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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

2024_0820_베이징국가박물관17_4층 북19_중국고대옥기1

by isanjo 2024. 12. 4.

2024_0820_베이징국가박물관17_4층 북19_중국고대옥기1

 

 

 
# 머릿말.
- 옥 문화는 중국 전통문화의 중요 구성 부분이다. 옥석은 아름답고, 따뜻한 외관, 견고한 질감, 순수한 색상을 갖고 있으며, 하늘과 땅의 본질을 구현하며 중국인의 정신적 추구와 매우 일치합니다. 중국의 옥 생산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품종이 풍부하고 특징이 뚜렷하다. 옥의 다양한 재료, 모양, 패턴, 옥의 다양한 조합과 사용 방법에는 관련 사상, 문화, 시스템이 담겨 있으며 중국 고유의 옥 문화를 구성합니다. 일찍이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장신구와 의례용품을 중심으로 한 옥제품이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하상대까지 고대 조상들의 의식적인 미의식과 신앙심이 반영되어 있어 옥제품이 더 많이 사용되었다.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나타났으며, 주나라가 세운 가부장 제도는 옥을 예의와 도덕의 구체화로 만들었습니다. 수당(隆唐)부터 명청(淸淸)까지, 옥은 점차 신성한 광채를 잃어 후광과 예절의 제약을 받아 사람들을 재난을 피하게 하는 세속적인 보물이 되었습니다.

좋은 행운을 기원합니다. 옥은 중국 문명의 형성과 발전을 목격했으며 중국 문명의 정신과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옥은 중국 국립 박물관의 대규모 컬렉션으로, 다양한 유형의 고대 옥 조각이 약 90,000개에 달하며, 컬렉션의 종류가 풍부하고, 순서가 완벽하며, 품질도 높습니다. 신석기 시대와 왕조 시대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대표적인 도구, 당, 송, 요, 금 왕조의 수집품은 드물고 특히 귀중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중국 국립박물관의 풍부한 소장품을 바탕으로 고대부터 청나라 말기까지의 정교한 옥 제품 480세트를 선정했습니다. "5개 단위가 서로 연결되어 옥기의 역사적 기원을 깊이 탐구합니다. 중국 옥 문화는 장신구에서 신성한 유물에 이르기까지 옥의 발전 궤적을 보여주고, 황제와 귀족의 전유물에서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세속 세계로 돌아가는 동시에 옥의 생산 과정과 과정을 보여줍니다. 미학적 개념. 이번 전시회는 고대 옥기에 담긴 영적 문화, 민족 심리, 미적 취향과 관습을 충분히 탐구하고 설명하며, 중국 문명의 심오한 문화적 전통과 절묘한 예술적 성취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총서기는 “중국 문화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중국 문명은 광범위하고 심오하다”며 “중화 문명의 역사를 전면적이고 깊이 이해해야만 중국의 우수한 전통 문화와 문화의 창조적 변혁과 혁신적 발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문화 건설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합니다. "중국 최고의 역사, 문화, 예술 궁전으로서 중국 국립 박물관은 항상 수집, 연구, 고대 문화 유물의 전시 및 해석. 일반 관객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중국 옥문화의 풍부한 역사적 축적, 다양한 내면 기질, 시대의 독특한 특징, 지속적인 혁신 정신과 영원한 예술적 매력을 직접 경험하고 애국심을 고양하며 문화적 자아를 강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중화민족의 현대문명 발전과 사회주의 문화강국 건설을 추진하는 데 큰 힘을 모았습니다.

 

제1단원_ 동양의 아름다운 돌들
# 옥출동방(玉出東方)_옥은 동쪽에서 생산된다.


- 중국은 옥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구석기시대에는 사람들이 옥과 돌을 구별하지 않았으며, 옥과 돌은 모두 도구를 만드는 원료로 간주하였다.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돌을 옥으로 사용하여 장식품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약 9,000년 전, 흑룡강성 소남산(小南山) 유적지에서 최초의 투섬석(透閃石:단사 정계에 속하는 광물의 하나)로 만든 옥기가 발견되었고, 허난성 자후 유적지에서는 청록색 장신구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중국 옥문화의 발원지이다.

사람들은 성실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가장 아름다운 옥 재료로 만든 법기(法器)를 만들어 신에게 바쳤다. 사회의 복잡성이 심화됨에 따라 고급 옥기의 생산과 사용은 권력귀족 계층에 의해 독점되어 옥으로 만든 농업 공구 및 무기도 의식화 되어, 종(琮), 벽(璧), 월(鉞), 장(璋) 등 모두 특별한 옥제 예기가 출현하였다.

