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물관/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

2024_08_베이징_중국국가박물관을 찾아서_중국고대자기

by isanjo 2024. 11. 28.

2024_08_베이징_중국국가박물관_중국고대자기

 

# 중국고대자기전

 

두 번째 방문한 곳은 자금성 앞에 있는 베이징중국국가박물관이다. 우리나라의 한국국립중앙방물관과 같은 곳이다. 박물관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1시간 남짓한 시간에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하에 있는 기본진열전시관은 베이징에 올 때마다 들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4층에 있는 특별전시관을 찾았다. 관람했던 당시 북16에는 <수설서준(數說犀尊)>, 북17에는 <중국고대자기>, 북18에는 중국고대복식문화>, 4층 북19에는 <중국고대옥기>가 전시 중이었다.
이전에도 기본진열과 연초의 특별전에서 다양한 도자기를 보기는 했지만 고대부터 현대에 걸친 종합적인 전시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북17에 있는 <중국고대자기전(中國古代瓷器殿)>에 마음이 닿았다. 이번에 전시된 유물은 해당 박물관 소장품 중 300여 점의 대표적인 도자기 걸작품을 선정하여 네 가지의 테마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첫 번째는, "유구한 역사[源遠流長]", 두 번째는, "도자기 예술과 장인의 마음[瓷藝匠心]", 세 번째는, "도자기 운치와 풍화[瓷韻風華]", 네 번째는, "도자기 세계로 가다[瓷行天下]" 등 4개 부분으로 되어 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중국고대도자기의 형성과 발전, 도자기 제조 기술의 진보, 장식 풍격의 진화, 중국 이외 국가들과의 문화교류 상호작용 및 이면에 내포된 사회 변천과 심미의상(審美意想) 등 일체를 유약(釉藥), 조형(造型), 공예(工藝) 등의 측면에서 고대중국도자기의 변화 과정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중앙에 당대(唐代)의 전형적인 양식인 백유집호(白釉執壺), 북조(北朝)시기의청유앙복연화준(靑釉仰覆蓮花尊), 동진(東晉)시기의 흑유계수호(黑釉鷄首壺) 등 아름다운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백유집호(白釉執壺)>


위 그림에 있는 호(壺)는 당대(唐代) 집호(執壺:주전자)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집호는 문헌에서 흔히 ‘주자(注子)’ 또는 ‘주호(注壺)’라고 하는데, 당대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이다. 수당시기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는 잔탁(盏托)과 잔(盏)처럼 각종 일상생활용품 위주인데 이는 당시에 차를 마시는 풍속의 유행과 관련이 있다.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주전자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1장. <원원유장(源遠流長)>으로 근원이 멀면 흐름도 오래간다는 의미로, 유구한 역사를 가리킨다. 이 장에서는 중국고대 도자기의 발전을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세부 주제는 <소시순적(溯始循迹)>, 남청북백(南靑北白), 명요임립(名窑林立), 등보조극(登峯造極) 등 네 개로 나누어져 있다.

중국은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때 이미 원시 자기(瓷器)를 발명하였으며, 동한 말기에 성숙한 도자기를 구워냈다. 북조 말기부터 수대(隋代)까지 북방 지역은 백자를 만들어, 수당 오대(隋唐五代)까지 남쪽은 청자, 북쪽은 백자를 생산하는 구도를 형성하였다. 송대에는 도자업이 왕성하게 발전하여 유명한 가마가 각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으며, 유명한 가마를 중심으로 요업체계를 형성하였다. 요(遼), 서하(西夏), 금(金), 원(元)은 중원의 도자기 기술을 계승하면서도 각 자기 민족만의 특색이 있는 자기를 구워냈다. 명청시기의 어요창(御窯廠) 설립은 자기업의 생산구조를 개혁시켰고, 어요(御窯)의 자기는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종류가 다양해졌다. 특히 청화(靑花), 채회(彩繪)와 안색유(顔色釉) 자기가 가장 특색 있다. 경덕진(景德鎭)은 날이 갈수록 전국 도자기 제조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는 설명이 있다.

# 1.1. <소시순적(溯始循迹)>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고 자취를 따른다.’는 의미로, 원시자기에서 성숙한 자기로 발전하는 단계를 유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하나라와 상나라 시기에 나타난 원시자기는 경질백도(硬質白陶)와 인문경도(印紋硬陶)의 기초 위에서 발전하였으면, 전국시기에는 원시자기의 생산이 전성기에 이르렀고, 태질(胎質)이 섬세하고 기형이 아름다워 부장품으로 사용되던 청동기를 모방한 예기(禮器)와 악기(樂器)가 나타났다. 동한 말기에는 마침내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성숙한 도자기를 구워내어 질적인 비약을 이루었다.
<소시순적(溯始循迹)>에는 하남성 정주시 이리강유적에서 출토된 자기의 전신인 상대(商代)의 운뢰문경도관(雲雷纹硬陶罐), 안휘성 돈계(屯溪)에서 출토된 서주시기의 청유망문준(靑釉罔纹尊), 강소성 신강(愼江)에서 출토된 춘추시기의 청유쌍계관(靑釉雙系罐), 강소성 신강지구(愼江地區)에서 출토된 전국시기의 청유인능격문관(靑釉印菱格纹罐)ㆍ청유직복배(靑釉直腹杯), 서한시기의 청유쌍계반구호(靑釉雙系盤口壺), 동한시기의 청유사계관(靑釉四系罐) 2점, 청유세(靑釉洗) 등 9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운뢰문경도관(雲雷纹硬陶罐)>


위 그림의 관(罐)은 도장으로 찍은 문양이 있는 단단한 도기로, 사용한 원료는 이미 자토(瓷土)에 가깝거나 후대에 생산된 원시자기와 같으며 굽는 온도도 일반 도기에 비해 높은 자기의 전신이다.

