勾雲紋璜)_굽은 구름 모양 황.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957년 하남성 낙양시 소둔촌(小屯村) 출토.

 

◆ 3. 용문황(龍紋璜)_용 문양을 새긴 황.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6. 쌍룡수형(雙龍首珩)_양쪽에 용머리가 있는 노리개.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7. 무인패(舞人佩)_춤추는 사람 모양 패식.

- 서한(기원전 202년~서기 8년).

 

 

◆ 8. 조패(組佩)_연결한 패옥.
- 삼국시대 위나라(220년~265년)
- 1951년 산동성 동아(東阿) 조식(曹植)묘 출토.

# 조패 동일한 한 덩어리의 옥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었으마 빛나는 표명에는 문양이 없다. 무덤 속에는 또 소량의 옥구슬과 마누구술이 있었는데 조패 위에 연결하여 꿴 물건일 것이다. 서한 초기에는 옥으로 만든 조패가 변방의 먼 봉국이 그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중원지역에서는 이미 사용이 중지되고 변하여 1개의 옥패를 차게 되었다. 위진시기에 조패 조도가 회복되었으나 단 풍격이 간략해져 주대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수당 이후의 조패의 등급은 한층더 약화되어 간략한 풍격은 명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 9. 인룡문식(人㡣紋飾)_사람과 용 문양이 새겨진 장식.

- 서주시기(약 기원전 11세기~기원전 771년)

 

◆ 10. 수면문식(獸面紋飾)_짐승 얼굴 문양이 새겨진 장식.

- 춘추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11. 용문식(㡣紋飾)_용 문양이 새겨진 장식.

- 춘추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12. 이문식(螭紋飾)_교룡 문양이 새겨진 장식.

- 한나라(기원전 202년~서기 220년)

 

◆ 13. 용형식(㡣形飾)_용 모양 장식.

- 춘추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

- 1957년 하남성 삼문협 상촌령 괵국묘지 출토.

 

◆ 15. 곡문관(穀紋管)_곡식 문양이 새겨진 대롱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6. 용문관(龍紋管)_용 문양이 새겨진 대롱

- 서주시기(약 기원전 11세기~기원전 771년)

 

◆ 14. 기룡형패(夔龍形佩)_기룡 모양 패옥.

- 전국시대(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

- 1951년 하남성 휘현 조구(趙固) 출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