옥제 예기는장식옥에서 분리되어 나왔는데 이느 상고시대의 미학 인식과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달된 필연적인 결과로 이것은 옥의 사회적 가치를 구현한 것이다.

신석기시대 말기의 옥제 예기는 신성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또 왕권을 상징하는 뛰어난 특징을 보여주었다.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의 성립은 이러한 특징을 이어받아 서주(西周) 이후 시행된 예의제도의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 벽(璧)_둥근옥.
- 신석기시대 양저문화(良渚文化) (대략 기원전 3300년~ 기원전 2300년)

 

벽(璧)은 중앙의 구멍이 바깥 너비보다 작은 둥근 옥 조각으로 고대 옥으로 만든 예기(禮器) 중 하나이다. 전통적인 견해는 "벽이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한다."이지만, 고고학적 현상의 관점에서 볼 때 '벽'은 권력, 지위, 부의 상징일 가능성이 더 높다.

 

 

# 성광산란(星光灿爤)_별빛이 빛나다.


신석기시대에(기원전 8000~1800년경)부터 중국 전역의 주요 문화유적지에서 옥기(玉器)가 출토되었으며 옥은 대부분 유적지 인근 광물 매장지에서 채굴되었다. 옥기가 출토된 유적지는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옥기의 종류, 품질, 양식, 형태 등이 각각의 특징을 갖고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어 중국 옥문화가 다양한 양식의 특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요하(遼河) 유역의 홍산문화와 장강(長江) 하류의 양저문화(良渚文化)는 각각 남북 옥문화 발전의 정점을 대표한다. 신석기시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옥기의 형태가 단순하고 양식이 단순하여 제작과정이 초기 단계였지만 일부 문화가 발달한 지역의 옥기는 정교하게 제작되었으며 종교의례용 에 사용되는 옥기는 흥미로운 의미를 담고 았다.

 

 

# 홍산문화(紅山文化)
- 홍산문화는 기원전 4500년부터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주로 내몽골 남동부와 랴오닝(遼寧) 서부의 요하(遼河), 대릉하(大凌河) 유역에 분포한다. 홍산문화의 옥기는 주로 사문석(蛇紋石:뱀무늬 모양의 옥) 옥이고, 일부는 섬석옥(閃石玉)으로 형상은 주로 기하학적 문양이나 동물 형상을 하고 있으며, 환상적 신의 형상도 있다. 용, 갈고리 구름 모양 패(佩), 주둥이가 비스듬한 원통형  기물, 사각형 벽(璧),  벽(璧)을 연결한 기물이며, 옥기들은 대부분 장식이 없으며 소량의 기물에서는 선 문양을 조각하였다.

 

 

◆ 신면형기(神面形器)_신의 얼굴 모양 옥기.

- 신의 얼굴을 한 옥기는 홍산문화의 대표적인 옥 유물 중 하나이다. 앞면에는 음각으로 신의 얼굴 문양이 새겨져 있고, 둥근 눈은 오목하고, 아랫부분에는 긴 이빨이 한 줄로 새겨져 있고, 좌우 끝 부분에는 기형의 송곳니 또는 날개가 새겨져 있다. 옥 모양의 장신구는 옆면이나 뒷면에 구멍이 뚫려 있어 직물에 꿰맬 수 있다.

 

 

 

◆ 방법(方璧)_네모 벽.

- 홍산 문화의 옥벽은 원형, 정사각형, 두 개를 연결 한 것, 3개를 연결한 것 등이 있다. 작은 옥벽은 일반적으로 고정을 위해 가장자리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 벽(璧)

 

 

 

◆ 환(環)_반지.
- 반지는 일반적으로 손목 장식이나 액세서리로 사용되었다.

 

◆ 쌍련옥(雙聯玉)_궁멍이 2개인 옥.

* 제목과 달리 1개의 옥에 2개의 구멍을 뚫었다.

 

 

 

◆ 옥기(玉器)

 

 

# 능가탄문화(凌家灘文化)
- 능가탄문화는 기원전 3800년부터 기원전 3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소호(巢湖)를 중심으로 한 안후이성 함산(含山)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이 지역은 양쯔강 하류 신석기 시대 초기 옥을 가공하는 중심지였다. 능가탄문화의 옥공예품의 종류는 홍산문화의 옥공예품과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종교제사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사람, 용, 거북이, 판(版), 황(璜) 등이 있으며, 그 형상이 매우 정교하다. 모양과 신비한 의미를 담고 있다.