# 1.2. <남청북백(南靑北白)>
‘남쪽에는 청자, 북쪽에는 백자’라는 의미로 부제는 ‘성숙한 자기의 탄생’으로 위진남북조부터 수당[220~907년]시기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의 자기(瓷器) 생산은 빠른 발전단계에 들어서 남쪽에서는 완성도 있는 청유약과 흑유약으로 자기를 굽기 시작했으며, 절강ㆍ호남ㆍ강서ㆍ복건 등지에서는 자기 중심지와 가마의 체계가 초보적으로 형성하였다. 북쪽의 자기 생산도 빠르게 발전하여 백자를 성공적으로 구워냈다. 수당 시기에는 정권이 통일되면서 경제발전과 아울러 문화와 무역교류가 번성하여 도자기 제조업과 시장이 확대되어 '남청북백(南靑北白)'의 생산구조를 형성하였다. 이후 유약 위에 색을 칠해 굽는 도자기가 요(遼) 송(宋) 서하(西夏) 금(金) 원(元)에서 시작되었다.
# <남청북백(南靑北白)>에는 청유계열에 해당하는 서진 시기의 청유호자(靑釉虎子)ㆍ청유저권(靑釉猪圈)ㆍ청유쌍계장방형편병(靑釉雙系長方形扁壺)ㆍ청유쌍계관(靑釉雙系罐), 동진시기의 청유갈반수호(靑釉褐斑唾壺), 수대의 청유소첩팔계관(靑黄釉塑貼八系罐)ㆍ갈유세경병(褐釉細頸瓶)ㆍ청유각거치변연우뉴개관(靑釉刻鋸齒邊蓮藕鈕蓋罐), 당대의 청황유용문경(靑黄釉龍柄鷄首盉), 오대의 청유각획화훼문합(靑釉刻劃花卉紋盒)ㆍ청유과릉쌍계관(靑釉瓜棱雙系罐) 등 11점, 배유계열에 해당하는 수대의 백유소병(白釉小瓶)ㆍ백유철현문장경병(白釉凸弦紋長頸甁)ㆍ백유개관(白釉蓋罐), 당대의 백유치구환병배(白釉侈口環柄杯), 오대의 백유합(白釉盒) 등 5점,  발유(潑釉) 계열에 해당하는 당대의 노산요발유집호(鲁山窑潑釉執壺) 1점, 당대의 청유갈록채화조도호(靑釉褐绿彩花鳥圖壺) 1점 등 모두 18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청유호자(靑釉虎子)>