 

 

# 양저문화(良渚文化)
良渚文化年代约为公帯前3300年至前2300年, 主要分布 于长江下游的太湖及杭州湾地区。代表性玉器有琮、壁、钺、 冠状饰、三叉形器、串饰等。器表多以细如发丝的阴刻线进行 雕刻,纹饰有神人兽面纹, 鸟纹, 云纹等, 工艺平居于新器 时代之首。良渚玉器具有强烈的宗教和礼仪色彩, 贵族墓葬内常见以大量琮, 璧, 钺等礼玉组构成成的陪葬品.

양저문화(기원전 3300~2300년경)는 주로 양쯔강 하류 지역의 타이후(太湖)와 항저우만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양저문화의 대표적인 옥기는 종(琮), 벽(璧), 월(鉞:전투 도끼), 관모양 장식, 세 갈래 모양 기물, 관식(串飾) 등이다. 옥기에는 양각으로 가는 실모양으로 새겼는데, 여기에는 신과 사람의 얼굴 문양, 새 문양, 구름 ㅁ분양 등을 조각하였다. 공예의 수준은 신석기시대의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양저문화의 옥기는 모두 강렬한 종교와 의례의 색채가 짙다. 귀족의 무덤에서는 일반적으로 대량의 종(琮), 벽(璧), 월(鉞)과 같은 옥을 조합한 구성의 부장품이 발견된다.

◆ 관장식(冠裝飾)
- 관장식은 또 빗의 윗부분인 '소배(梳背)'라고도 부르는데, 빗의 상반부와 아랫부분이 순(榫:장부) 모양이며, 대(帶)에는 원형의 구멍이 있다. 다른 재질로 만든 빗살과 결합하여 완전한 빗을 이룰 수 있다. 빗 윗부분의 오목한 부분의 바깥 윤곽에는 한자 '介'자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介'자 모양 도안은 장강 중하류 지역에서 신인(神人) 착용하는 고관(高冠)의 모양으로 종종 종교신앙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유형의 옥빗은 대부분 양저문화의 신분이 높은 무덤에서 출토되는데, 이는 양저의 귀족들이 지도자이자 무당이라는 이중적 신분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탁(鐲)_팔찌
- 양저문화의 옥팔찌는 구경과 두께에 일정한 차별이 있으며 팔찌와 손목팔찌로 나눌 수 있다.

*너무 무거워 보인다.

 

◆ 벽(璧)
- 양주문화의 옥벽은 의례용 기물이자 부의 상징이다. 반산(反山) 대묘 내에 부장된 옥벽은 최대 수십 개로,  재질이 우수하고 정교하게 만든 옥벽이 무덤 주인의 가슴에 놓여 있으며, 알록달록하고 색상에 조악하게 만든 옥벽은 무덤 주인의 발치에 놓여 있다.

 

 

◆ 신인문종(神人紋琮)_신과 사람 문양을 새긴 종(琮)

- 종(琮)은 양저문화 예기(禮器)의 핵심으로 종교, 장식, 의례 및 권력 일체가 된다. 종의 바깥쪽 모서리에는 일반적인 형태의로 신과 인간의 문양과 다른다. 이는 신인(神人), 동물의 얼굴 문양을 단순화한 형태이다. 신인과 짐승의 얼굴 문양의 완전한 문양은 커다란 옥종(玉琮)의 측면에만 나타나며, 머리에 깃털관을 쓴 무당 혹인 신인(神人)이 무당의 조형이 있다. 이는 사람과 짐승이 영을 통하는 의식을 가장 직관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동물 문양의 대표되는 것으로는 호랑이 문양, 새 문양, 용 문양, 악어 문양 등이 있으나 그 문양에 대한 설명에는 차이가 있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여러 가지 동물의 형상을 종합하여 추상적으로 만들어낸 신괴(神怪)로 강렬한 원시 무술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 인식하기도 한다.

 

 

# 용산문화(龍山文化)

- 용산문화는 기원전 2300년부터 기원전 18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분포지역은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와 기본적으로 일치하며 그 것을 계승한 문화이다. 옥기의 유형은 대부분은 정치와 군사 권력을 상징하는 창, 칼, 도끼[鉞:전투 도끼],  도끼[斧:톱니 모양 도끼],  도끼[] 등이며, 또 홀[(규:圭), 장(璋:반쪽 홀)과 아벽(牙璧)  등  의례용 기물도 보인다. 기물의 규정은 경박하고 대부분 문양을 장식한 것이 없다. 그 중 새의 형상이 비교적 자주 보인는데 이는 용산문화의 새를 숭상하는 풍습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 환형식(環形飾)_팔찌 모양 장식.

- 반지 장식 (2개)_산동성 오연단토(五蓮丹土)에서 출토.

팔찌의 바깥 가장자리에 있는 볼록한 이빨의 꼭대기는 "介"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양저문화에서 유형하던 관모양 옥 장식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원시종교의 의미를 충분히 함의하고 있다.

 

 

◆  

 

 

◆ 삼아벽(三牙璧) 

- 3개의 톱니가 있는 옥벽.

 

 

 

◆ 월(鉞)_전투용 도끼.
- 월(鉞)은 부(斧)에서 변형된 것으로 날이 넓은 무기이다. 옥도끼는 사용 흔적 없이 정교하게 제작되는 경우가 많으며 권력과 지위의 상징이다.

◆ 부(斧)

 

 

 

 

# 석묘문화(石峁文化)
- 석묘문화는 기원전 2300년부터 기원전 18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주로 산시성(陝西省), 산시성(山西省), 허베이성 북부, 내몽골 중부와 남부에 분포한다. 석묘문화 옥기의 종류와 형태는 대부분 용산문화에서 유래하여 아울러 발전하였다. 주로 칼, 월(전투 도끼), 벽(璧), 아장(牙獐:측면 톱니가 있는 칼날),  여러 개의 황(璜)을 벽(璧)과 연결 한 것 등이다. 무덤과 제사 구덩이 외에도 성벽에 박혀 있는 많은 옥기가 발견되었다.

 

 

◆ 오공도(五空刀)_ 구멍이 5개 있는 옥칼.

- 이 칼은 한쪽 칼날이 '片'자 모양의 석기로  대부분 직사각형이다. 소형의 돌칼은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도구이다. 대형 돌칼의 뒷면에는 나무 손잡이를 부착할 수 있는 구멍이 여러 개 있는데 일종의 무기이다. 설가강(薛家崗), 양저, 용산 등 문화에서 모두 옥칼이나 돌칼이 발굴되었습니다. 용산문화에서는 가장자리가 넓거나 좁은 옥칼이 많이 발견되는데, 잘 연마되어 있고 기물의 몸체가 매우 얇으며 뒷면에 3개의 구멍이 있고 가운데에 1개의 구멍이 뚫린 유형이다.  뚫린 구멍에는 또 녹송석을 상감한 경우도 있으며, 칼날의 가장자리는 사용한 흔적이  없어 표준 의례용 예기에 속한다. 석묘문화의 옥칼은 용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확하다.

 

 

# 제가문화(齊家文化)

- 제가문화는 기원전 2200년부터 기원전 17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중원의 용산 시기와 하왕조 시대와 거의 같은 시기이다. 주로 간쑤성(甘肅省) 중부와 동부, 닝샤(寧夏) 남부, 칭하이(靑海) 동부에 분포합니다. 제가문화에는 옥기의 종류가 다양했는데, 크게 예기와 공구로 분류할 수 있는데, 벽(璧), 종(琮), 황(璜), 환(環)은 주류를 이루었으면, 또 칼[刀], 도끼[斧], 자귀[錛], 도끼[鉞] 등이다.

 

 

◆ 옥벽(玉璧)

 

 

◆ 사공도(四空刀)_구멍이 4개 뚫린 칼.

 

 

 

◆ 종(琮)

- 양저문화의 종(琮)은 처음에는 황하 하류로 퍼져나갔고, 이후 중류를 거쳐 상류의 제가문화에 이르렀다. 옥종은 문화적 의미와 생산 풍격격에서 모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신인과 동물의 얼굴 문양은 사라졌고, 장식은 민무늬가 주를 이루었으면 가끔 평행선이 있다. 일부 옥종의 비스듬한 주둥이도 사라져 중앙에 구멍이 있는 사각 기둥으로 변했다.