# 1.3. <명요임립(名窑林立)>
‘유명한 가마가 숲처럼 즐비하다.’는 의미로, 송대부터 원대[916~1368]까지 약 451년간에 만들어진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다.
부제가 <도자기 생산의 번영>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송대(宋代)에는 도자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북쪽에는 정요(定窯)를 중심으로 하는 박태정밀백자(薄胎精細白瓷), 주요(耀州窯)를 대표로 하는 각인화청유자(刻印花靑釉瓷), 여요(汝窯)를 중심으로 하는 천청유자(天靑釉瓷) 등이 있었으며, 남쪽에는 월요(越窯)와 용천요(龍泉窯)를 중심으로 한 청자 생산 전통이, 경덕진(景德鎭)을 대표로 하는 청백자 전통이, 건요(建窯)와 길주요(吉州窯)를 대표로 하는 결정유흑유자(結晶釉黑釉瓷) 생산 전통을 이어갔다. 요(遼)ㆍ금(金)ㆍ서하(西夏)는 중원 도자기공예의 영향을 받아 민족적 특색을 띤 도자기를 창조해냈다. 원대에는 경덕진이 전국 도자기 제조업의 중심적인 지위가 점차 뚜렷해지고 공예가 끊임없이 변화되었으며 청화(靑花)와 유리홍자(釉裏紅瓷)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유하채자기(釉下彩瓷器)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켰으며, 난백유(卵白釉)ㆍ남유(藍釉) 등 고온단색유자(高溫單色釉瓷)가 처음 만들어져 명청(明淸)시대 단색유자의 단초를 열었다.
북쪽지역의 요(遼)와 서하(西夏)에선는 중원 도자기공예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스타일의 제품을 생산했는데, 닭 벼슬 모양 주둥이 호(壺), 봉황머리 문양의 병(甁) 등이다. 여진인(女眞人)이 북송을 멸망시킨 후에도 금(金)의 도자기 제조업은 북송을 이어 발전하였으며, 요주요(耀州窑)ㆍ자주요(磁州窑)ㆍ균요(鈞窑)ㆍ정요(定窑) 등에서는 거칠고 장식이 간소화된 도자기를 만들었다.
<명요임립(名窑林立)>에는 북송의 여요천청유반(汝窑天靑釉盤)ㆍ정요백유모인쌍어문반(定窑白釉模印雙魚紋盤)ㆍ균요매괴자유해당식화분(鈞窑玫瑰紫釉海棠式花盆)ㆍ요주요청유각연화문위기관(耀州窑靑釉刻連花紋圍棋罐)ㆍ자주요계백지흑화전지화문매병(磁州窑系白地黑花纏枝花紋梅瓶), 길주요백지갈유해수문장경병(吉州窑白地褐彩海水紋長頸瓶) 등 6점, 남송의 관요분청유해당식루자(官窑粉靑釉海棠式壘子)ㆍ가요회청유오방위각세(哥窑灰靑釉五方委角洗)ㆍ용천요청유소첩쌍어절연세(龍泉窑靑釉塑貼雙魚折沿洗)ㆍ경덕진방정요양동구모인단리문세(景德鎭仿定窑鑲銅扣模印團螭紋洗)ㆍ흑유토호잔(黑釉兔毫盞)ㆍ항와요백유척획전흑유전지모란문준(缸瓦窑白釉剔劃塡黑釉纏枝牡丹紋尊) 등 6점과 요(遼)의 백유소첩쌍후획화계관호(白釉塑貼雙猴劃花雞冠壺) 1점, 서하(西夏)의 영무요장유개광척획모란도매병(靈武窑醬釉開光剔劃牡丹圖梅瓶) 1점, 금(金)의 균요천람유자홍반완(鈞窑天藍釉紫紅斑碗)ㆍ균요천람유잔(鈞窑天藍釉盞)ㆍ정요장유척획인동문요원침(定窑醬釉剔劃忍冬紋腰圓枕)ㆍ요주요청유각획서우망월도완(耀州窑靑釉刻劃犀牛望月圖碗) 4점 등 모두 18점이 전시되어 있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물의 이름이 매우 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하게 유물의 이름을 정한 것이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 유물의 만든 장소를 비롯하여 유약의 색상, 만드는 방식, 자기의 모양 등의 설명을 넣어서 이름을 붙이다 보니 적게는 6자에서 많게는 16자에 이르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어떤 박물관은 너무 설명이 부족해서 아쉽고, 어떤 박물관은 너무 많은 정보를 주어 번거로운 경우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번 특별전의 경우, 유물의 제목 아래 중국어와 영어로 자세한 설명이 있기 때문에 만든 장소, 유약의 색상, 만드는 방식, 자기 모양 등은 없어도 무방해 보인다.


그림  <관요분청유해당식루자(官窑粉靑釉海棠式壘子)>



위 그림의 누자(壘子)는 해당화 모양을 본뜬 윗부분의 자구(子口)와 받침인 모구(母口)로 되어 있어 조형이 독특하다. 이런 종류의 기물은 문헌에서 ‘누자(壘子)’라고 하는데,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한 세트로 겹쳐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림  <백유소첩쌍후획화계관호(白釉塑貼雙猴劃花雞冠壺)>


위 그림의 호(壺)는 복부 가장자리에는 2개의 볼록한 장식이 있는데, 가죽을 꿰매어 봉합한 것을 모방한 이음매로 되어 있는데, 이런 형태는 요나라 도자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도자질(陶瓷質)의 계관호(鷄冠壺)는 당대와 요대에 처음 나타났는데, 거란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가죽 주머니 호(壺)를 모방한 것으로 유목민족의 문화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 원대에는 자주요(磁州窑)ㆍ용천요(龍泉窯)ㆍ균요(鈞窯) 등에서 이전 시대의 생산을 이어갔으며, 강서성의 경덕진에 ‘부량자국(浮梁瓷局)’을 설치해 관청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구워내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경덕진의 도자기 제조업을 빠르게 발전시켰고, 중국을 비롯하여 외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난백유ㆍ유리홍ㆍ청화 및 안색유 등이 계속해서 구워졌다. 강서성 경덕진과 절강성 용천은 전국 도자기 제조의 중심이 되면서 기타 정품(精品) 도자기를 굽는 가마는 수량이 갈수록 적어졌으며, 대부분의 가마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거친 자기를 생산하여 세련된 것과 거친 것 두 가지로 극렬하게 분화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원대의 유물은 청화쌍봉천전지연문옥호춘병(靑花雙鳳穿纏枝蓮紋玉壺春瓶)ㆍ경덕진요란백유모인전지화문반(景德鎭窑卵白釉模印纏枝花紋盤)ㆍ자주요고상장가조관개광화조금학상수고사도장방침(磁州窑“古相張家造”款開光花鳥琴鶴相隨故事圖長方枕)ㆍ자주요백지갈채운봉문관(磁州窑白地褐彩雲鳳紋罐)ㆍ균요천람유완(鈞窑天藍釉碗)ㆍ용천요청유첩소용문반(龍泉窑靑釉貼塑龍紋盤) 등 6점이 전시되어 있다.

원대에는 경덕진요에서 고온난백유자를 처음 구웠는데, 반(盤:쟁반), 완(碗:주발), 고족배(高足杯:다리가 높은 잔) 등 작은 그릇이 항상 보이는데, 장식은 인화(印花:꽃무늬를 찍음)가 위주였다. 균요는 생산량이 많고 분포범위가 넓은 북방 가마 중 하나로 병(甁), 호(壺), 관(罐:단지) 등 민간에서 사용하는 자기를 위주로 생산하였다. 유약색은  하늘색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용천요에서 생산된 청자의 특징은 그릇의 형태가 이 비교적 크고 태체(胎體)가 두꺼운 것이 다. 장식은 각획(刻劃:새김), 찍기, 붙이기, 아로새김, 쌓기 등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했다. 특히 수륙교통과 대외무역는 용천요 청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 1.4. <등보조극(登峯造極)
‘최고의 경지에 오르다.’의 의미로 ‘자기(瓷器)의 눈부심’의 부제이다. 여기에서는 명청시기(1368~1911) 최고의 경지에 이른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중국 도자기 생산은 기술과 예술 양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다양한 종류의 명품이 만들어졌다. 청화자기는 당시 가장 주요한 제품으로서 청료(靑料)와 화풍은 서로 다른 단계에서 함께 발전했다. 오채(五彩)ㆍ투채(鬪彩)ㆍ법랑채(珐琅彩)ㆍ분채(粉彩)ㆍ소삼채(素三彩) 등 현란하고 알록달록한 채색자기가 발전하여 흥성하였으며, 안색유(颜色釉)자기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고, 제홍유약ㆍ교황유약ㆍ공작녹유 등 단색유약 품종도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청대 건륭시기 자기의 방고(仿古) 기술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역대 유명한 자기의 조형ㆍ유약ㆍ무늬 장식에 있어 모두 모방의 사례가 있다. 과도기에는 선진시기 청동정(靑銅鼎)의 재현도 있었고, 송원시기 남북 명요에 대한 참고도 있었으며, 명대 어요의 정품(精品)에 대한 모방도 포함된다.
명대의 유물은 청화절지모란문능화구절연반(靑花折枝牡丹紋菱花口折沿盤)ㆍ청화전지모란문옥호춘병(靑花纏枝牡丹紋玉壺春甁)ㆍ청향초기룡문관(靑花香草夔龍紋罐)ㆍ유리홍삼과문고족완(釉裏紅三果紋高足碗)ㆍ청화절지련탁팔보문고족배(靑花折枝蓮托八寶紋高足杯)ㆍ청화전지문삼족호(靑花纏枝連紋三足爐)ㆍ청화휴금방우도관(靑花携琴訪友圖罐)ㆍ청화팔선운학도호로병(靑花八仙雲鶴圖葫蘆甁)ㆍ청화산수인물고사도정수완(靑花山水人物故事圖淨水碗)ㆍ투채화접도관(鬪彩花蝶圖罐)ㆍ황지녹채운룡문반(黄地綠彩雲龍紋盤)ㆍ황지홍채해수운룡문관(黄地紅彩海水雲龍紋罐)ㆍ백유청화가녹채운룡문반(白釉靑花加綠彩雲龍紋盤)ㆍ황지소삼채쌍룡희주문반(黄地素三彩雙龍戱珠紋盤)ㆍ오채어조도관(五彩魚藻圖罐)ㆍ청화오채오곡풍등기린도반(靑花五彩五穀豊登麒麟圖盤)ㆍ청화오채인물도(靑花五彩人物圖盤)ㆍ첨백채모인운룡문(甜白釉模印雲龍紋高足碗)ㆍ공작녹유고족완(孔雀綠釉高足碗)ㆍ제홍유반(祭紅釉盤)ㆍ교황유반(嬌黃釉盤) 등 21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유리홍삼과문고족완(釉裏紅三果紋高足碗)>


위 그림의 완(碗)은 세 종류의 과일 문양이 있는 것으로, 중국의 전통적인 상서로운 도안이다. 복숭아는 ‘장수’의 뜻을 내포하고 있고, 불수(佛手:열매 이름)의 ‘佛’은 ‘福’과 음이 가까우며, 석류(石榴)는 ‘다산’을 의미한다. 합치면 바로 ‘三多’이다. 즉, 장수[多壽], 다복[多福], 다산[多子을 의미한다.


그림  <청화팔선운학도호로병(靑花八仙雲鶴圖葫蘆甁)>


위 그림의 병(甁)은 팔선(八仙)의 그림이 있는데, ‘팔선의 축복’을 의미한다. 호리병[葫蘆甁]은 명나라와 청나라 도자기 중에서 비교적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호로(葫蘆:조롱박)’와 ‘"복록(福祿)’의 음이 가깝기 때문에, 호리병은 ‘복록’을 의미하며, ‘축복’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

청대의 유물을 분채백록준(粉彩百鹿尊)ㆍ분채구도도천구병(粉彩九桃圖天球甁)ㆍ청화유리홍가채해수운룡문항(靑花釉裏紅加彩海水雲龍紋缸)ㆍ투채팔길상문(鬪彩八吉祥紋盤)ㆍ유리홍절기화문평과형수우(釉裏紅折枝花紋苹果形水盂)ㆍ방여유쌍이준(仿汝釉雙耳尊)ㆍ방균신자유이식준(仿鈞新紫釉匜式尊)ㆍ방고동착금희이준(仿古銅錯金犧耳尊)ㆍ노균유지추병(爐鈞釉紙槌甁)ㆍ차엽말유행원관이호(茶葉末釉杏圓貫耳壺)ㆍ방주칠국판반(仿朱漆菊瓣盤) 등 11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분채구도도천구병(粉彩九桃圖天球甁)>


위 그림은 복부가 둥글고 모양이 천체 행성처럼 생겼다고 해서 천구병(天球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런 형태는 명나라 영락ㆍ선덕시기에 시작되었고, 옹정ㆍ건륭시기에 유행했는데, 궁중의 진설용 자기에 속한다. 옹정시기 어요의 분채자기에 그려진 복숭아열매는 대부분 8개이고 건륭시기의 것은 9개를 많이 그렸기 때문에 ‘옹팔건구(雍八乾九)’ 라는 말이 생겼다.