 

 

# 왕권의궤(王權儀軌)_왕권의 의례.
- 신석기시대 후기에는 사회적 복잡성이 심화되어 권력귀족층이 옥을 가공하는 산업을 독점하게 되면서 사회계층을 표현하는 의례용 옥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양저(良渚), 도사(陶寺), 석묘(石峁) 등 초기 국가의 형성은 예의제도의 확립에 기여했으며, 옥의 만든 예기는 신권(神權)과 왕권(王權)의 공통된 상징이 되었다. 이리두문화로 대표되는 하왕조(夏王朝)는 중원에서 중국 문명의 발전을 주도하는 과정을 시작했고, 상(商)나라는 하왕조를 이어 더욱 강력한 왕권 국가를 세웠다. 두 왕조의 통치자들은 한편으로는 정복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신석기시대 이후 지역 문화의 의미를 통합하여 그들만의 신권 신앙과 왕실의례를 만들어냈다.

 

 

◆ 현문과(弦紋戈)_고리문양이 새겨진 창.
-  1955년 하남성(河南省) 정저우(鄭州) 백가장(白家莊)에서 출토되었다.
- '戈'는 상주(商周) 시기의 주요 무기였다. 옥과는 전반적으로 청동과의 형태를 모방한 것으로 비록 옥과의 몸체가 가늘어 부서지기 쉬우며 실제 전투 기능은 없지만 그 솜씨와 미학이 실용무기를 훨씬 뛰어넘어 의례용 예기로 사용할 수 있다.

 

 

◆ 분형기(錛形器)-자귀모양 기물.
- ' 錛'은  신석기시대 목공 도구 중 하나로 대패질, 홈 파기, 구멍 뚫기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대부분 돌로 만들어졌고 크기가 작았다. 이 ' 錛' 모양 기물은 몸체가 크고 일정하며 잘 다듬어져 있어 분명히 보기 드문 의례용 도구이지만 입 부분에 사용 흔적이 뚜렷하므로 실제 사용한 기물이기도 하다.

 

 

#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시대에는 전통적인 종(琮), 벽(璧), 환(環), 황(璜), 규(圭), 장(璋) 이외에도 특별히 월(鉞), 과(戈), 도(刀), 모(矛) 등 의례용 무기를 부각시켜 왕권국가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에는 청동으로 만든 옥을 가장하는 공구가 등장하는데 문양이 있는 옥기가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 옥기(玉器)는 형태가 정교하고 예술적인 표현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조각된 동물은 대부분 윤곽선이 측면 윤곽이 주로 나타나며 양각 선문양이 유행하였는데, 내용상 생산, 의복, 종교, 제사, 의례 및 음악 등에 다방면의 사회 정보를 반영하고 있다.

 

 

◆ 현문종(弦紋琮)_테두리 문양이 있는 종.

- 상나라.(약 기원전 16세기~기원전 11세기)

- 1976년 하남성 안양시 은허의 부호묘(婦好墓)에서 출토 되었다.

 

 

◆ 

 

 

◆ 벽(璧)

- 양저문화

- 1984년 절강성 여향(餘杭) 종개(鍾介) 출토.

 

 

# 월(鉞) 뒷면 우측.
- 부( )와 월(鉞)은 통상적으로 함께 일컬어지는데 두 가지는 모양도 비슷하다. 돌도끼[石]는 구석기시대의 자르거나 치는 기물에서 유래한 고대 벌목 도구이다. 신석기시대 후기에는 돌도끼로부터 분화하여 전투와 베기에 적합한 편평한 몸체와 넓은 칼날을 갖춘 무기, 즉 돌도끼로 발전하였다. 권력귀족층의 등장과 함께 부와 월은 의례화가 시작되어 몸체가 가볍고 얇으며 정교하게 제작한 한 옥부(玉)와 옥월(玉鉞)이 등장했다.  부(玉斧)는 모양이 좁고 길며 점차적으로 평수규(平首圭)로 진화하였고, 옥월(玉鉞)은 모양이 더 넓어졌으며 이것이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 부(斧)_도끼

- 신석기시대 말기(약 기원전 230년~기원전 1800년)

 

 

◆ 

 

 

◆ 수면문도(獸面紋刀)_짐승 얼굴 문양이 새겨진 칼.

 

 

 

◆ 척(戚)

- 상나라.

- 1976년 하남성 안양시 은허 부호묘에서 출토.

 

 

화살촉[鏃] 3개

- 상나라

- 1950~1951년 하남상 휘현(輝縣) 유리각(琉璃閣) 출토.

 

 

◆ 모두(矛頭)_창 머리

- 상(商)나라(약 기원전 16세기~기원전 11세기)

- 1950~1951년 허난성 휘현 유리각에서 출토.
- 유리각 유지에서 출토된 옥으로 만든 창과 화살촉은 모두 청동 병기에 상감한 부품으로, 재료로 엄선하여 정교하게 제작된 의장용 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