2장은 <도자공예(陶瓷工藝)>로 <형구신생(形具神生)>, <조화천공(造化天工)>, <운외지수(韻外之收)>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장에서는 중국의 고대 장인들은 조형ㆍ유약색ㆍ장식ㆍ소조(燒造) 기예에 있어 끊임없이 탐구하고 정진하였으며, 지속적으로 도자기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도자기의 질이 견고해지고, 유약의 색이 아름다워졌으며, 그릇의 모양이 더욱 다양해지면서 도자기의 실용성뿐만 아니라, 기능성을 초월하는 미학정신을 나타냈으며, 이러한 과학과 예술, 실용과 심미의 결합이 결국 중국 도자기의 근본적인 가치를 만들어 세계 속에서 ‘자기의 나라’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 2.1. <형구신생(形具神生)>에서는 서진시기의 청유조(靑釉竈), 당대의 청유소첩쌍어문집호(靑釉塑貼雙魚紋執壺), 오대의 월요청유비색자각련화문합(越窯靑釉秘色瓷刻蓮花紋盒), 북송의 녹유척획모란도침(綠釉剔劃牡丹圖枕), 남송의 길주요흑유주채월영매지문완(吉州窑黑釉酒彩月影梅枝紋碗), 금(金)의 자주요백유풍화설화침(磁州窑白釉“風花雪月”枕), 균요천람유자록반계심관(钧窑天蓝釉紫绿斑鸡心罐), 명대의 제홍유반(祭紅釉盤)ㆍ유리홍전지국문옥호춘병(釉裏紅纏枝菊紋玉壺春甁), 청대의 오금유완(烏金釉碗) 등 모양이 다른 호(壺), 합(盒), 침(枕), 완(碗), 관(罐), 반(盤), 병(甁) 등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2.2. <조화천공(造化天工)>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자석(瓷石)과 고령토(高嶺土) 샘플, 유약과 돌을 가늘게 찧고 씻어 흙벽돌 모양으로 만든 유과(釉果), 식물의 가지와 잎에 이긴 석회를 겹쳐서 구워 만든 유회(釉灰), 가마 안의 온도를 측정하는 도구인 화조(火照), 청유잔(靑釉盏), 장소표본(裝燒標本), 도자기를 구울 때 벽돌을 놓아 벽돌에 대한 보호작용을 하는 “M”형갑발(M形匣钵), 중첩해서 굽는 그릇들은 띄어주는 물건인 거치형간격구(鋸齒形間隔具), 자기벽돌의 바깥 바닥에 깔고 기물과 갑발(匣鉢) 사이에 간격을 두어 자기 벽돌과 갑발이 붙는 것을 방지하는 점권(墊圈), 버팀목의 작용하는 지정(支釘) 등과 도자기의 생성 과정을 알 수 있도록 전시한 청대의 투채번련문호로병(鬪彩番蓮紋葫蘆甁), 현대의 청화자(靑花瓷)ㆍ청화구선적배체(靑花勾线的坯体)ㆍ이배후적배체(利坯后的坯体)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2.3.<운외지수(韻外之收)>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만든 백유인화편호(白釉印花扁壺), 청유서우후생초용(靑釉鼠牛猴生肖俑), 신묘 관축정완(辛卯款軸頂碗), 청백유팔릉집호잔편(靑白釉八稜執壺殘片), 청유렴구관(靑釉斂口罐), 황유완(黃釉碗), 쇄람유지묘금전지연문봉추병(灑藍釉地描金纏枝蓮紋棒槌甁)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  <청유소첩쌍어문집호(靑釉塑貼雙魚紋執壺)>


이 주전자는 물고기 무늬장식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첩화(貼花)는 모인(模印) 혹은 각종 무늬장식을 이미 성형된 기물의 표면에 붙인 후 유약을 발라 가마에 넣어 굽는 것이다. 모인첩화(模印貼花) 장식은 만당시기에 성행하였는데, 무늬장식의 내용이 풍부하며 대부분 생활에서 볼수 있는 것들로 꽃, 새, 물고기, 기러기 등이다.


3장은 <자운풍화(瓷韻風華)>로 ‘도자기의 운치와 화려함’이라는 의미로, 중국 자기의 생활미학을 주제로 하고 있다. 세부 주제는 설말부잔(雪沫浮盞), 곡수유상(曲水流觴), 세시청공(歲時淸供)으로 나누어져 있다.
자기(瓷器)는 사당에서 사용하는 경건한 기물이자, 군왕의 책상 머리의 진귀한 상완(賞玩)일 뿐만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의식주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도기에 비해 내구성이 강하고 아름다우며, 금속제품에 비해 제작이 쉽고 저렴하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자기는 사람들의 생활을 끊임없이 개선하였다. 동시에 조소에 적합한 형체, 아름답고 변화가 다양한 유약색과 풍부하고 다채로운 장식은 매우 높은 문화성과 예술성을 나타내고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담았다.
다기(茶器)、주기(酒器)、화기(花器:꽃병 등)、향기(香器:향로 등)를 대표로 하는 서로 다른 공용(功用)의 자기는, 옛사람들의 우아한 생활의 정취를 함께 만들어 냈다. 자기의 기용(器用)、조형(造型)、문식(紋飾)、유색(釉色) 등은 중국인의 세계에 대한 이해, 생활에 대한 열정,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을 모두 표현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도자기의 역사는 바로 중국의 생활미학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3.1. <설말부잔(雪沫浮盞)>은 ‘가락눈에 잔을 띄운다’는 의미로, 주제는 ‘도자기와 중국고대 차문화’이다. 중국의 차문화는 한당시대에 시작하여 송대에 번성하였는데, 위진남북조시기에는 차를 마시는 것이 이미 일종의 생활이 되었고, 도자기로 된 자기(磁器)가 자연스럽게 탄생하게 되었다. 당송시기부터 시작된 도자기 다구는 흡수성, 전열성, 보온성에 있어 차의 향을 잘 유지할 수 있고, 세척이 쉬운 장점으로 인해 점차 차 맛을 위한 첫 번째 선택이 되었다.
설말부잔(雪沫浮盞)에는 동진의 청유격((靑釉槅), 남조의 청유각연화문탁잔(靑釉刻蓮花紋托盞), 오대의 정요백유잔(定窯白釉盞)ㆍ정요백유풍로요자조합(定窯白釉風爐銚子組合), 당대의 백유탕병(白釉湯甁), 송대의  흑유토호잔(黑釉兔毫盞), 북송의 백유화식대탁자잔(白釉花式帶托瓷盞), 명대의 청화삼품향차관(靑花上品香茶罐), 명대(1368~1644)청대의, 분채집금단화개광우행자시의타호(粉彩什錦團花開光雨中烹煮詩意茶壺)ㆍ분채세한삼우도개완(粉彩歲寒三友圖蓋碗)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청유각연화문탁잔(靑釉刻蓮花紋托盞)>


탁잔(托盞)은 접시와 잔을 조합하여 만든 것으로, 위진남북조시기에 차를 마시는 풍조가 생기면서 중국 최초의 도자기가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차를 마시려면 물을 끓여야 하는데, 차완(茶碗)이 손가락을 데기 때문에 접시와 함께 사용하던 것에서 탁잔(托盞)이 생기게 되었다. 남조시기에 탁잔은 이미 성행하던 차 마시는 도구가 되었다.


그림  <분채세한삼우도개완(粉彩歲寒三友圖蓋碗)>


개완(蓋碗)은 청대에 유행했던 차 마시는 도구이다. 뚜껑 그릇으로 차를 마시고, 한 손으로 그릇을 들고, 한 손으로 뚜껑을 들어 물 위에 떠 있는 찻잎을 흔들어 찻물 전체를 위아래로 뒤집는다. 가볍게 긁으면 싱겁고, 여러 번 긁으면 진하게 된다. 찻주전자 대신 뚜껑을 덮어 차를 우려내는 것은 청대 차를 마시는 기구의 큰 특징이다.

# 3.2. <곡수유상(曲水流觴)>은 ‘굽이 도는 물에 술잔을 띄운다.’는 의미로, 주제는 ‘도자기와 중국고대 술문화’이다. 중국은 위진(魏晉)과 수당(隋唐)시기에 도자기 술그릇이 발달했다. 송대와 원대에는 도자업이 발전하면서 도자기 주기(酒器) 주구(酒具)의 주류가 되었다. 이후 증류 기술이 중국에 도입된 후 전국에 보급되기 위해 도자기 주구의 규격도 그에 상응하여 변화가 생겼다. 송대 이전의 술은 대부분 도수가 낮았는데 원대의 증류 기술이 발전하면서 매병을 술을 담는 그릇으로 자주 사용했고, 후에 명나라와 청나라에도 진설용기로 사용되었다.


그림  <청백유집호(靑白釉執壺)>


위 그림의 집호(執壺)는 주자(注子)、주호(注壺)라고도 하는데, 송대와 원대시기의 중요한 술을 따르는 주구(酒具器)였다. 대부분 온완(溫碗)과 짝은 이루었기 때문에 합해서 주완(注碗)이라고 하였다. 사용할 때 주자를 온완(溫碗)에 담고 온완(溫碗)에 뜨거운 물을 부어 술을 데운다. 명대 이후 주자는 집호로 개칭되었다.
<곡수유상(曲水流觴)>에는 서진의 청유쌍계반구호((靑釉雙繫盤口壺), 수대의 청유용병계수호(靑釉龍柄雞首壺), 당대의 장사요갈녹채화조도주자(長沙窯褐綠彩花鳥圖注子), 남송의 백유매병(白釉梅甁), 청백유집호(靑白釉執壺), 요(遼)의 황유계관호(黃釉鷄冠壺), 원대의 용천요청유고족배(龍泉窯靑釉高足杯)ㆍ용천요청유옥호춘변(龍泉窯靑釉玉壺春甁)ㆍ청자유이(靑白釉匜), 명대의 청화개광화과문집호(靑花開光花果紋執壺) 등 10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장사요갈녹채화조도주자(長沙窯褐綠彩花鳥圖注子)>


3.3. <세시청공(歲時淸供)>은 '철마다 청아함을 준다.'는 의미로, 부제는 ‘자기와 중국 고대 화기(花器) 예술’이다. 중국 화기 예술은 위진 시기의 불사 공양에서 시작되어 송대에 이르러 일반 문인과 선비에게 보급되었고, 일반 백성의 집에 깊이 들어가 오자목(吳自牧)의 󰡔몽량록(夢梁錄)󰡕에서 말하는 분향, 차 주문, 그림 걸기, 꽃 꽂기가  송나라 사람의 ‘네 가지 한가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도자기는 중국 고대 화기 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꽃병의 모양이 풍부하고 키가 작은 매병, 담병, 목이 긴 꽃병과 모조품의 꽃병은 송나라 도자기 화병의 주요 형태이다. 원명 이후에는 화훼를 심기에 적합한 각종 화분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세시청공(歲時淸供)>에는 송대 길주요흑유척화절지매문매병(吉州窯黑釉剔花折枝梅紋梅瓶), 남송의 관요분청유담식병(官窯粉靑釉膽式瓶), 명대의 용천요청유고(龍泉窯靑釉觚), 청대의 분채금어문장방화분(粉彩金魚紋長方花盆)ㆍ방목문유대좌화분(仿木紋釉帶座花盆)ㆍ제홍유매병(祭紅釉梅瓶) 등 6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길주요흑유척화절지매문매병(吉州窯黑釉剔花折枝梅紋梅瓶)>

# 3.4. 노연보훈(爐煙寶熏)은 ‘향로의 연기와 아름다운 향로’라는 의미로, 주제는 ‘자기(瓷器)와 중국고대 향 문화’이다.
향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본능에서 시작된다. 상고시대 제사에서 선민들은 불타는 향의 연기를 인간과 신이 소통하는 매개체로 여겼다. 굴원은 향초(香草)로 미덕에 비유하고 향은 도덕문화의 함의를 부여받았다. 생활 속에서 향은 냄새, 목욕, 훈의, 의료, 음식 등에 사용될 정도로 용도가 매우 넓다. 중국의 생활용 향은 선진시기에서 시작되었고 성당(盛唐)시기에서 성숙하여 양송(兩宋)에 보급되었다. 중국 본토의 향료는 대부분 향모(香茅) 등 천연 식물성 향료이며, 동한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단향초훈(單香草熏) 시대에 처해 있었다. "실크로드"가 원활해짐에 따라 각종 복합향료가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각종 향기도 생겨났다. 동양의 향혼(香)魂은 독특한 운치를 지니고 있어 매력이 넘친다.
노연보훈(爐煙寶熏)에는 한대의 녹유박산로(綠釉博山爐), 당대의 홍주요청황유대탁오수족로(洪州窯靑黃釉帶托五獸足爐), 송대의 관요분청유쌍이삼족로(官窯粉靑釉雙耳三足爐), 북송의 백유행로(白釉行爐), 남송의 관요분청유현문준식로(官窯粉靑釉弦紋樽式爐)ㆍ용천요분청유격식로(龍泉窯粉靑釉鬲式爐), 원대의 균요천람유삼족로(鈞窯天藍釉三足爐)ㆍ균요천람유쌍이삼족로(鈞窯天藍釉雙耳三足爐)ㆍ백유과형향합(白釉瓜形香盒), 명대의 공작녹유철조운용문쌍이삼족정식로(孔雀綠釉凸雕雲龍紋雙耳三足鼎式爐), 청대의 분채루공운용문정식향훈(粉彩鏤空雲龍紋亭式香熏)ㆍ요변유록단향로(窯變釉甪端香薰) 등 12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白釉行爐>



4장은 <행천하(瓷行天下)>로 ‘도자기가 천하에 유행한다.'라는 의미로, 부제는 ‘중국고대의 도자기 무역’이다.
# 4.1. 중국고대의 도자기 무역.
늦어도 중당(中唐) 이후 중국 도자기는 이미 대량으로 해외에 판매되었다. 송원시기에 도자기의 해상무역이 줄기차게 발전하였고,  광주ㆍ천주ㆍ명주 등 세계적인 항구가 잇달아 건립되었다. 명청시기에 도자기무역은 지속적으로 번영하였고 새로운 항로가 개척됨에 따라 중국도자기는 대량으로 유럽과 아메리카지역에 멀리 판매되었다. 중국 도자기 무역의 운송 노선은 당대 고고학자들에게 "도자기의 길"이라고 불린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중국 도자기는 당나라 발단의"도자기의 길"을 따라 원천적으로 수출된다. 그들은 아름답고 내구성이 있는 생활 그릇일 뿐만 아니라 현란하고 다채로운 조형과 장식으로 짙은 중국 문화와 풍토를 담고 있어 판매 지역의 물질적 생활과 문화 면모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고대의 도자기 무역>에는 당대의 월요청유쌍계과릉집호(越窯靑釉雙系瓜棱執壺)ㆍ형요백유완(邢窯白釉碗)ㆍ장사요청유갈채첩화발(長沙窯靑釉褐彩貼花缽)ㆍ장사요청유갈록채쌍계관(長沙窯靑釉褐綠彩雙系罐) 등 4점, 원대의 자주요백지갈채룡봉문관(磁州窯白地褐彩龍鳳紋罐)ㆍ자주요백지갈채설(磁州窯白地褐彩碟) 등 2점, 명대의 용천요청유각획화병(龍泉窯靑釉刻劃花瓶)ㆍ덕화요백유쌍룡문삼족로(德化窯白釉雙龍紋三足爐)ㆍ장주요홍록채영희문완(漳州窯紅綠彩嬰戲紋碗) 등 3점, 청대의 청화지백화모단문장군관(靑花地白花牡丹紋將軍罐), 덕화요백유방서각식배(德化窯白釉仿犀角式杯) 등 21점, 청화산수인물도사방위각반(靑花山水人物圖四方委角盤)ㆍ청화가반홍채묘금석보상화도반(靑花加礬紅彩描金石寶相花圖盤)ㆍ청화가분채묘금절지매화화람문반(靑花加粉彩描金折枝梅花花籃紋盤)ㆍ쇄람지황유개광청화화훼도호로병(灑藍地黃釉開光靑花花卉圖葫蘆瓶)ㆍ청화개광절지화문릉화구완(靑花開光折枝花紋菱花口碗)ㆍ청화산석모단문고(靑花山石牡丹紋觚)ㆍ경덕진요청화~반(景德鎭窯靑花~盤)ㆍ경덕진요청화산수루각도온반(景德鎭窯靑花山水樓閣圖溫盤)ㆍ경덕진요청화~반(景德鎭窯靑花~盤)ㆍ청화루공금지개광산수정사도방병(靑花鏤空錦地開光山水亭榭圖方瓶)ㆍ광채휘장문자반(廣彩徽章紋瓷盤)ㆍ광채휘장문자반(廣彩徽章紋瓷盤)ㆍ광채휘장문자반(廣彩徽章紋瓷盤)ㆍ광채~완(廣彩~碗)ㆍ광채화조어문반(廣彩花鳥魚紋盤)ㆍ광채~완(廣彩~碗)ㆍ광채~방반(廣彩~方盤)ㆍ광채~반(廣彩~盤)ㆍ광채~반(廣彩~盤) 등 총 30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장사요청유갈록채쌍계관(長沙窯青釉褐綠彩雙系罐)>




그림  <덕화요백유방서각식배(德化窯白釉仿犀角式杯)>


특히 이번 전시에는 2005년 중국국가박물관 수중고고학연구선터가 주도하여 발굴한 복건성 평담현(平潭縣) 해역의 <완초(碗礁) 1호 침몰선>에서 <완초(碗礁)1호 침선출수자기(沈船出水瓷器)>도 전시되었다. 이 침몰선에서는 총 1만 7,000여점을 수습하였는데, 대부분 청대 강희 중기 경덕진에서 만들어진 민요자기로 대부분은 청화자기이고 일부는 오채ㆍ청화유약리홍자와 단색유약자기이다.
<완초(碗礁)1호 침선출수자기(沈船出水瓷器)>에는 방가유세(仿哥釉洗)ㆍ경덕진요내청화외장색유완(景德鎭窯內靑花外醬色釉碗)ㆍ경덕진요청화어가낙원천완(景德鎭窯靑花漁家樂園淺碗)ㆍ경덕진요청화~배(景德鎭窯靑花~杯??)ㆍ경덕진요청화이사란화문수대이호로편병(景德鎭窯靑花伊斯蘭花紋綬帶耳葫蘆扁瓶)ㆍ경덕진요청화인물고사문반(景德鎭窯靑花人物故事紋盤)ㆍ경덕진요청화호석화훼도화구반(景德鎭窯靑花湖石花卉圖花口盤)ㆍ경덕진요청화개광절지화문화구반(景德鎭窯靑花開光折枝花紋花口盤)ㆍ경덕진요~반(景德鎭窯~盤)ㆍ경덕진요~반(景德鎭窯~盤) 등 10점이 전시되었다.



그림  <덕진요청화이사란화문수대이호로편병(景德鎭窯靑花伊斯蘭花紋綬帶耳葫蘆扁瓶)>


# 하방공향(遐方共享)은 ‘먼 나라에서도 함께 누리다’의 의미로 가까운 아시아의 조선, 일본의 자기와 멀리 유럽 영국의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국 도자기의 해외 판매 규모와 범위가 끊임없이 확대됨에 따라 도자기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점차 커졌으며, 아시아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중국 도자기를 모방하였다. 이들이 만든 제품은 중국 도자기의 기본적인 특징은 살리면서도 자국의 사용자의 수요와 심미적 요소를 결합하여 다채로운 도자기 문화를 구축하였다.
<하방공향(遐方共享)>에는 조선의 17세기 청화운룡문관(靑花雲龍紋罐), 18세기 청화불수화문완(靑花佛手花紋碗), 일본의 17~18세기 오채묘금화훼문규구완(五彩描金花卉紋葵口碗), 영국의 18세기 청화교당도절연반(靑花教堂圖折沿盤)ㆍ오채동물고사문약합(五彩動物故事紋藥盒) 등 총 5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오채동물고사문약합(五彩動物故事紋藥盒)>

# 참고문헌: 베이징국가박물관 설명서.